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자료 카테고리

전체 1
도서자료 1
학위논문 0
연속간행물·학술기사 0
멀티미디어 0
동영상 0
국회자료 0
특화자료 0

도서 앰블럼

전체 (1)
일반도서 (1)
E-BOOK (0)
고서 (0)
세미나자료 (0)
웹자료 (0)
전체 (0)
학위논문 (0)
전체 (0)
국내기사 (0)
국외기사 (0)
학술지·잡지 (0)
신문 (0)
전자저널 (0)
전체 (0)
오디오자료 (0)
전자매체 (0)
마이크로폼자료 (0)
지도/기타자료 (0)
전체 (0)
동영상자료 (0)
전체 (0)
외국법률번역DB (0)
국회회의록 (0)
국회의안정보 (0)
전체 (0)
표·그림DB (0)
지식공유 (0)

도서 앰블럼

전체 1
국내공공정책정보
국외공공정책정보
국회자료
전체 ()
정부기관 ()
지방자치단체 ()
공공기관 ()
싱크탱크 ()
국제기구 ()
전체 ()
정부기관 ()
의회기관 ()
싱크탱크 ()
국제기구 ()
전체 ()
국회의원정책자료 ()
입법기관자료 ()

검색결과

검색결과 (전체 1건)

검색결과제한

열기
자료명/저자사항
정조어찰첩 /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편저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9
청구기호
951.531 -9-4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형태사항
568 p. ; 24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79868067
제어번호
MONO1200948914

이용현황보기

조회
이용현황 테이블로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407958 951.531 -9-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407959 951.531 -9-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431917 951.531 -9-4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0001431918 951.531 -9-4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문제적 사료史料,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
    - 자료의 공개와 출간의 배경 -


    조선의 호학군주好學君主 정조正祖(1752-1800)가 당대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沈煥之(1730-1802, 심환지는 이른바 정조의 정적政敵으로 알려져 있다)에게 보낸 ‘비밀편지’ 297통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인다. 그 밀서密書의 묶음은 여섯 첩으로 장첩粧帖되어 있던 옛 모습으로부터 두 권의 도록 형태로 재탄생했다.
    2009년 2월, 최초 공개된 정조의 비밀편지는 우리 사회 각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비밀편지에 묘사된 정조의 이미지와 실상이 기왕의 그것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정조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나 고민, 일상모습, 그리고 당시 조정 신하들에 대한 평이나 어떤 문제에 관한 생각이 꾸밈없는 독백처럼 여실히 드러났고, 자기 신상의 병력까지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었다. 또한 공식적인 형태의 글에서는 노출되지 않는 정조의 분방한 글쓰기 스타일도 세간의 관심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상.하 두 권으로 새롭게 묶인 『정조어찰첩』은 어찰의 원본을 정밀하게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여러 전문 연구진들이 참여하여 탈초한 원문과 그 번역문을 꼼꼼하게 정리하여 담았다. 이제 세월의 베일을 벗은 원본의 질감과 그 속에 숨겨진 의미가 입체적인 시각 속에 재해석되어야 할 때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정조대의 정치사와 문화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자극하고, 그 시대적 환기를 요청하는 ‘문제적 사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찢어버리라’ 하였으나 ‘찢기지 않은’,
    국왕國王 정조의 밀서密書 297통


    1796년부터 1800년 서거하기 직전까지, 국왕 정조는 이른바 자신의 ‘정적政敵’이라 알려진 노론 벽파의 신하 심환지에게 ‘남몰래’ 편지를 쓴다. 남몰래 쓰면서도 또다시 ‘불에 태워라’, ‘찢어버려라’, ‘보고나서 찢어버려라’, ‘세초하든지 돌려보내든지 하라’, ‘읽은 다음 찢어버리고 남기지 말라’ 등의 지시를 내린다. 그만큼 정조는 어찰의 내용이 공개되었을 때, 그 정치적 파장이 클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환지는 정조의 ‘증거인멸의 지시’를 거부한다. 노회한 정치가인 그 역시 향후 자신에게 발생할지 모르는 정치적 위험에 대비해 자신의 입장을 확보하기 위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럼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국왕과 신하 사이에 오갔던 ‘은밀한’ 편지들이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한다.’ 국왕으로부터 내려졌던 알리바이가 소멸되는 데 꼬박 200여 년이 걸린 셈이다.
    정조가 남몰래 쓴 편지 속에는 인사문제를 비롯한 당시 정치현안, 그리고 각 정파의 인물들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가 담겨 있다. 또한 여론의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거나, 정국의 안정을 해치는 상소의 경우 그 공론화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조종하고, 나아가 정국 운영에 유리하도록 공론화시키는 데 ‘심환지의 입과 글’을 사용한 증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워커홀릭workaholic.휴먼홀릭humanholic’
    인간 군주君主, 그 내면의 풍경


    정치적 밀서의 꾸림일지언정, 문체면에서 보아 대화하듯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채 써내려간 정조의 편지는 ‘인간 정조’의 내면의 심태를 가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늘 정무에 바빴던 그는 편지에다 ‘눈코 뜰 새 없다[眼鼻莫開]’는 우리말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밤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까지 공무에 집착하며 힘겨워하는 ‘정무 중독자’의 심경을 여러 번 토로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책을 좋아했던 그의 독서벽에 대한 스케치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국이 진행되지 않거나 정국을 어지럽히는 상소나 사안을 접하면 쉽게 화를 내고, 맘에 들지 않는 인물에 대해 ‘호로자식, 젖비린내 나는 놈’ 등의 거친 비유를 들어 타박했으며, 화가 치밀어 오른 날엔 밤잠을 설쳐가며 심환지에게 편지를 써내려 갔다. 이 순간 성군聖君의 면모는 실종하고 다혈질의 한 인간만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내면의 인간적 그림자는 한 풀을 더 입는다. 정치적 무게가 담긴 행간 속에도 ‘껄껄[呵呵]’ 웃는 웃음을 담았고, 심환지 부인의 건강을 물으며 삼뿌리를 보내기도 하고, 연로한 신하에게 음식과 약제를 선물하는 인정을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심환지의 아들을 과거에 합격시켜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까지 적어 보낸다. 은밀한 편지였기에 가능했던 이러한 감정의 소통이 ‘인간 정조’의 내면의 풍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유인 것이다.


    200년만에 공개되는 정조대왕의 비밀편지 297통,
    이제부터 정조의 역사는 다시 씌어진다!


    1. 정조어찰첩의 구성과 내용은?
    정조대왕(1752~1800)이 심환지(1730~1802)에게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까지 보낸 편지로,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 그 당시의 정치 상황과 정치 행태 및 현안, 정조와 신하들과의 관계 등등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는 친필 어찰이 총 6첩 297건에 담겨 있다.
    어찰의 원본을 정밀하게 촬영한 사진들을 여러 전문 연구진들이 참여하여 탈초한 원문과 번역문, 해제가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정조시대의 역동적이었던 정치사와 찬란했던 문화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문제적 사료’임에 틀림없다.

    2. 왜 정조어찰첩이 역사학계 나아가 사회적인 주목을 받는가?
    ①사료적 가치 : 관찬 사료에서 기록하기 어려운 정조를 둘러싼 수뇌부에서 진행된 내밀한 정치 실태와 생생한 실상을 담은 이 자료는 당대 정치사적 의미를 풍부하게 알려준다. 정조 치세에서 세도정치의 시대로 이행하는 19세기 전후의 정치사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사료다.
    ②문화적 가치 : 정조의 친필 원본 297건은 그 자체로 문화재이다. 이 정도 다량의 어찰 묶음은 유일하며 내용적, 사료적 가치를 고려하면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을 만하다.
    ③문화사적 가치 : 정조의 ‘편지정치’ 내지 ‘서신정치’는 조선조 한문학의 편지문화에서 파생된 형태로 정조는 이러한 편지문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했으며, 이 어찰첩을 통해 정조의 서예, 글쓰기 방식, 문체 등의 수준을 알 수 있다.

    3. 정조어찰첩을 통해 새롭게 밝혀지는 내용은 어떤 것이 있나?
    ①정조의 건강 문제, 독살설의 진위를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 : 정조의 건강은 이미 지속적으로 나빠졌고 사망할 무렵에는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정조는 스스로 자신의 병증을 진단하고 약제를 조절하는 등, 자가 진단은 물론 의원들과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자신의 병증을 치료하고 있다.
    정조어찰첩에 따르면 정조에게 지병이 있었고, 역의(逆醫)로 몰렸던 심인의 연훈방(烟熏方) 역시 정조가 직접 요구한 처방이었으며, 더욱이 정조 자신이 직접 조제와 처방을 지시할 정도로 의학 지식이 풍부했다. 따라서 여러 증거와 정황에 의거해서 보면 ‘정조독살설’을 부인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다만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조의 독살설은 당초 정치적인 정황을 근거로 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에, 문서나 기록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닐 듯하다. 궁궐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을 문서나 기록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좀더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②실용적인 문체를 구사한 정조 : 정조는 어찰첩에서 우리말과 속어나 속담, 심지어 비속어까지 활용하여 자신의 솔직한 심정과 의도를 전달하려 했다. 예를 들면, “뒤쥭박쥭” “눈코 뜰 새 없다(眼鼻莫開)” “모쪼록(某條)” “개에 물린 꿩 신세(犬?之雉)” “한 귀로 흘리다(一耳流)” “꽁무니 빼다(拔尻)” “입에 맞는 떡(適口之餠)” “참으로 호로자식(眞胡種子)” “주둥아리를 놀리려고 한다(敢欲容喙)” 등의 어휘를 거침없이 사용했다.
    ③정조와 신하 간, 특히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던 노론 벽파와의 관계 및 막후정치 구체화 : 정조는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벽파계의 지도자인 김종수와 심환지를 비롯해 서매수, 서용보, 이서구, 김희순, 이노춘, 이익모 등을 직접 관리하며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고 했다.
    정조는 여론의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거나, 정국의 안정을 해칠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편지를 보내 막후에서 여론을 조정했다. 심지어 정조는 정국 운영을 유리하게 공론화시키기 위해 심환지에게 상소의 내용까지 지시하고, 심환지가 상소할 발언의 수위와 내용까지 조절했다.
    예를 들면 “오늘 서용보를 만났다. ‘내가 이미 이제학(심환지)에게 말하였으니 다른 사람을 시키거나 스스로 하거나 좋을 대로 하라’고 서(서용보)에게 말하였다. 만약 내일 만나거든 경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어떠한가?” 등 정조는 심환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막후에서 자신의 의중을 보여주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심환지가 움직여줄 것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보기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더보기

권호기사보기

권호기사 목록 테이블로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기사목차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기사목차
연속간행물 팝업 열기 연속간행물 팝업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