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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 : 너무도 위풍당당한, 지극히 시끌벅적했던-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261503 952.3 ㅇ362ㄱ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261504 952.3 ㅇ362ㄱ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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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적인 것의 완성자, 한무제
중국학의 대가 요시카와 고지로가 쓴 한무제 평전. 한무제의 치세는 중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로 서양 역사의 로마 제국 전성기에 해당한다. 위세 당당하던 이 시대야말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대전환기였다고 평가하는 저자 요시카와 고지로는, 무제의 개인사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무제의 치적과 그 시대의 분위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중국인 또는 중국 문명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漢’이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데에는 무제 시대의 번영과 성취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치 기간 54년 동안, 중국사상 가장 빛나는 황금시대를 구축하였다. 흉노의 정벌을 통한 대외적 영역의 팽창은 현재 중국인들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을 제시하였다. 유학의 국교화 및 관료기구의 정비, 사마천의 『사기』 저술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는 경학과 문학과 역사학이 모두 한결같이 무제의 시대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신문화의 3대 지주가 되는 정신문화의 모델을 확립하였다. 특히 이후 오래도록 중국 2000년의 역사를 일관해온 이념이면서 실천 덕목이었던 가장 중대한 한 가지 사실, 정치는 반드시 교양 있는 인간에게 맡겨야 하며 그 교양은 유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전통은 이렇게 해서 확정되었다. 말하자면 후세의 과거제도科擧制度 역시 여기서 싹텄던 것이다.
특히 파란만장했던 무제의 일생을 엄정한 사료와 풍부한 원전 인용문과 함께 문학적 상상력을 교직하여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로 엮어낸 저자의 재능은 감탄할 만하다. 문사철文史哲을 통섭統攝했던 저자의 탁월한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사실상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무제 시대 관련 주요 부분을 한 권의 책에 집약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다.
『한무제』는 1949년 12월 이와나미 쇼텐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40여 판을 거듭하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국내에서는 1979년 태양문화사, 1993년 명문당에서 출간한 바 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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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걸 고원을 본거지로 하는 흉노는 무제가 치세하기 이전에 서방 감숙의 호리병 지방까지 장학하고 있었다. 그것은 북방으로부터 장성의 남쪽을 노리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았다. 동쪽으로 번쩍 쳐들어서는 한족을 압박하고, 서쪽으로 번쩍 쳐들면 월지와 그 밖의 다른 민족들을 압박할 수가 있었다. 흉노는 바로 그런 형세에 있었던 것이다.-p76 중에서

...무제는 독재자로서 이미 허다한 세월을 거듭해온 정치적 베테랑으로서 노련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 결과 대신들에게는 몹시 잔소리를 해댔다. 실제로 그 때까지 세 명의 재상에게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재상에 임명된다는 것이 꼭 고마운 일만은 아니었다.-p18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