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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이향견문록 : 이조시대 탁월한 서민들 이야기 / 유재건 지음 ;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인기도
발행사항
파주 : 문학동네, 2008
청구기호
920.051 -9-10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959 p. : 도판 ; 24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54605045
제어번호
MONO1200966685
주기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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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446940 920.051 -9-10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446941 920.051 -9-10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중인 및 서민 연구의 영원한 고전
    최근 조선시대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조선의 아웃사이더』 『조선의 방외지사』 『조선이 버린 여인들』 등은 조선 비주류들의 삶의 흔적을 복원하고 있는 책들이다. 이 책들은 연전에 나온 『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미쳐야 미친다』『조선의 프로페셔널』 등과 이어지면서 지배 엘리트의 역사에서는 제외된, 자기만의 퍼스낼리티를 탐구한 조선의 단독자들을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18세기는 농밀하게 구축되었던 성리학적 지배질서의 기반이 흔들리면서 ‘지식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거대한 모순이 용트림’한 근대의 발아 시기였다. 사회적으로 수많은 문필가와 예술가들이 생겨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세분화하면서 문어발처럼 뻗어나가던 시대이기도 했다. 여기서 공통된 흐름은 삼강오륜으로는 보듬을 수 없는 개별적이고도 소중한 ‘자아’에 관한 재발견이다. 앵무새나 담배에 관한 기록을 모아 책을 내면서 경經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에서 보듯, 이 시기 지식인들은 기존의 문자 질서를 해체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은 망해가는 조선, 식민지로의 귀결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라 아직도 수많은 문헌들 속에서 이 시대의 다양한 지적 시도들이 제대로 해독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조선시대 탁월한 서민들 308명의 삶을 전傳 형식으로 수록한 『이향견문록』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고전과의 뒤늦은 만남이라고 할 만하다. 중인 연구의 실록이라 할 만큼 방대한 양과 체계적인 서술을 자랑하는 『이향견문록』은 조선후기에 이름을 떨친 비주류들에 대한 색인집이면서, 양반들의 이름에 가려져 잊고 있던 사람들의 존재를 보존하고 있는 사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향견문록』이 최근 조선시대를 다룬 단행본들에서 압도적인 인용 빈도를 자랑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새롭게 나온 개정판 『이향견문록』은 우리 한문고전에 대한 정밀한 독서를 통해 많은 성과를 일궈내온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가 지난 1997년에 펴냈다가 절판된 민음사 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내용으로 가다듬었다. 10년 전 이 책을 읽을 만한 독자대중의 층은 미약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막강해진 교양서 시장을 거쳐온 수준 높은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 책은 조선시대를 풍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진귀한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는 네버엔딩스토리의 매혹마저 그 속에 감추고 있다.

    이조시대 탁월한 서민들에 관한 방대한 기록
    이 책은 겸산兼山 유재건劉在建(1793~1880)의 편저의 하나인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우리말로 옮기고 주석을 붙여 낸 것이다. 1974년 아세아문화사에서 나온 영인본을 대본으로 삼았다. 그 원본은 서울대 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이다.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에서 벽사 이우성 선생의 지도하에 1993년부터 번역해 1997년에 책으로 펴냈고, 10년이 지난 올해 개정판을 펴내게 되었다. 개정판에서는 초판에서의 번역상의 오류, 원문 오류 등을 많이 바로잡았으며 각 인물마다 특징이 되는 제목을 달아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19세기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시기였다. 안으로는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거세어져 1811년의 홍경래란, 1860년의 진주민란, 그리고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규모의 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밖으로는 서구 열강이 세력을 뻗쳐와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가 일어났다. 유재건은 바로 이 시기를 살았던 중인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이 격동의 시기에 그가 여항인의 문학과 일반 서민층의 삶을 기록한 『풍요삼선風謠三選』(1857) 『고금영물근체시古今詠物近體詩』(1861) 『이향견문록』(1862)을 편찬한 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유재건에 대해 별반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것은 위의 3종의 책 이외에 유재건과 관련된 자료가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보수적 성향의 인물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기존의 논의를 보면, 겸산과 그가 편찬한 책에 대하여 각기 이해하는 시각의 차가 상당히 드러나고 있다. 임창순 선생은 겸산을 “철저히 봉건체제의 윤리에 맹종하는 정신”의 소유자이며 『이향견문록』 역시 그 결과로 나타난 산물이라고 파악하는가 하면, 윤재민 교수는 “특별히 보수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인물이다. 중인 문학의 작가들을 크게 예교주의적 인물과 낭만주의적 인물로 나누어본다면, 유재건은 그 중간”이라고 파악했고, 정옥자 교수는 “유재건은 직접적이며 강경한 방법을 배제하고 온건하나 객관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계층의 신분 상승을 도모”한 인물로 보았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평가되고 있는 유재건과 그가 편찬한 책에 대해 그 실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편저자 겸산의 인간 면모
    현전하는 겸산의 글은 『이향견문록』에 재수록한 『겸산필기』 80항과 『고금영물근체시』의 ?序? 1편, 그리고 근체시 17편이 전부이다. 그의 글이나 그에 관한 글이 매우 적기 때문에 그의 인적 사항 및 의식 성향에 대해 자세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겸산이 선집한 3종의 책이 19세기까지의 여항의 문학과 인물전을 가장 방대한 규모로 집성한 것인 만큼, 그는 여항 문인들 사이에서 그 문학적 안목을 인정받았으리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역사상 시문 선집을 편찬한 사람을 보면, 대체로 그 방면의 일정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겸산은 『호산외기』(1844)의 저자 조희룡, 『희조질사』(1866)의 저자 이경민, 『풍요삼선』을 함께 편찬한 최경흠 등과 ‘직하시사稷下詩社’를 결성(1853년)한 이로서, 당대 여항의 시인·예술가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다른 사람의 시詩나 글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규장각의 서리를 지냈고 『열성어제列聖御製』(고종 2년, 1865)를 편찬하는 일에 공이 있어 상호군의 은전을 입었다고도 하는데, 구체적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겸산의 인간 면모를 알 수 있는 글로는 오직 조희룡의 『이향견문록』서문과 장지완의 『고금영물근체시』서문이 있다.

    “겸산은 흉금이 바다처럼 깊고 넓어 남의 좋은 일을 즐거워하여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모두 그물질하듯 끌어 았고, 그 언행 그 시문詩文의 밖에 한 가지 재주 한 가지 능력이라도 모두 특별히 기록하였다. 그 뜻의 부지런함이 어찌 공연한 일이겠는가?” (조희룡, ?이향견문록서里鄕見聞錄序?)

    “겸산자는 겸허하게 스스로 분수를 지키고 물物과 더불어 다투지 않았다. 나이가 지금 칠십인데, 문을 닫고 맑게 앉아 날마다 문묵文墨으로 업業을 삼는다. 젊어서부터 시詩의 편찬에 종사하였는데, 이는 모두 이전에 읊조리기를 끊임없이하여 외운 것이다. 그러므로 친구들의 시편도 왕왕 유형별로 편입시켜 놓았다.”(장지완, ?고금영물근체시서?)

    조희룡의 글에는 겸산이 당시 사람들의 시문뿐 아니라, 갖가지 예능인을 널리 기록하는 자세가 나타나 있고, 장지완의 글에는 겸산이 분수를 지키면서 맑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가 『풍요삼선』을 편찬하고, 『소대풍요』를 중인重印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것도 이런 자세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향견문록』 또한 겸산의 이러한 자세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향견문록』의 편찬 동기
    『이향견문록』에 조희룡이 쓴 서문을 보면 조희룡 자신의 『호산외기』와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의 편찬 동기는 일치한다. 모두 ‘역사적 평가’를 의식한 기록 행위인 것이다. 이런 의식은 겸산이『이향견문록』의 ‘의례’ 부분에서 언급한 편찬 동기나, 『고금영물근체시』의「서문」에서 “장차 태사씨의 채택을 위하여 갖추어둔다”고 밝힌 데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매우 상투적인 저작동기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는 의식’을 19세기의 겸산에게서는 좀더 의미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양반이 아닌 중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정도의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 자기 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널리 수록하고 자세히 기술했다는 점, 역사의 방향 자체가 ‘여항 서민층’의 역할이 차츰 증대되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매우 긍정적으로 주목해야 할 의식이 아닌가 한다.
    그가 여항인의 삶이 지닌 의미와 역량을 역사적으로 평가받게 하려는 의식이 뚜렷했다는 것은 『이향견문록』을 편찬하며 인용한 서책이 여항인들의 문집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이 직접 쓴 『겸산필기』에서 84항을 옮겨온 것은 물론이고, 조희룡의 『호산외기』에서 29항, 장지완의 『비연상초』에서 15항, 『심우담초』에서 11항, 정래교의 『완암집』에서 12항, 작자는 미상이지만 그 신분은 아마도 서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휘속고』에서 14항, 조수삼의 『추재기이』에서 10항, 신광현의 『위항쇄문』에서 10항, 이경번·이진흥의 『연조귀감』에서 9항, 고시언의 『성재집』에서 4항, 그리고 『소대풍요』에서 5항, 김희령의 『소은고』에서 4항, 김낙서의 『호고재고』에서 3항, 홍세태의 『유하집』에서 2항, 박기설의 『국은고』에서 1항, 박영석의 『만취정집』에서 1항, 이상적의 『은송당집』에서 1항 등인데, 이상으로도 이미 『이향견문록』 총 287항 중 215항으로 전체의 74%를 차지한다. 그리고 작자 미상의 『범곡기문』에서 6항 · 『청구야담』에서 16항 · 『좌계부담』에서 3항 등을 인용했고, 별도로 관찬인 『춘조 삼강록』에서 13항을 인용했다.
    양반 사대부 문집에 있는 여항인에 관한 기록을 1, 2항씩 인용한 것으로는 허목의 『미수기언』, 채제공의 『번암집』, 홍량호의 『이계집』, 남공철의 『금릉집』, 윤행임의 『방시한집方』· 『석재고』를 들 수 있다. 양반 사대부의 문집에서 인용한 것은 『이향견문록』 전체의 10%의 비율도 되지 않는다.
    또, 겸산은 사대부의 문집과 여항인의 문집에 공통으로 입전되어 있을 경우에는 여항인의 글을 옮겨 싣고 있다. 예를 들면, 홍량호의 『이계집』에는 『이향견문록』 권2 에 효자로 실린 ?문기방?이나 권 9에 실린 ?조광일? 외에, ?홍차기? ?이몽리? ?피재길? 등의 전이 실려 있는데도 그것을 인용하지 않고 ?홍차기? ?피재길?은 『청구야담』에서, ?이몽리?는 『완암집』에서 인용해 싣고 있다. 그런데도 『이향견문록』을 “그 인용서부터가 양반층의 기록을 많이 채록했으며, 충신·충복의 기사를 여러 항에 걸쳐 싣고 있다(임창순 선생說)” 고 한다면, 그것은 실상을 벗어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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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학고당 백윤구는 자가 이맹이다. 효도와 우애가 타고난 천성이어서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으로극진히 하였다. 예학에 조예가 깊어 상례와 제례를 반드시 옛사람의 법도에 합치되게 하였다.김퇴정재,박만취정과 친하여 끊임없이 오가며 연구하고 탁마함이 많았다.-p118 중에서

    존재 박군은 나보다 한 살이 적다. 열여섯 살 때부터 나와 글공부를 함께 한 지 삼십년이 되었다. 내가 가화를 만나 깊은 산으로 도망해 숨은 지 팔 년 동안, 한때 내 문정에 드나들던 사람이 모두 팔을 흔들며 돌아보지 않았으나, 군만은 홀로 앞장서서 위로하고 보호하며 따뜻이 돌봐줌이 예전보다 배나 더하였다.-p50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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