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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보기

신라 마립간기의 능원은 대릉원 일원이고, 중고기의 능원은 서악동 일원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와 더불어 왕묘역이 경주 평지 내에서 서쪽 산록으로 이동하면서 묘제도 적석목곽묘에서 석실묘로 변화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였다. 그러나, 서악동의 중고기 왕릉은 아직 단 한 기도 조사된 바 없고, 봉분도 전대 적석목곽묘처럼 거대한 규모이기에 내부 구조가 적석목곽인지 석실인지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서악동 4호분의 일부가 조사되면서 호석이 노출되었고, 이를 근거로 묘제가 적석목곽묘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다시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왕릉의 묘제 변화는 신라 사회 내부의 큰 변화 흐름이기에 그 시점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에서 묘제별 특징을 비교하고, 최근 조사된 서악동 4호분의 내용을 바탕으로 서악동 왕릉군의 묘제에 관해 검토하였다. 그 결과, 봉분은 마립간기의 규모가 유지되지만, 독립된 묘역, 새로운 호석 구조의 채용, 무덤제사 형태의 변화 등 장묘문화 전반의 변화가 확인되어 서악동 왕릉군의 내부 구조는 석실묘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였다. 나아가 왕릉의 묘제 변화는 중고기 첫 번째 왕릉인 법흥왕릉부터일 것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