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목차보기


개인의 주체성이라는 문제가 개인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개인의 주체성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 ·······················3

해설 ······················119
지은이에 대해 ··················130
옮긴이에 대해

이용현황보기

주체적으로 되는 것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842863 198.9 -13-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842864 198.9 -13-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신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누가 보더라도 그와 같은 명령은 반윤리적이다. 따라서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끌고 가서 번제의 제물로 바치려고 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을 죽이려고 한 살인미수자일 뿐이다. 이런 범죄자가 왜 그리스도교계에서 신앙의 영웅으로 칭송받아 왔는가?
이 희한한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키르케고르와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는 헤겔이 결정적으로 갈라선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윤리적 의무를 무한히 체념하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관계 속으로 들어갔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제약하는 윤리적 의무와 그 윤리적 의무를 지지하는 보편적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섰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영웅적인 비약은 너무나 드높은 경지여서 이 기막힌 비약 앞에서 뭇사람들은 한없는 두려움으로 덜덜 떨게 된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윤리적인 것을 뿌리치고 신 앞에 홀로 서는 외톨이가 된 일대 사건을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停止)라고 부른다.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는 역설이라는 개념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보편적인 세계 밖으로 나가 외톨이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조각들≫의 익명의 저자인 요하네스 클리마쿠스(Johannes Climacus)가 다다르는 지점이 바로 이 역설이다. 그런데 역설은 다음과 같은 인식론적 문제를 일으킨다. 만일 윤리적인 것을 넘어서는 절대 선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클리마쿠스는 이 문제와 관련된 두 가지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 첫째는 소크라테스의 상기론이고, 둘째는 헤겔의 역사철학이다.
클리마쿠스는 ≪철학적 조각들≫에서 소크라테스의 상기론을 비판했고, 키르케고르의 ≪후서≫는 이런 비판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후서≫가 ≪철학적 조각들≫의 후서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키르케고르가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마저 배제해 버리는 헤겔의 역사적 합리주의를 ≪후서≫에서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P.3] 객관적으로 우리는 단지 쟁점만을 고찰하고, 주체적으로는 주체와 주체성을 고찰한다. 보라, 바로 이 주체성이 문제다.

[P. 89] 불멸에 대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학문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면성의 문제인바, 그것을 주체는 주체적으로 되는 것을 통해서 자신에게 제시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