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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이후 서양에 의한 유교문명권의 붕괴가 가시화되었다. 이를 감지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기존의 의리론과 달라진 관점을 보였다. 화서학파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특히 『주역』에 등장하는 석과불식(碩果不食)과 중행독복(中行獨復)을 인용하여 자신들의 주장과 실천을 정당화했다. 물론 그들 사이에도 시기와 상황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이항로는 기존의 의미를 지속했다. 그의 수제자인 김평묵과 유중교는 위기 의식을 강조하면서 군자의 능동적인 행동 또한 강조하였다. 그러나 1905년을 기점으로 희망은 거의 사라졌다. 대한제국의 종식은 석과불식으로 상징되는 양(陽)의 기운의 소멸이었다. 유인석은 1908년에 조국을 떠났고, 신해혁명 이후 중국에서 복벽(復辟)의 가능성을 보았다. 한국의 식민지화와 중국의 변화는 그의 시세관에 다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소중화로서의 조선의 역할은 마감되었고, 중국에서 유교가 부활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것은 중화-소중화라는 전통적 사대질서의 회복이기도 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 기대는 선언적 차원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권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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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목차
춘천 맥국설에 대한 재검토 = A review of Chuncheon's Macguk 김규운 p. 1-30

나옹 문손 신미 주도의 상원사 재건 불사와 목조문수동자좌상 도상 고찰 = The reconstruction of Sangwonsa temple led by Nawon’s disciple, Sinmi, and the iconography of the wooden seated Manjushri Youth Statue 홍순문 p. 31-69

화서학파의 의리관과 유인석의 시세 인식 = Hwaseo School's view of righteousness and Yoo In-seok's recognition of the time : focusing on Seokgwabulsik(碩果不食) and Junghaengdokbok(中行獨復) : 석과불식(碩果不食)과 중행독복(中行獨復)을 중심으로 이경구 p. 71-94

1960-70년대 임시교원양성소 출신 초등교사의 자격 취득 사례 연구 = A case study of a elementary school teacher from temporary teacher training center obtaining qualifications in the 1960s and 1970s 박진동 p. 95-121

살아서는 료씨 죽으면 장씨 = Liao(廖) when he's alive, Zhang(張) when he dead : formation of the Zhangliao clan and the clan story in Ming-Qing period China : 明·清代 張廖氏宗族의 형성과 종족이야기 원정식 p. 123-157

1670~80년대 왕당파의 써 로버트 필머의 『부권론』 수용과 정치적 가부장권 담론 = The royalist rediscovery of Patriarcha and political patriarchalism during 1670-80 박정규 p. 159-179

1910년대 초 ‘멕시코 문제’를 둘러싼 영-미 갈등과 윌슨의 외교 정책 = Anglo-American conflict over ‘Mexican question’ in the early 1910s and Wilson’s foreign policy 유회명 p. 18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