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心傳心이심전심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해주다 廓然無聖곽연무성 큰 깨달음은 성스러움조차 없다 了不可得安心法요불가득안심법 마음의 안정을 얻는 비결 我自調心아자조심 스스로 마음을 조율한다 何罪之有하죄지유 무슨 죄가 있으랴 解脫法門해탈법문 해탈의 비결 無姓是祖무성시조 성씨가 없어야 조사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보리는 본디 나무가 없다 如魚飮水, 冷暖自知여어음수, 냉난자지 물이 차고 더운 것은 물고기가 안다 自性眞空자성진공 자성은 참으로 공한 것이다 得指忘月득지망월 손가락에 집착하여 달을 놓치다 不修聖諦, 何來層次불수성제, 하래층차 진리를 닦지 않고 무슨 등급이 있으랴 直指人心직지인심 직접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깨닫게 한다 曹溪一覺, 了悟生死조계일각, 요오생사 조계에서 하룻밤 자며 생사를 깨닫다 何謂虛空하위허공 허공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佛祖和侍者불조화시자 불조와 심부름꾼 佛性‘如是’불성‘여시’ 불성은 ‘이와 같다’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견산불시산, 견수불시수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照性自明조성자명 자성에 비추어 스스로 깨닫다 一芥納須彌일개납수미 겨자씨 안의 수미산 熱心人열심인 마음이 뜨거운 사람 坐禪不能成佛좌선불능성불 좌선한다고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已進不退이진불퇴 이미 들어왔으니 물러가지 않는다 騎驢?驢기려조려 나귀를 탄 채로 나귀를 찾는다 射心中的迷誤사심중적미오 마음속의 오류를 쏘다 ?住虛空조주허공 허공을 붙잡다 事如春夢了無痕사여춘몽료무흔 만사는 춘몽과 같아 흔적이 없다 不拘文字, 體露眞常불구문자, 체로진상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진상 체험 一日不作, 一日不食일일부작, 일일불식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 空手而回공수이회 빈손으로 돌아간다 見性成佛견성성불 자신의 불성을 깨달아 부처가 된다 禪不可說선불가설 선은 말로 할 수 없다 眼明而?안명이할 눈 뜬 장님 雲在靑天, 水在甁운재청천, 수재병 구름은 푸른 하늘에, 물은 물병에 依人不依法의인불의법 사람에 의거할 뿐 법에 의거하지 않는다 通身是眼통신시안 온몸이 눈 我在아재 내가 있다 誰是?的後人수시니적후인 누가 그대의 뒷사람인가 自己的餠자기적병 자신의 떡 無生無死무생무사 삶도 죽음도 없다 禪家門戶선가문호 선가의 문호 人生之險인생지험 인생의 험난함 菜葉也是生命채엽야시생명 채소 잎도 생명이다 機鋒기봉 깨달음을 위한 슬기 脫却枷銷탈각가소 멍에를 벗어던져라 二十大板以爲戒이십대판이위계 깨우침을 준 곤장 스무 대 點什?心점십마심 무슨 마음을 일깨울까 心光已亮심광이량 마음의 불빛이 이미 환하거늘 身心安頓신심안돈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明珠명주 밝은 구슬 百尺竿頭, ?樣上得백척간두, 즘양상득 백 척 장대 끝에서 어떻게 더 나아가나 明月佛性명월불성 밝은 달빛에 깃든 불성 爐中靈火노중영화 꺼진 난로 속에서 찾은 불씨 水乳交融수유교융 잘 맞는 궁합 經書是魔道경서시마도 경서는 마도이다 有主沙彌유주사미 주인 있는 동자승 空空之音공공지음 텅 빈 소리 上樹之前상수지전 나무에 오르기 전 一絲不?일사불괘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다 無事勝佛무사승불 아무 일 없는 것이 부처님보다 낫다 無情說法무정설법 무정의 설법 不在別處부재별처 다른 곳에 있지 않다 滅却心頭火自凉멸각심두화자량 마음의 불을 꺼버리면 저절로 서늘해진다 永不變易的地方영불변역적지방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곳 死猫頭最貴重사묘두최귀중 죽은 고양이 머리가 가장 귀중하다 涅槃在生死中반재생사중 열반은 삶과 죽음 가운데 있다 人生死後如氷歸水인생사후여빙귀수 죽음, 얼음이 물로 돌아가는 것 不識眞我불식진아 참된 자신을 모른다 拂塵불진 불자를 들다 椅子就是竹木의자취시죽목 의자가 바로 대나무다 同還是不同동환시부동 같이 있을까, 따로 있을까 不知最親切부지최친절 가깝고 절실한 것을 모른다 一切現成일체현성 모든 것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 執卽無救집즉무구 집착하면 건질 것이 없다 萬象之中獨露身만상지중독로신 만상 가운데 홀로 몸을 드러낸다 雲水隨緣운수수연 구름처럼 물처럼 인연을 따라간다 生死在身생사재신 삶과 죽음이 자신에게 있다 禪宜默선의묵 선에는 침묵이 알맞다 一字關일자관 한 글자로 닫는다 人生三昧인생삼매 바리때의 밥, 물통의 물이 인생 삼매 雲門三句운문삼구 운문선사의 세 마디 말 用心念佛용심염불 열심히 불경을 읽다 老婆心切노파심절 노파심 臨濟喝임제갈 임제의 고함 소리 求諸己구제기 자신에게서 구하라 斗笠中的禪機두립중적선기 삿갓 속의 선의 비결 斷指단지 손가락을 자르다 心隨境移심수경이 상황에 따라 변통하는 마음 無相何在무상하재 무상은 어디에 있는가 空谷足音공곡족음 빈 계곡의 발걸음 소리 不執卽佛부집즉불 집착하지 않으면 곧 부처다 如鹽入水여염입수 소금이 물에 들어가듯 拾取自家寶藏습취자가보장 자신에게 있는 보물 庭前柏子樹정전백자수 뜰 앞의 측백나무 代替不來대체불래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不淋一人불림일인 한 사람을 적시지 않다 道心不妄情도심불망정 도심은 허황된 정이 없다 心無所持심무소지 마음속에 붙잡는 것이 없다 違順相爭, 是爲心病위순상쟁, 시위심병 생각을 거스르는 것은 마음의 병 때문 枯木寒巖고목한암 차가운 바위에 기댄 마른나무
역자 후기
이용현황보기
선 철학 이야기 100 : 초월과 공명의 철학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635574
294.86 -11-7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635575
294.86 -11-7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절대적 해탈과 공명을 추구하는 선 철학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삶의 경지를 찾다
‘선(禪)’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梵語] ‘디야나(dhy?na)’에서 유래했다. 정좌하여 문득 깨달음을 얻고 참된 지혜를 획득한다는 뜻이다. 선은 석가모니 부처가 “꽃을 들고 빙그레 웃은[拈花一笑]” 것에서 탄생했으며, 이를 중국에 들여온 달마조사를 거쳐 육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렀을 때 중국 선종이 비로소 생성되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선 문화는 중국의 철학, 정치, 생활, 사유방식 등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을 비롯한 동양문화권 전반에 깊이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헌덕왕 때인 821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도의(道義)가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하고 선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흔히 선 철학의 핵심은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모두 선이 고정관념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깨달음과 해탈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것에 대한 집착도 모두 버리라고 말하는 선은 심지어 선 자체에 대한 집착까지도 버려야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외적 형식과 양적 소유에 집착하며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잊고 사는 오늘날에 선이 추구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언뜻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만큼 절실한 지혜가 아닐 수 있다. 이 책은 선 철학의 지혜를 담은 100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선 철학의 핵심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이 하나의 전범이 될 만하다. 또 무엇보다 선종의 핵심사상과 정수를 집약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이야기들을 구슬처럼 꿰어놓으면 바로 ‘선 사상사(思想史)’가 된다. 또한 각 이야기의 뒤에는 ‘선의 지혜’와 ‘선의 지식’을 보충했다. ‘선의 지혜’는 각 이야기에 담긴 선의 이치와 지혜를 집약하여 삶의 깨달음을 얻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또한 ‘선의 지식’은 선 철학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들을 기술하여 선의 문화적 배경과 지식을 넓힐 수 있도록 했다.
마음을 밝혀 깨달음을 얻는 선 철학의 지혜
선은 해탈의 지혜이며, 뜻에 맞는 즐거운 생활을 추구하는 마음의 경지이다. 선사(禪師)는 곧잘 한마디 말로 갈파하거나, 갑자기 몽둥이질을 하거나, 버럭 소리쳐 꾸짖는다. 그것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돌멩이를 던져서 세상의 진리와 불법(佛法)의 미묘한 정수를 깨닫게 한다. 그렇기에 언어나 문자에 기대지 않고 마음의 미묘한 깨달음과 순간적인 영감으로 고명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선종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선에서 깨달음을 향해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깊은 산중에서 고독하게 좌선과 명상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좌선불능성불坐禪不能成佛(좌선한다고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이라는 이야기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미 경지에 오른 스승 회양(懷讓)에게는 마조(馬祖)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런데 마조는 종일 멍하니 앉아 참선만 했다. 불당 앞에 꽃이 피어도 보지 못했고, 하늘이 맑게 개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해야만 성불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스승 회양은 그를 꾸짖는다. “자네는 좌선을 배우려는 건가, 아니면 부처가 되려는 건가? 만약 좌선을 배우는 것이라면 참선은 앉아서 하나 누워서 하나 마찬가지네. 부처는 일정한 모습이 없네. 끊임없이 변하는 사물에 대해서도 취사선택이 없어야 하네. 자네가 좌선에만 집착한다면 성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가는 것이네.” 다시 말해 선에는 집착도 없고 규정된 법도도 없다는 것이다. 선입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직접 ‘자신의 마음’을 문으로 삼아 성불의 참된 뜻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불이란 자신의 마음을 밝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선은 지식이 아니다. 따라서 시간을 들여 수많은 경전들을 섭렵한다고 해서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도달하기 어렵긴 하지만, 반대로 박학한 고승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선을 체험할 수 있다. 고단하고 거친 삶 속에서 우리는 선을 통해 온갖 번민과 고통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선은 일상과 동떨어진 철학이 아니라 삶과 궤를 같이하는 지혜이다.
이야기로 풀어 쓴 선 철학의 정수
‘철학’이나 ‘사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어렵게 느껴지고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하물며 ‘선 철학’이라고 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선의 핵심 사상들은 이 책이 취하고 있는 방식처럼 ‘이야기’ 형태로 전승되어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난해한 철학적 논제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깨달음을 위해 정진했던 승려들의 일상적인 삶과 대화가 녹아 있다. 하지만 이야기 형식을 취했다고 해서 그 논의의 수준이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선 철학의 정수를 빠짐없이 담고 있기에, 이 책의 역자도 말했듯이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면서도 ‘철학적 엄밀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때로는 이야기의 행간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이야기 자체에만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선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 삶과 마음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나온 숱한 이야기들은 그 길에서 깨달음의 단초를 제공하기에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