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손으로 느끼는 전혀 새로운 고전 읽기 “싸움에 임해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지만 승리의 기쁨보다 승리의 고난과 고통을 더 크게 짊어져야 했던 사내, 그 사내가 삶을 버티고 이겨냈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이 단순한 구국의 영웅이 아닌 ‘삶에 얽매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염려, 자식에 대한 걱정이 있는가 하면, 원균에 대한 비난, 태만한 부하들에 대한 격노가 있다. 때로는 갑작스럽게 그러한 감정들이 드러난다. 그 이유는 일기를 전쟁터에서 썼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자기를 관리하다가도 어느 순간 감정들은 나타나게 된다. 이 감정을 읽는 것이 이순신을 이해하는 길이다.
목숨 건 전쟁터에서 써내려간 한 사내의 내밀한 감정 고백들 오늘,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인간 이순신의 마음을 읽고, 쓰고, 느끼다! 쓰는 것은 ‘마음’과 관련이 있다. 쓰다 보면 마음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 책은 고전 『난중일기』 원문과 해설과 필사의 기능을 합친 최초의 책이다. 이순신의 일기와 글 가운데 그의 감정이 드러난 기사를 연대순으로 추리고, 이를 직접 써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순신의 슬픔이나 분노, 기쁨, 한탄, 고통 등을 통해 그의 생각을 깊게 이해하고, 일기를 써보면서 그의 감정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했다. 고전의 육성은 보존하면서, 고전 읽기의 어려움은 덜어내고자 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단지 머리와 가슴으로만 느끼는 고전 읽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손이 느끼는 새로운 고전 읽기가 될 것이다.
『난중일기』를 읽으며 치열한 전쟁터에서 비장하고 고독했을 이순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난중일기』를 따라 쓰며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분투하는 나의 마음을 위로한다! 읽고 쓰면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 피어난다. 일기를 따라 써보면 전쟁터에서 고뇌하고 흔들리던 이순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삶의 전쟁터에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사람들, 그럼에도 길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이 아니라 삶이라는 전쟁터의 멘토로서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책속에서
[P.12~13] 1일 맑다. 새벽에 동생 우신과 조카 봉, 아들 회가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 곁을 떠나 남쪽에서 두 해를 지내니 슬픔이 북받쳐 참기 어렵다.
▶ 『난중일기』의 시작 정읍 현감으로 재직하던 이순신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한 때가 1591년 2월이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1년 2개월 전, 그의 나이 48세 때였다. 천거한 이는 『징비록』으로 유명한 유성룡. 반대가 심하고 뒷말이 많았던 인사였다. 종6품에서 정3품으로 한 번에 7품계를 뛰어넘는 승진이었던 탓이다.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이런 파격적인 승진은 이순신에게 크나큰 기쁨이었으리라. 그러나 1591년은 이미 전쟁의 조짐이 드러나던 시기였다. 이순신은 자신의 임무가 조만간 일어날지 모를 전쟁 대비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차근차근 그 일을 수행해냈다. 그렇게 8개월이 흘러 1592년(임진년) 새해를 맞은 날, 『난중일기』가 시작된다. 전쟁이 터지기 4개월 전이었다. (1592년 임진년 1월)
[P. 132~135] 14일 맑다. … 저녁에 천안에서 온 어떤 이가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해주는데 봉투를 열기도 전에 온몸이 떨리고 정신이 흐릿했다. 거칠게 겉봉을 뜯고 열(둘째 아들)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면(막내아들)이 적과 싸우다 죽었다는 걸 알고 간담이 내려앉는 줄도 모르고 목 놓아 울었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도 어질지 않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처럼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 하늘이 데려간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 살면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며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과 네 누이, 네 엄마도 의지할 데가 없다.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어갈 수밖에 없구나.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이 1년 같구나. 밤 10시쯤 비가 내렸다.
▶ 아들 면의 죽음 어떤 종류건 승리란 대개 기쁨을 안겨준다. 그러나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승리의 기쁨은 아무 소용이 없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더라도 마찬가지다. 늘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먼저 생각했던 장수 이순신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한 아버지일 뿐이다. 이순신은 유독 막내아들 면을 사랑했다. 면은 이순신을 닮은 속 깊고 영특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고향 아산과 가족을 지키다가 일본군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면의 나이 고작 21세였다. 명량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무렵이었다. 절절한 울음이 터져나온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따라 죽지 못함을 비통해한다. 극도의 상실감에 넋을 놓는다. 아들의 죽음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슬픔과 절망 그 자체였다. (1597년 정유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