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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오늘이 내 삶의 클라이맥스다 : <보그>지가 선정한 세계 20대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의 인생 도발과 승부 / 그레이스 리 인기도
발행사항
파주 : 김영사, 2009
청구기호
811.87 -9-12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형태사항
259 p. : 사진 ; 23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34934639
제어번호
MONO1200949421
주기사항
저자의 본명은 '이경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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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409499 811.87 -9-1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434395 811.87 -9-1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불가
0001434396 811.87 -9-12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가정주부 이경자와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 그리고 중국요리 이선생으로!
    삶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사랑한 그레이스 리의 인생 3부작 드라마!

    서른네 살, 직장을 가져본 적 없는 평범한 가정주부 이경자가 말도 통하지 않는 뉴욕에서 폴 미첼의 제자로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가 되기까지, 일흔두 살, 대한민국 최고의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가 암수술을 이겨낸 후 통영의 중국요리 이선생으로 살기까지, 멈추지 않는 열정과 도전으로 삶의 모든 순간을 축복으로 만든 그레이스 리 이야기

    가정주부 이경자와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 그리고 중국요리 이선생으로!
    삶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사랑한 그레이스 리의 인생 3부작 드라마!


    서른네 살, 직장을 가져본 적 없던 평범한 가정주부 이경자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5년 후, 그는 대한민국 헤어트렌드를 주도하는 최고의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가 되어 나타난다. 그는 어떻게 절망적인 자신의 삶을 180도 회전시켜 자유롭고 열정적인 삶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1970년대, 세계 미용계의 두 거성, 폴 미첼과 비달 사순의 섹션 분할 커팅 방식을 국내에 처음 도입, 단발머리 열풍을 일으킨 그레이스 리. 그의 극적인 삶이 담긴 자전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최고 헤어드레서로 꼽히는 박준 대표가 추천사에서 밝히듯, 그레이스 리는 ‘뽀글한’ 파마와 고데가 전부였던 시대 국내 최초로 헤어쇼를 개최하고 ‘그레이스 커팅클럽을 창단’, 헤어디자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1970?80년대 한국 미용계의 판도를 바꾼 장본인이며 국내 미용인 최초로 <보그>지가 선정한 ‘올해의 세계 20대 헤어드레서’로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그는 느닷없이 발병한 유방암을 담담히 이겨내고 무려 일흔 두 살이라는 나이에 “미용사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요리사”를 하기 위해 경남 통영에 ‘중국요리 이선생’이라는 음식점을 연 독특한 이력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 자전 에세이는 또다시 그에게 찾아온 세 번째 암과의 싸움을 견뎌내며 2년여의 집필 만에 출간되었다.

    평범한 가정주부 이경자에서 화려한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로!
    삶에 대한 열정이 선물한 기적

    헤어드레서라는 직업을 갖기 전 그레이스 리의 이름은 이경자였다. 이경자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열아홉의 나이에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등 떠밀리듯 결혼하지만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불행했다. 당시 대부분의 남성이 그러했듯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기질의 남편은 독립적인 기질이 잠재된 그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갈등은 깊어졌고 남편이 주는 모욕감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치사량의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지만 병원에서 극적으로 살아난다. 우여곡절 끝에 이혼 수속을 마친 그는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세 아이를 남겨둔 채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세 아이를 찾고 내손으로 키운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직업은 가져본 적이 없고 애 키우고 살림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서른 네 살의 가정주부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미국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일은 막막하기만 했다. 그는 선배의 권유로 미용 일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당시 뉴욕의 가장 유명한 미용 전문학교인 윌프레드 아카데미로 진학한다.
    영어라곤 Yes와 No밖에 모르는 그가 모발의 구조와 단백질의 특성, 얼굴뼈의 생김새 등을 가르치는 미용 기초 이론 수업 과정을 1년 안에 통과해야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세 아이의 엄마였던 이경자에게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한다면 영영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냈고 몇 개월간 거의 밤샘을 하는 눈물겨운 노력 끝에 자격증을 따낸다. 그리고 뉴욕 미용계의 전설과도 같았던 헨리 벤델 미용실에 취직하여 주목받는 헤어드레서로 성장하고 5년 뒤 귀국, 마침내 원하던 세 아이와 재회하며 그토록 꿈꾸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연출해간다.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일상이었던 서른네 살의 평범한 가정주부 이경자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에 도전하고, 마침내 이겨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주도해나가는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로 자신의 삶을 전환시키는 과정은 그 어느 드라마보다도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나이가 많아도,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내 삶을 원하든 대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폴 미첼의 섹션 분할 커팅 방식,
    대한민국 미용계의 판도를 바꾼 그레이스 리

    윌프레드를 졸업하고 그레이스 리가 취직한 헨리 벤델 미용실은 당시 뉴욕의 최상류층만을 상대로 한 명품 백화점 헨리 벤델의 5층에 자리 잡고 있었던 미용실로 미국의 소문난 멋쟁이와 명사들을 단골 고객 리스트로 가지고 있었던 곳이다. 당시 높지 않은 급여에도 미용계의 입문자들은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 했는데, 바로 폴 미첼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 리가 헤어드레서로 첫발을 들여놓던 1968년, 세계 패션계의 중심인 뉴욕에서는 세 사람의 유명 헤어드레서가 열띤 경쟁을 하고 있었다. 미국인 ‘케넷’이 가정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우아한 세팅 머리로 명성을 얻었다면, 영국인 ‘비달 사순’과 ‘폴 미첼’은 직장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커트 머리로 인기를 끌었다.
    그레이스 리가 헨리 벤델 미용실에 취직했을 때 섹션 분할 커팅 방식으로 비달 사순과 쌍벽을 이루던 폴 미첼은 그곳의 총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매주 1회식 진행된 그의 강습을 통해 그레이스 리는 ‘다양한 얼굴형과 크기, 두상의 생김새, 머리숱, 머리카락이 난 방향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머리의 길이를 정하고, 앞머리의 처리도 다르게 하며 상고머리나 쇼트커트 혹은 층층이 내려오는 섀기 스타일로 변주를 주는 커팅 방식’을 배웠고 머리를 만지는 일이 기술인 동시에 하나의 과학이며 더 나아가 예술 작품을 만드는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배움과 경험은 대한민국에 도회적이고 세련된 단발머리 열풍을 일으켰고 미용계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헤어드레서로서의 그레이스 리의 삶이 한 개인의 드라마가 아니라 대한민국 미용계의 기록으로 남아야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낱 보조 헤어드레서에 지나지 않던 그레이스 리가 서서히 손님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스승 폴 미첼의 주목을 받게 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헨리 벤델의 보조 헤어드레서 시절, 그가 샴푸실에 배치되었을 때 손님들은 두 배의 팁을 주며 그를 찾았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데 스무 살을 갓 넘긴 보조 헤어드레서보다 아이들의 머리를 감겨본 그레이스 리의 손길이 부드럽고 익숙했던 것이다. 또 머리통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는 한국식 서비스를 제공해주니 처음 이런 서비스를 맛본 손님들은 그를 다시 찾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인들은 머리를 감을 때 비눗물을 제대로 헹구지 않고 말려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눗기가 남지 않을 때까지 정성들여 헹구고 또 헹구어 주었던 것도 그레이스 리를 찾게 만든 이유였다.
    그런가 하면 스승 폴 미첼이 “당신 정말 초보예요?”라고 물을 만큼 그레이스 리는 빠르게 폴 미첼의 커팅 방식을 익혀갔는데 여기에는 남모르는 노력이 있었다. 주말마다 40여명의 머리를 공짜로 잘라주며 커팅을 연습했던 것이다. 사소한 차이가 그를 주목하게 했고 남모르는 노력이 그를 인정하게 했다.

    내 삶에 은퇴란 없다.
    영원한 현역, 그레이스 리의 긍정에너지!

    나이 일흔을 눈앞에 둔 2001년 늦가을, 그레이스 리는 느닷없이 암 선고를 받는다. “70년 동안 하고 싶은 것 하며 즐겁게 살았으니 아쉬움 없는 인생”이라고 하나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될지도 모를 암과의 싸움이 두려울 법도 한데 그는 담담하게 병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도리어 사색이 되어 울면서 달려온 아들, 딸들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보도록 파티나 하자”라며 입원 파티를 연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그는 퇴원 일주일 만에 오랜 단골들의 머리를 잘라주었다. “그날 내가 머리 잘라주기를 기다리며 모인 그 손님들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음을 몸으로 깨닫게 해준 고마운 존재들”이라는 그의 고백은 살아있는 지금 이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다시 시작된 삶. 그레이스 리는 우연찮게 통영에 들렀다가 그곳의 자연에 반하고 “미용사가 아니었다면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라며 ‘중국요리 이선생’이라는 음식점을 차린다. 사람들은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새 사업을 시작하다니 그 무슨 황당한 결정이냐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것은 그레이스 리다운 선택이었다. 이미 그는 예순 살이 되던 해, 불현듯 바닷속 구경을 하고 싶어 스쿠버다이빙를 배웠는가 하면 중국어로 된 메뉴를 읽어 중국 음식 좀 제대로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일흔에 손자뻘인 대학생들과 중국어를 배웠다. 그의 나이도 그의 호기심과 열정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도전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레이스 리는 삶에 대한 놀라운 에너지로 불행한 자신의 삶을 매력적인 삶으로 바꾸는 감동을 안겨주었는가 하면, 여성이 세상의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시대, 스스로 무대를 꾸미고 주연으로 서 여성의 멘토가 되어주었고 미용인을 경시했던 시대 새로운 롤모델이 되어 미용인의 자존심을 높여주었으며 모두가 은퇴할 나이에 새로운 인생에 도전함으로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암과 담대하게 싸우며 여전히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살아내고 있다. 그 모든 기적은 삶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사랑한 그의 열정이 만들어냈다.
    ‘77세. 그레이스 리는 지금 행운의 숫자가 두 번이나 겹치는 딱 좋은 나이라며 생애 두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왜 그가 ‘오늘이 내 삶이 클라이맥스’라고 말하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도 필요한 희망이며 열정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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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영어라곤 Yes와 No만 할 줄 아는 내가 모발의 구조와 단백질의 특성, 얼굴뼈의 생김새 등을 가르치는 미용 기초이론 수업을 들었다. 이만저만한 어려움이 아니었지만 앞으로의 생존과 관련된 일이니 어쨌든 하기는 해야 했다. 그 후로 몇 개월간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부에 미쳐 살았다. 사람이 한두 시간만 자고도 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불명예를 안고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 힘으로 영영 자립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결국 내 손으로 아이들을 키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밀고 갔다. 공포는 때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마지막 기회인 세 번째 시험에서 드디어 헤어드레서 자격증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 '뉴욕 한복판에 뛰어든 용감한 경자 씨' 중에서
    한낱 보조 헤어드레서에 지나지 않던 내가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샴푸실에 배치되어 손님들의 머리 감기는 일을 하면서부터다. 내 서비스를 받은 손님들이 내가 머리 감겨주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그런 일은 스무 살을 갓 넘긴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머리 감기는 손길이 어설픈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감겨본 경험이 많으니 손길이 부드럽고 익숙했다. 또 한국의 미용실에서 내가 받던 서비스 경험을 떠올리며 머리를 감기면서 두피 마사지도 조금씩 해주고, 머리통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 지압도 해주니 처음 이런 한국식 서비스를 받아본 손님들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시원해했다. - '크림퍼스의 보석, 그레이스 리' 중에서
    감각적인 여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그레이스 리만 알고 이경자는 모르는 거다. 철철이 된장과 고추장을 담그고, 김장하고, 이불솜을 넣고, 대청소하며 집안 살림만 하던 가정주부 이경자. 술 잘 마시고, 담배 잘 피우고, 놀기도 잘 노는 그레이스 리에게 그런 과거가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미국 생활을 하면서 ‘경자’라는 이름을 버렸다. 순종과 인내만이 살 길인 양 내 안의 말과 생각과 회의를 누르고 눌렀던 억압의 기억. 그런 삶을 살아온 경자가 싫었다. 그레이스가 되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불러냈다. 남의 머리를 감기고 좁은 중국집에서 음식을 나르며 손님이 쥐여주는 50센트 팁을 받을지언정, 장차 나와 아이들을 먹여 살릴 일을 배우며 놀 때는 거침없이 놀 줄도 아는 화통하고 독립적인 여자. 그런 그레이스가 드디어 한국에 간다. - 'We are so happy! 행복을 위한 용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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