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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조선의 정승 : 살아있는 조선의 정신을 만난다 / 이준구 ; 강호성 편저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스타북스, 2006
청구기호
951.5092 ㅇ873ㅈ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형태사항
351 p. : 그림, 사진 ; 23 cm
총서사항
조선을 움직인 위대한 인물들 ; 2
표준번호/부호
ISBN: 8992433018
제어번호
MONO1200633637
주기사항
표지표제: (조선의)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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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71314 951.5092 ㅇ873ㅈ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230372 951.5092 ㅇ873ㅈ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230373 951.5092 ㅇ873ㅈ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조선의 흥망성쇠를 같이 한 정승들
    격동의 정치판을 지배했던
    그들의 가르침과 정치 철학을 읽는다!

    왕의 곁에서 역사를 움직인 정승들

    조선의 역사를 만듦에 있어 정치란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정치는 이해와 협력 혹은 당쟁과 모략으로 관계를 이룬다. 정치의 상징은 왕이었지만 그 뒤에서 관료들의 중심이 되었던 존재는 정승이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하여 위로는 오로지 임금 한 분만을 모시지만, 아래로는 모든 관리와 백성들을 다스린다는 정승은 정치의 흐름을 좌우하는 자리였다. 조선시대 왕이 되기 위해서는 혈연이라는 배경이 중요했다. 정승 역시 양반이라는 신분이 필요하지만 양반이라고 해서 모두가 정승이 될 수는 없었다. 경륜을 갖추고 정치의 흐름을 꿰뚫는 동시에 백성과 왕을 이을 줄 알아야 했다. 정치적 세파에 흔들림이 많았지만 중심을 잡아 왕을 모시고 백성을 다스려야 했다.
    정승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조선의 개국을 도왔거나 국왕의 측근으로 정치력을 인정받아 성공한 정승들, 실무 능력을 지닌 정승 그리고 정치적 이상을 현실 정치에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로 고심한 정승 등 다양한 정승들이 있었다. 《조선의 정승》에서는 험난한 정치판의 중심이었던 여러 정승들의 삶을 압축적인 연대기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로 꾸몄다. 정승의 삶과 이념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된 이래, 그들이 어떤 정책을 폈고 국왕과는 어떤 관계였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당시 시대는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후세의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줄 수 있다. 이는 조선 500년 정치의 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들의 지향점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승, 정치를 말하다
    진흙투성이인 정치판에서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정치를 했던 황희는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의 곁에서 실질적인 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백성과 왕에게 두루 인정받았고 태종으로부터 세종, 문종에 이르는 3대를 내리 섬기며 20년 간 정승 생활을 했다. 황희가 정승의 대표격으로 알려져 있고 그것이 사실이지만 황희 이외에도 많은 정승들이 조선의 역사를 지탱했다. 건국 초 개혁을 맡았던 정승들, 임진왜란 당시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애썼던 정승, 쿠데타를 도왔던 정승, 열강들이 밀려왔을 때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쓴 정승 등 여러 정승들이 있었다. 정승들은 결과가 옳든 그르든 나름의 통찰력으로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국이 혼란스러우면 가장 고통받는 이는 국민이다. 현대 한국의 정치사를 돌아보면 문제점은 반드시 있었고 힘든 시간과 과정을 지나 해결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껴안고 있는 문제도 많다. 사회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 가는지에 따라 미래는 방향을 바꾸고 명암은 달라진다. 우리가 좀 더 현명하게 문제를 푸는 방법 중 하나는 과거의 역사를 보고 변화를 예측하고 학습하는 것이다. 《조선의 정승》은 현대 정치가 배워야 할 정승들의 업적과 정치 철학을 담았다. 당시 정승들은 여러 변수와 권력 집단 간의 갈등 때문에 유배를 가기도 하고 다시 정승에 오르기도 하는 등 평범하지 않은 정치 인생을 보냈다. 그들의 삶을 살피고 조선의 정치를 새롭게 조명하면서 역사에서 정승의 정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본다.

    정승들을 통해 역사의 빛과 어둠을 읽는다!
    역사에는 옳고 그르다는 정답이 없다. 이미 지나간 과거가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할 뿐이다. 정승들 역시 그 면면을 살펴보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들은 정계의 핵심인물이었고 후세에도 가장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있다. 청나라가 중원의 주인이었던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패권을 잡았을 때 조선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선비의 나라라고 자부하며 명나라를 섬겼으나 오랑캐라고 괄시했던 청을 섬겨야 할 처지였다. 이에 명나라와 의리를 지키고 청과 싸우자는 척화론이 대두되었을 때 정승 최명길은 현실적인 시각에서 주화론을 내세웠다.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면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약한 나라 조선이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배경과 시대적인 아픔 같은 뒷이야기를 《조선의 정승》에서는 면밀하게 풀어낸다. 또한 친일파로 알려진 김홍집의 입장이라든가 세조의 쿠데타를 도왔던 한명회 등의 속사정도 밝힌다. 그러나 당위성을 부여하기보다 조금 더 입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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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정도전은 '이상적인 정치제도는 재상을 최고 실권자로 하여 권력과 직분이 분화된 합리적인 관료 지배체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상을 최고의 행정책임자이자 정책결정권자로 보았다. 재상은 아래로는 모든 관리를 통솔하고 백성을 다스리며 위로는 국왕과 대등한 위치에서 국왕과 더불어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광범위한 통치의 실권을 장악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군주는 재상보다 위에 있으되 실질적 권한은 재상에게 있으니 군주는 현명한 재상을 임명하여 정책 결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 본문 136쪽에서
    맹사성은 정승으로서의 권력을 강화하기보다는 관리의 능력과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편이었다. 또한 정치에 있어서 노련미를 발휘한 황희와 달리 문학과 예술에 자질을 보였다. 그는 음률에 정통하여 많은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악공을 가르치거나 과거 응시자들의 문학과 학문적 소양을 평가하는 시험 감독관 역할을 주로 맡게 된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정승직에 있을 때 앉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민정 시찰을 나가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 본 다음 정책을 시행했다. 때문에 그의 관직 생활 동안의 업적이 특별하게 눈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진행시킨 조율사로 평가받을 만하다.
    -맹사성, 다재다능한 팔방미인 정승
    목화는 꽃이 피기도 하고 꽃이 져 솜이 되어도 꽃핀 것처럼 보이니 화부화가 곧 목화였다. 선비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뜻을 곰곰 헤아리며 입경하였고, ‘화부화’라는 문재文材가 내걸리자 노인의 말을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써내려 간 것이다.
    “그 노인의 생김이 어떠하던가?”
    이야기를 다 듣고 놀란 정조가 물었다.
    “얼굴이 길고 갸름하고 키는 훌쩍 컸으며, 코도 크고 입술은 두툼하였습니다.”
    정조는 즉시 사람을 보내 선비가 하룻밤 유숙했던 장소를 확인했다.
    “거기에 집은 없고 다만 무덤이 있었는데, 바로 전임 정승 채제공의 비석이 있었습니다.”
    이에 정조가 감탄하여 말했다.
    “번암이 죽어서도 재주를 부리는구나!”
    화부화는 꽃이 진 자리에서 다시 피는 꽃으로 세종에서 성종 때 활짝 피었던 조선의 문화가 영조와 정조 시대 때 다시 꽃 피우는 것을 나타낸다. 정조가 치세를 펼치고 채제공이 그 중심에서 정조를 도우니 문화를 꽃피우고자 했던 두 사람의 뜻이 통했음을 알 수 있다.
    -채제공, 균형 있는 정치를 꿈꿨던 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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