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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 ≪장한몽≫에서 <모래시계>까지 / 이영미 지음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푸른역사, 2016
청구기호
709.51 -16-10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679 p. : 삽화 ; 23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91156120735
제어번호
MONO1201632210
주기사항
참고문헌(p. 649-661)과 색인 수록
2011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목차보기더보기


책머리에

제1부 신파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

1장 왜 ‘신파성’인가
2장 신파성의 세계전유 방식과 그 의미

제2부 식민지시대, 신파성의 정착과 변주

1장 신소설·번안소설과 신파성의 원형―《불여귀》, 《장한몽》, 《쌍옥루》
최찬식 소설, 《추월색》과 《안의 성》의 먼 거리
번역·번안소설 《불여귀》, 《재봉춘》, 《눈물》
신파성 구현의 대표작 《쌍옥루》와 《장한몽》
《장한몽》형, 《쌍옥루》형, 《불여귀》형, 그리고……
당대의 미감으로 자리 잡은 신파성과 그 이후

2장 유성기 음반 속의 신파성
극반劇盤에 수록된 음반극
신파적 순간과 장면화, 그리고 대중가요
기생, 그 설정의 편리함
신파적 리메이크의 결정판

3장 연애는 짧고 가족은 길다―〈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재론
무엇을 어떻게 다시 볼 것인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와 〈낙화유수〉ㆍ〈며느리의 죽음〉
소설 《안의 성》에서부터 영화 〈촌색시〉까지 맥락 잡기

4장 식민지 후반기 대중소설과 신파성―김말봉, 방인근, 박계주, 그리고 이광수
문단 내 대중소설의 신파성
자기 확신과 욕망, 《방랑의 가인》과 《찔레꽃》
숭고한 희생으로 변형된 신파성, 《순애보》와 이광수
문단에서 배제ㆍ변형된 신파성, 그 이후

제3부 1950~60년대, 신파성 해체ㆍ재생산의 경합

1장 상승하는 젊은 가부장과 1960년대 초의 희망―김승호의 영화와 손석우의 노래
1950년대에서 1960년대로
1960년대 초, 새로운 가정을 이끄는 장남
손석우의 반듯한 스탠더드팝

2장 신데렐라맨의 부침浮沈과 그 의미―청춘영화
청춘영화와 남자 신데렐라
1960년대 중후반 신파성의 잔존과 그 의미

3장 아프레걸과 현모양처, 그 허와 실―장덕조와 박계형
아프레걸의 자유주의, 그 이면
박계형 소설의 순결주의, 그 속내
아프레걸에서 순결한 아내로의 이행을 어떻게 볼 것인가?

4장 신파성 부활과 모성신파―〈동백아가씨〉와 〈미워도 다시 한번〉
엄처시하 남자들의 탈출구와 신파적 여성
신파적 여성과 그들의 고통
신파성, 유지와 극복의 경합

제4부 1970~80년대, 신파성의 쇠퇴와 저항ㆍ복수의 탄생

1장 청년문화의 슬픔과 순수성―〈별들의 고향〉과 포크송
1968년, 무슨 일이 일어났나?
포크송의 트로트적 슬픔의 청산
영화 속 순수의 인물들과 그 슬픔
가족에 매이지 않은 개인과 이들의 순수
청년문화 대중예술의 세계전유 방식과 사회적 배경

2장 텔레비전 드라마의 여자들, 김수현의 인물
청년문화의 결여 지점과 돋보이는 김수현
1970년대 초 텔레비전 드라마의 선택과 김수현 드라마의 위상
김수현의 여자들, 굴욕을 거부하다

3장 힘의 쟁투, 복수의 탄생―이현세에서 황미나까지
복수와 성공의 이중주
순수한 정글의 남자들, 이현세ㆍ허영만ㆍ박봉성
복수·도전을 꿈꾸는 순정만화, 황미나와 신일숙

4장 변혁의 꿈과 신파성의 잔재―《북해의 별》에서 〈모래시계〉까지
먼 나라의 성공적 혁명과 영웅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과 영웅의 부재, 《오! 한강》과 〈여명의 눈동자〉
죄의식과 신파적 미감의 잔재, 〈모래시계〉와 민중가요

5장 트로트의 변형, 패러디, 작가주의
트로트는 힘이 세다
록과 트로트의 만남, 경쾌함에서 비극성까지
주현미의 경쾌한 트로트와 심수봉의 작가주의적 트로트
트로트의 작가주의적 차용과 패러디

에필로그―신파성의 종말과 자본주의적 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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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신파는 힘이 세다

    신파, 뻔하고 촌스러운 구식 장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안하무인의 재벌2세 남자. ‘계약결혼’을 통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 사랑에 빠진다. 이루어지기 힘든 이들의 사랑은 주변의 온갖 방해도 이겨내고 무르익는다. 하지만 여자가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신파멜로지만 ‘감성’ 잘 이끌었다’, ‘이 뻔한 신파멜로에 빠져들게 될 줄이야!’, ‘최루탄 신파에 채널 고정’, ‘구식 신파 멜로, 주말밤 시청자 사로잡았네’, ‘이 촌스러운 신파가 안기는 최루성 눈물’, ‘뻔한 신파? 그래도 끌리는 이유’.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신파’ 드라마 〈결혼계약〉에 대한 언론기사 제목의 일부다. ‘뻔한’, ‘촌스러운’, ‘구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 있다. ‘-지만’, ‘-임에도’라는 접사도 눈에 띈다. ‘신파’는 뻔하고 촌스러운 구식 장르이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성공했다는 식이다.

    사람들은 왜 신파적 작품을 즐기는 것일까
    신파성을 띤 작품들은, 적어도 20세기 중반부터는, 지식인과 본격예술 담당자들로부터 촌스럽고 통속적이며 저속하다는 거센 비판과 조롱 섞인 비난을 받아왔다. ‘신파적’이라는 말은 정확한 의미에 대한 구명 없이 그 자체로 평가절하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신파적 미감은 20세기 전반부터 인기의 중심에 있었고, 무시의 대상으로 전락한 20세기 후반에도 꽤 오랫동안 대중적 인기를 모아왔다. 이 같은 인기는 〈결혼계약〉에서 보듯 지금도 여전하다.
    사람들은 왜 신파적 작품을 즐기는가. 신파성의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한국대중가요사》(1998), 《광화문 연가》(2008),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2011), 《요즘 왜 이런 드라마가 뜨는 것인가》(2014) 등을 통해 대중예술 연구를 지속해온 저자 이영미(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는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에서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파’를 미감美感, 즉 미적 특질로서의 ‘신파성’으로 보고 이를 중심으로 한국대중예술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신파극뿐만 아니라 극영화와 방송극 등 다양한 극예술 및 대중소설 등의 서사적 예술, 심지어 대중가요 같은 서정적 예술에서 ‘신파적’이라고 지칭되는 독특한 질감의 느낌, 정서, 분위기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또한 신파성의 계승과 변용․쇠락․잔존․혼융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당대의 수용자 대중이 지닌 세계전유 방식과 그 변화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식민지 시기부터 1990년대까지의 문학, 영화, 드라마, 음반, 대중가요, 만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눈물의 미학 신파성, 한국대중예술사를 읽는 하나의 열쇠

    ‘신파성’이란?
    ‘신파新派’는 식민지 시기인 한국대중예술사의 첫 장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연극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예술에서 고루 쓰인 말이다. 백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여러 형태의 예술에 사용된 까닭에 신파라는 말의 함의는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매우 복잡하다. 그것은 문자 의미 그대로 ‘새로운 경향의 연극’, 뉴웨이브의 연극이라는 의미로 출발하여, 당시 일본으로부터 ‘신파’라는 용어와 함께 유입된 특정한 공연 관행을 지닌 연극 양식을 이르는 말로 정착한다. 신파극에서 흔히 써왔던 과장된 대사 억양과 움직임 등의 연기 경향, 혹은 감정 표현에서 과도한 비애를 드러내는 최루적催淚的 경향을 지칭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흔히 ‘촌스럽다’라는 말로 통칭되는, 이미 낡아 어색해진 질감의 비극성을 유난히 과장되게 드러내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 각각의 의미와 쓰임새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별개의 영역에서 만만치 않은 이야깃거리를 지니고 있어 별도로 탐구되어야 할 것들이다. 다시 말해 신파에 대한 연구는 각기 다른 차원의 의미들을 한데 뒤섞어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목표와 초점을 설정하여 연구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적 특질로서의 ‘신파성’에 초점을 맞춘다. 신파성이 오랫동안 우리나라 대중예술 속에서 유지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나라 대중예술의 수용자들이 지니고 있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특정한 사유 방식, 즉 세계전유 방식과 조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특정한 인식적․정서적 태도, 세계전유 방식이야말로 수용자 대중들과 예술로서 만나는 가장 중요한 접점이자 인기의 핵심적 근거다. 이를 분석함으로써 각 시대에 신파적 작품을 즐겼던 수용자 대중들의 세계전유 방식을 분석하는 것이 저자의 연구 초점 중 하나다.

    식민지시대, 신파성의 정착과 변주

    “나는 어머니, 수일 씨는 다시 보지 아니하고 바로 그리 갈 터이야요. 그러하니 그렇게 하여주시오. 나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어요.”
    하며 목소리는 점점 속으로 들어가고 아름다운 눈에는 눈물이 치마 위에 뚝뚝 떨어진다. 손을 들어 떨어지는 눈물을 씻으려 하는 그 수건은 다시 서로 만나지 못할 사람의 괴로움인 줄은 그 여자도 알리로다.
    - 조중환, 《장한몽》 중에서

    신파적 미감은 1910년대 중반에 일본 작품의 번안소설․연극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이 땅에 자리 잡았다. 여러 예술 장르 중 지성과 인식 면에서 가장 앞서간 본격문학을 중심으로 보면, 1920년대 중반까지 신파성은 매우 새롭고 세련된 새로운 미감과 세계전유 방식으로 인정되었다. 이광수는 물론이거니와 염상섭, 나도향 등 많은 문인들의 이 시기 작품에서 신파적 구도와 미감이 넘쳐흐른다. 신경향파의 작품들에서도 약간의 변형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신파성은 쉽게 발견된다. 요컨대 신파성은 1910년대를 대표하는 미감이며, 신파적 세계전유 방식이 1910년대의 도시의 고학력자와 중상류층들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식민지시대는 신파적 미감이 정착하고 확산되며 대중예술의 경향을 선도하는 시대였다. 새롭고 도시적이며 젊은 감각의 근대적인 미감으로 받아들여져 1920년대 초중반까지는 최고의 지식인들조차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1930년대에는 도시 젊은 수용자의 대중음악의 주도적 어법으로 자리 잡았고, 극예술에서는 젊은이 취향의 연애물뿐 아니라 가족물의 영역까지 장악할 정도로 정착했다. 반면 바로 그 시기부터 최고 지식인들에게는 조금씩 신파성을 배제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중예술에서 여전히 신파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정도로 식민지시대는 신파성의 힘이 강한 시기였다. 해방 후에도 대중예술에서 신파적 미감과 형상화 관행은 더욱 대중화되어 오래 지속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 더 이상 세련된 미감으로 평가받지 못하면서 해체․변형과 부활의 흐름이 경합을 이루는 새로운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대중예술 중에서 가장 문화자본이 높은 창작자․수용자들의 것이라 할 수 있는 문단 내 대중소설에서는, 이미 1930년대부터 그 변형과 해체의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길고 질긴 신파성의 해체와 변형 과정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1950~60년대, 신파성 해체․재생산의 경합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 이미자, 〈동백아가씨〉 중에서

    해방 후부터 1950년대까지의 대중예술에서는 신파성이 이전보다 더욱 대중화되었지만, 신파성을 벗어난 새로운 경향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눈물의 여왕 전옥’의 최루적인 악극이 흥행에 성공하고,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담은 노래가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댄스홀에서 물적․성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소설 《자유부인》의 정비석이 최고의 인기작가로 등극했다. 신파적 미감이 대중화되어 확산된 반면, 대중예술의 첨단 유행에서는 조금씩 배척당하기 시작한 1930년대 문단의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던 것이다. 악극이나 영화, 만화 가운데 신파성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에서 연애보다 가족 이야기가 좀 더 뚜렷해진 것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1960년대는 신파성이 극복되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하고 폭발적 인기를 얻기도 하는 등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이를 발전 방향으로 낙관하던 1960년대에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편하게 그러한 흐름에 동참하면서 비관적 태도의 신파적 미감을 극복했다. 사람들은 강력한 남성 리더십에 의해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도시화를 밀어붙이는 세상의 흐름을 긍정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회의와 고통은 종교의 힘으로,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체념과 인내로, 혹은 현모양처주의 같은 낡은 이데올로기의 재소환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로 치달을수록 이러한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 점점 불거졌다. 가족과 사회를 행복하게 해줄 기둥이자 희망이라 여겼던 성실하고 강한 남자들은, 어느새 다른 약자들을 행복으로부터 소외시켜 신파적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기득권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고통과 소외감을 견딜 수 없었던 약자들로부터 신파적 미감은 부활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정점을 찍은 시기는 박정희 정권의 민정 제2기의 시작과 맞물린다. 이는 낙관적인 태도의 ‘김승호표 영화’는 물론 신데렐라맨 구도의 청춘영화 인기가 하락하는 때와 같으며, 박정희 정권이 국책영화 〈팔도강산〉으로 근대화의 성과와 정권의 치적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는 시기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신파적 미감은 화려한 부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낡은 것이라는 느낌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1970~80년대에는 또 다른 세계전유 방식이 요구되고 있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신파적 유행이 정점을 찍으며 몇 년간 인기가 지속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신파적 미감과 세계전유 방식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대․계층의 수용자는 다른 취향과 세계전유 방식을 키우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른바 ‘청년문화’로 불렸던 새로운 흐름의 출발이다. 청년문화는 〈미워도 다시 한번〉과 이미자, 배호의 전성시대에 싹트기 시작하여 1970년대 전반기에는 최고 절정이던 남진․나훈아의 기세마저 꺾으며 막강한 흐름으로 부상한다. 신파성은 여전히 강했지만 저물어가는 흐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1970~80년대, 신파성의 쇠퇴와 저항․복수의 탄생

    헤어지자 보내 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 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
    그녀의 눈물 자위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 트윈폴리오, 〈하얀 손수건〉 중에서

    식민지시대가 한국대중예술에서 신파성이 정착․확산된 시기이고, 1950~60년대가 탈脫신파적 경향이 본격화되는 동시에 여전히 잔존․확산되어가던 신파성이 새로운 상황 속에서 부활하는 경합의 시기였다면, 1970~80년대는 신파성이 잔존하긴 했지만 확연히 쇠퇴하는 시기였다.
    1970~80년대의 대중예술은 자신의 불행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 생각하는 신파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불행이 폭압적인 세상 혹은 자신보다 강한 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낸다. 신파적 미감과 그 세계전유 방식의 설 자리는 크게 줄어든다. 이러한 흐름은 인간의 욕구․욕망의 발현과 분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유주의적 풍토 속에서 더욱 가속화된다. 신파성은 나이 든 수용자들의 취향에서만 혹은 작품 속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만 나타나는 미감이 된다.
    마지막 남은 가장 당대적이고 따끈따끈한 신파성은 1970~80년대 진보적 사회운동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미 1970~80년대가 되면 젊은 대중들은 이 자본주의적인 세상이 오로지 욕망과 힘으로 경쟁하는 곳이며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는다. 반면 힘을 키워 이 부박한 세상을 재생산하는 어리석은 짓을 거부하려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힘을 키워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고 그것이 역사의 순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 방법은 단기적으로는 일신의 기초적인 욕구․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양자의 이율배반은 다시 신파성이 만들어지는 근거가 되었다. 결혼을 통한 계층상승에 죄의식을 느끼거나 약자로서 짓눌리는 고통을 복수심조차 갖지 못한 채 바보처럼 참고 자신의 무력함만 자학하는 태도는 이미 낡은 것이 되어가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진보운동 과정에서 일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거나 가족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부딪치며 갖게 되는 신파적 태도는 1980년대에 새롭게 부상한, 익숙하고도 새로운, 당대적인 신파성이었다.
    1990년대가 되면 이 마지막 당대적 신파성이 사라진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1992년에 사람들은 이제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가 끝났음을 감지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에 따라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미소 냉전의 시대 역시 끝이 났음을 목격했다. 이는 1980년대와 같은 민주화운동도 끝나거나 대대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신파성의 당대성 상실

    반장님은 타지 사람잉게 살아 있어야지라. 살아서 넘들한티 우리 얘길 해주시오. 우리 말은 안 믿을지 모른게 반장님 같은 타지 사람이 해줘야지라. 이것이 나으 부탁이고 우리 진수의 부탁이여. 거절하지는 않겠지요이.
    - 송지나, 〈모래시계〉 중에서

    1990년대 초중반은 당시까지 한국사회가 경험해본 적 없는 가장 자유주의적인 세상이었다. 미국문화의 충격과 전쟁으로 인한 공동체의 급격한 해체 영향이 컸던 1950년대의 자유주의와 달리, 1990년대 초중반은 도시화․산업화가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지며 개인이 사회를 이루는 기초 단위임을 확실히 체득한 이후였다. 게다가 높아진 경제력으로 자유주의가 가능할 정도의 물적 기반을 갖추게 된 세상이었다. 이전까지의 흐름에 마침표를 찍듯, 진보적 운동의 강력한 당위성이 사라짐으로써 1970~80년대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역사적․시대적 부채감 또한 함께 사라졌다. 이로써 마지막 남은 당대적 신파성이 유지될 근거도 설 자리를 잃었다. 1995년작 〈모래시계〉가 1970~80년대를 ‘과거’로 설정하고 있음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당대는 과거가 되었다. 진보적 운동의 당위와 개인의 욕구․욕망 간의 이율배반 때문에 발생했던 신파성 역시 과거의 것이 되었다. 이로써 신파성은 완전히 당대성을 상실한다.

    신파성의 미래는?

    신파적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무얼까
    신파성과 그 세계전유 방식은 우승열패와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적 근대사회에 들어서기는 했으나 이를 온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한국의 20세기 초중반 사람들이 지녔던 미감과 세계전유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신파성은 분명 근대적 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근대성을 체화하여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세상에서는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
    다소 단순하고도 극단적으로 말하면, 신파성은 돈과 힘이 지배하고 돈과 힘의 합리성만이 존중되는 자본주의적 근대사회에 잘 적응하여 남들보다 편안하게 잘사는 것, 자본주의적 욕망을 실현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고방식, 그러나 그것에 자신이 저항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소산이다.
    물론 신파성을 즐기는 마음속에 자본주의적 욕망의 실현에 대한 매혹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정반대다. 계층상승의 욕구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존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초적 욕구․욕망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근대사회는 이를 더욱 극단적으로 부추긴다. 게다가 이러한 욕구․욕망을 제어할 사회적 장치들이 거의 해체되고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매혹을 느끼는 마음 한 편에서 그에 대한 심한 거리낌과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신파성은 바로 그 사고방식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신파성은 소멸했는가
    그렇다면 2010년대 대중예술에서 신파적 미감이 완전히 소멸했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신파성은 부분적으로나마 곳곳에 잔존해 있고, 때때로 강화되거나 다시 약화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단지 그것이 이전 시대에서처럼 중요한 미감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와 달리, 한국의 영화․드라마들이 여전히 ‘쿨하지’ 않은 과잉된 슬픔을 지니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것이 모두 자학과 자기연민, 죄의식과 피해의식이 뒤엉킨 신파적 슬픔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부분적으로 신파성이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상황 속에서 서민대중이 겪는 지나친 무한경쟁, 심해지는 양극화로 생존의 위협에 자주 직면하는 고통, 이로 인한 타인에 대한 폭력성의 증가 등은 신파성의 남은 불씨를 지속시키고 있다. 신파성은 세상을 폭압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미감이다. 이미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개인주의적으로 바뀐 21세기의 대중들이 이전과 같은 신파성을 자신의 주요한 미감으로 삼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 등 집단의 의존도가 높은 한국인들에게는 신파성이 신데렐라 이야기나 복수/성공담, 공포물 등 다른 예술적 관행의 주도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저자는 신파성의 완벽한 소멸이나 잔존, 그 어떤 것이 바람직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이를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대중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숙한 내면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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