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표제: 火の神話學 : ロウソクから核の火まで 참고문헌(p. 302)과 찾아보기(p. 307-311)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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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 : 횃불에서 원자로까지, 경이로움과 두려움의 패러독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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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출간의의
경이로움과 두려움의 두 얼굴, 불 2011년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가 녹아내리기 시작했을 때 전 세계인들은 ‘핵의 불’이 가져온 재앙에 아연실색했다. 불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왔던 인간의 교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원시인들이 불의 사용법을 발견한 이래, 불은 문명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 왔다. 현대 문명의 시발점이 된 산업혁명도 불을 이용해 힘을 얻는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불을 이용하려는 현대인의 끝없는 욕심은 결국 원자로라는 괴물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원자로는 막대한 에너지를 인류에게 가져다준 반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와 같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끔찍한 재앙을 몰고 오기도 했다. 불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한편, 잠시라도 방심하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하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불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힌다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는 민속학, 고고학, 인류학, 신화, 역사, 예술 등 동양과 서양의 지적 성과를 넘나들며 인간이 불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불이 인류 문화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흥미롭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을 뜻하는 라틴어 이그니스(ignis)를 이용해 만든 단어인 ‘호모 이그니스’는 인류가 불과 함께 진화해 왔고, 불이 인류 문화의 원천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불은 인류가 남긴 유산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일본 신화 속 불의 신인 가구쓰치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나 오세아니아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불의 기원에 대한 신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의미, 일본 각 지역에서 전해지는 불과 관련된 풍속 등은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또한 이 책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성과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불의 의미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고대인들이 남긴 화로의 흔적을 추적해 불을 이용하는 기술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밝혀내고 있으며, 화로나 부뚜막과 같은 불을 다루는 장소가 전통적으로 이계(異界)와 연결된 공간이었음을 밝히는 기록을 분석해 불의 종교적 의미를 설명하기도 한다.
다시, 불의 의미를 생각한다 불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함께 경외심을 함께 가지고 있었던 고대인과 달리, 현대인들에게 불은 더 이상 신비로운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불에게 경외심을 느끼거나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불을 잊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불은 인간이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충동의 상징이고, 인간 존재의 한없는 허무를 살짝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인간의 정신과 그 고귀함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불을 잊는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상상력의 원천을 잃게 됨을 의미하기도 하고, 불이 주는 안락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공동체 역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현대인에게 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라고 충고한다.
일본 인문 출판계를 상징하는 지성, 오쓰카 노부카즈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의 저자는 일본 지성을 대표하는 이와나미쇼텐의 전 사장이자『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 2007)로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는 오쓰카 노부카즈이다. 오쓰카 노부카즈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편집자로 일하면서 ‘이와나미현대신서’,‘ 신이와나미강좌?철학’,『가와이 하야오 저작집』등 수많은 시리즈와 강좌, 저작집을 기획해 일본 지성계의 한 획을 그었다. 오에 겐자부로, 이소자키 아라타, 야마구치 마사오 등 수많은 학자, 예술가,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각자의 틀에 갇힌 학문을 매개해 일본 아카데미즘을 주도해 왔다. 이 책은 오랜 시간 다양한 분야의 책을 기획하고 최신 연구 성과를 일본에 소개해 온 저자의 높은 안목과 날카로운 시야를 통해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불에 대해 풍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한국어판에서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한반도의 불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의 「한반도의난방문화, 온돌」을 보론으로 수록했다.
주요 내용
불, 인류에게‘사회’를 선물하다 최초로 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는 20~35만 년 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이다. 그들의 주거지에는 화로의 흔적이나 불탄 재가 남아 있다. 불의 사용은 인류의 생활에는 물론, 진화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인류는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하게 됨으로써 어금니의 표면적이 감소하고 위장이 줄어 들고 몸에 공급되는 에너지의 양이 증가하게 된다. 날음식보다 익힌 음식이 에너지 섭취효율이 높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또한 생활터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불을 피워 동물의 습격을 막을 수 있게 되면서 나무 위의 보금자리에서 내려와 지상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안전함과 따뜻함을 주는 불을 중심으로 작은 규모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공동체의 소통이나 결속이 강화되었다. 토지의 개간이나 다른 동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불을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를 이용해 자연환경을 정복하는 일이었다. 불은 인류에게 사회라는 발명품을, 더 나아가 자연을 이용할 힘을 선물한 것이다.
불의 신의 탄생, 자연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7세기에 집필된『고지키(古事記)』에는 불의 신 가구쓰치의 탄생 신화가 나온다. 일본 열도를 만든 신 이자나키와 이자나미의 막내아들인 가구쓰치는 태어날 때 어머니인 이자나미의 음부를 데게 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아내의 죽음에 분노한 이자나키는 칼을 휘둘러 가구쓰치의 목을 베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이자나미가 죽을 때 태어난 신들이 광산의 신, 토기의 신, 곡물과 양잠의 신, 항구의 신 등 초기 문명을 상징하는 신들이라는 점이다. 즉 불에 의해 어머니 신인 이자나미가 죽으면서 남긴 것은 자연적이었던 세계의 모습을 문화적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하필 불의 신의 탄생이 문화로 이행되는 계기가 되었을까? 저자는 초기 인류가 농경을 위해 ‘화전’을 광범위하게 행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인류학 연구를 살펴보면, 초기 인류는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과 들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인류는 불(문명)을 땅(자연)에 놓음으로써 자연을 정복하고 자신의 터전을 넓혀온 것이다. 이렇게 불이 인류를 문명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고대인들은 신화에 고스란히 숨겨 놓은 것이다.
이계로 통하는 통로, 불 일본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부뚜막과 이로리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고대부터 부뚜막과 이로리(일본의 방 안에 설치된 난방장치)는 사회적?공간적으로 가족 생활의 중심에 자리해 왔기 때문이다. 이로리가 남성이 불을 다루는 공간이라면, 부뚜막은 여성이 불을 다루는 공간이었다. 일상에서 불을 다루는 공간으로 신성시되었기에 다양한 금기와 풍습이 존재했다. 가령 일본 니카타 현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는 1월에 부부가 알몸으로 이로리 주위를 세 번 돌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알몸으로 도는 이 풍습은 해가 바뀌는 시점에 행하는 비일상적이고 성스러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알몸은 원초적인 자연을 상징하며, 이로리 주변을 도는 것은 이로리가 인간의 공간과 이계의 공간을 매개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민속학에서 부뚜막과 이로리에 관련된 풍습에 주목하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두 공간이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미지의 공간이자, 생명을 잉태하는 공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성이 주로 다루는 부뚜막은 안이 비고 부풀어진 데서 모태(자궁)로 간주되어 왔다. 생명을 낳는 공간으로서 부뚜막은 농경사회에서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이었기에 사람들에게 신성시되었다.
종교적 성찰과 예술의 감수성으로 이끌다 고대부터 불은 인간에게 종교적 영성을 깨우쳐 주는 역할을 했다.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인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세상의 종말이 닥치면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하고 세상이 재건된다고 말한다. 불이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이러한 믿음은 일본의 민간 신앙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신사에서는 정월에 부싯돌로 새로운 불을 일으켜 신에게 바친다. 기독교에서 불은 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매개로 나타난다. 야훼가 모세의 앞에 불의 형태로 현신해 믿음을 준 것처럼 파스칼 또한 신비한 불에 대한 체험을 하고 난 후 신에 대한 믿음이 충만해져『팡세』와「개인적 수기」를 남겼다. 이 체험은 파스칼의 사상을 종교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고대부터 종교적 환희를 주기 위해 예술을 이용해 왔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불빛이 주는 효과를 이용해 신의 축복을 표현하고자 했다.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과 카라바조의 <성마테오의 소명>은 숨겨진 광원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을 이용해 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한 대표적인 예술 작품이다. 근대의 화가들은 빛을 이용해 인간의 타오르는 정념을 표현하거나 생명의 힘을 담기도 했다.
불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 인간의 종교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문화를 발전시킨 불은 근대의 시작과 함께 점차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 불빛은 근대의 상징이었다. 조금이라도 어둠을 줄이고 조명을 많이 하는 것이 근대화의 목표였다. 가정마다 전등이 보급되고 도시의 밤거리는 네온사인과 가로등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나 불이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게 되면서 도리어 우리는 불의 소중함을 잊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매일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지만, 이때 엔진을 점화해 가솔린을 연소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물며 점화를 뜻하는‘이그니션(ignition)’의 어원이 불의 신 아그니(agni)라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자로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은 원자로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지만, 과연 인간이 ‘핵의 불’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을까?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이 과학기술의 정수를모아 놓은 문화의 성지, 원자로를 단숨에 파괴해 버린 데 비해, 인간들은 핵의 불이 폭발하는 것을 간신히 달래고 있을 뿐이다. 핵의 재앙은 원래 불이 가진 패러독스, 즉 문화를 형성하면서도 계속 자연이라는 사실을 인간이 잊고 오만에 빠졌기 때문에 생긴 재앙이 아닐까? 우리가 불의 양면성을 잊지 않고 불의 본성을 알고 잘 살릴 수 있다면, 새로운 문화를 불과 함께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속에서
[P.10] 이로리의 불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분명히 통상의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만든다. 불꽃을 보고 있으면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즐거웠던 일이나 가장 힘들었던 일 같은 옛일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모양이다.
[P. 37] 불의 관리, 즉 불의 지배는 인간 진화의 과정과 같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불의 지배야말로 인간의 진화를 초래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하우츠블룸은 ‘불을 지배하는 능력은 특수한 사회적, 정신적, 육체적 특성의 동시 발전에 따라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P. 49] 불이 발산하는 힘은 야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고, 놀이나 의식도 할 수 있게 했다. 불의 다양한 기능에 의지하는 정도가 이렇게 커짐에 따라 사람들은 불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한편 불의 파괴력에 대한 경계심은 사람들에게 불을 다루는 법을 훈련하게 만들 것이다. 불에 대한 경의는 이렇게 의식화되고, 불을 다루는 훈련은 불의 제도에 속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