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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 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의 숨겨진 삶을 찾아서 / 이경분 지음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휴머니스트 퍼블리싱 컴퍼니, 2007
청구기호
780.92 ㅇ569ㅇ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형태사항
266 p. : 사진 ; 23 cm
표준번호/부호
ISBN: 8958621737
제어번호
MONO120070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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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지은이의 말

Ⅰ 표상, 그는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있는가?

1 애국가의 작곡가

2 첼리스트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3 '코리아 판타지'의 작곡가

Ⅱ 발견, 1941~44년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1 1941년 베를린에서의 안익태

2 안익태의 귀국계획

3 에키타이 안의 음악적 캐리어 - 1942년

4 지휘자 안익태의 전성기 - 1943년

5 베를린-파리-바르셀로나 : 스페인으로의 피신

6 일본 음악가 에키타이 안

Ⅲ 탐색, 음악과 삶, 그리고 일독회

1 1940년대 일독회의 프로파간다 역할

2 일독회의 지휘자 에키타이 안

3 일본 음악가로서 안익태의 문화 정치적 역할

Ⅳ 환상, 심포니적 판타지 '코리아 판타지'의 수수께끼

1 1940년 안익태 연주회 비평문의 진실

2 보이지 않는 '코리아 판타지'의 존재

3 독일에서의 대표작은 '에텐라쿠'

4 '에텐라쿠'가 '강천성악'?

5 고노에 히데마로와 안익태의 관계 : 대타에서 경쟁자로

Ⅴ 신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 두 일화의 문제점

2 언제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되었나?

3 1942년 슈트라우스의 인정을 받는 안익태

4 안익태와 에하라 고이치의 친분

5 슈트라우스, 에하라, 안익태 그리고 '만주국 축전곡'

6 안익태 홍보용 팸플릿(1942 43년)의 정보

7 다섯 가지 진실

VI 잃어버린 시간, 독일에서의 안익태

1 야심이 강한 음악가의 정치적 이용 가치

2 '일본의 토스카니니' 안익태

3 식민지 음악엘리트의 모순 : 긍정적인 일본 경험과 애국 사이에서

끝맺으며

미주

참고문헌

안익태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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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189842 780.92 ㅇ569ㅇ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204038 780.92 ㅇ569ㅇ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204039 780.92 ㅇ569ㅇ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만약 안익태를 정치적 신조가 굳은 애국자로 본다면 이 문제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정치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음악가로 성공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으로 본다면 그의 모순 된 행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단순히 음악가로 성공하려는 안익태의 야심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화 또는 축소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애국 청년이 처음에는 음악적 성공을 위해 일제와의 협력을 시작했지만, 그 활동 영역이 점점 확장됨에 따라 점차 자신의 역할에 스스로 설득 당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음악을 민족과 국가에 헌신하는 도구로 보았던 안익태는 처음에 헌신의 대상이 민족 조선이 아닌 국가 일본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겠지만, 나중에는 진정으로 열의를 다해 헌신하게 된 것일 아닐까?

    1906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니고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한 안익태에게 일본이란 무엇일까? 도 민족과 조국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훈계하고 포상하며 벌도 주는 존재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조선이라는 조국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신 부모처럼 추상적일 뿐 실제 그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본문 232~23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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