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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왕따와 금메달 : 일등주의 사회의 기원 / 이득재 지음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우물이있는집, 2012
청구기호
301.0951 -12-24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208 p. : 삽화 ; 23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89824589
제어번호
MONO1201215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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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1. 길라잡이?

2. 몸말?
1. 왕따 학교?
2. 교실은 권력분배의 공간이다?
3. 학교와 권력?
4. 깡패심리와 왕따?
5. 교육인가 사육인가?

3. 왕따들의 반란?
1. 왕따들의 합창?
2. 현대판 홍길동??
3. 왕따들이 모인 곳?
4. 나도 한 때는 정치적 왕따였다?
5. 학생들이 왕따로 간다?

4. 금빛 환각?
1. 적敵을 설정하라!?
2. 우리주의의 논리?
3. 환각의 매커니즘?
4. 금메달의 뒤안길?
5. 금메달과 호출기?
6. 박찬호, 박세리, 박정희-3인조 허리케인 박?

5. 왕따와 금메달의 정치경제학?

마무리 : 한국사회 그 거대한 집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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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708206 301.0951 -12-2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708207 301.0951 -12-2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1. 일등주의, 금메달주의, 왕따에 대한 통쾌한 분석
    금메달주의와 일등주의는 소유욕이 한 사회의 권력구조, 폭력구조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밝혀주는 개념이다. 그 구조 속에서 한 사회는 왕따와 금메달로 양극화된다.
    필자는 한국사회가 “학력격차=소득격차=신분격차=계급격차”의 4차방정식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그것에서 파생된 것이 끼리끼리문화, 패거리주의, 우리주의이다. 필자는 이것을 압축하여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조폭사회’라고 부른다. 이미 전작 『가족주의는 야만이다』에서 밝혔던 것처럼 아버지가 보스고 국가인 가정으로부터 학교, 정계, 재계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폭력은 만연해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직 이 폭력에 쉽게 순응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필자는 금메달주의와 왕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단지 교실에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미봉책이거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 대안에 대한 모색이 바로 이 책의 집필 목적이다.

    2. 왕따의 기원
    학교가, 선생들이 아이들을 이해하구 사랑한다구? 지랄하지 말라구 그래. 우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구?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애들이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매를 든다구? 위선 떨지 말라구 그래. 위선이 다른 건줄 알아? 그런 게 바로 위선이라는 거야. 스승의 은혜 따윈 애당초 없었어.

    한 여중생의 글이다. 이 여중생의 글을 단지 학교를 싫어하는 투정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 학생의 반응이 극단적이고, 학교문제로만 인식한다면 학교문제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왕따는 학생들 간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학생을, 학생이 선생님을, 선생님이 학생들을 왕따시킨다. 나아가 국가와 재벌이 노동자를 왕따시킨다.
    왕따는 단지 ‘덜떨어진’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한 개인 개인이 사회, 국가, 재벌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IMF 이후 우리 사회는 실업자를 양산하고, 가족이 해체되었다. 그것은 국가가 가족을 왕따시킨 결과라고 해야 옳다. 교실 안의 폭력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자행한 가공할 폭력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때리고 짓밟는 폭력이 아니라 이 폭력은 ‘배제의 논리’를 띈다. 배제와 배척의 논리가 바로 폭력의 형태고, 왕따의 논리인 것이다. 이 배제, 배척을 통해서 금메달이 탄생된다. 이 해묵은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왕따의 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3.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
    최근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학교에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경찰, 검찰, 교육당국은 연일 ‘엄중한 대처’를 부르짖고, 학교는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플래카드를 정문에 내걸었으며, TV 광고까지 등장했다. 이 ‘적발’의 논리 안에는 학교폭력을 그저 범죄로만 축소하여 인식하는 천박함을 드러내준다. ‘문제학생’들을 적발하여 ‘지도’하면 학교폭력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이미 우리의 학교에는 주인이 없어졌다. 왕따와 금메달이라는 이분법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마땅히 주인이어야 할 학생과 교사는 모두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학교폭력 문제는 다시 말하자면 사회구조적 문제이지 학교 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학생들과의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라니? 아직 사회적 약자인 그들을 향해 던지는 전쟁 선포가 가당키나 한 말일까? 그 논리는 사회적 약자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더욱 왕따시키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다. 왜 그들은 약자니까. 이런 식이 아니면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킬 방법이 없다.

    4. 금메달주의는 또다른 왕따를 양성한다
    학교의 폭력만이 왕따를 양산할까?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은 어떠할까?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수업은 철저하게 학생들을 배제한다. 학생들은 타율적인 존재이며 잠재적인 능력을 거세당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교사도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자로 전락했다. 정답 이외에는 가르쳐줄 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학교는 지식의 주체가 없고, 모두 왕따당한 집단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학교는 더 이상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의해, 교사에 의해 ‘사육’된다. 교과서는 학생이 지식이 도달하는 과정을 봉쇄해버린다. 시험은 인간을 차별하는 마지막 과정이며, 최종 확인 단계이다. 여기서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선택의 여지란 없다. 왕따는 바로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학생들의 주제설정 능력이 박탈되고, 다양한 선택가능성이 거세되고, 지식과 삶이 분리되면 왕따는 생겨난다. 시험에서 왕따를 당하고 탈락하게 되는 공포는 자율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타율적 인간, 자신을 낙오자로 판단하는 자기비하형 인간을 양산한다. 학교는 이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오히려 차별하게 되고, 그것은 학교 공포증으로,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외적인 요소 때문에 차이가 나고 배제되고 분리되는 바로 그 자리에 왕따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5. 왕따여 가슴을 펴고 세상 밖으로 나와라
    우리 사회는 지금 왕따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왕따 때문에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부터, 주류문화에 눌려 있다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소수문화들, 국가로부터 왕따당한 실업자들의 동맹, 장애인들의 권리 주장은 이제 흔할 정도가 되었다.
    필자는 그 왕따들이 더 쏟아져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제는 질서가 아니며 이탈은 사회적 탈선이 아니다. 더욱이 왕따들은 연대해야 한다. 이 왕따들은 욕구를 억압당한 자들이다. 왕따들의 반란은 학교, 가족을 아동화시키고 오이디푸스화시키는 파시즘적인 명령/복종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생들이 성장을 멈춘 한국사회에서 온전한 ‘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명령/복종, 지배/종속으로 덮어씌우는 모든 이미지들을 걷어내야 한다.
    왕따와 금메달은 동전의 양면이다. 금메달이 일등과 강자를 숭배하고 추종하는 것이라면 왕따는 약자를 억압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끝발의 차이밖에 없다. 그 금메달이 이제는 억압당하고 배척당하는 이의 목에 걸려야 하는 것이다.

    6. 21세기 코뮌주의를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지금껏 1등 아니면 죽음이 있었을 뿐이다. 2등, 3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1등하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패배는 공포스러운 것이다. 금메달을 따겠다는 욕구는 실패와 패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였을 뿐이다. 그래서 패거리를 만들어서라도 실패하지 않아야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군사주의, 파시즘의 형태로 드러났다. 국가는 바로 우리이며, 민족이라는 논리는 허구이고 환각이다. 우리를 주장하던 국가와 재벌은 살이 쪘지만 더욱 궁핍해진 이들을 그 논리를 따라간 대중이었다.
    더 이상 왕따들이 그들의 폭력에 노출되고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누군가의 금메달에 대리만족하거나 추종해서는 안 된다. 우리 왕따들에게 드라마 속의 인생역전은 오지 않는다. 왕따문제가 해결되고 한국사회에서 희망이 생기려면 시혜도, 동정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아닌 연대의 정신이 전 사회적으로 파급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코뮤니즘’이다. 한 개인이 인간답게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코뮤니즘이다. 사회가 서로 가진 것을 공유하는 사회로서의 코뮤니즘적 전망이 없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승자가 현금자산, 증권자산, 부동산자산, 교육자산을 독식하는 세상을 끝장내지 않고는 한국사회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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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이 책은 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한국사회에 대한 대안을 찾을 목적으로 씌어졌다. 어떻게 해야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 정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금메달주의를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 아이가 교실 안팎에서, 사회에서 왕따의 폭력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왕따의 원인은 사회구조적인 것이다. 게임중독이 그 원인이라면서 학생들의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봐야 헛일이다. 교실에서 약자를 골라 왕따시키면서 내가 너보다 더 세다는 데에서 느끼는 쾌감은 정글에서 강자가 약자를 포획했을 때의 포만감과 동일하다. 성적이 1등 안 되면 주먹으로 교실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이들이 일진을 구성해 교실폭력을 일으킨다. 한국사회에서도 일진은 변호사, 판사, 국회의원, 검찰, 재벌 등 잘 나가는 사람들이 구성한다. 일진 구성 방식이 똑같다. 빨간 색 노스페이스 옷은 일진 말고 아무나 입을 수 없다. 일진이 아닌 아이가 노스페이스를 입으면 빼앗긴다. 왕따가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 왕따 당하는 99%는 1%의 희생양이다. 옷이든 돈이든 몸이든 다 빼앗긴다. 목숨도 빼앗긴다. 작년에 전 세계를 몰아친 월가 점령사태는 99%의 왕따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교실은 색깔별로 계급구분이 되어 있다. 검은 색 노스페이스는 가장 아래다. 한국사회의 계급구조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선수들이 금메달을 차지해 잘 나가듯이 한국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그 금메달과 유사한 금메달주의에 목을 건다. 일진, 일류, 1등, 강자가 아니면 잘 나가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왕따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선진국가 구호로 금메달주의를 부추기고 고층빌딩으로 금빛환각을 일으킨다. 금메달주의에 혈안이 된 한국사회의 폭력적인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교실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방안들은 모두 미봉책이거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한국사회의 대안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또 다시 아이들이 꽃다운 생을 마감할 것이다. 99%가 아니라 혼자서 1%의 폭력을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국가와 시민, 금메달과 왕따가 화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통분담 없이 강자가 약자에게 정리해고를 강요하고, 국가는 부자 감세는 유지하면서 복지는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자본은 한 푼이라도 더 축적하려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국가는 경제적 약자를 왕따로 만드는 가운데 일류 선진 신드롬에 물들어 있으며 금빛 환각에 한껏 취해 있다. 그 금빛 환각 탓에 지금은 나의 능력과, 부와 자산을 나누고 공유하는 코뮌주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거나 봉사와 공동체 정신으로 축소되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선물을 서로 나눠 갖고 공유하는 ‘코뮌의 정신’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첫 걸음이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본서의 내용을 집필하는데 있어서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왕따와 금메달이라는 아이디어를 필자에게 제공해 주신 전 대구가톨릭대학교 최 상천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폭력적인 한국사회에 태어나 왕따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한 꽃다운 아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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