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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齋 李恒(1499~1576)은 16세기 호남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본고는 이항의 문집 및 여타 문집 자료를 통해 이항이 학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경위 및 교유 양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이항은 비교적 늦게 학문을 시작한 데다가 뚜렷한 사승 관계도 없었다. 이러한 이항이 조선 학계에서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규암 송인수의 평가이다. 송인수는 이항에 대해 “실천이 張載보다 못하지 않다”고 평했다. 이러한 송인수의 평에 의해, 이항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고 장재의 기질변화를 실천한 대표적인 도학자로서 거론되었다.
이항은 호남의 태인현을 기반으로 학문 활동을 하였으나, 그의 교유 범위는 광범위했다. 그는 호남 학자들 뿐만 아니라 영남 지역, 근기 지역 학자들과도 폭넓게 교유했다. 이항과 교유한 학자들을 일별해 보면, 호남 지역 학자로는 盧守愼⋅盧禛⋅金麟厚⋅奇大升이, 근기 지역 학자로는 南彦經 형제, 許曄, 李球가, 영남 지역 학자로는 朴英과 李滉의 문인들이 있다. 이항의 설과 주변 인물과의 토론 내용은 16세기 성리학 이론이 정교하게 발전하는 데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평할 수 있다.
아울러 이항의 교유 양상에서 볼 수 있듯이, 16세기에는 학자들이 학파를 이루어 활동하되 지역이나 학파에 국한되지 않고 학맥과 혼맥을 기반으로 다양하게 교류했다. 즉 16세기에는 성리학의 주요 논제에 대해 지역과 학파의 경계를 넘어선 활발한 토론이 오고 갔던 것이다. 따라서 향후 16세기 학계의 실상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학파 내의 종적 네트워크 뿐만 아니라, 횡적 네트워크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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