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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 다보탑의 돌사자는 어디로 갔을까? / 혜문 지음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작은숲출판사, 2012
청구기호
353.7 -12-10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255 p. : 삽화 ; 22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6543091
제어번호
MONO120121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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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틀어진 광화문에 서서

1. 망각의 역사 ?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
히젠도가 신사에 보관되어 있는 까닭은?
민족의 울분을 담은 안중근의 총알을 기억하는가?
일제는 왜 기생 명월이의 생식기를 보관했을까?

2. 환국의 그림자 ? 되찾은 문화재의 허와 실
되찾은 조선왕조실록은 반환된 것일까, 기증된 것일까?
일본은 왜 이토 히로부미가 훔쳐 간 책을 100년 만에 돌려주었을까?
돌려받은 명성황후 표범 카펫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짚신을 문화재라고 돌려준 일본의 숨은 뜻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이 반환한 조선검은 어디로 갔을까?

3. 빼앗긴 문화재의 꿈 ? 제자리를 찾아야 할 문화재
다보탑의 돌사자는 어디로 갔을까?
금산사 향완이 위아래가 뒤바뀐 채 일본에서 발견된 까닭은?
우리 석조 문화재가 오쿠라 슈코칸을 장식한 까닭은?
조선 제왕 투구가 일본에 잡혀간 까닭은?
부처님 사리는 왜 보스턴에 잠들어 계실까?
문정왕후 금보가 LA 박물관에 출장 중인 까닭은?
뇌물로 준 우리 문화재는 어디에 있을까?
‘헨더슨 컬렉션’이 하늘 아래 최고라고 불린 까닭은?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도 문화재 약탈국이다?
‘직지’는 왜 한때 ‘직지심경’으로 불렸을까?

에필로그 - 조선왕실의궤 반환 운동, 그 절반의 성공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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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706898 353.7 -12-10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청와대마저도 일본식 조경에 오염된 대한민국에서
    혜문 스님, 빼앗긴 문화재,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말하다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하여 해외 강탈 문화재 환수 운동에 앞장서 온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이 우리가 되찾아야 할 문화재에 대한 비밀을 밝힌 책,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작은숲출판사)를 출간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와 혜문 스님이 하는 일은 빼앗긴 문화재를 찾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실제로 스님은 40여 차례 일본을 방문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 노력한 결과 2011년 12월에 ≪조선왕실의궤≫를 되돌려받는 데 성공함으로써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에는 보신각 타종 행사에 시민 대표로 초대되었고, ‘KBS 한국의 유산’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 특히 고인이 된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직지의 대부로 알려진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 등과 함께 2012 KBS 감동대상을 수상한 것은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문화재 환수를 위한 5년간 피땀 어린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혜문 스님은 해외 강탈 문화재 환수의 상징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빼앗긴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제가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하는 것은 모든 문화재는 아닙니다. 따라서 성금을 모아 문화재를 돈으로 사오자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제자리를 찾아야 할 문화재는, 민족 혼이 담겨 있는, 아버지의 뼈 같은 것입니다. 이미 반환을 받은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뼈가 해외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돈을 주고 사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뼈가 수십 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연히 자손들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 뼈를 돈 주고 사오는 사람이 있을까요?
    스님의 관심은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가 신물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의 그의 관심 대상이다. 얼마 전 ‘일본식 조경에 오염된 청와대 대문의 석등을 철거하라.’는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우리의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있는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스님의 하고자 하는 일이며,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정수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 일본의 영향을 완전하게 배제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일본의 식민 통치조차도 역사이기 때문에 철거하거나 청산해서는 안 되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강압적 식민통치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정신만은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망국의 시간 동안 집을 잃고 유랑한 것은 나라 잃은 백성뿐만이 아니었어요. 5천 년 동안 이 땅에 자리잡고 이룩한 ‘민족혼과 문화재’ 역시 일본의 침략으로 뿔뿔이 흩어져 다른 나라로 팔려 가거나 유실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일본이 우리에게 교묘하게 남겨 놓은 유린의 상처들은 아직도 곳곳에서 ‘조선 혼’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중요한 장소마다 나타나 무엇인가 ‘순정한 민족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틀어진 광화문이나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에 심겨진 일본 특산종 금송 같은 것들입니다.”
    독도 문제나 친일파 청산 및 일제 청산을 거론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대한민국, 나라의 기본 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경복궁 및 광화문과 세종로 축이 틀어져 있어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스님의 생각과 그 생각이 담긴 이 책은 작은 울림을 주고 있다. 청와대 대문의 석등 문제에서도 일부 언론들은 ‘그게 무슨 대수냐’‘청와대 대문을 철거한다고 뭐가 달라지나?’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 두 장의 사진은 백 마디의 말보다 가슴에 와 박히는 진실의 울림을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또한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기에, 일제의 숨은 흔적을 찾던 중 우리나라 최고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마저도 일본식 조경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님은 여전히 조금 불편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청와대 대문은 지은 사람이 철거해야 합니다.
    이 책에는 혜문 스님이 지난 5년간 빼앗긴 문화재 반환 운동을 추진하면서 수없이 던졌던 “우리는 왜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했던 흔적이 3개의 장에 담겨 있다.
    1부 ‘망각의 역사’는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명성황후를 절명시킨 칼이 아직까지 신사에 기념물처럼 보관되었다는 사실, 일제 경찰이 만든 ‘조선 여성의 생식기 표본’이 최근까지도 국과수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충격적 사실들과 만나게 된다.
    2부 ‘환국의 그림자’는 우리가 되찾은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화재 환수가 중요하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환수된 문화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했는가를 살피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짚신과 막도장을 돌려받고 ‘문화재 청구권’을 포기한 사실, 미군 병사가 훔쳐간 문화재를 되돌려 받았지만 60년 동안 그 행방을 모르고 있었던 무능한 정부, ≪조선왕조실록≫ 환수 과정에서 드러난 서울대의 태도 등은 문화재 환수의 실제가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3부 ‘빼앗긴 문화재의 꿈’은 앞으로 되찾아야 할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문화재들은 문화재적 가치뿐만 아니라 질곡의 역사를 증언할 ‘역사성’이 담긴 것들 중에서 엄선된 것으로, ‘불법적 유통 구조’를 직접 조사하고 현장 확인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것들이다. 여기에 제시된 목록들은 앞으로 우선적으로 환수되어야 할 나침반이자, 한 시대의 정신이 실린 ‘신물(神物)어떤 물건에 시대 정신과 역사혼이 담겨 그 민족을 상징하고 역사 그 자체로 자리매김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혜문 스님이 말하는‘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단순히 빼앗긴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조상이 후손들에게 물려준 정신을 찾는 과정이자, 우리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그런 취지에서 스님은 “지난 100년 전의 슬픈 역사를 딛고 주인으로 우뚝 서는 운동으로서 ‘문화재 제자리 찾기’가 자리 매김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또한 문화재 제자리 찾기를 위해 일본을 40여 차례 방문하기도 했던 스님은 문화재 제자리 찾기에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이 매우 중요함을 역설해 왔다. 얼마 전 의궤 평양 전시를 위해 개성을 방문한 적이 있는 스님은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분단을 넘어 민족의 제자리 찾기로 발전”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빼앗긴 우리 문화개가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우리 민족의 품으로 되돌아올 것을 믿고 있다.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를 깰 수 있다”는 스님의 신념과 우리 문화재, 우리 역사에 대한 아주 디테일한 관심은 빼앗긴 문화재뿐만 아니라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무관심했던 우리의 역사의식을 되찾게 할 것이다. “문화재는 교과서 속 외워야 할 지식이거나 관광 상품이 아닙니다. 우리의 살아 있는 현실이고 우리의 역사”라는 스님의 말 속에서 2012년 대한민국에서 문화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져 본다. 특히 청와대 대문에 일본식 석등이 아직도 버젓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스님은 이 책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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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P.19~22] 구체적인 정황을 수집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길에 그만 넋을 잃을 정도의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청와대의 대문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대문과 너무도 닮아 있었던 것이다. 일본 신사는 일반적으로 ‘도리’라고 불리는 정문을 세우고 그 옆에 ‘등롱燈籠’이라고 불리는 석등을 배치하는데, 놀랍게도 청와대 대문에 이런 양식이 나타나 있었다.
    청와대에 석등이 있는 것은 좀 뜻밖의 일이었다. 석등은 조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자死者의 영혼을 위로하거나 부처님께 공양을 하기 위한 법구法具이다. 우리나라의 석등은 사찰이나 능묘에서만 나타날 뿐, 일반적인 주거지나 궁궐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석등이 사찰에 세워질 때에도 전통 양식에서는 단 1기만 세워질 뿐 쌍등이나 다수의 등이 일렬로 배치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일본 신사 혹은 일본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일 경우에만 한정된다.
    일본식 석등이 청와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문화재청에 관련 사실을 질의했다. 마침 창덕궁 앞에도 이와 비슷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우회적으로 창덕궁 석등은 전통 양식이 아니므로 철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문화재청에 발송했다. 만약 문화재청이 창덕궁 앞의 석등을 철거한다면, 이는 명백한 오류임이 분명하니 청와대의 일본식 석등도 마땅히 철거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명료했다. 창덕궁 관리 사무소는 이의 신청을 받은 뒤, 곧장 철거하겠다는 답변을 보내 왔다.(이 석등은 2012년 2월 13일 철거되었다.)

    문의하신 석등은 전문가 자문 결과 ‘전통 방식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1970년대 궁궐 주변 정비를 위해 설치한 펜스의 일부로, 임의로 설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석조물은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자문위원의 의견이 있어 다음 주 중으로 조속히 철거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2012년 2월 7일 문화재청의 답변 중에서

    일본 신사에서나 볼 수 있는 석등을 청와대에 설치한 것에 대하여 좀 더 결정적인 증거 수집을 위해 고심하던 중 혹시 청와대 석등이 조선 총독부의 잔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조선 총독부의 사진을 조사해 보았다. 예상대로 과연 남산에 있었던 조선 총독부와 놀랄 만큼 유사한 사진을 찾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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