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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서양에 있어 사학의 최고학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통해 발전되었다. 또 조선의 서원과 서양 대학의 발생과 그 장서는 시간적으로 따지면 약 300년의 시차가 있다. 당시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경제적 상황이 다르므로, 두 지역 교육기관의 서적 제작과 장서 관리를 일률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무릅쓰고 살펴보았다.
서양의 대학은 성립되는 과정에 있어 지역에 따른 차이를 볼 수 있다. 유럽 남부 즉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의 대학은 북부의 학생보다 연령대가 조금 더 높은 학생이 많아서 대체로 볼로냐 대학을 본보기로 삼았으므로, 세속적인 학문을 주로 교육하였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의 대학에서는 신학보다 법학과 의학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유럽 북부의 대학은 대개 파리 대학을 본보기로 삼았었다. 유럽 북부 대학에서 교육을 제공하는 주체는 교회였으며,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젊은 성직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학문은 신학이었고, 교회 관련 기관이 대학의 행정과 운영을 주도하였다. 따라서 초창기에 대학은 국가보다는 성당의 통제를 받은 것이다.
동서양을 꿰뚫어서 초창기 교육기관의 장서에 관한 사정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시대적으로 동시대를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여러 어려움이 있다. 시대가 달라지면 문화적인 사회적인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서적 제작은 물론 문고의 장서 내용도 달라지고, 그 관리양상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대학이 등장한 것은 1250년경이었고, 조선에 서원이 처음으로 설립된 것은 1543년이었다. 따라서 절대적인 동일 시간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두 지역의 서적 입수방법에 있어서도 상이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여러 요소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장서관리 양상도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절대적인 연도에 구애받지 않고 서양의 대학은 처음 설립된 후 약 300년 지난 종교 개혁기에 진입하는 1550년경까지, 서원은 처음 설립된 후 200년 경과한 18세기 중기까지를 연구시점으로 설정하였다. 두 지역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어 교육목적도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두 지역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의 서적 간행과 장서에 대해 일별하였다.
조선에서는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 품질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록매체는 종이였고, 조선은 이미 목판인쇄술과 금속활자인쇄술의 황금기였다. 따라서 서원에서는 초기부터 서적은 목판본이 주된 서적이었다. 서적을 관리하는 규정도 제정해 그에 따라 관리하였다. 서원의 서책은 장서고의 서가에 배가되어 있었다. 이들 서책은 서원 문 밖으로 반출할 수 없었고, 서고문은 열쇠를 가진 3인이 합석해야 열 수 있었다.
이 규정을 엄격하게 지킨 서원의 장서는 비교적 손실이 적었다. 서목도 작성했는데, 이 목록은 인수인계・장서점검・대출기록 등의 용도로 이용되었다. 紹修書院의 경우 서목에 수록된 장서량은 중종 39(1544)년 周世鵬이 서원을 건립했을 때 구입한 서적은 43종 525책이었다. 선조 35(1602)년 7월에 작성된 서목에는 107종 1,678책이 수록되어 있었다. 영조 38(1762)년경 편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紹修書院冊錄에는 서적 209종과 서원에서 직접 판각한 책판 7종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27종의 서적이 추록되어 있다.
서양 대학의 초창기에 사용된 기록매체는 양피지였다. 대학에서의 장서는 대개 수도원장, 대주교, 추기경 등의 기증본으로 증가되었다. 1150년경 대학의 형태를 보이기 시작한 파리대학은 1250년 소르봉Robert de Sorbonn (1201~1274)이 단과대학을 세울 기부금을 낼 때 자신의 장서와 그 장서 유지를 위한 기금도 함께 기증하면서 문고가 비롯되었다. 대학 문고의 서책은 고가의 호화 양피지 사본이 중심이었으므로 상당 기간 책상자에 보관하였고, 열쇠를 가진 3인이 합석해야 열 수 있었다. 이후 독서대에 쇠사슬에 묶어 놓은 채 열람할 수 있었다. 인쇄본이 일반화된 이후 쇠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서적을 관리하는 규정도 제정해서 관리하였고, 서목도 작성했다. 1289년에 작성된 소르본느대학 장서목록에 1,017종 서적이 수록되었고, 1338년에 작성된 목록에는 1,700책이 수록되었다. 대학 설립기에 지배계급과 애서가는 여전히 화려한 필사본을 수집했고, 인쇄술이 개발된 후 인쇄본도 수집하였다.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의 역사에는 1478년 처음으로 서적을 간행했다. 이는 캑스턴William Caxton(1422-1478)이 영국에 처음으로 인쇄소를 설립한 2년 후이다. 따라서 직접 간행한 것은 아니고 의뢰해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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