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어느 이단자 이야기: 이슬람을 떠나온 나의 여정 메디나 이슬람을 받아들이다 | 이슬람을 떠나다 |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2장 이슬람 세계에 그동안 개혁이 없었던 이유: 루터의 교훈 루터의 교훈 | 누가 이슬람교를 대변하는가 | 예상치 못한 개혁 | 다섯 가지 수정안
3장 무함마드와 꾸란: 예언자와 경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가 어떻게 개혁을 가로막는가 무함마드는 어떤 인물인가 | 명예와 불명예의 역학 | 신성 불가침한 꾸란 | 텍스트로서의 꾸란 | 꾸란은 폭력을 부추기는가 | 이성과 꾸란
4장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들: 삶의 목표가 되어 버린 내세 현세와 내세 | 순교와 희생 | 비무슬림 세계의 희생정신 | 순교와 살해 | 현대적 순교 | 운명론적 세계관 | 살아가야 할 이유들
5장 샤리아의 족쇄: 이슬람의 가혹한 종교 법전은 어떻게 무슬림들을 7세기에 묶어 두는가 샤리아는 무엇인가 | 샤리아의 세계화 | 모순적인 샤리아 | 샤리아의 동력은 명예와 수치 | 돌팔매 사형 | 해방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6장 통제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선악을 강요하는 관습은 어떻게 무슬림들을 통제하는가 옳은 일을 강요하고 그른 일을 금지하는 관습의 기원 | 선악을 강요하는 개념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 사각지대가 되어 버린 사생활 | 원칙은 어떻게 뿌리내리는가 | 미국의 명예범죄 | 그른 일 강요하기
7장 지하드: 성전에 대한 호소가 어떻게 테러 선언문이 되는가 성전을 촉구하다 | 지하드의 명성 | 지하드의 세계화 | 지하드의 뿌리 | 기독교도에 대한 전 세계적 전쟁 | 성전주의자들이 승리하는 것은 우리가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성전주의는 치유 가능한가 | 지하드의 무장해제
8장 관용의 황혼기 후퇴하는 권리 | 종교적 편협함을 참아내기 | 제2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위해 | 서구가 맡아야 할 특별한 역할
결론 : 이슬람 개혁에 관하여 형세를 바꾸는 요인들 | 나는 샤를리다 | 다시, 수정해야 할 다섯 가지 개념에 관하여
덧붙이는 글 : 반체제 무슬림과 이슬람 개혁가 서구의 반체제 무슬림들 | 이슬람 세계의 시민 개혁가들 | 반체제 무슬림 성직자들 | 이슬람 개혁가들과 서구 사회
주
이용현황보기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159812
297.272 -16-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159813
297.272 -16-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180166
297.272 -16-1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0002180167
297.272 -16-1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이슬람의 종교개혁을 꿈꾸는 무슬림 출신 여성 인권운동가의 도발적 제안 “우리의 논쟁은 무함마드와 꾸란을 처음부터 재고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 책은 충실하게 알라를 섬기는 독실한 무슬림들과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서구 진보주의자들에게 아주 불편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저자가 이 책 전반에 걸쳐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슬람 신앙의 근본 교리를 이루는 다섯 가지 핵심 개념을 수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슬람이 과연 평화의 종교인가 하는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저지르는 숱한 폭력 행위에 꾸란과 하디스의 가르침이 동력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이유로, 종교와 정치의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결국 이슬람 신앙의 핵심 개념들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고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정치적 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수정해야 할 다섯 가지 핵심 개념은 바로 이슬람 경전인 꾸란의 신성한 지위와 무함마드의 무오류성, 현세의 삶보다 내세의 행복을 중시하는 태도, 포괄적 법률 체계로 인정받는 샤리아, 선악을 강요하는 관습, 지하드 혹은 성전의 개념이다. 저자는 이 개념들을 수정해야만 무슬림의 삶이 21세기의 세계와 좀 더 쉽게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슬람 개혁을 위한 논쟁은 무함마드와 꾸란을 처음부터 재고하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면서 과거 기독교 세계에서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이슬람 세계의 종교개혁을 이룰 것을 제안한다.
수세기를 거쳐 온 이슬람 금기에 도전하다 출간 즉시 13개국 판권 계약
“페이지마다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내가 최근에 읽은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다.” _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석좌교수이자 《만들어진 신》과 《이기적 유전자》 저자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인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들, 특히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을 과연 신이 허용했는가? 이슬람은 진정 ‘총을 멘 신’을 숭배하는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숱한 폭력 행위에 대해 저자는 십수 년간 꾸준히 하나의 주장을 펼쳐왔다. 그 다양한 폭력을 그들의 종교적 이상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꾸란과 하디스의 가르침이 폭력의 동력이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슬람 신앙의 핵심 개념들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고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정치적 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세계 어디에서든 테러범들의 공격이 벌어지면 서구 지도자들은 매번 그 사건이 이슬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선언하기에 급급했다. 이는 모두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테러의 원인을 이슬람 교리 자체에서 찾겠다는 저자의 주장은 교리에 충실하고 독실하게 알라를 섬기는 무슬림들은 물론이고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서구 진보주의자들에게도 아주 불편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종교의 개혁만이 오늘날의 테러리즘과 종파 간 전쟁을 비롯해 이슬람 여성 및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의 이런 주장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한편 서구 진보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에게서 ‘이슬람 혐오자’ 혹은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더욱더 열렬하게 자신이 무슬림으로서 이슬람 공동체에 살면서 얻은 구체적인 경험과 지식을 근거로 이슬람 개혁을 주창한다. 결국 이슬람을 떠나 이단자가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슬람 신앙을 현대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려는 강한 신념이 엿보인다. 이 책의 목적은 신학적 논쟁을 하는 대신 이슬람 개혁을 꾀하는 많은 사람들이 혁신의 장애물에 맞서도록 하고 그것에 필요한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금기시해온 종교적 정설에 도전장을 내미는 이 책은 출간 즉시 미국 아마존 상위권에 오르며 큰 주목을 받았고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스웨덴, 브라질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책머리에는 이슬람 전문가인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정상률 교수의 해제를 실었다. 정 교수는 이 책에 대해 “그동안 이슬람 사회의 폭력성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이슬람 근본 교리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이슬람을 비판한 책은 별로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국내 독자들이 보다 균형적인 시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읽을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에 대해 조언하고 난해한 용어 및 의문점 등을 짚어주었다.
무슬림 출신 여성 인권운동가의 도발적 제안 “우리의 논쟁은 무함마드와 꾸란을 처음부터 재고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저자가 이 책 전반에 걸쳐 강력히 제안하고 있는 것은 이슬람 신앙의 다섯 가지 핵심 개념을 수정하자는 것이다. 다섯 가지 핵심 개념은 바로 이슬람 경전인 꾸란의 신성한 지위와 무함마드의 무오류성, 현세의 삶보다 내세의 행복을 중시하는 태도, 포괄적 법률 체계로 인정받는 샤리아, 선악을 강요하는 관습, 지하드 혹은 성전의 개념이다. 이 개념들을 수정해야만 무슬림의 삶이 7세기에 묶인 교리에서 벗어나 21세기의 현대성과 좀 더 쉽게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장부터 7장까지는 저자 자신의 견해와 경험에 비추어 각각의 개념을 조목조목 풀어내고 있다.
“IS의 선전은 시간여행 기차를 타고 7세기로 되돌아간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듯하다.”
IS를 비롯한 이슬람의 여러 무장 단체들은 이슬람교가 태동한 7세기 때의 상태 그대로 모든 교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꾸란과 하디스의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알라와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사람은 누구든 벌을 주어야 한다며 인권 유린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저자는 무함마드와 꾸란이 이 세상에서 저질러지는 많은 악행에 정당성을 제공한다면 거기에 이성이라는 도구를 적용하는 목적은 학문적 관심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문제는 인간의 이성을 옹호해야 할 이슬람 학자들이 교리를 둘러싼 갈등과 싸움에서 오랫동안 패배를 경험한 것이라고 말한다. 7세기에서 9세기까지 흐르는 동안 합리주의자들이 직역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종교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토론조차 배격한 채 7세기에 머물러 있는 이 신앙을 이제부터라도 현대에 맞게 수정하고 재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지하드 설교자들이 자주 활용하는 종교적 교리와도 관계가 깊은 이슬람 신앙의 다섯 가지 핵심 개념을 다음과 같이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1. 예언자 무함마드와 꾸란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비판을 허용한다. 2. 내세의 삶보다 현세의 삶을 중시한다. 3. 샤리아가 세속적인 법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를 지양한다. 4. 옳은 일을 강요하고 그른 일을 금지하는 관습을 종식시킨다. 5. 지하드를 호소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와 같은 식으로 종교의 개혁을 이루는 것만이 미래가 최소한 송장으로 뒤덮이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며, 이슬람교가 일단 21세기와 조화를 이루며 현대화되어야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현대화는 이슬람교를 더욱 강화시켜 전 세계 무슬림들이 현대 사회와 따뜻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거라고 믿는다. 이슬람 신앙의 다섯 가지 개념을 수정하는 일은 종교를 주제로 한 정직한 논쟁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바로 그 논쟁이 예언자 무함마드와 존경받는 꾸란을 처음부터 재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 개혁이 없었던 이유
무슬림들은 오래전부터 이슬람 교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주저해왔다. 저자는 이슬람을 평가하는 일이 지금껏 왜 그리 어려웠는지에 대해 무슬림들이 자문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앞서 이슬람 개혁을 촉구한 사람이 많았는데도 그 모든 개혁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2장은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겪은 저자의 경험담으로 시작한다. 이슬람 세계의 종교, 정치, 사회, 외교 분야를 다루는 연구팀을 이끌며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규 세미나를 주최했을 때, 저자는 세미나 첫날부터 무슬림 학생들의 공격을 받으며 긴장감 도는 토론을 이어가야 했다. 저자는 여기서 핵심은 이슬람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우며 그런 이의 제기를 막기 위해 국제적인 조직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하며, 만약 비판적 사고를 허락한다면 이슬람을 떠날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슬람 성직자들의 두려움도 함께 지적한다. 특히 정신적 영역을 대표하는 종교와 세속적인 정치가 분리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아직도 이슬람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슬람의 법체계인 샤리아의 도입을 반대하거나, 성스러운 꾸란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정치 권력가와 종교 지도자의 역할이 지금보다 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슬람 개혁주의자들은 각각 교수형을 당하거나, 타국으로 망명을 떠나거나, 대학교수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 사회는 개혁주의자들에 대해 항상 꾸란을 처형의 도구로 삼았으며, 꾸란은 영원불멸한 것으로 절대 내용을 바꾸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점이 바로 이슬람 세계에서 결코 개혁이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없는 이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슬람 개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과거 기독교 세계에서 루터가 이룬 종교개혁을 예로 들며, 물론 두 종교는 개혁의 경로가 다르겠지만 몇 가지 유사성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미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는지도 모르며, 이슬람 세계의 주요 국가들에도 개혁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전한다. 루터의 개혁처럼 개혁에는 제안을 담은 글과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한다.
이슬람 개혁가들과 서구 사회의 역할
서론에서 저자는 무슬림을 세 부류로 나눈다. 첫째로 메디나로 이주한 무함마드의 호전성을 따르는 근본주의자들을 ‘메디나 무슬림’으로, 둘째로 이슬람 세계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독실하고 온건한 신자들을 ‘메카 무슬림’으로, 셋째로 끊임없는 정치적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종교 자체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이슬람 개혁을 꾀하는 사람들을 ‘반체제 무슬림’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을 메디나 무슬림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메디나 무슬림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반체제 무슬림을 비롯한 이슬람 개혁가들에 대해 저자는 특별한 지지를 보내며 전 세계, 특히 서구 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서구 진보주의자들의 잘못된 확신, 즉 9.11 테러를 감행한 자들은 무슬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테러리스트들을 대표한다는 그들의 생각을 꼬집는다. 그 결과 테러를 정당화하는 이념이 아닌 테러리스트들의 전략에 초점을 맞춰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서구가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는 온건한 무슬림들을 수용하고 진정한 개혁을 추구하려고 애쓰는 반체제 무슬림들을 소외시킨 사실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런 접근법은 오늘날의 이슬람 문제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서구는 메디나 무슬림들이 젊은이들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저지하기 위해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이슬람 신앙과 연관이 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폭력 뒤에 있는 이념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전쟁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공습과 무인항공기, 지상군만으로는 이념 싸움을 할 수 없으며 더욱 적극적인 이념과 대안적인 비전을 갖고 싸움에 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개혁을 위해 투쟁하는 수많은 반체제 무슬림들과 개혁가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면서 그들과 연대할 것을 권유한다. 저자는 반체제 인사들과 개혁가들 편에 서서 돕는 것이야말로 메디나 무슬림들의 위협을 저지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무슬림들이 메디나에 근거한 무함마드의 도덕적 유산을 확인하고 거부하도록, 그리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종교적 편협함과 지하드의 호소로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이슬람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종교에 잠재된 폭력적인 요소들을 무슬림들 스스로 깨닫고 그것에 맞서 논쟁하고 대항하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이슬람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으며 모두 이슬람교가 인권의 기본 원칙을 존중하고 더 많은 관용을 베푸는 신앙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슬람 개혁을 꿈꾸는 것은 비단 무슬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서구 사회의 지원과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책속에서
[P.43-44] 이 책은 역사를 기술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점점 더 많은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가장 폭력적인 요소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메디나 무슬림이 계속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것이다. 나는 또한 서구 진보주의자들 사이의 보편적인 견해, 다시 말해서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와 그 해결책은 서구의 외교 정책과 연관이 있다는 견해에 도전하고자 한다. 이런 견해는 외부 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거나 석유 자원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싸워 온 세력이 있으며, 무슬림 외에도 미국 ‘제국주의’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비이슬람 세계에는 테러와 자살폭탄, 종파 간의 전쟁, 명예살인이 존재함을 보여 주는 증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슬람이 대다수 국민의 종교인 나라에는 조직적인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P. 104-105] 그는 글자 수가 한정돼 있는 트위터에 도대체 어떤 불경스러운 말을 올렸던 것일까? (중략) 이런 순진한 말에 이슬람 성직자들은 배교죄로 처벌해야 한다며 들고일어나 카슈가리의 죽음을 요구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은 체포 영장을 발부하라고 지시했다. 카슈가리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트위터 글을 지운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수감됐고 8개월쯤 후 풀려났지만 지금까지 끽소리 못 하고 지내고 있다. 보수적인 종교의 나라에서 성장한 이 젊은이는 신앙의 전체 윤곽을 짚어 보고 느끼고자 했을 뿐이다. 그는 이슬람교와 알라와 예언자를 거부한 것도 아니다. 단지 종교적 상징에 인간성을 부여하고자 했을 뿐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는 감옥에 가야 했다.
[P. 110-111] 나는 루터가 아니다. 그래서 문에 내걸어 놓을 95개 반박문도 없다. 오직 다섯 가지 수정안이 있을 뿐이다. 이는 지하드와 파괴를 설교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성공적으로 활용한 이슬람 신앙의 다섯 가지 근본 교리와도 관계가 있다. 종교에서 근본 교리를 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하지만 이슬람교가 현대성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서로 간의 관계가 긴밀해진 지구상에서 무슬림 국가들이 다른 나라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특히 수많은 무슬림들이 서구 사회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교리가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다름 아닌 이성과 양심이 그 일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진정한 이슬람 개혁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는 7세기로 퇴보하기보다는 21세기로 진보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