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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왕은 원 제국의 계승분쟁에서 활약하여 심양왕(심왕)의 지위를 비롯하여 원 제국 질서 내에서의 강력한 세력을 얻게 되었다. 이는 고려국왕이라는 단일한 직위 아래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봉건적 특권과 자산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충선왕은 이러한 자신의 세력을 통합적으로 자신이 지목한 인물에게 분산 없이 세습하고자 하였고, 그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그가 총애하던 조카 왕고였다. 이를 위해 그는 결과적으로 세자 겸 심왕을 거쳐 고려국왕을 승계받았던 자신의 봉작 승계 순서를 왕고가 같은 흐름으로 거칠 수 있도록 계승구도를 기획하고, 자신의 부인과 같은 가문의 공주와 결혼토록 하여 원 황실 ‘부마’로서의 지위 획득 또한 아들인 충숙왕보다 시간적, 지위적으로 우위에 두려고 하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왕고에게 부여된 심왕 지위는 충선왕의 계승자, 우선적 세습자로서의 위치를 담보하는 것이었다. 충선왕은 이 과정에서 태위왕을 자칭하면서 자신을 중심으로 고려국왕과 심왕의 두 왕위를 조율하여 자신이 원하는 계승구도를 실현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원 영종 대에 충선왕이 급격히 실각하면서 굴절을 겪게 되었다. 고려국왕과 심왕을 조율할 태위왕이 사라지자 충숙왕은 고려국왕으로서의 독자적 지배권을 확보하려 하였고, 심왕 왕고는 충숙왕을 공격하여 상속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하려 하였으며, 심왕옹립운동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심왕옹립운동은 최종적으로 실패하여 고려국왕의 계승은 충숙왕의 계통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심왕은 고려계 왕족에게만 부여되는 왕호로서 고려국왕에게 후계자가 없거나 유고 시에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예비계승자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왕고의 손자 톡타부카가 공민왕대를 거쳐 우왕 초기까지 지속적으로 고려국왕의 예비계승자로서 호출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