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사는 9명의 주민이 모여 이태원을 주제로 하는 일기를 작성했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 살면서 서로에게 인간적이고 또한 환경적이 되어주며 이태원의 긍정이고 나누는 에너지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이태원 주민일기』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hot)하기로 소문난 ‘이태원+한남동 탐구생활 보고서’이다. 이태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고, 재개발로 사라질 자신의 집을 스튜디오로 만들어 주민들의 초상화를 찍어주고, ‘움직이는 식당’을 만들어 신청자의 집으로 찾아가 요리를 만들어주고, 이태원에 버려진 것들을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켜 다시 다른 동네로 가게하고, 친환경 홈페이지를 분양하고, 이태원의 작은 식물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이태원에서 만나 사랑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코스를 소개하는 등 9명의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태원에서의 일상을 그려냈다. 이태원에서의 하루하루를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9명의 아티스트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허투루 볼 수 없는 우리 시대 젊은 아티스트들의 창조적인 생각이 재기발랄하게 담겨 있는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한다.
지금까지 진짜 ‘이태원’에 관한 책은 없었다!
1997년 봄이었어요. 저와 사이이다와 나난은 서울예대 선후배로 만났습니다. 셋은 그때부터 포도송이들처럼 늘 붙어 다니며 탱글하게 지냈습니다. 어른이 되면 3층 집을 지어서 같이 살자던 꿈은 이태원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모여 살면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꿈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저희들이 만든 삼각형 근처로 더 많은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이사 오면서 꿈이면서도 현실이기도 한 재미있는 일들이 생겨났고 그 이야기들을 이렇게 『이태원 주민일기』라는 책으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태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고, 재개발로 사라질 자신의 집을 스튜디오로 만들어 주민들의 초상화를 찍어주고, ‘움직이는 식당’을 만들어 신청자의 집으로 찾아가 요리를 만들어주고, 이태원에 버려진 것들을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켜 다시 어떤 동네로 가게 합니다. 친환경 홈페이지를 분양하고, 이태원을 가드닝(gardening)하며, 이태원에서 만나 사랑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코스를 소개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태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인간적이며 또한 환경적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태원 2동 주민 정신 씀
“오래 살아 있는 것과 정제된 새로움의 충돌”. 한 패션 저널이 명쾌하게 정리한 것처럼 ‘이태원+한남동’은 옛것과 새것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핫 스팟(hot spot)'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생기고, 꼼데가르송이 생기고, 버진이 생기고, 꿀이 생기고, 옥사나 가든이 생기고, 테이크아웃 드로잉이 생기고, 더 스파이스가 생기고, 공간 해밀턴이 생기는 등 수년간 이어진 ‘한남동의 오프닝 세리머니’는 트렌드에 관심 있는 이들의 촉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한쪽에서는 고급스러움의 최첨단이 도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철저히 대안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곳, 그리고 이 양극단이 오묘하게 어울리는 곳. ‘이태원+한남동’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는 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태원+한남동’에 조금이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혹은 이곳에서의 쉼을 즐기는 이라면 이 지역의 진정한 매력은 ‘이태원’이라는 오래된 터줏대감에서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정신’과 ‘사이이다’라는 이름으로 광고와 사진, 웹 기획 등 다방면에서 이름을 알려온 두 명의 아티스트들은 이태원의 진정한 매력을 세상에 전할 수 없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왔다. 고급 부촌과 재개발을 앞둔 지역이 뒤섞여 있는 곳, 족히 30~40년 이상을 한 곳에 머물러온 토박이들이 그득한 곳, 보수적인 예술과 진보적인 예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 그리고 이곳의 또 다른 주인 외국인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열린’ 마음을 갖게 되는 곳…. 작가 ‘정신’과 ‘사이이다’에게 이태원은 서울에서, 아니 대한민국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결심했다. 이태원의 속살을 보여주기로. 그리고 실천했다. 『이태원 주민일기』라는 책을 만들기로.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생각에 진심으로 동의한 주변의 아티스트들이 알음알음 모여들었다.
이태원+한남동 문화 피플이 바라본 이태원 조감도 + 오감도
‘나난’은 창문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윈도우 페인터’이다. 주한 영국대사관, 63 시티, 남산 타워, 라네즈 월드와이드 패키지, 홍콩 월드 트레이드 센터 등 이름난 건물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는 그녀는 이른 아침 이태원을 산책하며 길가의 작은 풀들에게 화분을 만들어주고, 오래되고 낡은 도로 표지판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나난 가드닝’을 진행했다. 신민아, 타이거 JK+윤미래 부부, 김명민, 2PM, 추성훈, 봉중근, 소녀시대, 김주하 등이 기부한 '네이버, 해피 에너지'의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진우’는 ‘움직이는 식당’이라는 프로젝트로 ‘이태원의 출장 요리사’를 자처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지인, 혹은 함께 축하하고픈 가까운 사람의 집을 찾아가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것이다. 슈퍼주니어의 뮤직비디오와 앨범 재킷, 각종 패션 매거진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홍민철’은 이태원 패밀리마트 앞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여자친구와의 1년간의 데이트 현장을 검증했다. 지금 갓 시작된 사랑에 설레어하는 이들이라면 이들의 이태원에서의 데이트 경로가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공간이 될 것이다. 혹시 당신이 이태원을 산보하다가 무언가를 줍는 젊은 청년을 보게 된다면 “혹시 『이태원 주민일기』의 박길종 씨 아니세요?”라고 물어보길 바란다. 아마 ‘100프로!’일 거다. 이태원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쓸모 있게 만드는 ‘박길종’은 나무로 만들어진 주판을 이용해 ‘주판 칠통’이나 ‘주판 연필꽂이’로 만드는 등 단순히 DIY라는 유행을 넘어 환경을 생각하고, 지루한 일상에 재미를 가져다주는 자신만의 ‘디자인’을 실천하는 아티스트이다.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아이엠 멜로디 등의 홈페이지와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고 사운드 아티스트로도 활동 중인 ‘목정량’은 이태원 주민들에게 친환경 홈페이지를 분양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작가이자 화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삼성생명 CF 삽화, 유니클로 UT 작업, 장윤주 1집 재킷 및 뮤직비디오 작업을 진행한 ‘사이이다’는 재개발의 이름으로 사라질 예정인 이태원의 집을 15일간 스튜디오로 바꿔 친구들을 초대하여 초상화를 찍어주었다. 15일간 30여 명의 외부인이 다녀간 ‘사이이다 홈 스튜디오’ 프로젝트를 통해 그녀는 이태원의 특정 공간이 사라진 후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를 고민해 보았다. 이태원의 랜드마크 제일기획 근처에 직접 재단한 양복을 판매하는 숍 ‘테일러블’을 운영하고 있는 패셔니 스타 ‘곽호빈’은 무한도전 200회 특집 의상 디자인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친 차세대 디자이너다. 그는 자신의 숍을 찾은 고객들을 이태원에 세워 공간과 인물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로 이태원의 명소를 소개했다. 9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중앙대 국악대학을 졸업하고, 제35회 춘향제 국악대전 판소리 부문 일반부 대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명창으로 떠오른 ‘황애리’는 이태원의 집과 공원에서 이태원 주민들에게 판소리 한 대목을 가르치는 판소리 에듀케이션의 선생님이 되었다. NHN(네이버)의 공간 기획과 도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이해린은 사람과 공간을 향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NHN 사옥(그린 팩토리) 프로젝트 진행에 참여한 기록을 담은 『NHN이 일하는 27층 빌딩 그린 팩토리 디자인북』 제작을 디렉팅한 그는 ‘퇴근길 기자’라는 이름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태원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한 기록을 담았다. 유명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존의 인터뷰와 달리 그는 이태원에 거주하는 아티스트와 주민, 상인 등 평범한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진솔한 이야기로 담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이태원을 사랑하는 법, 우리가 이태원에서 사는 법
『이태원 주민일기』는 ‘이태원+한남동’이라는 특정 지역, 그곳에서의 소탈한 일상을 사랑하는 생활인과 아티스트,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이태원만의 매력이 담겨 있는 흔치 않은 프로젝트를 책으로 묶었다는 것만으로도 구미가 당긴다. 이들이 풀어놓은 이태원에서의 일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색다르면서도 동시에 우리네 이야기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이태원이라는 매력 넘치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일상은 미술과 사진, 음악, 웹 프로젝트, 디자인, 가구, 공예, 음식, 패션, 그리고 사랑까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태원 주민일기』는 이태원의, 이태원에 의한, 이태원을 위한 책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책이다.
책속에서
거리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모양을 보면 어떻게 하다가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걸까? 이들의 아가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지난 날들을 상상해본다. 이들이 택한 장소는 생긴 모습만큼이나 너무나도 다양하다. (중략) 자연의 생김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다양하듯이 나난 가드닝 또한 같은 것이 없고 다양하게 이태원뿐만 아니라 더 넓게는 서울, 대한민국, 또 세계 어디에서든 계속되어지고 싶다. - ‘나난 - 나난 가드닝’ 중에서
분명 그녀는 울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일이 힘들고 짜증이 나 밤늦게 많이 울어본 나로서는 분명히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중략) 나의 장점인 현장에서의 순발력을 살려 팀을 나누어 장을 보고 가장 풍성하고 따뜻한 ‘한밤의 모락모락 샤브샤브’를 생각해본다. 무엇을 넣어도 맛있는 샤브샤브! 우리는 새벽 2시가 되어서 킴스마트로 향한다. 으악, 이건 완전 대박이다. 야채 가격이 이미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담는다. 이런 밤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어묵, 삼겹살, 버섯, 새우, 그리고 가리비살 꽃게도 챙겨 담았다. 쇼핑 카트가 가득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빨리 가서 맛있는 음식을 해주어야지. - ‘장진우 - 움직이는 식당’ 중에서
(홍민철) 저기가 로프트인데 다 와 가네요. 그런데 지금 여길 지나니까 예전 일이 떠오르는데 8월 말에 꼼데가르송 오픈 파티 때 초대 받았거든요. 그날 지은이랑 같이 오고 싶었는데 못 와서 아쉬워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날로 가서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고 싶어요. (김지은) 현장 검증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재연하는 거지만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재연하면 안 될까요? 오늘은 2020년 8월 30일이에요. 그때까지 민철이를 만나고 싶기 때문에 2020년이에요. 민철이와 꼼데가르송에 와서 우선, 로즈 베이커리에서 브런치를 하고 서로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라주고 있어요. - ‘홍민철 - 사랑의 현장검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