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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필자는 4세기 후반 모용선비의 정통성이 어떻게 남연에 의해 계승됐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남연의 개국군주 모용덕(336~405)은 실로 질풍노도의 인생을 살았다. 34세에 고국 전연의 멸망을 목도했고, 이어서 적국 전진에서 10여 년간 나라 잃은 생활을 보냈으며, 지천명의 나이에 형 모용수를 도와 흥복대연을 완수하고 후연을 건국한 것이다. 이후 후연은 서연을 멸한 후 비로소 모용선비의 정통성을 확보했지만 북위와 겨룬 참합피의 전쟁에서 패한 후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면 그 후 그들의 정통성은 어떻게 된 것일까? 당시 북쪽 용성으로 물러난 후연의 잔여세력과 달리 남쪽의 업성을 지켰던 모용덕은 자신을 믿고 따랐던 자들을 이끌고 황하 이남의 활대로 이동하여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그가 그곳에서 연왕부를 권력의 핵심으로 한 이통부행제제를 실시하는데, 이는 보다 효과적으로 승제남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모용씨 왕조가 아닌 정권의 수립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확실한 세력 근거지도, 그 휘하에 용건한 병사들도, 더욱이 행정력이 미치는 강역과 그 안에서 삶을 영유하는 다수의 백성들을 편호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용보에게 신자의 도리를 다하고 있던 모용덕이 이를 부인하면서까지 자립을 쟁취하고 모용씨 왕조를 건국했다고 보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모용보가 시해된 후 후연의 잔여세력은 모용성을 중심으로 새롭게 결집하는데, 난씨정권을 공멸한 그는 곧바로 연황제위에 오르지 않고 장락왕의 신분으로 섭행통제하였다. 이는 당시 활대에서 모용선비의 재흥을 위해 분전하고 있던 모용덕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용덕이 이후 이변의 반란으로 회복 불능의 위기상황에 처하자, 이런 위난을 알았던 모용성은 이때 스스로 연황제위에 올라 후연의 재흥을 완수하겠노라 다짐했을 수도 있다. 이것이 일전에 연황제의 등극을 꺼렸으나 이제 와서 기꺼이 이를 받아들인 진짜 이유였던 것이리라. 여하튼 활대를 잃은 후 보다 안정적으로 힘을 키우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요충지와 그 배후를 확보해야만 했던 모용덕은 결국 반총과 승랑의 계책에 따라 청제지역으로 진출하기로 결정한다. 이때 그가 정복자가 아닌 협력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자 14만 이상의 서연지사와 그 백성들이 앞다퉈 귀항했다고 한다. 하지만 귀항을 거부하며 저항한 자들도 있었는데, 광고에 웅거했던 벽려혼이 그런 인물이었다. 이후 광고를 차지한 모용덕은 연황제에 등극한 후 모용씨의 행묘를 세우고 황제지제의 관직을 설치하는 등 비로소 모용씨 왕조를 건국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남연(399~410)이다. 이때 특히 주목되는 사건은 모용덕이 모용성에게 사람을 보내 지금부터 자신이 연황제의 조령을 시행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소식에 모용성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모용선비의 강역이 남북으로 분열된 상태에서 연황제가 둘로 나뉘어 대립하는 형국을 피하고 그 상징적인 통일을 위해 서민천왕으로 강호하기로 결정한다. 그렇다면 이는 모용성 스스로 남·북방 모용선비를 대표하는 인물은 모용덕이며, 남연은 모용선비의 정통성을 계승한 왕조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남연은 전연-서연-후연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정통성을 계승해서 건국된 왕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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