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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윤동주 시에 나타난 종교적 실존을 비애(슬픔)와 기독교 신앙의 관련성 속에서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애와 기독교는 일견 상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애의 정서는 기독교 신앙과 결부된 근본 기본으로 간주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을 체념과 믿음 사이의 이중운동으로 파악하는 키에르케고르는 체념의 단계에서 비애나 불안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윤동주 시에 나타난 비애나 불안은 종교적 경험 속 여러 감정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지 않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을 원용함으로써 섬세하게 분석될 수 있다. 윤동주 시세계는 연희전문대 3학년 시절, 이른바 ‘신앙의 회의기’를 거치면서 크게 변화된다. 이전 시에서 신의 부름 없이도 신앙의 영역에 자발적으로 진입하고자 했던 시인은 「팔복」과 「병원」에 이르러 비극적 세계인식과 우울증적 시선을 노출한다. 비애/우울은 어떤 상실감과 관련된다. 기독교 신앙은 키에르케고르가 설명했듯이 종교적 의무와 윤리적 의무의 대립 속에서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하도록 하며, 이 체념의 단계에서 주체는 슬픔, 두려움, 불안 등을 느끼게 된다. 「무서운 시간」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결정 불가능한 상태를 묘사하며, 「또 태초의 아침」은 불안한 상황에서 범죄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다룬다. 이 시편들은 시인이 종교적 실존의 단계로 나아가고자 했지만 체념의 단계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의 경험을 다룬 것들이다. 이후 시인은 종교적 실존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신앙의 운동’을 전개한다. 신앙의 운동은 체념과 믿음이라는 상반된 단계를 오가는 이중운동이다. 「십자가」는 가장 이상적인 차원의 신앙에 도달하는 믿음 운동을 묘사한다. 그러나 신앙은 항상 그러한 고양된 차원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에 시인은 믿음을 향해 가는 길에 마주하는 실족의 가능성을 묘사한다. 「눈 감고 간다」와 「간」은 믿음과 실족이라는 주제를 동시에 다루며 유한성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실족의 요소를 아예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다룬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은 「흰 그림자」에서 깊은 안식과 자족을 동시적으로 묘사하는데, 그것이 바로 윤동주가 최종적으로 깨달은 진실이다. 즉 믿음과 체념 사이의 이중운동이 결국 신앙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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