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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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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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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문학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범과도 같은 작품이다. <오뒷세이아>에 등장하는 퀴클롭스와 세이렌, 저승여행 같은 환상적인 모험의 소재들뿐만 아니라, ‘귀환과 복수’라는 작품의 주요 주제 또한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무수히 변주되고 반복되어 왔다. 아이스퀼로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등 고전기의 작가들부터, 단테의 <신곡>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거쳐, 오늘날의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장르소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고전 중의 고전’인 <오뒷세이아>로부터 소재와 영감을 빌려 왔다. 이런 의미에서 <오뒷세이아>는 그야말로 서양 문화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는 <오뒷세이아>에 대한 탁월한 안내서이자 해석서이다. 이미 전작인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일리아스>의 원전을 읽는 재미를 선사한 바 있는 강대진은 ‘리라이팅 일리아스’의 자매편 격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책을 통해서 인류 최초의 모험담이자 복수극인 <오뒷세이아>를 소개한다. 희랍어와 라틴어 고전들을 집중적으로 연구·번역·소개하고 있는 <정암학당>의 연구원이자, <고전은 서사시다> 등의 여러 저서와 대중적인 강의 등을 통해 희랍고전에 대한 탁월한 안내자로서 호평을 받고 있는 지은이는 이번 책에서도 오랜 기간의 연구로 다져진 전문성과 특유의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일반 독자들이 고전의 원전에 도전하면서 생긴 어려움들을 해소하고, 전문지식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대목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작품을 풍부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고전 전문가와 함께 읽는 세계 최고(最古)의 모험담!!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모색하는 ‘전후(戰後) 문학’으로서의 <오뒷세이아>!


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문학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범과도 같은 작품이다. <오뒷세이아>에 등장하는 퀴클롭스와 세이렌, 저승여행 같은 환상적인 모험의 소재들뿐만 아니라, ‘귀환과 복수’라는 작품의 주요 주제 또한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무수히 변주되고 반복되어 왔다. 아이스퀼로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등 고전기의 작가들부터, 단테의 <신곡>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거쳐, 오늘날의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장르소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고전 중의 고전’인 <오뒷세이아>로부터 소재와 영감을 빌려 왔다. 이런 의미에서 <오뒷세이아>는 그야말로 서양 문화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이하 ‘리라이팅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이아>에 대한 탁월한 안내서이자 해석서이다. 이미 전작인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일리아스>의 원전을 읽는 재미를 선사한 바 있는 강대진은 ‘리라이팅 일리아스’의 자매편 격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책을 통해서 인류 최초의 모험담이자 복수극인 <오뒷세이아>를 소개한다. 희랍어와 라틴어 고전들을 집중적으로 연구·번역·소개하고 있는 <정암학당>의 연구원이자, <고전은 서사시다> 등의 여러 저서와 대중적인 강의 등을 통해 희랍고전에 대한 탁월한 안내자로서 호평을 받고 있는 지은이는 이번 책에서도 오랜 기간의 연구로 다져진 전문성과 특유의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일반 독자들이 고전의 원전에 도전하면서 생긴 어려움들을 해소하고, 전문지식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대목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작품을 풍부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지은이는 <오뒷세이아>가 <일리아스>와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리아스>의 영웅들이 불멸의 명성을 위해 죽음으로 달려갔다면, <오뒷세이아>의 영웅은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인내와 지혜로 악착같이 살아남아 귀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전후(戰後)의 고향을 재건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것, <오뒷세이아>가 보여 주는 이 과제가 청동기 말기의 혼란을 뚫고 나온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때 귀환한 영웅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모험을 겪으면서 여러 세계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온 영웅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확립한다. ‘피의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 우의에 기초한 평화가 확립되는 작품의 결말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질서’의 모습을 상징한다.

<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작품으로 확립된 기원전 8세기 이래 2천 8백 년 동안 수많은 작품들에 영감과 모티프를 제공해 주었던 <오뒷세이아>는 작품 자체의 작품성과 재미를 즐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서양문화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독해야 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용 버전부터 가장 대표적인 번역본이라 할 수 있는 천병희 역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오뒷세이아>가 소개되어 읽히고 있다. 하지만 <오뒷세이아>의 원전에 도전하기는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고전은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라는 선입견, 24권 약 1만 2천 행의 적지 않은 분량, 책을 펼치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예스러운 문체와 상황과 상관없는 긴 수식어구들 ……. 게다가 애써 완독을 했다 하더라도, 얻는 것은 다소간의 성취감뿐이고, 기대했던 감동이나 고전의 진가를 발견했다는 만족감을 얻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이 상찬하는 ‘좋은 점’들을 혼자서 읽으며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다년간 일반인들에게 고전을 강의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독자들이 고전을 읽으면서 어떤 지점에서 어려움을 느끼거나 지루함을 느끼는지, 어떤 중요한 포인트를 파악하지 못한 채 지나가는지를 세세히 짚어내면서, 이런 어려움들을 해소하고 독자들이 <오뒷세이아>를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지은이는 몇 가지 오해와 작품 배경에 대한 이해 부족이 독자들이 <오뒷세이아>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의 후속편이다?

<오뒷세이아>는 흔히 <일리아스>의 후속편처럼 취급되어져 왔고, 따라서 ‘전편’인 <일리아스>를 읽기 전에는 <오뒷세이아>에 도전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많다. 물론 <일리아스>의 배경이 되는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참전 영웅 중 한 명인 오뒷세우스가 귀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작품 배경의 시간 순으로는 <오뒷세이아>가 나중에 위치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 구성이나 내용의 측면에서, 그리고 큰 주제의 차이에서 두 작품은 별개의 작품으로 읽혀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오히려 수많은 인물들이 그저 ‘전장에서 죽기 위해’ 한 번씩만 등장하는 <일리아스>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수도 적고, 각각의 사건들이 다이내믹하면서도, 전체 구성은 간결해서 <오뒷세이아>를 먼저 읽고 <일리아스>에 도전하는 것도 희랍 서사시를 읽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모험 이야기?

흔히 독자들이 <오뒷세이아>에서 기대하는 것은 오뒷세우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일 것이다. 퀴클롭스로부터의 탈출, 세이렌의 노래와 돛대 기둥에 묶인 오뒷세우스, 머리 여섯 달린 괴물과 거대한 소용돌이, 키르케와 칼륍소 같은 여신들……. 하지만 이런 모험담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은 전체 24권 중 9권에 이르러서이다(숲 출판사의 천병의 역 <오뒷세이아>에서는 191쪽부터이다). 작품의 거의 3분의 1이 지나서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뒷세우스의 모험담이 나오는 것이다. 독자들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등장하는 것은 오뒷세우스가 아니라 그 아들 텔레마코스의 여행 이야기인 ‘텔레마키아’이다. 곧바로 오뒷세우스의 모험담을 읽게 되리라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전개일 수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텔레마키아’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 오뒷세우스의 전우였던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를 방문하는 여행은 그 자체로 오뒷세우스가 겪는 모험의 축소된 형태이고, 이 여행을 통해 성장한 텔레마코스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당당하게 아버지의 조력자로 서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모험담인 동시에 텔레마코스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또한 ‘텔레마키아’는 전체적인 구조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 전체의 두 주제인 ‘모험과 복수’는 사실 서로 잘 붙지 않는 이질적인 것이다. 바다에서의 ‘뱃사람의 모험담’과 ‘고향에서의 복수’는 서로 큰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이 두 이질적인 것들을 묶어 주는 것이 ‘텔레마키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점을 말해 준다. 육지에서 바다로, 현실에서 환상적 세계로 이어지는 ‘텔레마키아’의 구성이 오뒷세우스의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작품 전체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 상황에 맞지 않는 수식어구들의 남발

<오뒷세이아>에서는 어떤 인물이나 사물이 등장할 때, 그 앞에 긴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칼륍소가 등장할 때에는 “여신들 중에 고귀한 요정 칼륍소”라는 구절이 반복되고, 동굴은 항상 “속이 비어 있는 동굴”로 등장하고, 배들은 항상 “검고”, “빠르고”, “우묵하고”, “균형이 잘 잡혔고”, “좋은 좌석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바다는 항상 “추수할 수 없는” 것이거나, “포도주 빛”이다. 게다가 이런 수식어구들은 때때로 상황과 전혀 맞지 않게 등장하기도 한다. 칼륍소에게 붙잡혀서 하염없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오뒷세우스가 “신과 같은”이라고 묘사되거나, 아가멤논의 부인인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사통하여 전장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을 살해한 아이기스토스를 묘사하면서는 “흠 없는”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바로 이것이 고대 서사시를 읽기 어렵게 만드는 점 중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구송시(oral poetry) 이론을 통하여 설명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문자 없이 창작되어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며, 가객은 운율에 맞는 부분들을 외우고 있다가 공연마다 다르게 짜서 내놓았는데, 이때 문맥에 상관없이 운율만 맞으면 쓰이던 ‘공식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대의 가객들을 생각하면서 이런 공식구들을 본다면 이질감보다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많은 도시와 사람들을 만난 영웅, 오뒷세우스

<오뒷세이아>의 맨 처음을 장식하고 있는 서시에서 주인공 오뒷세우스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시들을 보았고 그들의 마음가짐을 알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사실, 오뒷세우스의 모험 중에 ‘도시’라고 불릴 만한 곳은 두 곳(라이스트뤼고네스 인들의 땅과 나우시카아의 섬인 스케리아)뿐이었지만, 오뒷세우스가 돌아 다닌 여러 수준의 문명을 가진 곳들을 모두 ‘도시’라고 보아 준다면 이 구절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오뒷세우스의 여행이 여러 단계의 질서를 가진 여러 사회들을 순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모이지도 않고(사회 조직의 정도가 낮고), 손님을 잡아먹는 퀴클롭스들의 땅부터, 조직이 잘 된 평화로운 사회로 손님을 환대하는 파이아케스 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회를 돌아다니면서, 오뒷세우스는 각각의 상대와 서로 얼마만 한 이해력과 분별을 갖추었는지를 시험하고 평가한다. 이렇게 여러 사회에서 여러 마음을 알아 본 영웅이 이제 무질서로 혼란한 고향 이타케로 돌아와, 다시 질서 잡힌 사회를 재건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오뒷세우스의 모험을 기원전 8세기 식민할 땅을 찾아 헤매던 희랍인들의 역사적 체험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오뒷세우스가 닿는 땅들에 대한 묘사는 대부분 좋은 항구를 갖추고 있고 먹을 것이 풍부한 좋은 식민지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방문자들을 잡아먹는 퀴클롭스와, 방문자들을 환대하고 결혼까지 권하는 파이아케스 인들을 대비시켜, 고대 희랍의 식민 개척자들이 미지의 땅에서 만난 두 극단을 묘사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밖에도 ‘리라이팅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이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다양한 문헌적·해석적·역사지리적 쟁점들을 짚어서 보여 주고 있다. 호메로스의 실존 여부과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의 저자가 단일 인물인지의 여부(일명 ‘호메로스 문제’)를 놓고 벌이는 단일론자와 분석론자 간의 논쟁, 작품에 내재하는 시간적 모순에 관한 문제, 공식구에 대한 견해의 차이, 다른 고대 작품들과의 선후 관계와 신화적 배경의 차이 문제, 오뒷세우스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둘러싼 인류학적 설명이나 역사지리적 배경 설명 등, 지은이는 <오뒷세이아>를 재미있는 모험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다층적인 컨텍스트가 교차하고 있는 작품으로 새롭게 ‘리라이팅’하여 현대의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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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 『일리아스』를 소개한 책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오뒷세이아』라는 작품을 직접 읽을 사람들에게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하는지 지적해 주는 것이다(그리고 더러 독자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작품을 읽어 나갈 방도를 적어넣기도 했는데, 지나친 개입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를 용서하시기 바란다). 다른 목표는 앞의 것과 다소간 상충하는 것으로, 당장은 작품을 직접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작품의 전체적인 틀과 내용을 요약해 주고, 특징들을 짚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적으로 읽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작품을 직접 읽고 즐거움을 맛보기를 기대한다.
[P. 59] 오뒷세우스의 부하들은 소를 잡아먹고 파멸했다. 구혼자들은 오뒷세우스의 집에서 소를 잡아먹으며 잔치를 벌이고 있다. 아가멤논은 집에 돌아와 식사 접대를 받다가 제물 황소처럼 죽었다. 오뒷세우스는 식사를 중시하지만 태양신의 소를 먹지 않아서 파멸을 면했다. 그는 구혼자들을 잔치 중에 처단할 것이다. 이 사건들은 논리적으로라기보다는 이미지로써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잔치, 식사, 소 잡기 등은 작품 곳곳에서 되풀이 되면서 전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서시에서 오뒷세우스의 부하들이 모두 태양신의 소를 잡아먹고 죽었다고 한 것은, 아가멤논의 죽음을 상기시키고, 구혼자들의 죽음을 예고하면서, 이 작품을 엮어나가는 데 식사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P. 66] 조금 전에 공식구에 대해 얘기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자면 지금 이 인용문(“훌륭한 정탐꾼인 아르고스의 살해자 헤르메스”)에서도 헤르메스를 긴 공식구로 꾸몄다. 이 역시 문맥과는 상관없는 구절이다(너무 깊이 들어가는 감이 있지만, 사실은 ‘아르고스의 살해자’라는 것도 제대로 된 해석인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분분하다. 헤르메스가, 소로 변한 이오를 지키던 아르고스라는 눈 100개 괴물을 죽였다는 얘기가 있지만, 어형 분석을 해 보면 그 근거가 별로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용문 바로 앞에, 문맥에 어긋나 있기로 유명한 구절이 들어 있다. 제우스는 오레스테스의 손에 죽은 아이기스토스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나무랄 데 없는’(30행)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 인간들이 잘못해서 불행을 자초한 사례로 아이기스토스를 들면서 그가 흠이 없다니 무슨 말인가? 보통 학자들은, 이 구절이 원래는 모든 귀족을 꾸며주는 말이라고 본다. 귀족들은 늘 나무랄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구절이 운율에 맞으니까, 그냥 여기에 문맥과 상관없이 사용해 버렸다(이 구절은 어찌나 유명한지, 이 구절을 제목으로 삼는 연구서[Blameless Aegisthus]까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