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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숲은 고요하지 않다 : 이종찬 회고록. 1-2 / 지은이: 이종찬 인기도
발행사항
파주 : 한울, 2015
청구기호
320.092 -15-23
자료실
[서울관] 의원열람실(도서관),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2책 : 삽화 ; 23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46060500(1)
ISBN: 9788946060517(2)
ISBN: 9788946060494(세트)
제어번호
MONO120155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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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해방,그리고귀국
상하이에서맞은광복/상하이교민사회의혼돈/임시정부의씁쓸한환국/처음본조국/오줌싸개의첫사랑

2_청소년시절
백범암살1:“우리선생을쏜게저놈들이다!”/백범암살2:“형님은복도많으시오”/성재의길,백범의길/한국전쟁이야기/피난중학교시절:가장가치있는것을배우다/고교악동시절:낭만,정의,사랑/육군사관학교면접에서겪은모욕:“소위독립운동한집안인가?”

3_군문에첫발을딛다
육사생도시절:좌절과회의를넘어/‘정치적희생양’조봉암/얼마나오래기다리던결혼이었나:1960년육군소위로결혼/4ㆍ19혁명:민심폭발의현장을목격하다/‘장군사모님’이야기/내가본5ㆍ16군사정변1:‘쿠데타를주동한세력은도대체누구인가’/내가본5ㆍ16군사정변2:배반당한혁명

4_역사의현장들
유원식장군과의인연:‘다혈질행동가’와의만남/통화개혁을주도한유원식:“우리의제삿날은같다”고하더니/유원식장군의몰락:권력무상의세월/육사교육장교시절/초짜정보맨의좌충우돌모색기/동백림간첩단사건:중앙정보부의존재이유를거스르다/울진ㆍ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야,이새끼야!왜수가이렇게많아?”

5_정치의격랑속에서
정치공작에발을담그다/휴머니스트김지하/중앙정보부장으로취임한이후락:“우리는모두박정희교의신도”/이후락의선거공작:김대중을막기위한필사의노력/이후락실종:홍콩에서그와함께보낸사흘/극비리에진행된7ㆍ4공동성명:이후락이어느날영웅으로출현하다/10월유신선포:호랑이등에올라탄남과북/박정희를진노케한윤필용사건:‘유신기수’들의몰락

6_운명의날
김재규와박대통령의인연:중앙정보부장으로임명되기까지/고조되는반발,들끓는민심:‘박정희제거’의예견/박정희최후의날:그것은우발적사고였다

7_민주정의당창당막전막후
이대용이맺어준전두환과의인연/중앙정보부숙정/국보위설치,그리고‘신당창당’착수/뜻하지않던입법의원진출:청춘바친중앙정보부를퇴직하다/조영래가변호사가되어기뻤다

8_‘민의의전당’과‘51%주의’
대표선수로‘정치1번지’종로에출마:“비겁하게구시대인물내세우지말고”/대통령선거인단선거와대선,총선의숨가쁜일정/‘초짜원내총무’의‘51%주의’/이철희ㆍ장영자사건:“정의사회좋아하네”민심폭발/아웅산테러:그나라에는도대체왜갔을까/종묘앞정비:‘성매매문제는법으로다스릴수없더라’/김영삼단식과민정당사점거:전환기의풍경들/2인자노태우,‘호의’와‘악의’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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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101345 320.092 -15-23 v.1 [서울관] 의원열람실(도서관) 이용불가
0002101346 320.092 -15-23 v.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101347 320.092 -15-23 v.2 [서울관] 의원열람실(도서관) 이용불가
0002101348 320.092 -15-23 v.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이종찬의 80년, 그 속에서 돌아본 대한민국 80년
    역사가 된 시간들에 관한 현장의 기록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후손으로 상하이에서 태어나 한국 정치 1번지 종로·중구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오랫동안 꿈꾸었던 수평적 정권 교체의 주역이 되어 김대중 정부의 국가정보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종찬이 걸어온 80년의 삶과 그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한국 정치의 민낯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기록했다.
    그가 인생의 거친 숲에서 직접 마주한 사건들은 오늘날 한국 정치사를 기록하는 데 하나하나 크고 작은 꼭지를 이루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는 일평생 습관처럼 기록하고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 숲의 풍경화를 꼼꼼하게 완성해간다. 그리고 그동안 다른 여러 기록에서 생략된 채, 또는 잘못 그려진 채 비어 있던 많은 장면이 그의 손을 통해 이 책에서 생생하게 복원된다.

    상하이 독립운동가의 집에서 한국 정치의 중심부까지
    좌절과 절망 위에 도전과 희망으로 그려낸 풍경


    “나 자신의 삶 역시 숲 속의 그것이었다. 나를 가리켜 자랑스러운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남보다 먼저 군문에 들어가 힘 가진 사람들 옆에서 혹은 권력기관에서 승승장구해 정치적 기반을 쌓고, 나아가 서울의 정치 중심지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성장한 숲에는 그렇게 순탄한 길만 있지 않았다. 민족 해방과 더불어 고국으로 귀환해서 우리 가족이 꾸린 삶은 지극히 가난했고, 분단 이후로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가문에 불온의 딱지가 붙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 뒤 군문과 중앙정보부에서, 또 민정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내가 거쳐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곡절과 심연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숲은 결코 밖에서 보는 것처럼 고요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숲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뜻밖에도 ‘속박되지 않은 삶’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달리 말하면, 진정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유로운 삶’을 위한 부단한 싸움임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찾고 선택해가는 과정, 그것이 내가 거쳐 간 길이었다. 나는 늘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 종속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다.” _ ‘책머리에’ 중에서

    이종찬의 80년 삶은 대한민국의 시간과 고스란히 함께했다. 그는 1936년 독립운동가들의 망명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상지인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10대 소년 시절 광복과 함께 환국해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는 어려서부터 존경했던 백범의 갑작스러운 죽음, 곧이어 닥친 한국전쟁의 비극,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몰락 등 정국의 극심한 혼란을 직접 목격하는 가운데 인생의 길을 가다듬게 된다. 이때 그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그의 조부 우당 이회영 선생의 길을 따라 참여와 행동으로 나라의 진운에 함께할 방도를 모색하면서 군인의 길을 선택했고, 군에 봉사하는 과정에서 일찍이 ‘정보’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이종찬은 1965년부터 1980년까지 역사의 격변기에 국가 정보기관에 복무하면서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각종 간첩단 사건과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락을 중심으로 한 중앙정보부의 선거 공작과 7·4 남북공동성명, 10월유신과 윤필용 사건, 10·26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이종찬은 나라의 살림살이와 위기관리, 사회 각 분야의 운영과 소통, 대립되는 입장의 조율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고 체득했다.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익명의 삶’을 살았다. 그는 세대를 앞서 그렇게 익명으로 살았던 우당 선생의 정신과 삶이 자신에게서 똑같이 나타나는 것을 깨닫고 ‘역사의 계승’에 무거운 책무감을 가졌다.
    이종찬은 1980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자 이를 적극 활용해 이 시대와 나라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의 길에 나섰다. 제11대부터 제14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줄곧 서울 종로·중구 또는 종로의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민의의 엄중한 요구를 행동의 토대로 삼았다. ‘51% 의회주의자’였던 그는 여당 내에서 누구보다도 국민 앞에 겸허했으며, 국회 운영의 가장 중요한 토대도 야당과의 대화에서 찾았다. 이 시절 그는 자신이 속한 민주정의당을 ‘민족의 정당’,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정당’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그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1990년 무원칙한 3당 합당과 1992년 변칙적 대통령 후보 경선을 거치면서 이종찬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10여 년간 몸담았던 정당을 떠나 한국 정치의 미래와 자신의 행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모색기를 보냈다. 이 시기는 그에게 쓰라린 좌절과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간 걸어온 길을 자유롭고 허심탄회하게 돌아보며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값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모색은 귀중한 결실을 낳았다. 이종찬은 역사의 요청에 따라 1995년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했고, 마침내 1998년 ‘국민의 정부’ 탄생으로 자신이 주장해온 ‘수평적 정권 교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돌아와 이 기관의 개혁에 중요한 토대를 놓았다.
    이종찬은 20년에 걸친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해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부끄러움 없는 삶이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긴 스펙트럼의 삶을 마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와 같은 겸손한 자평을 넘어 ‘자유인’인 동시에 ‘민족주의자’로서 그가 걸어온 경이로운 행로를 만나게 된다. 그 행로는 결코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되 우리 사회 시민의 상식과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었으며, 이종찬 개인의 꿈을 모두 실현한 것은 아니었으되 한 인간이 의지와 성찰과 결단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감당해야 했던 분투 과정의 어떤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종찬의 삶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숲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이종찬의 삶을 돌아보는 사적인 기록인 동시에, 그가 큰 기대를 안고 또 때로는 그만큼 큰 좌절을 맞보며 몸소 부딪혀온 대한민국 정치를 낱낱이 고하는 공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조부 이회영이 그러했듯 이종찬은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삶을 살고자 진력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가 살아온 시간과 공간은 그를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았고, 그의 삶 역시 동시대의 대한민국 역사만큼이나 부침을 거듭했다.
    이제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가 그가 살아온 시간들의 연장선상에 놓인 우리의 미래를 가꾸는 데 작은 밑거름으로 쓰인다면, 이 책은 역할을 다한 것이다.

    [책의 구성과 특징]

    이 책은 총 2권, 15개 장으로 구성되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간다. 1권(1~8장)은 해방 이후 귀국해 육군과 중앙정보부를 거쳐 제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던 시기까지를 다룬다. 이어서 2권(9~15장)은 제12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시작해 직선제 개헌과 노태우 정권의 탄생, 3당 합당 이후의 방황, 그리고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뤄내고 김대중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취임해 이 기관을 개혁하던 시기까지를 다룬다.
    회고록은 한 개인의 기억을 담은 기록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사실관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을 놓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한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에 나아가 생명력을 얻는다. 이 회고록에서 소개된 몇몇 기록들, 예컨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이시영에 관한 평가, 유신 선포 및 유신 정권의 경과, 김대중의 대권 도전 과정,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 김대중 정권의 공과 등에 관한 기록만 보더라도, 이종찬이 이 책을 통해 애써 남기고 전하려 한 기억들이 그저 다들 아는 옛날이야기나 자극적인 비화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엮는 과정에서 그는 한국 현대사의 미세한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기억과 주관을 바탕으로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나간다. 그럼으로써 더욱더 역동적인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런 한 개인의 기록이 같은 시간을 훑어낸 역사 기록보다도 오히려 더 생생하고 흥미로운 역사 읽기로 독자를 이끌 수 있는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종찬은 이 회고록에서 사건과 현장을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물론 이는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꼼꼼하게 모으고 기록해둔 엄청난 분량의 자료가 있기에 가능했다. 상하이에서 맞은 광복의 날 풍경, 소년의 눈으로 본 김구 암살 이후의 현장, 한국전쟁 당시 모습 등을 기록한 글을 읽다 보면, 그때 그곳의 정경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중앙정보부 재직 시절 김형욱·이후락 부장과 얽힌 일화에서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마저 느끼게 된다. 조영래가 변호사가 된 과정이라든가 부인 윤장순 여사와 어느 장군 부인의 만남에 얽힌 이야기에서도 특유의 구체적이고 현장감 있는 기술이 빛을 발한다. 이렇게 서술된 이야기들은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후대에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원할 것이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남길 때에도 그런 욕망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너무 노골적이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할 지경에 이르러 읽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회고록에서 이종찬은 자신은 물론 다른 누구도 미화하지 않고자 한 마디 평가를 위해 먼저 백 마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며, 그렇게 도달한 평가에서도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솔직히 고백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예컨대 민정당 해체부터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탈당, 신당 창당과 국민당 합류, 그리고 파탄에 이르는 과정은 그야말로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떻게 실패했는지에 관한 처절한 자기고백이다. 사실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취사하고 자타를 공정한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며 자신의 치적을 앞세우는 회고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지은이 자신의 생각이 회고록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솔직한 자기고백이 있기에 실패를 딛고 내딛은 새로운 발걸음도 더욱더 설득력을 얻는다.
    버린 것이 더 많았다는데도 글자 수 77만 자, 200자 원고지 약 4000매에 달하는 기록 속에서 지은이는 지면을 포장과 자랑으로 채워 자기만족을 삼으려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엮고 군데군데 자극적인 비화로 양념해 눈길을 사로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읽힌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그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바를 솔직하게 고백했기 때문일 것이다.

    ※ 이 책 내용 중 일부는 ≪동아일보≫에 “憧憬 이종찬 회고록”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41회 연재되어 소개된 바 있습니다.
    ※ 2015년 9월 17일 15시 프레스센터에서 『숲은 고요하지 않다』 출간기념회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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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P.107~108] 백범 암살의 내막
    나는 1949년 여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세 가지 사건, 즉 ‘국회 프락치 사건’과 ‘반민특위 강제 해체’, 그리고 ‘백범 암살’ 음모가 모두 새로 등장한 공안 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확신한다. 여기에 이승만의 사전 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이승만 권력의 비호 아래 특수 조직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를 세칭 ‘88구락부’라고 했다. 이는 신성모와 같이 이승만의 직계에 해당하는 새로운 아첨 세력과 송진우·장덕수의 암살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던 한민당 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상층부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중간층으로는 일제하의 경찰과 군 출신들이 있었다. 즉, 반민특위 강제 해산 이후 반격을 받지 않기 위해 독립운동 세력을 뿌리째 제거하려 기회를 노리던 김태선, 김운하, 노덕술, 전봉덕 등의 경찰 세력과 일제에 충성을 바치다가 이제는 신생 대한민국의 군부를 장악하려 했던 채병덕, 원용덕, 김창룡, 장은산 등의 군 세력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상층의 정치 세력과 중간층의 군경 세력이 모두 이승만을 정점으로 신권력층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그 하부선으로 김지웅, 홍종만 등이 외곽에 있고, 다시 그들의 하수인으로 안두희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음모의 개략적인 그림이었다. _ 1권 66쪽

    육사 면접에서 겪은 모욕 __
    나는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그러고 나서 직접 육사에 가서 구술시험을 봐야 했다. 이때 필요한 서류가 추천서였다. 정부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이나 군 장성의 추천이 필요했다. 나는 아버지의 동지이자 광복군 출신인 민영구 제독과 김관오 장군의 추천서를 받았다.
    구술시험 당일 내 차례가 왔다. 면접관은 생도대장 이용 장군과 참모장이었다. 그들은 일본 지원군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민영구 제독과 김관오 장군을 어떻게 아는가?”
    “그 어른들은 저희 집안과는 중국에 살던 시절부터 세교가 있던 분들입니다.”
    나의 대답에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귀관의 집안도 소위 독립운동한 집안인가?”
    상당히 경멸조의 반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대답했다. 내심 뜨거운 분노가 치밀었다. 이들은 독립운동가에게 적의를 갖고 있는 듯했다. 면접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만약 불합격한다면 그것은 성적이 아니라 우리 집안이 독립운동 가문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몹시 실망했다. 동시에 나는 이 말을 부모님께 해야 할지, 나 혼자 되삼켜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모욕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들어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던 자들이 득세해 장군이 되고, 낯선 땅에서 목숨 바쳐 싸우던 독립운동가는 오히려 멸시를 당하는 이런 모순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P. 152] 이승만 정권의 몰락
    드디어 운명의 날인 4월 26일, 월터 매카너기 주한 미국 대사가 경무대로 들어갔고, 얼마 후 이승만 대통령은 손을 들고 말았다. 하야하겠다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4월 28일 이기붕 일가가 올 데 갈 데 없어 피신하고 있던 경무대 경내의 비서관 숙소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의 친구 이강석 군이 자기 부모와 아우를 쏘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비참한 기사가 실린 호외가 삽시간에 서울 시내에 나돌았다.
    나는 국민의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목도했다. 군중의 무서움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면 차후에 이를 누가 나서서 수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민주당이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군이 나설 수 있을까? 어느 쪽이 옳다고 선뜻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이승만이라는 탐욕적인 거인은 미웠지만, 그가 쓰러진 뒤에 닥칠 일들에 대해 제대로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나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P. 156~157] 박정희에 대한 인상과 5·16 군사정변의 날
    1960년 1월, 육사 4학년 시절에 우리는 부산 군수기지사령부에 현지 교육차 갔었다. 부산역에 도착했더니 크지 않은 키에 겨울인데도 검은 안경을 쓰고 공군 점퍼 차림을 한 사령관이 부산역까지 나와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바로 박정희 소장이었다. ……
    얼마 후 사관생도 인솔단장인 박창암 대령이 박정희 소장을 수행해 각 방을 순회했다. 그 뒤로는 박 소장의 부관과 휘하 병사들이 빵과 과일을 넣은 상자를 들고 대기하다가 지시에 따라 한 봉지씩 나누어 주었다. 박 장군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했다. 그때 박 장군의 표정은 근엄했지만,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주었다. 이렇게 숙소에까지 찾아와 격려해주는 장군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깊은 인상이 남았다. ……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생도대 부대장인 박창암 대령과 대화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 박 대령이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전국의 부대를 많이 다녀봤지만 어제 만난 박 장군처럼 주관이 뚜렷하고 올바른 국가관을 가진 장군을 일찍이 찾지 못했네. 유능한 분이야. 어제 우리는 대화를 많이 나눴지.” ……
    1961년 5월 16일, 전방의 수색중대 소대장을 하다가 28사단 80연대 1대대 소대장으로 전보된 직후였다. 우리 대대는 예비대대여서 교육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부대 내 숙소의 잠자리에서 아직 일어나기 전 이른 아침이었다. 인접 소대 소대장 조 중위가 방문을 두드렸다. “서울에서 혁명이 일어났어! 방송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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