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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축의 시대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 카렌 암스트롱 지음 ; 정영목 옮김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교양인, 2010
청구기호
200.9014 -11-1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형태사항
738 p. ; 23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1799561
제어번호
MONO1201100112
주기사항
원표제: (The)great transformation : the beginning of our religious tra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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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 우리는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1장 축의 시대 문명 벨트(기원전 1600년∼900년경)
조로아스터, 선과 악의 대결
인도에 정착한 정복자 아리아인
요·순·우, 의로운 통치자의 시대
전쟁하는 신성한 신 야훼

2장 불안과 공포의 시대(기원전 900년∼800년경)
암흑의 400년을 견뎌낸 아테네
최초의 유일신 숭배자 엘리야
하늘의 도(道)를 따르는 지상의 삶
아트만, 내 안의 진정한 나

3장 자아의 발견(기원전 800년∼700년경)
분노하는 야훼의 대리자 이사야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 영웅들의 자기 중심주의
춘추시대, 새로운 감수성의 출현
숲으로 간 현자, 영적 탐구의 선구자들

4장 앎을 향한 기나긴 여행(기원전 700년∼600년경)
인간 내면의 정복, 《우파니샤드》
로고스, 그리스 영웅 시대를 끝내다
혼란한 시대 삶의 모델, 군자(君子)
‘책의 종교’ 유대교의 탄생

5장 고난의 시대(기원전 600년∼530년경)
추방당한 자들의 트라우마
아테네의 솔론, 정치를 발명하다
상키아, 인류 최초의 무신론
흔들리는 예(禮), 너지는 도(道)

6장 공감의 발견(기원전 530년∼450년경)
공자, 인(仁)의 나라를 찾아 떠나다
고난의 길에서 태어난 일신교
그리스 민주주의를 연 이성의 힘
자이나교, 비폭력과 불살생의 극한

7장 사유의 혁명(기원전 450년∼398년경)
에즈라의 닫힌 길, 요나의 열린 길
땅으로 내려온 철학, 삶을 정화하는 비극
소크라테스, 무지의 지혜를 가르친 앎의 교사
묵가, 급진적인 공감의 사상
고타마 싯다르타, 무아의 발견자, 마음의 혁명가

8장 철학의 모험(기원전 400년∼300년경)
혜자의 역설, 장자의 무위, 맹자의 자애
두려움에 떠는 전사들의 서사시 《마하바라타》
동굴에서 나온 이데아의 탐구자, 플라톤
로고스의 건축가, 아리스토텔레스

9장 제국의 시대(기원전 300년∼220년경)
한비자·순자·노자의 도덕 군주론
헬레니즘, 문명을 만든 최초의 문명 충돌
《바가바드기타》, 축의 시대 마지막 위대한 노래

10장 축의 시대의 귀환(기원전 2세기~ )
천하 통일과 사상의 통합
새로운 불교 영웅 보디사트바(보살)
토라의 원리,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 위험한 시대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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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583305 200.9014 -11-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583306 200.9014 -11-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583941 200.9014 -11-1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0001583942 200.9014 -11-1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우리는 한 번도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축의 시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의 힘을 경배하던 인간이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아를 발견하고 내면의 신을 탐구하기 시작한
    인류 정신 문명의 첫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인류 정신 문명의 첫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인간 창조성이 가장 뜨겁게 폭발했던 경이로운 시대
    문명 도약의 결정적 순간에 관한 인문학적 통찰


    《축의 시대》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인류사의 가장 경이로운 시기를 다룬 역사서이다. 축의 시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의 힘을 경배하던 인간이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아를 발견하고 내면의 신을 탐구하기 시작한 인류 정신 문명의 첫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유의 천재들의 시대 !
    이 시대에 중국에서는 공자, 묵자, 노자가 활동했고,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고타마 싯다르타가 등장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나타났고, 그리스에서는 소포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차례로 태어났다. 이들의 출현은 불을 다루는 기술을 발견한 것 다음으로 인류에게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서로 교류가 없던 네 지역에서 어떻게 비슷한 시기에 그토록 놀라운 사유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왜 그들은 우주와 인간과 삶에 대해 같은 결론에 이르렀을까?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는 인류사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이 놀라운 문화적 평행 현상을 중국, 인도, 근동,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축의 시대 문명 벨트를 횡단하며 재조명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이 터져 나오고, 신화적 인식에 대한 이성의 투쟁이 첫발을 내딛고, 인간의 윤리적 각성과 철학적 성찰이 폭발하던 시대, 인류 정신사에 거대한 전환점이 된 축의 시대에 관한 인문학적 탐사를 만난다.

    전례 없는 폭력과 두려움과 삶의 공허에 직면했던 축의 시대가 우리에게 말한다
    《축의 시대》는 카렌 암스트롱의 비교종교학적 지식과 영성적 통찰력이 결합된 책이다. 암스트롱은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창안한 문명사적 개념인 ‘축의 시대’를 파피루스나 양피지 속에 말라붙은 희미한 관념이 아닌, 고통과 불안의 시대를 두 발로 걸어간 살아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축의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인간의 비참을 함께 슬퍼하는 공감과 자비의 정신을 발견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유의 천재들이 찾은 답은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의 철학적?종교적 성찰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근대 세계를 탄생시킨 과학주의와 진보주의가 치열한 반성과 질문의 대상이 된 오늘, 암스트롱은 우리와 똑같이 폭력과 두려움과 삶의 공허에 직면했던 ‘축의 시대’ 사람들에게서 우리 시대의 난제를 넘어 미래를 밝힐 비전을 찾아낸다.

    “우리는 한 번도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 인류 정신 문명의 출발점 ‘축의 시대’


    ‘축의 시대(Axial Age)’는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역사의 기원과 목표》(1949년)라는 책에서 제시한 문명사적 개념이다. 야스퍼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정신의 기원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대, 인류 공통의 기축(基軸)이 되는 시대를 설정하고 그 시기를 ‘축의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축의 시대》에서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를 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의 시기로 설정한다. 이 시기에 이후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철학적·종교적 전통이 태어났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레미야, 맹자, 에우리피데스, 플라톤 등 사유의 천재들이 나타난 역사상 가장 뜨거운 ‘창조의 시기’였다.

    정치적 격동과 폭력의 시대가 낳은 ‘축의 시대’
    축의 시대 민족들이 모두 균일하게 진화한 것은 아니었다. 인도 사람들은 늘 축의 시대 진보의 선두에 서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사람들에 의해 특별한 창조성이 피어나는 짧고 강렬한 시기를 경험했다. 이스라엘인들이 이룬 축의 시대 통찰은 랍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재탄생했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기원전 6세기 말에 처음으로 완전한 축의 시대 정신을 발전시켰으며, 제자백가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이 세 지역이 처음부터 내면 탐구와 영성 추구의 방향으로 나아간 것과 달리 그리스는 로고스와 합리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 네 지역에서 ‘축의 시대’가 개화하기까지는 공통적인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시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 계속되는 전쟁이라는 수난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함께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폭력과 무질서를 해결하는 데 전통적 관습이나 신에게 올리는 희생제는 별 효과가 없었다. 이제 인간은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간 심리, 개인의 자아, 도덕과 윤리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축의 시대’는 이러한 거대한 변화 속에서 태어났다.

    축의 시대의 영적 혁명은 혼란, 이주, 정복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하나의 제국이 망하고 다른 제국이 일어서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중국에서 축의 시대는 주 왕조의 붕괴와 더불어 마침내 시작되었으며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끝을 맺었다. 인도의 축의 시대는 하라파 문명(인더스 문명)이 해체된 후에 일어나 마우리아 제국과 더불어 끝을 맺었다. 그리스의 변화는 미케네 왕국과 마케도니아 제국 사이에 이루어졌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정박지에서 떨어져 나와 떠도는 사회에 살았다. …… 중동에서 제국의 모험 때문에 혹심한 고통을 겪었던 유대인마저 조국의 붕괴와 그에 뒤이은 추방이라는 트라우마로 인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 시작해야만 하는 무시무시한 자유를 얻게 되면서 축의 시대로 밀려 들어갔다. - 623쪽·10장 축의 시대의 귀환

    이 책에서 저자는 ‘축의 시대’ 네 민족(인도, 이스라엘, 중국, 그리스)의 역사를 추적한다. 특히 시간대 별로 네 민족의 정신적 변화 과정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그들이 각자 나름의 속도로 ‘축의 시대’를 통과해 가는 과정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기원전 8세기경 인도에서는 사제와 전사들이 모두 서서히 ‘아힘사’(불살생, 비폭력)라는 축의 시대 이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그리스인은 자기 중심적인 전사의 영웅적 에토스를 찬양했다. 다른 축의 시대 민족들이 아힘사와 ‘케노시스’(‘자기 비움’.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남)를 추구한 것은 폭력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지만, 그리스인들은 비슷한 시기에 오히려 강한 군대를 위해 이기심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노력을 강조했다. 이처럼 저자는 축의 시대 문명 벨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교하고 때로 예고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을 때처럼 시종일관 기대와 호기심을 품고 서둘러 다음 장으로 눈을 옮기게 만든다.

    왜 ‘축의 시대’인가?
    그런데 왜 지금 ‘축의 시대’인가? 이 과거의 시간들을 살펴보는 데 역사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에 이루어진 인간의 근본적 인식 전환과 사유의 깨달음에서 폭력과 증오, 불관용으로 점철된 우리 시대의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20세기에 우리는 전례 없는 규모로 폭력이 분출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안타깝게도 인간들끼리 서로 해치고 상처를 내는 능력은 인류 문명이 이룬 특별한 경제적?과학적 진보에 뒤처지지 않고 함께 발전해 왔다. 저자는 어떤 정신적 혁명이 없으면 이 행성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곤경에서 빠져나오려 할 때, 나는 우리가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부른 시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축의 시대 현자들이 어떻게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왜 우리가 공자나 붓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물론 이 머나먼 시대를 공부하는 것은 정신의 고고학의 한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세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혁신적인 믿음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위기의 시기에 사람들은 늘 축의 시대를 돌아보며 길을 찾았다. - 5~7쪽·<머리말>에서

    하늘로 향했던 눈을 돌려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다
    - 자아의 발견과 종교의 내면화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에 서로 전혀 교류가 없던 네 지역에서 거의 같은 내용의 정신적 도약이 이루어졌음에 주목한다. 그중에서도 ‘축의 시대’가 인류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인간 내면의 발견이었다. 인간은 이 시기에 이르러 처음으로 하늘로 향해 있던 눈을 돌려 자기 내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저 먼 하늘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우주가, 불멸의 진리가 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고통스런 삶에서 구원받고 해방되는 길은 외부의 신이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사유의 ‘대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축의 시대 사람들은 이전처럼 하늘, 자연물, 조상 등 ‘외부’의 신들을 정해진 교리와 제의에 따라 섬기기보다 인간 ‘내면’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했다. 그들은 동물 희생제가 아니라 요가나 명상 같은 특별한 정신 훈련법에 따라 자기 안에서 초월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 내면의 탐구는 기원전 9세기경에 인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인도의 현자들에 의해 가장 깊이, 가장 멀리까지 나아갔다.

    인도에서 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현대 세계에서 제의는 종종 노예적인 순응을 장려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브라민들은 그들의 학문을 이용하여 외적인 제의와 신들로부터 해방되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라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냈다. 사제 개혁가들은 제의의 내적인 역학을 명상함으로써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아리아인 전사들이 인도의 미지의 밀림 속으로 파고들듯이 앞장서서 열심히 내적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축의 시대에는 지식을 축적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으로 강조된다. 제의 전문가들은 모두가 제의를 깊이 생각하며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깨달을 것을 요구했다. 새로운 자의식이 탄생한 것이다. 그 이후로 인도의 영적인 탐구는 외적인 신이 아니라, 영원한 자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 150쪽·2장 불안과 공포의 시대

    기원전 5세기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에서는 군주가 자기 내면에서 중심을 발견하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현실에서 물러나지 않고도 명상을 통해 얼마든지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을 수 있으며, 자기 내면 깊은 곳을 발견할 때 비로소 인간다움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글(<심술(心術>)의 저자는 인(仁)이 인간 본성의 왜곡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인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성과 동의어다. 군주가 진정으로 ‘인간적인 마음’을 갖고자 한다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발견해야 한다. 숲으로 달아나 평화와 안정을 찾는 대신 명상으로 내적인 고요를 길러 나가야 한다. 깨달음을 얻은 군주는 열정을 제어하고 욕망을 가라앉히고 마음에서 산만한 생각을 비워 진실하고 참된 자아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정신적인 힘을 분명하게 정리하게 되고, 몸의 건강이 나아질 것이며, 굳이 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仁)의 인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옛날에 왕들은 신체의 정확한 방향을 잡아 도를 확립했다. 이제 <심술>에 따르면 군주는 자기 내면에서 진정한 중심을 발견하여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 497쪽, 498쪽·8장 철학의 모험

    “삶의 피할 수 없는 진실인 고난과 직면하라!”

    축의 시대 현자들이 남긴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삶의 피할 수 없는 진실인 고난과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축의 시대에 네 지역에서 창조된 종교 전통은 모두 공포와 고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런 고난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고난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의 전제 조건이었다.

    예레미야는 예언자 노릇을 싫어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파멸과 멸망!”이라고 외치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입을 닫으려 하면 심장과 뼈에 불이 붙는 듯하여 다시 예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레미야는 아모스나 호세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자신을 장악했다고 느꼈다. 자신의 사지를 비트는 고통은 야훼의 고통이었다. 하느님 또한 수모를 당하고, 추방을 당하고, 버림받은 것처럼 느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난을 부정하는 대신 사람들 앞에 슬픔의 인간으로 나타났다. 그는 자기 시대의 공포, 분노, 슬픔에 마음을 열고, 그것이 자기 존재의 구석구석을 침범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깨달음에 방해가 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 289~290쪽·5장 고난의 시대

    상키아는 인도의 영성에 두 가지 중요한 기여를 했다. 첫째는 모든 삶이 ‘두카(dukkha)’라는 인식이었다. 이 말은 흔히 ‘괴로움(苦)’으로 번역되지만 ‘불만족스럽다, 뒤틀려 있다’는 더 넓은 의미가 있다. …… 어떤 것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의 혼란스러운 내적 세계는 순식간에 이런 상태에서 저런 상태로 바뀔 수 있다. 친구들은 죽는다. 사람들은 병들고, 늙고, 아름다움과 활력을 잃는다. 이 보편적인 두카를 부정하는 것-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만-은 미망이다. 두카가 삶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키아는 이런 불완전한 본성이 우리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내’가 고통을 겪고 이 덧없는 세상과 한몸이 될수록, ‘나’는 푸루샤라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실재를 더 갈망하기 때문이다. - 332쪽?5장 고난의 시대

    암스트롱은 우리 자신의 고통을 인정할 때에만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변화를 이끌 행동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인들은 비극을 통해 ‘타자와 함께 느끼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었다. 이 점은 기원전 472년에 디오니소스 축제에 등장했던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작품을 본 아테네인들은 불과 몇 년 전 아테네를 유린했던 페르시아인들의 고통을 느끼며 울었다.

    바로 몇 년 전 페르시아인은 그들의 도시를 파괴하고 성소를 더럽혔는데, 이제 그들이 페르시아 전사자들을 위해 울 수 있었던 것이다. 크세르크세스, 그의 부인 아토사, 다리우스의 유령은 모두 혈육을 잃고 안전이라는 겉치장이 뜯겨져 나가고 삶의 공포가 드러나면서 느끼는, 가슴을 찢는 슬픔에 관하여 감동적으로 이야기한다. 의기양양해하며 독선을 부리는 태도는 없었다. 고소해하는 분위기도 없었다. 아이스킬로스는 페르시아인을 적이 아니라 애도하는 사람들로 묘사했다. 페르시아인의 용기를 칭찬하기도 했다. …… 《페르시아인》은 목숨을 건 싸움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시기에 과거의 적을 향해 뻗어나간 공감의 탁월한 예였다. - 387~388쪽·6장 공감의 발견

    케노시스(kenosis), 혹은 자기 버리기

    삶이 본래 고통이라면, 그 고통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축의 시대 현자와 철학자들은 개인이 겪는 고통은 물론이고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모두 ‘자기 중심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욕구, 자기의 본능과 욕망을 우선시하는 이기심이 사람들 사이에서 탐욕과 갈등과 증오를 불러오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는 방법을 찾는 것은 축의 시대 현자들의 공통된 목표였다. 중국에서는 고대에 태평성대를 이룬 요 임금과 순 임금이 ‘자기 버리기’를 실천한 현자로 추앙받았다.

    초기 단계에도 노나라의 제의 전문가들 가운데 일부는 ‘자기 버리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대의 성군 요와 순을 숭배했으며, 《서경》에 나오는 최초의 연대기 가운데 하나인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을 썼을지도 모른다. …… 요와 순은 성인(聖人)이 되었다. 그들은 평화의 황금 시대를 확립한 선하고 자비로운 사람들이었다. 《서경》에 나오는 그들의 전설은 왕조가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힘과 강압에 기초를 둔 통치가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암묵적 비판임이 분명하다. 요와 순은 자신의 지위와 위엄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들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보다 백성의 유익을 앞세웠다. 그들은 예(禮)가 계발하고자 하는 절제, 겸손, 자제, 경의의 원형적 모범이었다. 중국의 정치 생활이 점점 더 이기적이고 무자비해짐에 따라 요순 전설은 계속 영감의 원천이 된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모든 인간에게 이런 위인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 206, 208쪽·3장 자아의 발견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들이 신에게 존재를 완전히 압도당하는 경험을 통해 ‘자기 비우기’의 영성을 경험했다. 동시에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오만한 자아에 구멍을 내 비우는 역할을 맡았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자존감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그는 민족의 에고에 구멍을 내고 싶어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서 ‘자기 버리기’의 영성 ·축의 시대 이상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 에 대한 최초의 표현 가운데 하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교를 이용하여 자존감을 강화하는 대신 정의와 공평을 앞세워 개인적 이해 관계를 초월해야 했다. 예언자는 그리스인이 케노시스(kenosis) 즉 ‘비움’이라고 부른 것의 걸어다니는 본보기였다. 아모스는 자신의 주체성을 신이 차지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의 말이 아니라 야훼의 말을 했다. 예언자는 신에게 열정적으로 감정 이입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버렸다. 신은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불의를 개인적인 모욕으로 여겼다. 이것은 중요한 순간이었다. 축의 시대 종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공감이 기본 조건이 된다. 아모스는 스스로 분노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야훼의 분노를 느낀 것이다. - 160쪽·3장 자아의 발견

    마침내 공감과 자비를 발견하다

    ‘축의 시대’ 현자와 철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였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모두 황금률과 양보, 공감, 자비로운 생활을 요구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주의와 탐욕, 폭력과 무례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로 죽이는 것만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적대적인 말을 하거나 성마르게 행동해서도 안 된다. 나아가 축의 시대의 거의 모든 현자들은 자비를 자기 민족에게만 제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해서든 전 세계로 관심을 확대해야 한다.
    각각의 전통은 각기 그 나름의 방식으로 황금률 ?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을 정리해냈다. 공자는 그것을 ‘서’(恕, ‘자기 자신에게 견줌’)라고 말했고, 묵자는 ‘겸애’(兼愛, ‘모든 이를 향한 관심’)라고 표현했으며, 붓다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랍비 힐렐은 “당신 자신에게 가증스러운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시오. 그게 토라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 주석일 뿐이오.”라고 말했다. 세상 모든 존재의 신성한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자비의 바탕이었다.

    우리는 축의 시대 현자들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상황에서 자비의 윤리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늘 일깨워야 한다. 그들은 상아탑에서 명상을 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찢긴 무시무시한 사회, 오랜 가치들이 사라져 가는 사회에 살았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허와 심연을 의식했다. 이 현자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많은 수가 정치와 정부에 몰두했다. 그들은 공감이 단지 유익하게 들리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자비와 모든 이에 대한 관심은 최선의 정책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통찰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 670쪽·10장 축의 시대의 귀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현자와 철학적 천재들의 시대!

    ‘축의 시대’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범한 인물들이 집중되었다. 중국에서는 공자와 맹자가 나타났으며, 묵가, 도가, 법가 등 중국 철학의 모든 학파들이 탄생했다. 인도에서는 고타마 싯다르타와 자이나교의 마하비라가 태어났으며, 이란에서는 조금 이른 시기에 조로아스터가 나타나 ‘축의 시대’를 예고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아모스, 에스겔, 이사야, 예레미야 등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출현했다.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가 등장했고, 파르메니데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등 비극 작가가 활약했다. 저자는 이 놀라운 시대를 만든 현자와 철학자들의 삶과 생각을 흠결 하나 없는 고매한 ‘위인’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기쁨과 슬픔, 분노를 느끼며 ‘인간성’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의 이야기로 부활시켰다.

    조로아스터, 선과 악의 우주적 투쟁
    기원전 1500년경부터 러시아 남부 초원 지대에 살던 아리아인들의 느리고 무탈했던 삶이 폭력적으로 바뀌었다. 청동 무기, 소와 말을 이용한 새로운 이동 방법을 알게 되면서 아리아인은 전사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빠른 속도로 멀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월한 무기를 이용하여 이웃의 정착지를 기습하고 가축과 작물을 빼앗았다. 방어를 위해서라도 군사 기술을 배워야 했다. 영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힘이 곧 정의였다. 이때 초원 지대를 휩쓴 폭력에 마음 깊이 괴로워하던 한 젊은 사제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이름은 조로아스터였다. 조로아스터는 자신의 민족에게 닥친 수난과 절망에 충격을 받아 갈등에 사로잡혀 갈가리 찢기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예전의 평화로운 세상에서 삶은 주기를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계절이 바뀌고, 낮은 밤으로 이어지고, 추수는 파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조로아스터는 이제 이런 자연의 박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격변을 향해 쏜살같이 나아가고 있었다. 조로아스터와 그의 추종자들은 우주의 갈등이 폭발하는 ‘경계의 시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곧 선의 최후 승리와 어둠의 세력의 절멸을 목격하게 될 터였다. 무시무시한 전투가 끝난 뒤 아후라 마즈다와 불멸의 존재들은 남자와 여자의 세상으로 내려와 희생제를 드릴 것이다. 이어 큰 심판이 이루어진다. 악한 자들은 지상에서 쓸려 나가며, 타오르는 강이 지옥으로 흘러들어 ‘적대적인 영혼’을 태워 재로 만들 것이다. 그러면 우주는 원래의 완벽한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 우리는 이런 묵시록적 전망에 익숙하다. 그러나 조로아스터 이전의 고대 세계에는 이런 전망이 전혀 없었다. 이 전망은 자신의 민족이 수난을 당하는 것을 지켜본 조로아스터의 분노와 정의를 향한 갈망에서 나온 것이다. 조로아스터는 악한 자들이 선하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준 고통에 대하여 벌을 받기를 바랐다. - 35쪽?1장 축의 시대 문명 벨트

    수백 년 뒤 축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철학자, 예언자, 신비주의자들은 모두 비폭력에 기초한 영성을 장려하여 자기 시대의 잔혹함과 공격성에 맞서려 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조로아스터의 전망은 복수심에 불타며, 거기에는 방화, 폭압, 절멸의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조로아스터가 살아온 길을 보면 정치적 격동, 잔혹 행위, 수난이 언제나 축의 시대 양식의 신앙을 생산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복잡한 현실을 선과 악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범주로 양극화하는 전투적 믿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는 뜨겁게 윤리적인 전망으로 축의 시대를 고대했다. 그는 새로운 전사의 에토스 속에 도덕성을 집어넣으려 했다. 진정한 영웅은 동포를 탄압하지 않고 폭력에 맞선다. 신성한 전사는 평화에 헌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축의 시대’의 첫 번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은 바로 조로아스터가 비난했던 인도로 아리아인 가축 도둑들이었다.

    《우파니샤드》의 현자, 인간 내면을 정복하다
    인도의 고대 베다 종교는 끊임없는 이주와 새로운 영토의 정복에서 영감을 받았다. 폭력적 갈등의 세계에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베다 종교의 정수를 담은 《우파니샤드》는 내적 공간의 평화로운 정복에 나섰다. 이것은 종교사에서 외적인 제의가 엄격한 자기 성찰로 대체되는 매우 중요한 진전을 뜻한다. 현자들은 지도 없는 정신 세계에 침투하여 선구자가 되었다. 초기 《우파니샤드》에서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은 비데하 왕국의 야지나발키아와 쿠루-판찰라 지역의 우달라카 아루니였다.

    야지나발키아는 새로운 영성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던 비데하의 자나카 왕의 직속 철학자였다. 《우파니샤드》의 모든 현자들과 마찬가지로 야지나발키아도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말하자면 불멸의 불꽃이 있다고 확신했다. 불멸의 불꽃은 전 우주를 유지하고 또 거기에 생명을 주는 불멸의 브라만에 참여하며 또 그 본질도 같았다. 이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발견이었으며, 모든 주요 종교 전통에서 중심을 이루는 통찰이 된다. 궁극적 실재는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존재했다. 따라서 자아, 즉 아트만의 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225~226쪽·4장 앎을 향한 기나긴 여행

    처음으로 인간은 인간 의식의 더 깊은 층들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규율 잡힌 자기 성찰로 정신의 표면 아래 놓인 자아의 방대한 영역에 눈을 떴다. 완전하게 ‘자의식’을 갖추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야지나발키아는 종교의 외적 의식(儀式)을 논의하지 않았다. 대신에 진정한 자아, 즉 세속적 경험 속의 ‘나’를 통제하고 살아 있게 하는 ‘내적 인간’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심리적 구조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외적 제의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 신성함을 경험하려는 시도는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 축의 시대의 특징 중 하나였다. 19세기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인간 무의식을 탐구하기 훨씬 전에 이미 인도에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을 찾아 성찰한 선구자들이 존재했다.

    추방당한 자들의 트라우마, 이스라엘의 축의 시대를 열다
    기원전 6세기에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축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번에도 변화의 촉매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적인 폭력의 경험이었다. 아시리아의 뒤를 이어 바빌로니아 제국이 가나안 일대를 장악했다.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정복당한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 이어 이제 남부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라는 외세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기원전 597년 유다 왕국의 젊은 왕 여호야긴은 바빌로니아에 항복하여, 백성 8천 명과 함께 자기 땅에서 추방당했다. 새로운 축의 시대 전망을 창조한 사람들은 이때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사람들이었다. 예언자 에스겔도 그렇게 끌려간 사람들 중 하나였다.

    에스겔은 나중에 환상에서 야훼가 뒤에 남은 유다 사람들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 때문에 자신의 도시에서 쫓겨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추방당한 사람들도 그런 재앙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에스겔의 임무는 기원전 597년에 추방당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품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회개하는 것이었고, 어떻게 해서든 바빌로니아에서 제대로 질서 잡힌 생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슬픔의 무게를 온전히 경험하기 전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 295~296쪽·5장 고난의 시대

    바빌로니아의 무자비한 제국 권력의 과시는 추방당한 사람들의 민족적 통일성을 훼손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추방당한 사제와 예언자들은 원한과 복수에 기초한 믿음을 피하고,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인정하는 영성을 창조함으로써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고,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축의 시대’ 통찰의 핵심이었다.

    공자, 인(仁)의 나라를 찾아 떠나다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은 천자가 다스리던 주나라가 힘을 잃으면서 중국은 엄청난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른바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제후국들 간에 전쟁이 치열해지고 중원은 폭력에 휩싸였다. 낡은 정치와 사회 구조는 해체되어 갔으며, 중국은 무정부 상태로 곤두박질치는 것처럼 보였다. 조상을 모시던 제의에 대한 경멸이 확산되었고, 예법에 따른 절제의 기풍도 약해졌다. 졸부가 크게 늘었고, 지배계급의 가장 아래쪽에 있던 사(士) 가운데는 평민으로 전락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은 천도(天道)를 이렇게 무시하다가 우주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겠다고 걱정했다. 이 무렵, 노(魯)나라에서 예(禮)의 깊은 뜻을 제대로 해석하면 중국인들을 다시 천도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이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공구였으며, 우리는 흔히 그를 공자라 부른다. 공자에 이르러 마침내 중국의 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공자의) 서(恕)는 ‘매일 종일토록’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발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는 일을 삼갈 것을 요구한다. 자신을 특별한 별도의 범주에 넣지 말고, 늘 자신의 경험을 타인의 경험과 연결시킬 것을 요구한다. 공자는 황금률(Golden Rule)을 처음 공포한 사람이었다. 공자에게 그것은 초월적 가치였다. 예를 완벽하게 습득하면 그가 인(仁)이라고 부른 것을 얻는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인이라는 말은 원래는 ‘고귀하다’거나 ‘훌륭하다’는 뜻이었지만, 공자의 시대에는 그냥 인간을 뜻했다. 공자는 이 말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지만, 규정하려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일부 철학자들이 인을 ‘박애’와 같다고 보았지만, 이것은 공자에게는 그 말의 의미를 너무 좁히는 것이었다. - 357쪽·6장 공감의 발견

    공자는 전통적 관습과 전례의 세목에 매달리는 소심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 그의 전망은 혁명적이었다. 그는 관례적인 제의(예)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했다. 이것은 귀족의 존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잊는 실천을 습관으로 만들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공자는 제의에서 자기 중심주의를 밀어내 제의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심오한 잠재력을 끄집어냈다. 공자는 또 새로운 평등주의를 도입했다. 전에는 오직 귀족만 예를 수행했다. 이제 공자는 누구라도 전례를 실행하면 출신이 미천한 사람이라도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축의 시대 중국의 다른 철학자들은 중국의 많은 문제에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그들이 늘 공자만큼 야심이 컸던 것은 아니다. 공자는 법과 질서 이상의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인간의 존엄함, 고귀함, 신성함을 원했으며, 이것은 서(恕)라는 덕을 얻으려고 매일 노력할 때만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실로 대담한 계획이었다.

    에우리피데스, 삶을 정화하는 그리스 비극의 힘
    다른 지역에서 종교의 사제들과 철학자들이 축의 시대를 개척했다면, 그리스에서는 비극 작가들이 그 임무를 맡았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는 비극이 귀중한 제도가 되었다. 매년 디오니소스 축제 기간에 상연되는 연극은 축의 시대의 자기 성찰을 반영하였다. 이 연극들은 아가멤논, 오이디푸스, 아이아스, 헤라클레스 등 신화의 유명한 인물들이 내적인 여행을 떠나 복잡한 선택 때문에 갈등을 하고 선택의 결과와 마주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 연극들은 축의 시대의 새로운 자의식을 보여준다. 관객은 주인공의 마음이 자기 내부를 향하고, 대안을 명상하고, 고통스럽게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비극 작가들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의 본성, 그리스 문명의 가치, 삶의 의미 등 모든 것에 질문을 던졌다. 또한 비극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자신을 ‘타자’에게 비춰 보고, 자신과 전제가 분명히 다른 사람들도 공감의 범위 안에 포함시키라고 가르쳤다.

    무엇보다도 비극은 고난을 무대에 올려놓았다. 비극은 관객에게 삶이 두카(dukkha)라는 것, 고통스럽고, 불만스럽고, 비틀린 것임을 잊도록 허락지 않았다.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 등 기원전 5세기의 비극 작가들은 폴리스보다 고통받는 개인을 앞세우고, 그 사람의 고통을 분석하고, 관객이 그에게 공감하는 것을 도움으로써 축의 시대 영성의 핵심에 이르렀다. 그리스인은 슬픔과 눈물을 함께 나누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귀중한 유대를 창조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원수들도 《일리아스》의 끝에서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가 그러는 것처럼 공통의 인간성을 발견했다. 그들의 눈물이 카타르시스가 되어 독기 가득한 증오가 담긴 슬픔을 정화해준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부끄러움 없이 큰 소리로 울었다. 이것은 시민 간 유대를 강화해주었을 뿐 아니라, 개인들에게 그들이 슬픔에서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주었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모든 인간이 고난을 겪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타르시스(정화)는 공감과 자비를 경험하는 데서 얻을 수 있었다. 타자와 함께 느끼는 능력이 비극적 경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386~387쪽·6장 공감의 발견

    에우리피데스는 ‘타자’, 심지어 복수를 위해 자신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자식들을 살해한 메데이아나 여신 헤라가 불어넣은 광기에 빠져 부인과 자식들을 죽인 헤라클레스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도 감정적으로 손을 내미는 비극의 전통을 이어갔다. 《헤라클레스》의 결말부에서 테세우스는 더럽혀지고 망가진 사나이에게 공감하려 한다.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를 무대 뒤로 데려가면서 ‘우정의 굴레’의 표시로 팔짱을 낀다. 합창(코러스)은 ‘애도와 눈물로’ 탄식한다. “오늘 우리는 가장 고귀한 친구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 말에 관객도 따라서 울었다. 이것은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힌 편견과 선입관에서 ‘밖으로 나가’(엑스타시스), 연극을 보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자비의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 무지의 지혜를 가르친 앎의 교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질질 끌고 잔혹 행위가 잇따라 일어나던 기원전 420년대에 새로운 철학자가 아테네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멋쟁이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그는 꾀죄죄한 편이었다. 그는 돈을 버는 데는 관심이 없었으며, 학생들에게 돈을 받는다는 발상에 경악했다. 소크라테스는 출신이 비천했지만 아테네에서 가장 좋은 집안 출신 청년 몇 명이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매혹되었으며, 그를 철학적 영웅으로 숭배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이해했으며, 자기 생각의 한계에 연거푸 마주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제기하는 문제의 답을 결코 찾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는 점뿐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이 무지로부터 실용적인 행동으로 피신했던 반면,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삶의 깊은 신비를 드러내는 엑스타시스로 경험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가정에 반드시 질문을 던져야 했다. 그래야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진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물을 볼 수 있고, 그릇된 의견을 넘어서서 언제나 올바르게 행동하게 해주는 완벽한 직관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 피상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남겼다고 하는 기억할 만한 말에서 이 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검토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444~445쪽·7장 사유의 혁명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위험한 인물로 보았다. 재판에서는 소크라테스에게 국가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신들을 도입하고, 젊은이들을 부패시킨 죄를 물었다. 결국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맞았다.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독약을 마시기 전에 자신의 몸을 씻었다. 자신이 죽은 뒤에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을 덜어주려는 것이었다. 간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것에 정중하게 감사했다. 심지어 자신의 곤경을 두고 온화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차분하게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며, 친구들에게 애도하지 말라고 하면서, 곁을 지켜주는 그들의 우정을 조용하고 다정하게 받아들였다.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슬픔 대신 조용하고 수용적인 평화가 있었다. 축의 시대 내내 현자들은 죽음에 몰두했다. 소크라테스는 고통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초월하는 평온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고타마 싯다르타, 무아의 발견자, 마음의 혁명가
    기원전 5세기 말 무렵, 히말라야 산맥 산기슭에 자리잡은 샤카 공화국에 살던 한 크샤트리아가 머리와 턱수염을 자르고, 출가자의 샛노란 가사를 입고 마가다로 가는 길에 나섰다. 그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였으며, 나이는 29살이었다. 출가자가 된 고타마는 당대 최고의 요가 수행자를 찾아 공부했고 놀라운 성취를 보였다. 스승들은 기뻐했으나 고타마는 만족할 수 없었다. 자기 안에서 진정한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고타마는 금욕주의자들에게 배움을 청했다. 고타마는 극단적인 고행으로 등뼈가 물렛가락처럼 튀어나올 정도로 바짝 말라 거의 죽음에 이를 지경까지 갔다. 그러나 아무리 고행을 해도 욕정과 갈망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평화와 자아의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 고타마는 스스로 특별한 요가 훈련법을 계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요가 수련을 통해 의식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갔으며, 점차 이기적인 갈망과 욕망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7년 동안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통해 고타마는 마침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제 고타마는 ‘깨어 있는 사람’ 또는 ‘깨달은 자’(붓다)가 되었다.

    고타마는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니르바나에 이르는 길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팔정도八正道)이라고 부르는 이 길은 도덕, 명상, 지혜로 이루어진 행동 방침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수행자들은 요가 수행을 통해 고타마의 가르침을 ‘직접’ 이해하고 자신의 일상 생활과 통합할 수 있다. …… 니르바나란 무엇일까?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이 말은 고타마가 깨달음을 얻으면서 ‘꺼졌다’는 뜻이다. 고타마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 종종 ‘타타가타’(tathagata, ‘사라졌다’)라고 불렸다. ‘그’는 이제 거기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꺼진 것은 그의 인격이 아니라 욕심, 증오, 기만의 불이었다. 붓다(이제 고타마를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해로운’ 마음 상태를 눌러 없앰으로써, 자기가 없는 상태로부터 오는 평화를 얻었다. - 479쪽·장 사유의 혁명

    붓다는 폭력적이고 슬픈 세상에 살던 자기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안식처 역할을 했다. 그는 니르바나를 찾음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것이 자기 사명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붓다는 공감과 자비의 마음으로 슬픔의 세상에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려 했다. 그는 45년간 지칠 줄 모르고 갠지스 평원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신과 동물과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의 냉정함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으며, 어떤 대상 또는 어떤 사람을 특별히 더 좋아하지 않는 태도에 풀이 죽지도 않았다. 붓다는 유머가 없고 엄격하고 비인간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외려 그를 만나는 모두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그의 변함없고 끈질긴 관대함, 고요, 공정함은 심금을 울리고 사람들의 가장 깊은 갈망과 공명했던 것 같다. 붓다는 소크라테스나 공자와 마찬가지로 카를 야스퍼스가 ‘인격의 모범’이라고 부른 사람이 되었다. 인간이라면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하는 목표를 예증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축의 시대의 선각자들은 원형적 모델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모방함으로써 그들이 구현한 고양된 인간성을 성취하는 길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 490~491쪽·7장 사유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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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의 시대의 영성(정신성, spirituality)을 처음 시도한 이들은 러시아 남부의 초원 지대에 산 목축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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