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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조선의 의인들 :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을 가다 / 박석무 지음 ; 황헌만 사진 인기도
발행사항
파주 : 한길사, 2010
청구기호
920.051 -10-9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형태사항
526 p. : 사진 ; 20 cm
총서사항
(한길인문학문고)생각하는 사람 ; 2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35662227
제어번호
MONO1201017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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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을 찾아서
- 『조선의 의인들』책머리에 무치는 말

1 살면 함께 살고 죽으면 함께 죽자
- 금남 최부, 해양문학의 최고봉 『표해록』을 쓰다
2 학문이 후퇴될까 늘그막이 걱정일세
- 퇴계 이황, 성리학 본산 도산서원에 깃든 사상
3 패악한 정치판에 몸담을 수 없다
- 자연에 숨은 도학자 하서 김인후
4 어진 이를 천거하고 유능한 자에게 양보하다
- 맑은 얼음 같은 시인 정치가 사암 박순
5 군대와 백성을 제대로 키우시오
- 율곡 이이, 그는 경세의 정치가이자 대현大賢이었다
6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 미래를 대비하다
- 화합과 조정의 정치지도자 서애 유성룡
7 비판 개혁정신으로 실학을 열다
- 구암 한백겸, 역사지리학을 최초로 체계화하다
8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 정의로운 처신으로 임진왜란 이겨낸 백사 이항복
9 나라 있는 줄만 알고 제 몸 돌볼 줄은 몰랐다
- 한음 이덕형, 영원한 친구 오성과 더불어 국난을 극복하다
10 권신의 횡포를 두고 볼 수 없다
- 고산 윤선도, 곧은 절의에 깃든 섬세한 시심詩心
11 고서를 좋아하고 늙어서도 게으르지 않았다
- 고학 古學으로 송시열에 맞선 미수 허목
12 토지 공개념을 실시해 제도를 바로 세우자
- 조선 실학을 개창한 반계 유형원
13 관찰한 바는 크고 간직한 바는 실하다
- 창계 임영, 벼슬 버리고 도를 찾아 은자가 되다
14 학문과 덕이 높아 학해學海를 이루다
- 반계의 실학을 더 키워낸 성호 이익
15 당쟁의 소용돌이서 국정을 바로잡다
- 번암 채제공, 어떤 세속일에도 흔들림 없던 군자
16 옳은 제도 살리고 낡은 법제 없애라
- 천재 실학자 존재 위백규가 세운 뜻
17 나라를 통째로 개혁하자
- 유배지에서 꽃피운 다산 정약용의 경세사상
18 언로를 열어 백성의 의견을 수렴하자
- 구한말 시대정신을 이끈 화서 이항로의 선비정신
19 성리학 사상을 의병운동으로 승화시켜
- 철학이론을 온몸으로 실천한 노사 기정진
20 만물의 이치란 인간본성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 조선시대 마지막 성리학자 한주 이진상
21 쌀 한 톨 물 한 모금도 왜놈 것은 먹을 수 없다
- 의병장 면암 최익현의 생각과 실천
22 나는 당당한 조선의 관리다
- 망국에 단식으로 생을 마친 향산 이만도
23 백성의 아픔을 절창하다
- 서릿발 같은 암행어사 영재 이건창
24 망국에 한 사람도 자결 않는다면 되겠는가
- 매천 황현, 지식인의 책무를 몸으로 실천한 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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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516844 920.051 -10-9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516845 920.051 -10-9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561353 920.051 -10-9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0001561354 920.051 -10-9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경술국치 100주년에 조선의 의인 24인의 사상과 삶을 다시 기억한다
    1905년은 일제가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었던 해다. 고종황제가 이를 끝까지 재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 무효의 조약이지만, 그로부터 5년 뒤인 1910년, 일제가 강제로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던 경술국치(국권피탈)를 당하고 만다. 당시 망국의 울분을 못 이기고 자결한 민족의 의인 세 분의 순국 장면이 우리를 경각시킨다.
    면암 최익현(1833~1906)은 74세의 고령의 나이에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항거하지만, 끝내 체포되어 일본 대마도에서 감옥에 갇히고 만다. 이때 죽음을 각오한 그는 “쌀 한 톨 물 한 모금인들 왜놈의 것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을 계속하다 숨을 거둔다.
    향산 이만도(1842~1910)는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자 설움과 울분을 참지 못해 단식에 들어갔다. 왜경이 미음을 주사기에 담아 강제로 급식을 하려 하자 그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당당한 조선의 정2품 관리다. 어떤 놈이 감히 나를 설득한다는 것이고, 어떤 놈이 감히 나를 위협하는 것이냐.” 결국 왜경도 이런 향산의 뜻을 꺾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후 향산은 단식한 지 24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매천 황현(1855~1910) 역시 1910년 8월 6일,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절명시와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결을 한다. “새나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오. 무궁화 우리나라 이미 망했구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 역사 회고하니, 글자나 아는 사람 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매천이 남긴 이 절명시는 글자나 아는 사람, 즉 지식인의 책무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읊었던 시다.

    조선의 진정한 선비정신과 사상사를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다
    저자 박석무는 20대이던 1960년대 후반, 고산서원을 찾았을 때 전남 장성에 있는 담대헌을 방문하게 된다. 우람한 담대헌을 보고는 문득 그곳에서 100년 전 스승 기정진을 모시고 성리학공부에 열심이던 제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잊힌 역사와 사상의 고향을 알리고 싶다는 꿈을 처음 갖게 되었다. 1970년대 초반, 학생들과 함께 도산서원에 수학여행을 가서도, 한길역사기행이 한창이던 80년대 중반, 정약용의 유배지 다산초당에 갔을 때도 그들이 저술에 몰두하면서 느꼈을 고통과 시름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경험도 했다. 이때부터 사진작가 황헌만은 언제나 그와 동행했다.
    저자 박석무가 청년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역사의 땅과 사상의 고향’의 구상은 40여 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게 되었다.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유적지를 지난 2년간 틈나는 대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기 시작했다. 난세를 극복한 탁월한 정치가 서애 유성룡ㆍ백사 이항복ㆍ한음 이덕형ㆍ번암 채제공을 비롯하여,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도학자 하서 김인후ㆍ창계 임영, 실학자 구암 한백겸ㆍ반계 유형원ㆍ성호 이익ㆍ존재 위백규ㆍ다산 정약용, 성리학 논리를 위정척사 논리로 발전시킨 화서 이항로ㆍ노사 기정진ㆍ한주 이진상, 이들의 영향으로 망국의 위기를 맞아 목숨을 바친 면암 최익현ㆍ향산 이만도ㆍ매천 황현, 대표적인 기행문학가 금남 최부, 시인 정치가 사암 박순ㆍ고산 윤선도, 서예가이자 학자 정치인이던 미수 허목, 조선 최후의 문장가 영재 이건창에 이르기까지, 의인 24명을 만나보았다.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에서 우리는 울분을 넘어 희망을 보았다
    저자를 가장 비탄에 빠지게 했던 것은 강화도의 영재 이건창 묘소를 둘러본 뒤였다. 뛰어난 직신이며다산 정약용은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 물을 끌어다가 비류폭포인 인공폭포를 만들고, 그 물이 고이는 곳에 연못을 파서 경치를 단장했다. 그는 이곳에서 제자들을 길러내고 실학을 집대성하여 경세사상을 꽃피운다.

    역사학자였던 영재의 묘소는 알아보기도 힘들게 빗돌 하나 없었고, 찾아가는 길에 푯말 하나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조선 최후의 문장가인 영재의 묘소를 방치해둔 것을 보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강산, 선조들의 유적지를 살펴보고 문화재를 반듯하게 보존하는 것이 남은 후손으로서 해야 할 역할임을 강조한다.
    기능주의 지식인이 만연하는 오늘날에 의로운 정신, 사상, 지조를 지키고, 나라의 운명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던 그들이 그립다. 임금께 직언을 하고 쫓겨나 유배를 가거나 은자의 삶을 선택당했던 때에도 교육에 헌신하여 제자를 길러낸 정약용과 임영의 삶, 당파와 정견을 초월해 서로를 존경하고 아껴주던 퇴계와 이이, 서로의 우정을 애국으로 승화했던 이항복과 이덕형의 예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우리 정신, 우리 사상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조선의 의인들, 그들은 오늘의 우리 역사에 시퍼렇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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