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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 함께 깨달아가는 인생
류짜이푸의 서문 - 딸·여성·여신
류젠메이의 서문 - 아버지·개체·어린아이

제1부 사랑하라
내가 사랑하는 그 세계 | 『도화선』 바깥의 생활 | 정신의 여행 | 문화의 맥 | 만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 | 생명의 장 | 삶 속의 죽음 | 여명을 만끽하다 | 부성애의 방식 | 모성애의 비극성 | 사랑의 딜레마

제2부 생각하라
갓난아이 상태 | 안일 | 지혜로운 사람이 피해야 할 것 | 인생의 단계 | 생명의 상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 영혼의 뿌리 | 쾌락의 최고봉 | 세상에 물들기를 거부하다 | 혜근과 선근 | 고난 콤플렉스 | 사상의 강인성

제3부 표류하라
외할머니에 담겨진 의미 | 여성 언어와 디아스포라 문학 | 천하를 품어내는 큰마음 | 심미적인 눈 | 표류의 미학 | 문화 고향 | 관용 | 인간 복제 | 문학에 대한 믿음

부록 - 진융이 말하는 『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
옮긴이의 말 -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그 세계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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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 : 사상가 아버지와 문학가 딸이 나눈 10년의 편지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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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삶이라는 주제를 놓고
사상가 아버지와 문학가 딸이 10년간 편지로 토론을 벌이다


◆ 중국 인문학의 거목 류짜이푸와 미국 대학의 문학교수인 딸이 인생에 대해 나눈 웅숭깊은 대화의 기록
◆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공부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고 답하다
◆ 평등하며 지적인 대화를 통해 강구하는 인간다운 생의 의미
◆ 일회성 생존 전략을 물려주는 멘토를 거부하고 진실한 삶을 궁구하는 마음의 멘토를 모셔라!
◆ 2002년 홍콩의 10대 양서로 선정


이 책은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망명 중인 비판적 지식인이자 중국 사상계의 거목인 류짜이푸와 현재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아시아·동유럽 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딸 류젠메이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팩스로 주고받은 편지 62통을 묶은 것이다. 원제는 ‘공오인간共悟人間’ 즉, ‘함께 깨달아가는 인생’이다. 사상가 아버지와 문학가 딸이 10년 동안 나눈 이 편지들은 학문세계와 현실세계,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의 경계를 허물며 통찰한 참된 삶의 자세를 담고 있다. 컨설턴트로서의 멘토가 흥행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실한 삶의 방식을 진솔하게 일러주는 마음의 스승에 목말라하는 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소통을 향한 평등한 대화


두 사람은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그리고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 혈연이라는 운명에 얽혀 “당신이 무엇을 하든 무조건 응원한다”가 아니라, 서로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세계를 향해 꿋꿋이 나아갈 것을 응원한다. 세상에 물들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그 세계’를 지켜나갈 것을 응원한다.
- 옮긴이의 말에서

류짜이푸는 1989년 톈안먼사건 이후 중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한 지식인의 양심은 그를 고난과 고독이 짙은 디아스포라의 길로 내몰았고, 미국 체류가 시작됐다. 반면 류젠메이의 미국 생활은 류짜이푸의 표현대로 ‘배회와 방황이 없고 몸과 마음의 분열이 없’으며 ‘자신의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철학·우주·문학의 세계 속에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지적 여정이었다.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콜로라도대와 컬럼비아대에서 학위를 받은 다음 메릴랜드대에서 교수가 된다. 그들의 교류는 이렇게 자못 상반된 계기에서 제 나라를 떠난 아버지와 딸이 모국어인 중국어로 각자 독서와 연구를 통해 깨달은 바를 공유하며 삶을 논한 과정이다. 두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음(마음이 통하는 둘도 없는 벗)인데, 아버지를 존경하는 딸과 딸을 존중하는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딸은 자랑스레 아버지를 ‘정신의 안내자’ ‘마음의 선생님’으로 부른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공부하는 법보다 먼저 ‘사람이 되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권세와 이익을 거절한 정신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딸을 일컬어 ‘여신’ ‘초경험적인 세상에서 지구로 온 나의 어린 동반자’라고 한다. 세속의 다툼과 시기, 증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아름다운 성품을 지키며 영혼을 다스리는 딸이 아버지에겐 일깨움을 주는 존재인 것이다. 편지 곳곳에서 묻어나는 부녀간의 존경과 존중의 마음,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한 수평적 대화가 시종일관 애틋하다.

표류하는 삶이 발견한 정신의 고향


조국을 떠나온 두 지식인에게 고향이 갖는 의미는 사뭇 특별하다. 류짜이푸는 국가와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역설적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다.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친구들의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동포애를 밀고 나간 그는 결국 반체제 인사가 되어 추방당하고 만다. 유랑의 길 위에서 고향은 물리적으로 고정된 출생지이거나 그곳의 단일 문화가 될 수 없다. 그는 고향을 새롭게 정의한다. 민족과 국경이라는 교조의 틀에서 벗어나 그가 찾은 마음의 고향은 정신과 감정의 생명을 길러내는 곳, 자신만의 이상이 펼쳐진 왕국, 이를테면 ‘내가 사랑하는 세계’다. 류짜이푸는 아인슈타인의 예를 들면서, 아인슈타인의 고향은 결코 이스라엘이나 독일로 한정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을 우주적인 견지에서 바라본 위대한 영혼에게는 더 광활하고 심오한 정신의 본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 지식인으로서 류짜이푸에게 표류는 숙명이었다. 각종 유대관계와 거리를 둔 채 자신을 자유롭게 변화시킨 것은 더 높은 정신적 성취를 위함이지만 동시에 사지가 절단된 듯한 죽음의 체험이기도 했다. 이 죽음의 체험은 오히려 그에게 인간 세상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선사한다. 류젠메이에게도 고향의 의미는 유동적이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중간 지대에서 이중언어(중국어와 영어)로 사고하고 글을 쓰는 그녀는 ‘문화 고향’이라는 개념으로 정체성을 확인한다. 류젠메이는 중국의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할 때마다 무의식중에 자신을 둘러싼 모순을 발견한다고 아버지에게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않는다. 도리어 이중언어 글쓰기를 통해 동서 문화의 틈새를 엿보기도 하고 그 둘을 절충해보기도 하는 등 다중적인 형태로 스스로 정신의 고향을 찾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한다. 이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내면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삶의 자세를 견고하게 세워가는 진정한 의미의 표류라 할 수 있다.

인생과 사상이라는 화두로 엮인 아버지와 딸의 각별한 동료애


류젠메이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의 세계에 입문했다. 『홍루몽』 연구의 대가인 문예이론가 류짜이푸와 문학교수인 류젠메이는 학문적·사상적 동료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드러나는 부녀간의 동료애는 각별하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머릿속에 들어차는 지식에 압도되어 도리어 분별력을 잃고 이기적인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상에 두려워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너무 많은 지식은 건강한 영혼이 아니라 차가운 속물을 배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조언으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일단은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다음에는 생명으로써 지식을 꿰뚫고 지식을 승화시켜서 지식이 활기찬 생명의 일부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해.’ ‘우리에게 학문이란 지식을 자랑하는 전시관이 아니라, 진리의 갈구이자 사상의 탐험이야.’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어려서부터 철학과 문학의 심원한 사상을 흡수해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지만 정체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딸은 자신이 ‘사상의 창백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아버지의 산문들을 엮은 책에 서문을 쓰고 난 터라 지혜와 생명을 궁구하는 아버지에 못 미치는 자신을 발견하고 낙담하던 류젠메이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한다. 류짜이푸는 딸이 사상의 중요성을 자각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면서, 진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위대한 영혼은 꿋꿋하게 생활하고 꿋꿋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에머슨의 경구를 언급하며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씩씩하게 전진하는 용기와 사상의 강인성을 키우라고 격려한다. 에머슨의 경구는 류짜이푸가 직업적 동료의식에서 딸에게 들려주는 전언임과 동시에 삶을 사랑하는 인생의 선배이자 벗으로서 보내는 응원의 목소리다.

‘동심’과 ‘아마추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그들의 대답


아버지와 딸의 대화를 관통하는 개념 가운데 핵심적인 것이 ‘갓난아이 상태’다. 아들을 출산한 류젠메이가 순수하고 잡념 없는 동심에 대해 성찰한 편지를 보내자 류짜이푸는 답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가장 운이 좋은 학자란 지식을 얻고 이를 통해 우주·사회·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뒤에 갓난아이 상태로 되돌아갈 힘이 있는 사람이야. 시간의 형식으로는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이를 두고 ‘생의 개선’이라고 한단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오는 것은 정말 어려워. 이는 고달픈 분투를 통해 얻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 ‘갓난아이 상태’에서

세상의 질서에 물들어 처세를 익히고 권력을 탐하는 것은 참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행복이란 마음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성을 큰마음으로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억지로 쓰도록 강요하는 가면이나 타인을 경계하는 마음 따위를 허물고 오로지 진리와 광명만을 바라 해탈과 자유를 얻는 일. 이것이 바로 류짜이푸가 말하는 ‘동심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수련이 필요한데, 지식을 쌓는 일은 곧잘 명예와 이익을 얻는 행위로 변질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인은 모름지기 평범한 경계의 눈이 아니라 먼 곳에서의 눈으로 인간과 세계를 조망해야 한다. 류짜이푸와 류젠메이에 따르면 이러한 시각의 전환을 이룬 예로 아인슈타인과 조설근을 들 수 있다. 우주 먼 곳에서 사람과 세계를 보았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 속의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고 고찰한 인물이 아인슈타인이며, 명리와 권력과 돈은 그토록 가볍게 보는 반면 사람의 진실한 감정은 그토록 막중하게 다루었던 『홍루몽』을 쓴 이는 조설근이다. 책의 말미에 이르면, 류젠메이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아마추어’ 개념을 전유하여 아버지의 ‘동심설’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한다. 지식인은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 직업인에서 벗어나 권력의 압박을 피해 사물의 원초성과 독특성을 파악하는 주변인으로서 오롯이 서야 한다는 것이다. 류짜이푸의 ‘동심’과 류젠메이의 ‘아마추어’는 우리 스스로를 성찰케 한다. 동심을 잃고 세상의 잇속에만 골몰한 사람, 프로페셔널 행세를 하면서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속물이 바로 내 모습은 아닌가. 나는 과연 갓난아이의 마음상태와 같이 순수하고 평정한 심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권력과 돈의 손아귀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삶을 안다는 건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삶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건 허망하고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일한 의견 대립의 주제, 여성


한결같이 서로를 이해하던 두 사람도 여성이라는 주제 앞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류짜이푸에게 여성이란 생명과 깨달음을 주는 ‘신성’이며 미의 상징이다. 여자라면 무릇 연약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연약함이야말로 평상심과 따뜻한 사랑을 간직하게 해 여성이 아름다운 성격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성의 남성화를 주창하는 페미니즘에는 반대하는 것이 류짜이푸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류젠메이는 여성의 신화화는 남성중심 사회가 규정한 여성상을 고착화하여 여성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의 문학작품은 남성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전략임을 주지시킨다. 류젠메이는 그 자신이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한 여성이며 딸을 낳은 어머니이기에 여성의 구체적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을 터다. 하지만 아버지와 딸은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한다. 아버지는 딸의 출산 과정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여성의 고통에 공감하며, 딸은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린다. 이런 경청과 존중이 바로 10년 동안의 대화를 유지시킨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묘연한 삶에 빛을 비추는 지적 사색의 대화


두 사람의 대화는 지적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지식인 부녀의 성찰과 반성을 따라가다 보면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명저와 명사가 류짜이푸와 류젠메이의 논지를 뒷받침하고 있기에 사색의 폭은 더욱 넓고 깊어진다. 『홍루몽』은 생명의 진실한 본질, 존재와 우주에 대한 철학적 소명이 필요할 때마다 언급되는 중국의 고전이다. 생명의 상태에 대한 편지글에서는 나약하고 피동적이었던 야심가를 다룬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등장하고, 조국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가혹하게 비판했던 지식인으로서 루쉰이 소환되는 식이다. 진리의 상대화와 본질주의 해체를 논하면서는 푸코가 거론되고, 여성적 글쓰기의 예로는 현대 중국의 여성 작가인 장아이링과 주톈원 등의 작품과 이론이 채택된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소개되는 다양한 작품과 여러 명사들은 아버지와 딸 사이의 다정다감한 토론을 거쳐 삶이라는 벌거벗은 주제를 직시하게 하는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낸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지 ‘견실한 지식인에게 요청되는 삶의 자세를 놓고 재야 지식인과 문학교수가 벌인 토론’을 넘어서 ‘인간답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마음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에 관한 아버지와 딸의 진솔한 대담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이 2002년 홍콩 10대 양서로 꼽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