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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현대 한국의 정치 : 전개과정과 동인 / 지은이: 지병문, 김용철, 천성권, 지충남, 유경화 인기도
발행사항
고양 : 피앤씨미디어, 2014
청구기호
320.951 -14-33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xviii, 419 p. ; 26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8786793
제어번호
MONO1201418199
주기사항
참고문헌(p. 401-412)과 찾아보기(p. 413-419) 수록

목차보기더보기


제1장 해방과 좌우정치세력

제2장 미ㆍ소의 한반도구상과 좌절

제3장 대한민국의 수립과 한국전쟁

제4장 자유당과 반민주주의적 정치과정

제5장 4월항쟁과 장면 정권

제6장 5ㆍ16 군사쿠데타와 군사정부

제7장 제3공화국과 경제개발

제8장 유신체제: 등장ㆍ전개ㆍ붕괴

제9장 신군부의 등장과 광주항쟁

제10장 전두환 정권과 민주화운동

제11장 노태우 정부: 5공청산과 보수대연합

제12장 문민정부: 개혁정책과 외환위기

제13장 국민의 정부: 경제위기극복과 대북포용정책

제14장 참여정부: 개혁 그리고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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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915646 320.951 -14-33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915647 320.951 -14-33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한국의 현대사는 질곡의 연속이었다. 해방을 자력으로 성취하지 못한 우리 민족에게 일제의 패망이 가져단 준 것은 독립이 아니라 외세에의 종속과 분단이었다. 분단은 남과 북에 이질적인 두 개의 국가를 등장시켰고, 양자의 대립은 곧 바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 노태우 정부까지 지속된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억압과 탄압을 일삼았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와 노동운동, 그리고 통일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은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학문의 자유마저 말살했다. 그로 인해 자유로운 사회과학 연구가 불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정치학은 크게 위축되고 연구 대상을 스스로 축소하였다. 따라서 현대 한국정치를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통사적으로 기술한 연구 성과는 매우 미흡한 상태였다. 이것이 우리가 1997년에 현대 한국정치에 대한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이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한반도 신탁통치안은 해방공간에서의 정치지형을 뿌리째 흔들었다. 신탁통치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좌우의 대결은 ‘민족적 치욕’이었다.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 구조에 정치지도자들이 단결된 모습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한 것은 한탄스러운 일이다. 찬탁이나 반탁이 모두 부분적인 타당성을 지닌 논리였으나, 정치지도자들은 통일독립국가 수립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 내용을 차분히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치 전선은 친일과 항일 내지 매국과 애국에서 찬탁과 반탁으로 재편되었고, 그 결과 한민족은 민족분단이라는 슬픈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신탁통치 관련 논쟁은 정치지도자들의 국제정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으며, 민족보다 이념을 앞세운 결과였다.

    이승만은 정권욕에 사로잡혀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고 오히려 친일반민족행위자들과 야합하는 반역사성을 드러냈다. 이승만 정권의 반역사적?반민족적 행태는 시간이 갈수록 국민을 실망시키고 해방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남북의 갈등은 한국전쟁을 야기하였고, 한국전쟁은 민족분단을 공고화하였으며, 남북의 두 정권이 모두 독재체제로 나아가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은 남한을 세계자본주의체제 속에 깊숙이 편입시켜 강력한 반공독재체제를 구축하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한국전쟁은 북한을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1인 지배의 사회주의체제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남?북한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만 심화되어 갔다.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보도연맹사건’, ‘국민방위군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 등은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이승만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촉진시켰다. 이승만은 부산정치파동,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3선의 길을 열었지만 반대 세력의 본격적인 도전에 직면하였다. 1950년대 말 이승만 정권은 갈수록 쇠락해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강도 높은 불법과 폭력에 의존하였다. 헌법 유린과 독재, 여운형?김구?조봉암 등 정치적 라이벌들에게 가해졌던 테러, 그리고 반민특위의 해체 공작 등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묻지 않고서는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정당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4월 항쟁은 이승만 정부의 일상화된 비도덕성 및 한국 사회의 내재된 모순으로 인한 체제 정당성 위기의 최종적 결과였다. 4월 항쟁은 실질적이며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단기적으로 민중부문의 제한적인 활성화와 정치활동 공간을 확대하는 데는 일정부분 기여하였다.

    4월 항쟁을 계기로 집권한 장면 정부는 4월 항쟁의 정신 및 목적을 충실히 이행해야 했다. 그러나 장면 정부는 민간사회의 폭발적 정치참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요구의 분출에 따른 체제 하중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려야 했다. 이는 장면 정부의 이념적 한계, 분열, 그리고 정책 수행 능력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 장면 정부의 비능률과 리더십 빈곤은 최종적으로 군부의 정치개입을 불러왔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는 선거에서의 승리로 생태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불법을 저질렀다. 박정희가 196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큰 표 차로 손쉽게 재선에 성공한 것은 제1차 경제개발계획의 성과에 힘입은 것이라는 평가가 지금까지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1967년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전례 없는 부정과 불법으로 얼룩졌으며, 그로 인한 야당의 반발로 선거가 끝난 후 6개월이 지나서야 국회가 개원했다. 3선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금권?관권 선거를 획책한 결과였다. 박정희는 변칙적인 3선 개헌을 통해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지만, 국민의 지지는 오히려 급격히 하락하고 있었다.

    유신체제의 등장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이한 설명이 있다. 국제적?국내적 요인을 고려한 설명들이다. 특히 관료적 권위주의이론은 본의 아니게 유신체제의 등장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만드는 함정이 있다. 이는 경제적 요인 분석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한국사회 고유의 정치적 요소, 지정학적 동학, 그리고 정권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분석 대상에서 배제하는 우를 범하였다. 당시 박정희는 데탕트, 미?중 수교, 주한미군 철수 등 국제정치의 변화, 1971년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인 득표율의 하락에서 오는 정치적 위기, 그리고 1960년대 말의 경기침체와 사회적 불안정 등에 직면했었다. 결국,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박정희의 장기집권 야욕이 극단적인 권위주의체제를 선택하게 했다고 보아야 한다.

    박정희는 유신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유례없는 철권을 휘둘렀다. 유신체제는 헌법의 규제를 통한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의 핵심적 제도인 국회?정당?선거제도의 왜곡은 물론이고, 국가정보기관 및 강제기구를 통한 시민사회의 탈정치화를 시도하였다. 박정희는 물리적 강압에 기초한 철권통치에 의해 권력을 지탱하였으나, 반복되는 공포정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항세력의 정당성과 조직력을 키워주는 역효과만을 초래하였다. 1970년대 말의 반독재 학생운동의 고양, YH 사건,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 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의해 유신체제는 내부적 파열로 붕괴되었다.

    경제발전을 근거로 박정희의 유신 독재까지도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하나, 이러한 반역사적 흐름은 용납될 수 없다. 박정희 시대 사법 처리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국가기관의 인권유린과 권력남용에 의해 사건이 조작되었음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박정희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광주항쟁은 박정희의 피살로 형성된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새로운 권력의 중심으로 등장한 신군부와 이에 저항한 광주시민 사이에서 벌어진 무력충돌이었다. 광주항쟁은 집권을 노리는 반동세력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으며, 공수부대의 잔인한 행동에 대한 공분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1980년대 한국사회가 안고 있던 다양한 구조적 모순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광주항쟁을 짓밟고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물리력에 의하지 않고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제5공화국의 권력구조는 유신체제에 버금가는 1인 지배체제였다. 전두환은 3권 위에 군림하면서 직속기관인 청와대 비서실과 보안사 그리고 안전기획부를 통해 무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국회와 정당은 철저히 무력화되었고, 사법부 역시 행정부에 예속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 성격과 독재체제를 강화?계승한 정권이었다.
    6월 항쟁은 재야운동조직으로부터 보수야당까지 전두환 권위주의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전선으로 결집한 결과이다. 6월 항쟁에서 100만 명 이상의 시민?학생이 보름이 넘도록 전국적으로 격렬한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6월 항쟁은 4?19 이후 최대의 대중투쟁으로,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집권한 군사독재체제의 폭압에 대한 전면적 항쟁이었다.

    6월 항쟁으로 권위주의 정권은 붕괴되었으나, 민주세력의 분열에 따른 노태우 정부의 탄생, 그리고 권위주의 세력과의 정치적 연합을 통한 1993년의 김영삼 정부 출범은 한국정치가 여전히 권위주의 세력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음을 의미하였다. 1987년 민주화 이행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에 있었다. 이 점에서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군부개혁과 뒤이은 전두환?노태우의 사법처리는 한국정치의 군부권위주의로의 퇴행 가능성을 차단한 ‘소극적’ 의미의 민주주의 공고화였다.

    199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당선은 민주화 이행 후 처음으로 민주세력이 권위주의 세력의 도움 없이 집권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으며,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의미하였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이제 절차적으로 ‘적극적’ 의미의 공고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뜻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 핵심 제도인 선거?정당?의회는 여전히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2002년의 대통령 선거는 후보 선출 과정부터 이전의 선거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은 국민 참여 경선을 통해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을 후보선출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정당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대세론을 잠재우고, 국민 참여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가 된 노무현이 200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적극적’ 의미의 민주주의 공고화가 서서히 깊숙한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정당정치의 민주화 및 1인 사당 정치의 타파라는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였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은 2000년과 2007년에 북한의 김정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한반도의 평화 공존과 통일에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최근 국내 정치상황의 변화와 함께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개방화와 탈이념, 세계화, 정보화는 한국정치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이질적인 두 개의 국가가 공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 한국정치에 대한 학문적으로 일치된 기술이 불가능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평가,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과 성격에 대한 논쟁, 이승만에서 노태우까지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현격한 견해차가 존재한다.

    <현대 한국의 정치: 전개과정과 동인>은 특정 이론에 기초하여 한국정치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며, 1945년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의 한국정치를 통사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주관적 입장을 사상하고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한국정치의 전개과정을 기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책은 <현대 한국정치의 전개와 동학>(1997) 그리고 <현대 한국정치의 새로운 인식>(2001)을 확장.발전시킨 것으로, 원래 2010년에 박영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나 최근 출판사의 변경(피앤씨미디어)을 계기로, 기존 내용 가운데 일부를 수정?보완한 수정판 형태로 출간하게 됨을 밝혀 둔다.

    집필자를 대표하여
    지 병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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