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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하는)노자 강의 / 기세춘 지음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바이북스, 2013
청구기호
181.242 -13-12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807 p. ; 24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2467735
제어번호
MONO1201323910
주기사항
한자표제: 老子
찾아보기: p. 786-807
부록: 『노자』 판본 대조표
본문은 한국어, 중국어가 혼합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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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번역운동을 기대하며
일러두기

제1부 서론
1장 민중의 집단 창작
2장 노자와 도교
3장 노장과 견유학파
4장 선조들의 노장 읽기와 왜곡

제2부 민중의 저항
5장 민란의 성전
6장 가치 부정과 저항정신
7장 페미니즘과 저항

제3부 반체제
8장 반유가 반인의
9장 반성인과 무치
10장 반전생

제4부 유토피아
11장 무위자연
12장 반문명
13장 원시 공산주의
14장 무경쟁 사회
15장 상벌이 없는 무치 사회

제5부 공동체적 인간상
16장 무욕
17장 무지
18장 동심

제6부 공동체의 도덕
19장 약자의 천연 도덕
20장 노자 도덕의 특징

제7부 생명주의
21장 신성과 양생술
22장 생명주의
23장 도인의 처세술

제8부 형이상학
24장 도
25장 천제
26장 기론
27장 무
28장 무극과 태일

제9부 인식론
29장 불가지론의 저항정신
30장 무명
31장 혼돈과 동이론
32장 형상과 직관주의
33장 노자의 상과 주역의 상

제10부 냉소주의 경계
34장 역설의 함정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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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817415 181.242 -13-1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817416 181.242 -13-1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지금 『노자老子』는 『노자』가 아니다!

    『노자』 왜곡은 엄정한 역사적 사실이다. 한나라가 무너지고 조조曹操가 위나라를 세운 후 하안何晏과 왕필王弼이 이념의 통일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도가와 유가를 결합하여 현학玄學을 만들었으니 이로 인한 왜곡이 그 첫 번째다. 당 고조 이연李淵이 도교 세력의 지원을 받아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도교를 당나라의 국교로 삼았으니 이로 인한 왜곡이 그 두 번째다.
    『노자』가 기록된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난세였다. 이에 민중은 전쟁에 끌려가 죽고, 배고픔과 추위에 떨었다. 민중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이때 민중의 절망을 대변한 것이 『노자』다. 『노자』는 민중의 소망과 생존 방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은둔과 저항일 뿐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처럼 지배계급을 위한 정치론도 입신양명을 위한 처신술도 아니다. ‘가난한 자의 한 달란트를 빼앗아 부자의 열 달란트에 보태주라’는 자본주의 도덕률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오히려 『노자』는 기존 지배 문명 즉 공자에 대한 안티테제이며, ‘승자를 상 주지 말고, 패자를 버리지 말라’는 약자를 위한 철학이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는 노자의 도道를 공자의 인의仁義와 혼동하며, 『노자』를 현대 경쟁 사회를 찬양하는 처세훈으로 읽는가?
    이는 뿌리 깊은 왜곡에 원인이 있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과거의 왜곡을 신주 받들듯 답습하고 있다. 오히려 거기에 자본주의식 천박한 오역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니 지금 서점의 『노자』 번역서들은 모두 진짜 노자가 아닌 ‘왕필노자’일 뿐이다. 그마저도 오역투성이다. 묵점 기세춘 선생은 이를 꾸짖는다. 지금의 『노자』는 본래의 『노자』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국내 학자들의 여러 번역을 소개하여 과연 어떤 번역이 옳은지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노자』의 여러 판본들과 『장자莊子』·『한비자韓非子』·『회남자淮南子』 등 다른 문헌을 비교·분석하여 『노자』의 본래 모습을 되살리려 했다. 이제라도 학계의 뿌리 깊은 오역을 바로잡고 본래의 『노자』를 되살려야 한다. 이 책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하안, 왕필의 죄가 걸주보다 심하다

    한나라 말 도교는 끊임없는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중을 불로장생의 신선술로 위로하며 세력을 키워갔다. 그리고 급기야 한나라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황건의 난이라는 농민 반란의 주축 세력이 됐다. 한편 도교는 그 창시자를 원시천존元始天尊이라 했고, 그 진전眞典을 밝혔다 하여 노자老子를 받들었다. 이에 노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추존됐고, 『노자』는 황건의 난의 성전聖典이 됐다. 춘추전국시대에 정형화된 『노자』가 600여 년 만에 환생하여 도교에 의해 추앙받은 셈이다.
    한나라가 무너지고 도교가 흥성하자 한나라의 국교였던 유교는 효력을 급격히 상실했다. 이에 유교는 도교에 의지하여 명맥을 유지하려 했다. 또한 황건의 난을 진압하며 세력을 키운 조조는 도교 세력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도교 세력을 체제 내로 흡수하려 했다. 이러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유사들은 노장의 형이상학을 유교에 끌어들여 철학적인 유학을 만들었다. 이를 현학이라 한다.
    이 현학의 대표자가 바로 하안과 왕필이다. 하안은 조조의 양자이자 사위로 당대의 권력가이며 대학자였다. 하안은 노자를 유학에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노자를 계승한 장자를 뛰어넘는 파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발탁된 이가 당시 20대의 젊은 천재로 주목받던 왕필이다. 그리하여 조조를 등에 업은 하안과 왕필이 공자를 ‘유위有爲’로써 ‘무위無爲’를 실천한 도인道人으로 윤색하고 노자를 끌어들여 유학을 설명하는 이른바 ‘원노입유援老入儒’의 현학을 개창했던 것이다.
    본래 해방과 저항의 문서였던 『노자』는 이처럼 정치 세력의 필요에 의해 왜곡됐다. 그 방향은 대체로 저항적인 민중성을 탈색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대淸代에 이르러 권력으로부터 학문의 독립성을 지키고 실증적인 자세로 학문을 연구하려는 고증학이 일어나자 비로소 하안과 왕필을 비판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저명한 고증학자 고염무는 하안과 왕필의 죄악이 폭군 걸주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조선은 청학淸學을 배척했으므로 우리 학자들은 이러한 영향을 받지 못했다.

    왜곡의 교묘한 수법

    이러한 『노자』 왜곡에는 대체로 두 가지 수법이 사용됐다.


    첫 번째는 글자의 뜻을 노골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뜻을 부여하는 수법이다. 예를 들어 『노자』 53장 “조심제朝甚除 전심무田甚蕪 창심허倉甚虛”의 ‘제除’는 폐陛(섬돌)→거去(제거)→치治(다스림)→구축驅逐(몰아붙이다)→주誅(주벌하다)로 뜻이 확대된 글자다. 여기서는 ‘몰아붙이다’는 뜻으로 풀이해야 한다. 이에 따라 풀이하면 ‘조정이 심히 몰아붙이니, 밭이 거칠고 곳간도 심히 비었다’라는 뜻이 된다. 즉 조정이 민중을 핍박하므로 민중의 생활이 궁핍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왕필은 ‘제除’를 ‘결호야潔好也(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로 왜곡했다. 뒤의 말과 이어보면 ‘조정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데 밭이 거칠고 곳간이 비었다’라는 뜻이 된다. 조정이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고 어찌 농토가 황폐해지고 창고가 빈다는 말인가? 도무지 말이 맞지 않는다. 이는 조정의 수탈을 비난하는 저항성을 퇴색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이다. 이와 같은 글자 한 자의 왜곡은 그 한 자로 끝나지 않는다. 글자 한 자를 왜곡함으로써 경전의 성격 자체가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두 번째는 역설과 반어를 정언인 것처럼 해석하는 수법이다. 역설이란 외관상 거짓인 말로 참을 말하는 상식을 뒤엎는 언술이며, 반어란 무지無知를 가장하고 반문을 거듭함으로써 상대방의 무지와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하여 새로운 지식에 도달하는 언술이다. 『노자』는 전체가 역설과 반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현실과 문명의 모순을 폭로하고 반대인 자연 상태의 자유로운 삶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전국시대 혼란과 인간의 불행이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와 문명에서 비롯됐다고 본 때문이다.
    그런데 왜 노자는 정론이 아닌 역설과 반어로 말한 것일까? 그것은 노자의 글이 문명과 기존의 가치체계를 전복하는 반역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신분차별이 존재하던 노예제 사회였고, 난세였다. 그러므로 반역자는 생명을 보존하기 힘들었다. 민중에게는 저항보다 생명 보존이 더 큰 임무였으므로 감히 정언으로 말하지 못하고 은밀한 역설과 반어로 말한 것이다. 이런 소극적 거부야말로 그들에게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역설과 반어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글 전체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면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뜻으로 읽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왜곡이 용이하다. 왕필은 이러한 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역설과 반어를 형이상학적인 정언인 것처럼 꾸며 알 수 없는 아리송한 현학으로 만들어버렸다. 노자의 ‘무위자연의 도’를 ‘무無’한 글자로 바꾸어 귀무론貴無論을 만들고 글의 전체 취지를 민중의 해방과 저항이 아닌 패배주의와 허무주의로 왜곡했다.
    예컨대 『노자』 16장의 “치허극致虛極 수정독守靜篤 만물병작萬物竝作 오이관복吾以觀復”은 ‘허정이 극진하고 돈독하면 만물이 태어나기 시작하므로 나는 여기서 (만물이 소생하는) 『주역』의 복괘復卦를 본다’는 뜻이다. 고 김경탁 교수도 여기서 복復은 “『주역』의 복괘의 뜻인 듯하다”고 옳게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 학자들은 복復을 돌아간다는 뜻으로만 해석하여 ‘무無로 돌아간다’, ‘허정虛靜으로 돌아간다’라고만 번역한다. 이는 왕필의 해석을 따라 허무주의를 고취하는 것이다.

    또 다른 왜곡을 경계하며

    이처럼 『노자』는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의해 변질?왜곡됐다. 이러한 왜곡의 대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명 비판의 담론인 무위자연설이 허무를 숭상하는 귀무론貴無論으로 왜곡됐다.
    둘째, 반유가적인 절학絶學과 무지無知의 담론이 관료와 지자知者를 따르라는 우민주의로 왜곡됐다.
    셋째, 구체제를 부정하는 혁명적 담론인 동심론이 도사들의 기공술로 왜곡됐다.
    넷째, 노장의 ‘자연의 도(天然之道)’가 공맹의 ‘인륜의 도(天命之道)’로 왜곡됐다.
    다섯째, 노장의 원시 공산사회가 공맹의 왕도주의로 변질됐다.

    그러나 하안과 왕필이 이처럼 『노자』를 왜곡했는데도, 우리 학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는지 지금 서점의 『노자』 번역서들은 하나같이 왕필을 답습하고 있다. 특히 도올 김용옥은 왕필을 따르면서도 거기에 제멋대로의 엉터리 해설을 더해 의도적으로 『노자』를 왜곡하고 있다.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까지 학문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분야가 아니었다. 정치권력이 학문을 독점했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 학문을 왜곡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안과 왕필을 비난한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왜곡을 지금까지 답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최근에는 『노자』를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로 읽는 자기계발서들이 심심치 않게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노자는 원시 공동체 사회의 무경쟁을 지향했다. 비판 없는 답습이 문명 거부의 문서인 『노자』를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위해 복무하도록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2007년 4월 20일 중국에서는‘『도덕경道德經』국제포럼’을 국가적인 행사로 성대하게 열었다. 홍콩의 한 축구경기장에서는 13,839명이 모여 한목소리로 『노자』를 낭독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여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이에 정협 자칭린賈慶林 주석은 “『도덕경』은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보편적인 정신적 자산이며, 『도덕경』의 중도적이며 평화적인 원칙이 현재 중국이 지향하는 조화사회調和社會 건설에 정신적 지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노자』가 무엇이기에 중국 지도자들이 정신적 지침으로 삼으려 하는 것일까? 원시 공산사회의 이상과 민중성을 지향한 본래의 노장사상을 차용하려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현재 중국 공산당이 표방하고 있는 ‘조화사회’는 자본주의를 포섭하려는 구호다. 그렇다면 중국 지도부는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노장사상을 또다시 변질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시도들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21세기 우리들에게 『노자』의 의미


    2,400년 전 노자는 기계와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은 〈모던타임스Modern Times〉에서 기계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인간 소외의 상황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최초의 기계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기계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라는 리바이어던이 반대로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기계 없이 인간은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인명 살상을 위한 전투기와 미사일이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인가? 기계는 기계 스스로를 위한 것이지 더 이상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자본주의 시장 원리 아래서도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기업은 인간을 노동 비용으로서만 존재하게 하며, 시장은 인간을 유효 수요로만 참여하게 한다. 인간은 시장의 작동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마저도 경쟁에서 뒤처진 약자들은 배제된다. 현대 사회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적자생존의 정글이며, 인간은 자본주의 체제를 위해 봉사하는 물신의 노예가 됐다.
    이처럼 현대 기계문명과 자본주의 물질문명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그 아래서 인간은 더욱 소외된다. 인간은 침몰하는 유람선 속에 있으면서도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유람선 내부의 화려함과 환락에 도취하여 언젠가 그것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현재를 바르게 인식하고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반성과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 종의 멸종 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서둘러야 늦지 않을 것이다.
    『노자』는 인위적인 기존의 문명을 거부하고, 민중의 해방과 저항을 노래한 문서다. 그러므로 문명의 이기를 반성하고 인간다움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노자』에 덧씌워진 오역과 왜곡을 걷어내고 『노자』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먼저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새로운 왜곡의 시도들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21세기 문명의 위기에 봉착한 인류 사회에 이는 더욱 절실하다. 새로운 삶,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교육을 꿈꾸고 미래 사회의 대안을 찾으려는 지성에게 노장은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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