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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현존하는 봉화의 사찰 가운데 淸凉寺, 鷲棲寺, 覺華寺를 중심으로 불교 공간인 사찰이 유가 공간으로써 어떤 양상을 띠게 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유학자들은 이들 세 공간을 유람하면서 이를 내면화하여 생각을 정리한 뒤에 한시라는 문학 장르를 통해 노래로 승화하였다. 이런 현상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 구한말까지 지속되어 나타났고, 지식인들은 불가의 공간을 유가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교적 수행·의례의 공간인 사찰이, 지역 사대부와 사족들에게 독서·강학·수양·修稧 등의 방식으로 향유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청량사는 청량산의 많은 사찰이나 암자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의 사찰이자 대표적인 불교 공간이었다. 한국 유학사의 종장인 退溪 李滉이 청량산에서 독서한 이후로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되어 영남지역 문인 학자 뿐만 아니라 전국의 유학자들은 한 번쯤 다녀가고 싶은 성지가 되었다. 이때 이황이 남긴 시문은 직전 제자뿐만 아니라, 안동 유림 더 나아가 영남 유림의 관심사가 되어 반드시 이곳에 들러 차운시를 남기게 된다. 축서사는 17세기 봉화의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川成四老와 18세기 영남 문학의 종장으로 추앙되었던 訥隱 李光庭이 이곳에서 文會를 열어 당시의 문하생들에게 커다란 경험과 학문적 깊이를 더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던 공간이다. 각화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태백산사고지를 수호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매우 신성시되었고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西厓 柳成龍은 이곳에서 수양하였고, 蒼雪齋 權斗經은 환갑년에 이곳에서 벗들과 수계를 하기도 하였다. 세 사찰 모두 독서와 강학 공간으로 활용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각화사의 경우 한시 작품 수에 있어서는 청량사나 축서사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독서와 강학과 관련한 작품은 확인하지 못하였기에 수양과 수계에 관한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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