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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학 작품들 가운데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 형성 역사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진 후기 버전 혹은 표준 버전은 기원전 7세기의 것이지만, 그것의 원형은 고바빌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면 길가메시 서사시의 고바빌론 버전은 어떻게 저작되었을까? 수메르어로 쓰여진 길가메시 사본들이 알려지기 전부터 학자들은 길가메시 서사시의 기원이 수메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20세기 초에 수메르어로 된 길가메시 단편들이 출판되면서 길가메시 서사시와 수메르 단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고대 메투란에서 새로운 사본들이 발견되고, 고대 수메르어와 문학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 논문은 수메르 문화 속 길가메시 단편들의 위치를 살피고, 후자를 길가메시 서사시와의 비교적 관점에서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길가메시에 대한 수메르 단편들은 대부분 고바빌론 시대의 학교 문서로 전해지지만, 그것의 최초 문서화는 우르 3왕조의 시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수메르 단편들에 수메르 사회의 관심들이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 구전에 대한 직접적 증거는 없지만 수메르 단편들의 문체 분석을 통해 그것들이 구전과의 상호 작용 가운데 창작 전승되었음을 이해하고, 수메르 단편들과 후대의 서사시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빌가메시 엔키두 그리고 지하세계(BEN)〉는 그 후반부가 아카드어로 번역되어 길가메시 서사시의 제12토판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일견 이 둘의 관계가 기계적 번역의 관계로 보이지만, 앞서 논증한 것처럼, 서사시의 저자는 BEN에 제시된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우정을 서사시 전체에 아우르는 핵심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빌가메시와 후와와〉와 〈빌가메시와 하늘 황소〉의 경우, 그것들과 길가메시 서사시와의 관계는 보다 느슨하다. 수메르 단편의 기본적 플롯이 서사시의 3-5토판, 6토판에서 확인되지만, 그 수메르 자료들은 세부 사항에 있어 길가메시 서사시와 크게 다름을 확인하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완벽히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그린 후대의 서사시와 달리 수메르 단편에 그려진 길가메시는 수메르 전통적 종교에 충실하면서 영웅적 행위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빌가메시의 죽음〉과 〈빌가메시와 아가〉에 반영된 일화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길가메시 서사시의 저자가 그 수메르 단편들을 좀더 미시적 차원에서 활용한 증거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길가메시에 대한 수메르 단편들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구성을 보이는데, 이것은 수메르 단편들이 길가메시에 대한 수메르 사회의 ‘문화적 기억’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메르 문학의 기원이 구전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수메르 서전이 구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승되었음을 확실하다. 길가메시 수메르 단편들에 대해서도 그것과 상호 작용하는 구전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수메르 단편들을 아우르는 보다 긴 플롯의 수메르판 길가메시 서사시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는 별도의 연구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