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자료 카테고리

전체 1
도서자료 1
학위논문 0
연속간행물·학술기사 0
멀티미디어 0
동영상 0
국회자료 0
특화자료 0

도서 앰블럼

전체 (1)
일반도서 (1)
E-BOOK (0)
고서 (0)
세미나자료 (0)
웹자료 (0)
전체 (0)
학위논문 (0)
전체 (0)
국내기사 (0)
국외기사 (0)
학술지·잡지 (0)
신문 (0)
전자저널 (0)
전체 (0)
오디오자료 (0)
전자매체 (0)
마이크로폼자료 (0)
지도/기타자료 (0)
전체 (0)
동영상자료 (0)
전체 (0)
외국법률번역DB (0)
국회회의록 (0)
국회의안정보 (0)
전체 (0)
표·그림DB (0)
지식공유 (0)

도서 앰블럼

전체 1
국내공공정책정보
국외공공정책정보
국회자료
전체 ()
정부기관 ()
지방자치단체 ()
공공기관 ()
싱크탱크 ()
국제기구 ()
전체 ()
정부기관 ()
의회기관 ()
싱크탱크 ()
국제기구 ()
전체 ()
국회의원정책자료 ()
입법기관자료 ()

검색결과

검색결과 (전체 1건)

검색결과제한

열기
자료명/저자사항
옹이 많은 나무 : 장을병 자서전 / 장을병 지음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나무와숲, 2010
청구기호
320.092 -10-22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형태사항
504 p. ; 24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3632132
제어번호
MONO1201022820

목차보기더보기

목차


책 발간에 부치는 글 _ 안병주

1. 요철(凹凸)의 초년기

반농사꾼으로 태어나다|‘무식영웅’ 할아버지의 귀한 가르침|내 고향, 삼척보다 먼 원덕|첫 번째 맞은 시련|6·25 동란과 인공치하|1·4 후퇴와 지옥 같은 국민방위군 생활|국민방위군 생활의 후유증|광산과 학생의 엉뚱한 꿈|공부벌레 학생회장과 동맹휴학|대학 입학시험을 보다 쫓겨나다|부실했던 대학 생활|죽기 살기로 공부했던 대학원 시절|정치학과에서 신문방송학과로

2.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다

멀고 힘들었던 길, 민주화|최초의 부르심|70년대 초의 정치변화|김대중 후보와의 만남|4·27 대선과 불행한 예측의 적중|유신쿠데타와 ‘으악새’ 모임|김대중 납치사건과 나의 와세다대학 유학|긴급조치 9호와 박사학위 논문|유신체제 하의 언론 탄압|동아일보 광고탄압 속 격려광고

3. 신군부 쿠데타로 짓밟힌 ‘정치의 봄’

유신체제의 붕괴와 ‘정치의 봄’|지식인 134인 시국선언|5·17 쿠데타와 지명수배령|구금과 핍박, 그리고 해직|멈춤 없는 저항|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한미수교 100주년|내 생애 최고의 즐거운 시간|어머니 사망의 비보

4. 다시 불붙은 민주화운동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김영삼 총재와의 만남|민추협 결성과 2·12 총선 |선거를 통한 혁명학원안정법 제정 파동|민족문제연구소 심포지엄|합법적 개헌 논의에서 개헌투쟁으로|6월 민주항쟁의 서막|국민평화대행진과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6·29 선언과 허황된 망상

5. 야권 분열과 대선 패배

양김의 분열|후보 단일화 추진 운동의 실패|예상했던 대선 패배|한겨레민주당 창당과 야권 재통합|김영삼 총재의 소통합 제의|4·26 총선과 황금분할|3당야합과 민자당|새로운 야권통합 시도

6. 성균관대학교 총장 시절

정치로부터의 도피|총장의 직무와 대학 정치|봉명재단의 퇴진|김귀정 양의 죽음|성대의 비극, 기여입학|잇단 사건·사고에 고사 지내기까지|현대 정주영 회장과 중국 방문|현대그룹과의 재단 영입 교섭|김영삼 대통령과 성대 문제 협의|문민정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

7. 현실정치 속으로

김대중 총재와의 결별|불행한 정계참여|국민신당 창당|15대 대통령선거 결과|대통령이 된 김대중과의 재회|국민신당 의원들과 함께 김대중 캠프로 이적|국회의원 후보 공천심사위원장의 괴로움|16대 총선에서의 패배

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 시절

연구원의 운영 방침|‘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개명 추진|남북 학술교류차 방북|북한의 이모저모|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다시 북한으로|진짜 백두산에 오르다|북한 학자들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방문

9 하와이 생활

공직 생활 마무리|하와이대학으로 떠난 이유|꿈같은 하와이 생활|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싶었던 일|후회스러운 일들

장을병 연보

이용현황보기

조회
이용현황 테이블로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528992 320.092 -10-2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528993 320.092 -10-2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531210 320.092 -10-22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0001531211 320.092 -10-22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장을병 전 성균관대 총장 1주기 맞아 돌아가시기 전에 써놓은 자서전 발간

    지난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장을병 전 성균관대학교 총장의 자서전 『옹이 많은 나무』가 도서출판 나무와숲에서 나왔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고인은 생전에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는 글을 쓰면서 “70대 중반에 이르러 이처럼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자서전 비슷한 글을 쓰고 있다니, 벌써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내 나이 80이 넘어서야 빛을 볼 수 있을 듯하니, 앞으로 몇 년간 내 손에서 떠나지 않는 원고가 될 듯싶다”고 술회했다. 퇴고만 못했을 뿐 거의 완성된 형태의 이 원고는 선생이 76세의 나이에 불현듯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예상과 달리 일찍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등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 구금됐다가 강제해직

    1969년 박정희 정권의 삼선개헌 국민투표를 비판하는 글을 『신동아』에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험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선생은 1980년 신군부를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등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구금되었다가 강제해직되기까지 했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그에게 학문과 사회참여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암울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많은 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독재정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불의에 맞서 직접 행동했다.

    1991년 대학 총장 직선제가 도입된 후 처음 치러진 선거에서 총장으로 선출되어 5년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을 당시, 시위 도중 사망한 김귀정 양의 장례식 운구 행렬의 선두에 서서 학생들과 경찰 간의 일촉즉발의 충돌을 막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 후 현실정치에도 참여해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향도 구실만 해주는 조건으로” 정치에 관여했다가 어쩔 수 없이 정계에 발을 내딛게 되었지만, “체질에 맞지 않는 일이라 힘만 들고 성과는 없었던 같다”는 것이 선생의 고백이다.


    단순히 한 개인의 기록이 아닌 역사의 산 증언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선생은 굴곡이 심한 초년기를 보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학비를 벌기 위해 나무를 져야 했는가 하면, 1.4 후퇴 직후에는 국민방위군에 입소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또 영동 지방의 폭설로 대학 입학원서가 제때 접수되지 않자 가짜 인장을 사용해 작성한 원서를 냈다가 시험이 늦춰지면서 원서가 이중으로 접수되는 바람에 시험 도중 쫓겨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옹이 많은 나무』에는 이처럼 유난히 굴곡이 많았던 어린 시절부터 험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 신군부 쿠데타로 핍박받고 강제해직됐다가 복직된 일을 비롯해 성균관대학교 총장, 15대 국회의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그리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하와이에서 마지막 연구에 몰두한 일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지난날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숱한 일화들이 상세하게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 사건들을 정치학자의 시각에서 분석해 놓아 단순히 한 개인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 산 증언으로서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1주기 맞아 ‘장을병기념홀’ 개관식과 추모비 제막식, 자서전 출판기념회 등 행사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그의 뜻을 기리는 조촐한 행사도 열린다. 7월 2일 오전 11시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에서는 ‘장을병기념홀’ 개관식이 문을 열고, 오후 2시에는 고인의 모교인 호산초등학교 교정에서 ‘장을병 선생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된다. 또한 7월 5일 오후 6시에는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조병두홀에서 ‘옥원 장을병 총장 1주기 추도식 및 자서전 『옹이 많은 나무』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더보기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P.89] 그동안 살면서 가장 멀고 힘들었던 길은 바로 민주화의 길이었다. 나라가 유지·발전해 나가는 데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앞서도 말한 바 있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내 나라가 파멸하지 않고 유지 발전해 나가려면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민주화하자고 외쳐 댔던 것이다.
    [P. 209] 배후에서 학생들의 시위를 어떻게 선동했느냐, 김대중으로부터 돈을 얼마나 받았느냐, 지식인 선언을 통해 지식인들을 조직화해서 김대중과 어떻게 연결지었느냐 등 터무니없는 질문을 해댔다.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바로 몽둥이찜질을 가했다. 무엇보다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진술하면 바로 석방시켜 주겠다고 회유했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수는 없었다. 특히 지겹게 맞은 건은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과 관련해서였다.
    [P. 247-248] 강의는 오후 7시부터였는데, 6시쯤 가농에 도착했다. 신부님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들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는데, 대다수가 선거불참론을 펴고 있었다. 큰일났다 싶어 강의에서 이번 총선거에 민주화추진세력들이 적극 참여해서 신민당을 밀어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 두 시간 동안 입에서 거품을 내뿜으면서 신부들을 설득한 것은 물론, 강의를 마치고 난 다음 신부들과 소주를 마시면서 거듭 2·12 총선에 참여해서 신민당을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신부들이 점차 내 의견에 동의하기 시작해 다음날 돌아갈 때에는 각 성당에 ‘부정선거고발센터’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기까지 했다.
    더보기

권호기사보기

권호기사 목록 테이블로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기사목차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기사목차
연속간행물 팝업 열기 연속간행물 팝업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