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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김동신과 김동신 의진의 항일투쟁을 살펴보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선행연구에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김동신 의진의 활약상 및 부대 운영과 전략 등을 좀 더 상세히 검토하고자 하였다.

김동신은 을사의병기 홍주의병의 주역이었던 민종식의 지도 아래 의병에 투신하였고, 1907년 음력 8월경 이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08년 6월까지 충청·전라·경상도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이 과정에서 덕유산과 지리산을 근간으로 하여 장기항전체제를 모색하였으며, 군자금 모집 및 가의병 처단, 일본 군경과의 교전 활동 등에 주력하였다.

김동신의 활약상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좀 더 주목해야 한다. 우선 그의 활약은 을사의병과 정미의병의 연속성을 방증한다. 김동신은 거의 동기로 민종식 의진 참여를 언급했다. 이는 대표적 을사의병인 홍주의병과 김동신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 독립운동사에 있어 을사의병과 정미의병의 연속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일제는 김동신을 두고 ‘호남의병의 효시’라고 평가했는데, 이는 그만큼 그가 호남지역 의병의 선구로 활약하였고, 한때 약 1,000명의 병력을 거느렸을 정도로 지역 의진을 망라하며 세력을 떨친 대표적 의병장이었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그가 자신의 ‘비장’으로서 지목한 휘하 의병장들의 지휘 규모를 합산하면 2,000명을 넘어섰고, 그 활동지역도 충청남도와 전라·경상도를 포괄하였다. 이중 문태수·유종환 등등은 함께 일제에 대항해 투쟁한 것을 넘어 김동신이 체포된 뒤에도 의병항쟁을 이어나갔다.

결국 김동신은 호남의병, 더 나아가 정미의병의 선구자였고 그 의진은 정미의병기 지역 의병의 산실과도 같았다. 즉 김동신과 그의 의진은 단순히 한 지역의 의진이 아니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의진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김동신과 그의 의진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