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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판권기
[사진]
간행사 / 이태진
해제 / 고정휴
범례
목차
일본·미국 보도기사 36
일본보도기사 38
1. 소수 조선인 결의서, 병합 반대를 미국 위원에게 통고(『조일신문』(동경판), 1919. 1. 18) 38
2. 조선 폭동 정보, 당국자의 이야기(『조일신문』(동경판), 1919. 4. 6) 38
3. 조선 소요 중대, 연락계통 판명(『독매신문』(조간), 1919. 4. 6) 39
4. 조선 소요의 원인, 장곡천 총독 담화(『독매신문』(조간), 1919. 4. 18) 40
5. 미국신문 조선인 힐책, 조선 폭동 논의(『독매신문』(조간), 1919. 4. 20) 40
6. 조선인 대회 망동(『독매신문』(조간), 1919. 4. 22) 41
7. 조선인의 비밀본부, 특파원에게 발견되어 도주하다(『조일신문』(동경판), 1919. 4. 30) 41
8. 파리 조선인 망동(『독매신문』(조간), 1919. 5. 18) 42
9. 조선 독립 청원(『독매신문』(조간), 1919. 5. 21) 42
10. 20여 명의 조선인 검거, 격문 압수(『조일신문』(동경판), 1919. 5. 24) 42
11. 중대한 조선인 음모단, 그저께 밤 이래 검거(『조일신문』(동경판), 1919. 9. 2) 42
12. 음모단의 내막, 이미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미·프·인도인을 고문으로 러·미·일 각국에 연락을 취하여 기회의 도래를 고대함(『조일신문』(동경판), 1919. 9. 3) 43
13. 조선독립선언, 조선공화국 대통령이라 칭하다(『조일신문』(동경판), 1919. 9. 4) 44
14. 자칭 조선대통령 손문 식의 이승만, 신지식을 망라한 조선임시정부원의 면면, 미국 박사가 2명 대부분은 일본 유학생 출신의 청장년층(『조일신문』(동경판), 1919. 9. 4) 44
15. 상해의 조선 음모단, 조직적 암살계획(『독매신문』(조간), 1919. 9. 5) 45
16. 폭탄 투하 범인 마침내 개성에서 체포되다, 폭탄은 동청선 쌍성보에서 제조(『독매신문』(조간), 1919. 9. 8) 46
17. 조선인 새 암살단(『독매신문』(조간), 1919. 9. 24) 47
18. 일·독·러 동맹설, 조선인의 망언 로마를 시끄럽게 하다(『독매신문』(조간), 1919. 9. 25) 47
19. 조선음모단 본부 해산(『조일신문』(동경판), 1919. 10. 23) 48
20. 극히 불령한 조선인 음모단 검거, 군자금 위조 및 불온문서 배포자 체포(『조일신문』(동경판), 1919. 11. 3) 49
21. 재외 조선인 대책 결정, 불령한 무리는 준엄하게 단속 선량한 자는 어디까지나 보호(『독매신문』(조간), 1919. 11. 17) 50
22. 조선인 음모단 행선지, 북만주를 경계한다(『독매신문』(조간), 1919. 11. 19) 51
23. 조선의 전 대신 김남[김가진 남작]이 쿠리로 변장하여 도주, 30리의 소택지를 걸어서 상해에(『독매신문』(조간), 1919. 11. 19) 51
24. 당국과 회견하여 그 진상을 말하기 위해 조선독립운동 주창자 여운형 입경, 이 운동은 세계의 조류라고 함(『조일신문』(동경판), 1919. 11. 28) 51
25. 불온문서 배포나 불령한 기도연설에 대해서 조선인 선동 선교사를 엄중 경계함(『조일신문』(동경판), 1919. 12. 4) 53
26. 조선인 음모의 이면, 미국 선교사의 사주(『조일신문』(동경판), 1919. 12. 11) 53
27. 여운형 문제와 귀족원, 형세 자못 험악(『조일신문』(동경판), 1919. 12. 14) 56
28. 조선임시정부 축출되다(『독매신문』(조간), 1919. 12. 14) 56
29. 기독교 신자로 이루어진 조선부인 음모단 체포(『조일신문』(동경판), 1919. 12. 19) 57
30. 공정회위원회, 조선 문제 조사(『독매신문』(조간), 1919. 12. 20) 57
31. 비밀결사의 내부사정 폭로하여 조선의 대 음모단 근저에서부터 전복, 주모자 등 검거(『독매신문』(조간), 1919. 12. 20) 57
32. 독립운동가 호언, 중국 신문기자에게 말하다(『독매신문』(조간), 1920. 1. 5) 59
33. 독립 이용 협박단, 자금 조달을 명목으로 횡행(『조일신문』(동경판), 1920. 1. 9) 59
34. 귀족원 3배 경화, 물가와 무역(『조일신문』(동경판), 1920. 1. 27) 59
35. 귀족원 질문 속행(『조일신문』(동경판), 1920. 1. 28) 60
36. 중의원 예산총회(3일)(『조일신문』(동경판), 1920. 1. 29) 62
37. 여운형 문제 분규, 수상·귀족원 대표 회견, 양자 의견일치 곤란(『조일신문』(동경판), 1920. 2. 1) 63
38. 귀족원의 암초에 정부 측 큰 낭패, 여운형 문제 각 파 제각각 비밀 이야기(『조일신문』(동경판), 1920. 2. 1) 64
39. 여운형 문제 협정 성립, 귀족원 각 파 소위원회(『조일신문』(동경판), 1920. 2. 2) 65
40. 귀족원 여운형 문제 각 파 총회, 연구회 승인 보류, 다른 파는 협정안 승인(『조일신문』(동경판), 1920. 2. 3) 67
41. 중의원 예산분과회(2일), 집요한 여운형 문제 질문(『조일신문』(동경판), 1920. 2. 4) 68
42. 여운형 문제와 불신임, 헌정 태도 강경(『조일신문』(동경판), 1920. 2. 4) 70
43. 여운형 문제 진변, 어제의 귀족원 원 수상의 공축, 강목 옹의 감격(『조일신문』(동경판), 1920. 2. 5) 71
44. 귀족원 예산총회(1일), 여운형 문제 다시 고조(『조일신문』(동경판), 1920. 2. 20) 73
45. 조선독립기념회 당일의 광경, 기념식 후 시위운동(『조일신문』(동경판), 1920. 3. 5) 77
46. 산동 문제와 영국 상인, 런던상업회의소의 의견(『독매신문』(조간), 1920. 4. 15) 77
47. 조선인 집에서 폭탄 파열(『독매신문』(조간), 1920. 5. 1) 79
48. 임시정부에 살해된 김의 사체, 30일 조계에서 발견(『독매신문』(조간), 1920. 5. 3) 79
49. 일행 7명이 북경 여행이라 말하고 윤[택영]후작 상해로 도망친 것인가, 혹은 이강 공의 전철을 밟은 것인가(『독매신문』(조간), 1920. 7. 9) 79
50. 또 불령선인 대거 검거, 임시정부 교통국장, 기타 10여 명(『조일신문』(동경판), 1920. 8. 1) 79
51. 일본인을 처로 삼은 괴이한 영국인의 죄상(『조일신문』(동경판), 1920. 8. 11) 80
52. 현 내각의 성명을 배반하고 여운형 미국에 애원하다(『독매신문』(조간), 1920. 8. 11) 81
53. 미국 의원 내선을 기회로 독립 음모(『조일신문』(동경판), 1920. 8. 18) 81
54. 불령선인 소탕, 평북 암살단의 주력 궤멸(『조일신문』(동경판), 1920. 8. 18) 82
55. 상해상업회의소에서 쇼오 씨 포박 항의(『독매신문』(조간), 1920. 8. 20) 84
56. 미 의원을 노린 음모단 검거되다, 잔학한 그 계획(『조일신문』(동경판), 1920. 8. 24) 85
57. 독립결사대 검거, 기생집을 소굴로 음모 계획 중에(『조일신문』(동경판), 1920. 8. 31) 86
58. 음모 조선인은 정상 참작하여 원도(『조일신문』(동경판), 1920. 9. 2) 86
59. 천촌 경보국장의 시찰담(『조일신문』(동경판), 1920. 9. 6) 86
60. 조선인학교 설립(『조일신문』(동경판), 1920. 9. 19) 87
61. 폭탄범인 박[재혁]의 조사 종료(『조일신문』(동경판), 1920. 10. 5) 87
62. 독립 선전한 부인단 체포되다, 공직자나 명문도 일당, 결사대를 만들어 활동(『조일신문』(동경판), 1920. 10. 19) 88
63.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해 지방에서 1억 원의 조선은행 지폐 위조, 조선인 및 외국인의 밀모(『독매신문』(조간), 1920. 11. 11) 88
64. 한·러 비밀조약 간도 불령 간부에게 유포, 일본에 대한 공수동맹(『조일신문』(동경판), 1920. 12. 10) 89
65. 조선의 근황, 재등 총독 담화(『조일신문』(동경판), 1920. 12. 10) 89
66. 상해임시정부, 치타로 이동 준비(『조일신문』(동경판), 1920. 12. 12) 91
67. 일본에 대해 선전한다고 조선인 급진단의 망동(『독매신문』(조간), 1920. 12. 15) 91
68. 조선인 독립운동, 과격파와 제휴(『독매신문』(조간), 1920. 12. 19) 91
69. 불령선인의 폭행, 우리 서기와 조선인을 돌연 사살하고 도주(『조일신문』(동경판), 1921. 2. 5) 92
70. 독립 선전 발각(『조일신문』(동경판), 1921. 2. 12) 92
71. 조선인 여학생 체포, 조선과 내지의 불령선인의 연락계로 대담무쌍한 행동(『조일신문』(동경판), 1921. 3. 20) 93
72. 불령독립군 국경 침입(『조일신문』(동경판), 1921. 4. 26) 93
73. 주목할 만한 불령선인의 도불(『조일신문』(동경판), 1921. 4. 27) 93
74. 상해 소요 일어날까, 조선인 단체의 임시정부 공격(『독매신문』(조간), 1921. 5. 8) 94
75. 임시정부 드디어 무너지다, 대통령은 미국 국무총장은 북경으로 모두 탈출 도주(『독매신문』(조간), 1921. 5. 29) 94
76. 조선의 적화를 도모한 조선인 흉괴 2명 연루자 10여 명과 함께 체포(『독매신문』(조간), 1921. 6. 1) 95
77. 임시정부 수령 조선인 미국으로 향하다(『독매신문』(조간), 1921. 6. 18) 95
78. 불령선인 괴수 체포(『조일신문』(동경판), 1921. 7. 20) 95
79. 폭탄 20개를 휴대하고 평안북도에 잠입한 것을 체포(『독매신문』(조간), 1921. 7. 20) 96
80. 태평양회의를 기해 다시 조선독립운동(『조일신문』(동경판), 1921. 8. 12) 96
81. 식민지 시찰 천촌 장관 만선 행(『독매신문』(조간), 1921. 8. 12) 97
82. 불령단 두목 김의[희]선 상경(『조일신문』(동경판), 1921. 8. 16) 97
83. 김의[희]선에 대경계, 상경은 판명되지 않고 과격사상 선전자(『조일신문』(동경판), 1921. 8. 17) 97
84. 태평양회의를 앞두고 음모단의 암중비약(『독매신문』(조간), 1921. 8. 17) 98
85. 배는 횡빈에 닿았는데 김[희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신호에 상륙하여 몰래 상경한 듯(『독매신문』(조간), 1921. 8. 18) 98
86. 조선인 자립의 선전(『조일신문』(동경판), 1921. 8. 20) 99
87. 이승만 워싱턴에(『독매신문』(조간), 1921. 8. 20) 100
88. 상해의 임시정부 빈핍으로 대 침체(『조일신문』(동경판), 1921. 8. 21) 100
89. 조선임시정부, 워싱턴회의에 대표(『조일신문』(동경판), 1921. 8. 24) 100
90. 김의[희]선 문사에 나타나다(『조일신문』(동경판), 1921. 8. 24) 101
91. 김의[희]선 어제 아침 평양으로, 일간 상경할지도 모른다(『조일신문』(동경판), 1921. 8. 25) 101
92. 김의[희]선이 표연히 귀선, 은둔할 생각인가(『독매신문』(조간), 1921. 8. 27) 102
93. 폭탄 파열을 실마리로 상해의 조선인 대 수색(『독매신문』(조간), 1921. 8. 30) 102
94. 태평양회의에 앞서 조선인이 조선 서부 모 항구에서부터 폭탄 수송 계획(『독매신문』(조간), 1921. 8. 31) 103
95. 조선독립 선전, 이종반[이승만] 워싱턴 도착(『조일신문』(동경판), 1921. 8. 31) 103
96. 불령선인이 진남포에 폭탄 수송(『조일신문』(동경판), 1921. 8. 31) 103
97. 불령선인단이 천도교 포섭책, 100만 신도를 노리고 태평양회의 임박에 희룽거리는 망동(『독매신문』(조간), 1921. 9. 1) 104
98. 일본이 인종안을 내면 중국은 조선 문제를 꺼내라, 덮어놓고 따라하는 상해의 수상쩍은 단체(『독매신문』(조간), 1921. 9. 4) 104
99. 미국에서는 조선을 문제 삼고 있지 않다(『조일신문』(동경판), 1921. 9. 5) 105
100. 중국인으로 가장한 여운형의 친동생, 상해에서 내지로 가려다가 경성에서 붙잡히다(『조일신문』(동경판), 1921. 9. 20) 105
101. 워싱턴회의에 조선독립을 제안하자고 신경[규]식이 육[휘조] 사절에게 장문의 밀서(『독매신문』(조간), 1921. 10. 18) 106
102. 조선인 청원서, 미국 위원에게 독립운동(『조일신문』(동경판), 1921. 10. 12) 106
103. 유학생으로 가장한 밀사에게서 발각된 조선인 대 음모(『조일신문』(동경판), 1921. 11. 11) 107
104. 밀사로 지목받는 최웅무, 회사 돈을 횡령하여 상해로 줄행랑(『조일신문』(동경판), 1921. 11. 11) 107
105. 평화박람회는 거절, 출품할 수 없다고 중국 측 대 분개(『독매신문』(조간), 1921. 11. 28) 108
106. 밀사 최[종료]의 행방 판명, 형사가 행동을 감시(『독매신문』(조간), 1921. 12. 1) 108
107. 상해임시정부가 노농 러시아와 결탁, 차관과 총기 수취설(『조일신문』(동경판), 1922. 1. 5) 109
108. 고려공산당 활약, 상해 구 영국조계에 본부 있음(『조일신문』(동경판), 1922. 1. 18) 109
109. 독립당원으로서 이름을 날리기 위해 조선총독의 관저에 폭탄을 던진 것은 우리들이라고 호언(『독매신문』(조간), 1922. 4. 1) 110
110. 불령선인 은행 창립(『조일신문』(동경판), 1922. 4. 7) 110
111. 파옥한 전촌충일 상해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독매신문』(조간), 1922. 5. 23) 111
112. 몰락하는 상해의 불령단(『조일신문』(동경판), 1922. 5. 27) 111
113. 수상쩍은 영국인 쇼오 또 뭔가 획책, 상해 과격 조선인 거괴도 가담(『독매신문』(조간), 1922. 9. 16) 112
114. 적화 조선인 만주리에서 암살되다(『독매신문』(조간), 1922. 9. 21) 112
115. 불령선인 출몰, 중국병을 선동하다(『독매신문』(조간), 1922. 9. 24) 112
116. 일본 군벌의 음모(『독매신문』(조간), 1922. 10. 19) 113
117. 집세도 내지 못한 불령선인의 상해임시정부, 교통총장도 야반도주(『조일신문』(동경판), 1922. 11. 18) 113
118. 조선인 망동의 책원지는 상해(『독매신문』(조간), 1923. 4. 3) 114
119. 괴한 황[임성]체포되다, 조선 모 사건 관계인가, 전 조선경찰의 비밀활동(『조일신문』(동경판), 1923. 4. 17) 114
120. 여선교사를 중심으로 경빈의 조선인 움직임(『독매신문』(조간), 1923. 4. 26) 114
121. 상해임시정부 부원의 꿈같은 계획 9명의 강도단 어선에 올라타 군자금 모집에 활동(『독매신문』(조간), 1923. 5. 20) 115
122. 상해임시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전하기로 결정, 7대의 암살단 조선 내에 진입(『독매신문』(조간), 1923. 6. 13) 116
123. 상해 조선인의 폭탄을 압수, 프랑스조계에서 50개를(『독매신문』(조간), 1923. 10. 2) 116
124. 상해 방면에서 불평 조선인이 잠입, 경시청에서 수사에 착수하다(『독매신문』(조간), 1923. 11. 30) 116
125. 한성은행을 습격 은행돈 약탈 계획이 폭로되었다, 상해 의열단의 작전(『독매신문』(조간), 1924. 1. 8) 117
126. 이중교 사건의 공판일 9월 9일로 결정(『독매신문』(조간), 1924. 8. 30) 117
127. 간도 지방을 위협한 불령선인 6명 체포, 중국 군대에 구금 중(『독매신문』(조간), 1924. 10. 8) 117
128. 이왕가의 근친 민정[정]식이 불령단으로부터 구출(『독매신문』(조간), 1924. 12. 16) 118
129. 상해의 조선임시정부에서 박은식이 새 대통령, 이승만은 의정원에서 면직, 빈핍으로 내분(『독매신문』(조간), 1925. 4. 9) 118
130. 조선인의 임시정부를 북경에, 근간 이사(『독매신문』(조간), 1925. 5. 17) 119
131. 기생의 호출에 응하여 평양에 나타난 의열단 영수 김명원체포(『조일신문』(동경판), 1925. 8. 23) 119
132. 상해의 우리 영사관 폭파 음모, 불령선인단의 계획에 우리 관변이 엄중 경계(『독매신문』(석간), 1927. 12. 26) 120
133. 군자금 모집에 가공할 수단, 해외의 불량단과 연락하여 조선인의 독립운동(『조일신문』(동경판), 1928. 6. 16) 120
134. 여운형 인도를 중국이 요구(『독매신문』(조간), 1929. 7. 12) 121
135. 여운형, 장기에 호송(『조일신문』(동경판), 1929. 7. 16) 121
136. 여운형의 구형, 징역 5년을(『조일신문』(동경판), 1930. 4. 10) 121
137. 여운형 판결, 징역 3년에(『조일신문』(동경판), 1930. 4. 27) 121
138. 조선독립당 수령 체포(『조일신문』(동경판), 1930. 9. 14) 122
139. 재만 조선인을 규합하여 독립정부 수립의 음모, 일당 체포되면서 발각(『조일신문』(동경판), 1931. 9. 5) 122
140. 상해의 천장절축하회에서 중광 공사, 백천 사령관 폭탄을 맞고 중상(『독매신문』(호외), 1932. 4. 29) 123
141. 상해의 폭탄사건(『독매신문』(조간), 1932. 4. 30) 123
142. 상해의 천장절 축하회에서 중광 공사, 촌정 총영사 폭탄 맞고 중상(『독매신문』(석간), 1932. 4. 30) 127
143. 상해 폭탄사건의 범인은 조선인, 윤봉길 외 12명 체포(육군성 발표)(『독매신문』(조간), 1932. 5. 7) 128
144. 파견군 환송에 폭탄계획, 조선인 공산당원(『독매신문』(조간), 1932. 5. 22) 128
145. 대역사건 공판 방청권 100장 한도 발행(『독매신문』(조간), 1932. 9. 10) 129
146. 이봉창의 대역사건 16일에 특별재판, 내일 준비 공판 개최(『독매신문』(석간), 1932. 9. 10) 129
147. 앵전문사건으로 3지사 견책, 범인의 미연 체포에 과실(『독매신문』(조간), 1932. 9. 14) 130
148. 앵전문사건 처분 발표(『독매신문』(조간), 1932. 9. 16) 130
149. 앵전문 대역사건 결심, 판결은 이달 하순(『독매신문』(조간), 1932. 9. 17) 131
150. 오늘 앵전문 사건 특별공판(『독매신문』(석간), 1932. 9. 17) 131
151. 대역범인 이봉창의 판결, 오는 30일 오전 9시(『독매신문』(석간), 1932. 9. 27) 133
152. 프랑스조계 공원에서 공산당 거괴 체포(『독매신문』(조간), 1932. 9. 30) 133
153. 앵전문 대역범인 이봉창에게 사형 판결(『독매신문』(석간), 1932. 10. 1) 133
154. 앵전문 밖 대역범인 이봉창에게 사형 집행, 오늘 아침 9시 市ケ谷형무소에서(『독매신문』(석간), 1932. 10. 11) 134
155. 대연습을 노리고 조선인 음모, 대역범인 앞으로 온 편지에서 발각(『독매신문』(조간), 1932. 11. 4) 134
156. 상해 폭탄사건의 공범 2명 체포, 우리 경관 2명 프랑스 당국에 억류(『조일신문』(동경판), 1932. 12. 2) 135
157. 상해 폭탄사건의 공범 3명 체포, 그밖에 불령책동에 관계(『독매신문』(조간), 1932. 12. 2) 135
158. 상해 폭탄사건 범인 조선 출생 윤봉길, 오늘 아침 사형 집행(『조일신문』(동경판), 1932. 12. 20) 136
159. 상해 폭탄사건 범인 사행 집행(『독매신문』(석간), 1932. 12. 20) 137
160. 재경 조선학생의 불온계획 폭로, 자산가의 자식도 참가, 수괴 3명 검거(『조일신문』(동경판), 1934. 6. 17) 137
161. 상해임시정부와 결합 투사 양성의 조선인단, 암약한 3명을 검거(『독매신문』(석간), 1934. 6. 17) 138
162. 전향 서약하고 해산, 조선의 비밀결사 사건(『조일신문』(동경판), 1938. 9. 4) 138
163. 중경에 한국 임시정부(『조일신문』(동경판), 1945. 9. 5) 139
164. 한국임시정부 중경에 수립(『독매신문』(조간), 1945. 9. 5) 139
165. 피로 물들인 조선의 독립운동, 전쟁과 함께 치열화, 앞길에 여전히 수많은 파란(『조일신문』(동경판), 1945. 10. 3) 140
166. 이승만 씨 귀선(『조일신문』(동경판), 1945. 10. 19) 144
167. 조선군 10만을 편성(『독매신문』(조간), 1945. 10. 19) 144
168. 김구 씨, 통일을 요망(『조일신문』(동경판), 1945. 10. 21) 144
169. 한국해방군을 조직, 재중 15만의 조선 출신병 재훈련(『조일신문』(동경판), 1945. 10. 22) 145
170. 조선임시정부 수립 토의(『조일신문』(동경판), 1945. 10. 29) 145
171. 한국정부 경성에 귀환(『조일신문』(동경판), 1945. 11. 1) 145
172. 이달 초순 경성에, 한국임시정부 중진부터 귀환(『독매신문』(조간), 1945. 11. 1) 146
173. 김구 한국주석 귀환(『독매신문』(조간), 1945. 11. 5) 146
174. 김구 씨 귀국 길에(『조일신문』(동경판), 1945. 11. 5) 146
175. 김구 주석의 귀국 포부(『독매신문』(조간), 1945. 11. 7) 146
176. 김구 씨를 전면적 지지, 조선 각 정당의 통합 구체화(『조일신문』(동경판), 1945. 11. 30) 147
177. '통일조선'에의 지도, 김구 씨의 사명은 중대(『조일신문』(동경판), 1945. 12. 1) 147
178. 조선에 신탁통치, 우선 임시정부를 설치(『조일신문』(동경판), 1945. 12. 29) 150
미국보도기사 152
1. 미국에게 한국을 위해 탄원해 달라고 요청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3. 1) 152
2. 한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3. 13) 153
3. 한국의 호소-자주정부에 대한 적합성을 보여줄 기회를 요청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3. 21) 154
4. 한국의 반란자들이 조직되다(『The Washington Post』, 1919. 4. 6) 156
5. 가츠오 우사미 한국의 청사진을 발표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19. 4. 8) 156
6. 한인회의가 봉기를 돕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19. 4. 8) 157
7. "한국인들은 스스로 통치할 준비가 되어 있다"-이승만 박사-(『The Washington Post』, 1919. 4. 21) 158
8. 일본의 잔혹성을 고발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19. 5. 1) 159
9. 한국의 봉기는 소극적 저항이다(『Los Angeles Times』, 1919. 5. 2) 161
10. 한국에서의 잔혹행위가 고발당하다(『The Washington Post』, 1919. 5. 2) 162
11. 한국, 일본의 정책을 비난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19. 5. 3) 163
12. 일본인이 미국인을 폭행하다(『Los Angeles Times』, 1919. 5. 6) 163
13. 한국에서 교회가 약탈당하다(『The Washington Post』, 1919. 5. 6) 165
14. 한국인들, 파리에 호소하다(『The Washington Post』, 1919. 5. 7) 166
15. 일본과 한국(『Christian Science Monitor』, 1919. 5. 7) 166
16. 일본에 저항을 맹세하다(『Los Angeles Times』, 1919. 5. 12) 167
17. 한국의 자유에 관한 전문(『The Washington Post』, 1919. 5. 12) 168
18. 한국인들이 4대강국에게 완전한 주권을 요구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5. 13) 169
19. 한국, 일본 지배의 종식을 요청하다(『Los Angeles Times』, 1919. 5. 13) 170
20. 일본 정의로움이 불길하다고 이[승만]이 말하다(『Los Angeles Times』, 1919. 5. 22) 170
21. 한국인들이 새로운 헌법을 기초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6. 7) 171
22. 한국은 국제연맹에 가입하고자 한다(『Los Angeles Times』, 1919. 6. 7) 172
23. 한국의 지령, 죽을 때까지 세금에 저항하라(『Los Angeles Times』, 1919. 6. 11) 174
24. 한국이 독립을 선포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6. 15) 174
25. 한국 헌법을 공포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19. 7. 1) 178
26. 일본과 한국(『Christian Science Monitor』, 1919. 7. 4) 179
27. 일본인들처럼 한국인들을 다스릴 것, 천황과 수상이 모든 차별이 철폐될 것이라고 발표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8. 21) 181
28. 한국인들은 만족하지 않는다(『The New York Times』, 1919. 8. 21) 183
29. 한국인들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8. 25) 184
30. 한국이 자유공화국이라고 선언하다(『The New York Times』, 1919. 9. 1) 186
31. 한국의 왕자가 억류되다(『The Washington Post』, 1919. 11. 23) 188
32. 한국인 군대가 일본인들을 공격하여 마을을 장악했다고 보고되다(『The New York Times』, 1920. 1. 13) 188
33. 회보(『Los Angeles Times』, 1920. 1. 13) 188
34. 일본과 시베리아 동부(『Christian Science Monitor』, 1920. 6. 11) 189
35. 여성들 체포되다(『Los Angeles Times』, 1920. 11. 7) 191
36. 한국을 승인해달라고 휴즈(Hughes)에게 청원하다(『The New York Times』, 1921. 5. 12) 191
37. 뉴스 요약(『Christian Science Monitor』, 1921. 5. 12) 193
38. 한국의 승인을 요청(『Christian Science Monitor』, 1921. 5. 12) 193
39. 한국인들이 자유를 요구하다(『The New York Times』, 1921. 8. 8) 194
40. 임시정부의 수반, 일본의 주장을 부정하고 한국의 자유가 목표라고 말하다(『The Washington Post』, 1921. 8.8) 195
41. 한국이 요구사항을 언론에 알리다(『The New York Times』, 1921. 8. 29) 195
42. 일본의 정예 부대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자유를 향한 꿈을 꺾지 못하다(『The Washington Post』, 1921. 10. 13) 196
43. 한국인들이 문제를 제기하다(『The New York Times』, 1921. 11.26) 202
44. 한국인들이 회의에 대한 청원을 발표하다(『The New York Times』, 1922. 1. 2) 203
45. 한국인이 왕궁폭파 혐의로 억류되다(『Los Angeles Times』, 1924. 4. 25) 204
46. 영사관, 폭탄을 막기 위해 경계(『Los Angeles Times』, 1924. 5. 30) 204
47. 서울주재 영사들, 폭탄에 대해 경고하다(『The Washington Post』, 1924. 5. 30) 205
48. 한인공화국 프로젝트-러시아 영내 토착민에 대한 모스크바의 지원이 보고되다(『The New York Times』, 1924. 7. 27) 205
49. 일본이 만주에서 한국인들을 살해하다(『The New York Times』, 1931. 12. 14) 206
50. 한국인이 보라(Borah)의원에게 거대한 전쟁의 위협을 호소하다(『The New York Times』, 1931. 12. 30) 207
51. 한국인이 체포되다(『Los Angeles Times』, 1932. 1. 9) 207
52. 긴급각료회의(『The Washington Post』, 1932. 1. 9) 208
53. 한국인이 체포된 지도자를 격찬하다(『Los Angeles Times』, 1932. 5. 4) 209
54. 한국을 위한 호소(『The New York Times』, 1933. 2. 9) 211
55. 북중국 방송 대담-김규식박사가 상황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Los Angeles Times』, 1933. 4. 5) 212
56. 오래된 한국 제도가 사라지고 있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35. 3. 23) 212
57. 한국 학생들이 동원소집 명령을 받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37. 8. 20) 215
58. 로스앤젤레스 시민이 서울의 감옥에서 사망하다(『Los Angeles Times』, 1938. 3. 13) 215
59. 스팀슨(Stimson) 편지에 대한 논평(『The New York Times』, 1940. 1. 13) 216
60. 이승만 박사, 한국군이 중국을 돕고 있다고 말하다(『The Washington Post』, 1940. 12. 9) 220
61. 한국군-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The Washington Post』, 1941. 5. 2) 221
62. 히틀러주의를 사무라이즘(Samuraism)의 탓으로 돌리다(『Los Angeles Times』, 1941. 10. 27) 223
63. 한국의 애국자가 미국혁명의 후손들 협회(S.A.R.)에서 연설하다(『The Washington Post』, 1941. 11. 17) 226
64. 한국인이 일본의 위험성에 대해 미국에 경고하다(『The Washington Post』, 1941. 11. 20) 226
65. 한국의 독립군이 중국에서 일본과 전투를 수행중이다(『Los Angeles Times』, 1941. 11. 23) 227
66. 중국 자유(독립) 한국군을 승인(『Los Angeles Times』, 1941. 11. 26) 228
67. 신분증명서와 뱃지가 시(LA)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발행되다(『Los Angeles Times』, 1941. 12. 22) 229
68. 한국인은 전쟁 중에 있다(『The New York Times』, 1942. 1. 9) 229
69. 독립 한국군이 충칭 근처에서 중국을 원조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2. 1. 9) 230
70. 한국인들, 자유에 헌신하고 동맹국을 도울 준비가 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2. 1. 17) 230
71. 한국군이 중국인과 함께 전투하다(『Los Angeles Times』, 1942. 1. 22) 233
72. 한국 계속해서 싸우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2. 1. 22) 233
73. 중국에 한국군 3만 5천명(『The New York Times』, 1942. 1. 23) 233
74. 한국인들 일본인들과 싸우다(『The Washington Post』, 1942. 1. 23) 234
75. 한국 부대, 일본에 대한 반란을 꿈꾸다(『The Washington Post』, 1942. 2. 23) 234
76. 자유한인대회가 오늘 워싱턴에서 개최되다(『The Washington Post』, 1942. 2. 27) 234
77. '자유 한국인' 봉기계획(『The Washington Post』, 1942. 2. 28) 235
78. 일본의 첫 번째 희생자(『The New York Times』, 1942. 3. 1) 236
79. 한국인들이 연합국조약에 대한 서명참가를 요청하다(『The Washington Post』, 1942. 3. 1) 237
80. 이제 한국인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크롬웰(Cromwell)이 촉구하다(『The Washington Post』, 1942. 3. 2) 238
81. 워싱턴의 분위기로는 미국이 한국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2. 3. 7) 240
82. 한국인들이 전쟁에서의 역할을 요구하다(『The New York Times』, 1942. 3. 15) 241
83. 일본의 지배에 대항하여 한국인들이 동맹을 만들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2. 3. 21) 243
84. 충칭 국민당정부가 연합국은 합병된 지역의 독립을 승인할 것을 약속하는'태평양 헌장'을 요구하다(『Los Angeles Times』, 1942. 3. 23) 245
85. 충칭 국민당정부가 '태평양 선언'을 요청하다(『The New York Times』, 1942. 3. 23) 246
86. '태평양 헌장' 고안(『The Washington Post』, 1942. 3. 23) 247
87. '한국 독립'-한국은 중국의 일부가 절대 아니라고 역사학자가 강조하다(『The New York Times』, 1942. 3. 24) 247
88. 한국인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여기에 모이다(『Los Angeles Times』, 1942. 4. 6) 249
89. 광범한 전망-일본의 골칫거리 한국인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2. 4. 8) 249
90. 한국의 이승만 박사가 경고하다. 일본은 괴뢰가 아니며 전세계의 지배를 획책하고 있다(『The Washington Post』, 1942. 4. 14) 251
91. 언론들의 세계에 대한 보도-한국을 살펴보다-(『Los Angeles Times』, 1942. 4. 18) 252
92. 동양인 부대들, 국가 민병대의 일부로 허용되다(『Los Angeles Times』, 1942. 4. 27) 253
93. 한국 동맹 기념일을 환영하다(『Los Angeles Times』, 1942. 5. 22) 254
94. 일본의 지배는 고문이라고 한국의 옹주가 주장하다(『The Washington Post』, 1942. 7. 5) 256
95. 야마시타가 시베리아에 눈독 들이다(『Los Angeles Times』, 1942. 7. 29) 258
96. 만주국에서 보고된 싱가포르 정복(『The New York Times』, 1942. 7. 29) 258
97. 회기 중인 한국 망명정부, 충칭의 지도부가 통일을 기원(『The New York Times』, 1942. 10. 26) 259
98. 한국문제가 마운트 버논에서 화제가 되다(『The Washington Post』, 1942. 11. 7) 259
99. 애비슨(Avison) 박사, 한국 원조를 요청하다(『The Washington Post』, 1942. 11. 8) 260
100. 한국인들이 세계문제연구소(IWA)의 결정을 비난하다(『The New York Times』, 1942. 12. 23) 261
101. 한국인 징병(『The Washington Post』, 1943. 1. 14) 262
102. 일본, 한국에 대한 염려를 나타내다(『Los Angeles Times』, 1943. 2. 7) 263
103. 도쿄로 가는 지름길(『Los Angeles Times』, 1943. 3. 1) 265
104. 한국의 독립기념일(『The New York Times』, 1943. 3. 1) 266
105. 한국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적수이다(『The Washington Post』, 1943. 3. 7) 269
106. 일본의 산업시설에 대한 폭파 아이디어를 한국인이 적절히 제안하다(『Los Angeles Times』, 1943. 3. 27) 273
107. 'V. 한국의 희망'(『The New York Times』, 1943. 12. 2) 274
108. 워싱턴은 카이로회담의 결정을 환영한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3. 12. 2) 275
109. 스팀슨 씨가 중국에 대한 공약을 지지하다(『The New York Times』, 1943. 12. 3) 278
110. 자치를 향한 한국의 길고도 뒤틀린 여정(『Christian Science Monitor』, 1943. 12. 3) 279
111. 망명 수반이 한국에 대한 카이로선언을 비난하다(『The New York Times』, 1943. 12. 6) 281
112. 이곳 한국인들이 환호하다. 그러나 카이로선언에서 '적절한 시기'라는 문구의 삭제를 희망한다(『The New York Times』, 1943. 12. 8) 282
113. 한국의 지하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 일본의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하다(『The Washington Post』, 1943. 12. 12) 283
114. 카이로선언으로 한국인들은 연합국의 승리와 더불어 일본체제가 끝장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다(『The Washington Post』, 1944. 1. 30) 286
115. 한국이 전쟁에서 연합군에 가담하려고 애쓰다(『The New York Times』, 1944. 2. 29) 288
116. 한국이 완전한 자유를 요구(『The New York Times』, 1944. 3. 2) 289
117. 한국의 애국자들이 오래된 체제를 축하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4. 3. 2) 289
118. 한국인들이 징집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다(『The New York Times』, 1944. 3. 13) 290
119. 한국은 스스로 행동할 준비가 되었다(『Los Angeles Times』, 1944. 3. 14) 290
120. 한국이 연합국에 가담하길 희망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4. 3. 15) 291
121. 대한민국이 승인을 요청(『The New York Times』, 1944. 6. 23) 293
122. 한국인은 단일 민족, 높은 교육 수준(識字)을 가진 그들은 자유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The New York Times』, 1944. 7. 13) 293
123. 이제 한국은 태평양지역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The Washington Post』, 1944. 7. 30) 294
124. 편집장에 보내는 편지. 한국 임병직(주미외교위원부)(『The Washington Post』, 1944. 8. 10) 297
125. 한국의 지하조직 연합군에 실망하다(『The New York Times』, 1944. 8. 14) 298
126. 한국 상황의 변화가 보고되다(『Los Angeles Times』, 1944. 8. 29) 298
127. 한국 지도자, 무기와 탄약을 요청하다(『The New York Times』, 1944. 8. 30) 299
128. 한국을 위한 호소(『Christian Science Monitor』, 1944. 9. 29) 299
129. 한국 동맹(『The New York Times』, 1944. 11. 2) 301
130. 한국, 자유를 내다보다(『The New York Times』, 1944. 11. 7) 302
131. 일본과 한국(『Los Angeles Times』, 1945. 2. 12) 303
132. 한국의 독립(『The New York Times』, 1945. 3. 1) 303
133. 한국 [망명] 정권이 전쟁을 선포하다(『The New York Times』, 1945. 3. 1) 304
134. 한국인들의 독립일(삼일절), 여전히 '속박 상태'에서 축하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3. 1) 304
135. 프랑스가 한국정부를 승인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3. 17) 306
136. 미국이 한국군을 훈련시키다(『The New York Times』, 1945. 3. 18) 307
137. 기자회견에서 몰로토프(Molotoff)가 인기를 끌다(『The New York Times』, 1945. 5. 8) 307
138. 소련이 한국 비밀조약을 부정하다(『The New York Times』, 1945. 5. 29) 309
139. 그루(Grew) 미국무장관 대리는 얄타에서 한국을 러시아에게 넘기기로 연합국이 합의했다는 사실[얄타밀약설]을 부정하다(『The New York Times』, 1945. 6. 9) 310
140. 샌프란시스코회의에서 신탁통치 조항이 승인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6. 9) 311
141. 한국에서의 적색정부를 지지하는 얄타회담을 비난하다(『Los Angeles Times』, 1945. 6. 20) 315
142. 자유한국이 미국에 감사를 표하다(『The New York Times』, 1945. 8. 15) 316
143. 두 조각난 한국(『New York Times』, 1945. 8. 20) 316
144. 한국인으로 구성된 적군(Red Army)이 조국에 입성하다(『The New York Times』, 1945. 8. 20) 317
145. 한국인, 본국으로 돌아가다(『The New York Times』, 1945. 9. 4) 318
146. 대한민국(『The New York Times』, 1945. 9. 12) 319
147. 한국인들의 인내심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Los Angeles Times』, 1945. 9. 14) 320
148. 한국의 이승만이 분단에 반대하다(『The New York Times』, 1945. 10. 18) 320
149. 혁명 지도자가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다(『The New York Times』, 1945. 10. 20) 322
150. 망명 한국인들 지도자로 등장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11. 3) 323
151. 한국에 대한 유엔의 신탁통치가 윤곽을 드러내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11. 5) 325
152. 김구 한국 서울에 도착하다(『The New York Times』, 1945. 11.24) 327
153. 모스크바 외상회담 결정서가 발표되다(III, 한국)(『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12. 28) 328
154. 모스크바 3대 강국의 회담 보고서 전문(III, 한국)(『The Washington Post』, 1945. 12. 28) 329
155. 새로운 협력에 의해 평화의 '빗장이 풀리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12. 28) 330
156. 모스크바 합의에 대한 번스(Byrnes)의 라디오 보고 전문(『The Washington Post』, 1945. 12. 31) 333
157. 원자력에 관한 합의에 대해 수도[워싱턴 D.C]가 환호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12. 31) 340
158. 3대강국의 신탁통치에 한국인들이 저항하다(『Christian Science Monitor』, 1945. 12. 31) 346
색인 348
원문 : 일본·미국 보도기사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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