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목차보기


제1부 춘분 감기

입덧
춘분 감기
상추쌈 먹고 딸부자
하지 감자
잠꼬대
입추
나무 타령
고욤나무 밑에서
부고
김장 2
검버섯 곶감
개기월식

제2부 가시리 고사리
수업 1
학교는 짜장 1
학교는 짜장 2
수능 전날
성록이
좌우지간에
가시리 고사리
법정에 선 교사들
종암동 서울사대부고
수석
도덕성 교육 고심하는 권 선생에게
추석 굴비
그림 그리는 조영옥

각선
낚시꾼 효곤이
문병
근황
밥상 시인과 겸상하며
교사대회

제3부 동강, 할미꽃
두레
싸리비
한글학교
고백
부레옥잠
불길한 예감
이산가족
종전 비나리
동강, 할미꽃
서초동 향나무
담양
월악산에 올라
북한산에서
순대
우포 주막
진맥
강변역에서

해설 | 국가와 인민 그리고 시와 유토피아·김진경(시인)

이용현황보기

우포 주막 : 김민곤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184473 811.15 -16-101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184474 811.15 -16-101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궂은비에 젖고 흔들리며 걸어온 삶의 궤적으로
국가와 인민 그리고 시와 유토피아를 노래하다

1986년 5월 10일은 교육민주화선언 서울지역 교사대회가 있던 날이다. 이날 교사대회 뒤풀이에서 「교육민주화를 위한 비나리」를 발표한 시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시인이라는 꼬리표가 없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성명서 시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그 이름에 걸맞게 30년 동안 교육 관련 집회 현장에서 그는 이런 저런 성명서, 고천문, 추도사 따위를 여럿 써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본격적으로 시를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었다. 평교사로서의 정년을 다하고 이제 그 직을 내려놓기 전에서야 비로소 처녀시집을 낸 시인의 이름은 김민곤이다. 그가 첫 시집 『우포 주막』을 작은숲에서 펴냈다.

낮에는 삭신이 쑤시는 들일을 마치고
설거지 꺼리도 없는 저녁상 물리고 나면
어머니들은 인심 넉넉한 집 안채로
삼실 담은 소쿠리를 들고 밤 마실
두레를 갔다.
짧은 여름밤 모깃불 자욱이 피워 놓은 마당에
두런두런 동네 이웃 질고 마른 이야기 두루 나누며
달그림자가 기어들 때까지
두레를 했다.

사람들 모여 사는 동네가 거기 있었다
새벽 종 새 아침 새마을이 오기 전에는.
- 「두레」 부분

김민곤 시인이 걸어 온 삶의 궤적과 비슷한 궤적으로 살아온 또 한 사람 김진경 시인은 발문 제목을 “국가와 인민 그리고 시와 유토피아”라고 붙였다. 너무 거창하지 않나 싶지만 김진경 시인은 “호탕한 낙관주의적 웃음이 성명서 시의 실체로서의 울림, 즉 뜨거웠던 시절 인민들의 유토피아 지향과 통하는 것이라면, 그 호탕한 낙관주의적 웃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라고 묻고 있다. 그러면서 “뜻밖에도 여리고 수줍고 섬세한 어떤 것으로부터 발원하는 게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두레’라는 시 제목이 말해주듯, 김민곤 시의 정서는 그가 살았던 ‘새마을운동’ 이전의 농촌공동체에서 근거하고 있다. “새마을 운동 이전의 농촌 공동체는 김민곤의 유년이 잠겨 있는 곳이며, 김민곤 시의 기본 토대이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유토피아 지향의 정서적 거점이기도 하다. 여기로부터 농촌의 자연과 삶에 현실을 오버랩시키는 김민곤 시의 기본 발상법이 나온다.”고 김진경 시인은 분석한다. 시인에게 ‘새마을 운동’은 유토피아의 파괴였으며, 시를 통해 이것의 복원을 끊임없이 지향하고 있다. 그 지향점은 김민곤 시인의 “여리고 수줍고 섬세한” 그 어떤 것에서 발원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해직교사의 첫 시집

우리 시대에 ‘해직교사’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 1989년 전교조 대량 해직이란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참교육을 외치며 교원노조를 만들려던 1500여 명의 교사들이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돌던, 학교 담벼락 너머 교실 안 아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생님의 영상이 떠올려지는 정도일까. 아직도 종합편성채널이나 정부에서 ‘전교조=종북’이라며 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분들이 있는 현실에서 평교사로서 정년을 맞아 첫 시집을 내는 이 시인의 사연은 시로써만 평가할 수 없는, 그의 삶이 곧 시였다는 말을 감히 내뱉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

세상이 덧칠해 놓은 이미지와는 달리 소위 해직교사들은 ‘참교육’을 주장했다. 쉽게 말해서 교육의 주체들이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에서 벗어나 매일 매일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혁신학교 인기가 높다지만 애국조회를 하던 시절 학교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국민’을 양성하는 전초 기지의 역학을 하고 있었다. 그 기저에는 경쟁주의적 교육관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엄혹한 시절에 청년 교사로서 ‘참교육’을 위해 공무원이란 안정적 신분을 버리고 양심을 위해 학교보다는 거리를 택했던 1500여 명의 해직교사들, 그 맨 앞에 김민곤이라는 ‘성명서 시인’이 있었다.

“1986년 5월 10일 교육민주화선언 서울지역 교사대회 뒤풀이에서 즉흥시 「교육민주화를 위한 비나리」를 발표한 후 나에게 시는 딴 동네 일이었다”며 이미 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이름을 내걸지 않았던 그가 돌연 정년퇴임을 앞두고 처녀시집을 냈다. “30년 동안 이런 저런 성명서, 고천문, 추도사 따위를 여럿 썼”던 공력이 바탕에 깔렸으리라. 그러면서 여전히 “이 나이에 처녀 시집이라니! 맞선 보러 나가는 큰 애기처럼 가슴 두근거린다.”며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의 생김생김과 말투에서 정년을 다하고 교단을 떠나는 노교사라는 느낌보다는 순수청년의 향기가 난다.

어떻게 이 시를 설명할까를 고민했지만, 해직교사로서의 삶을 함께 걸어왔던 김진경 시인(전 청와대교육비서관, 작가)의 발문 첫 머리로 서평을 대신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싶다.

“김민곤은 이름이 명기되지는 않았지만 80년대부터 이미 시인이었다. 긴박한 상황이 나날이 시 쓰기를 요구했으니 어쩔 수 없이 일찍이 성명서 시인으로서 데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교사, 학생, 학부모의 심금을 울린 교육민주화선언이라는 시를 비롯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명서 시를 낳은 바 있다. 글이 역동적인 삶과 만나 실체로서의 울림을 갖는다면 그보다 나은 시가 어디 있으랴? 이름이 명기되지 않는다 해도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지는 실체로서의 울림으로 족하리라.”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P.12-13]

저기 좀 보아라
봄은 올해도 아랫마을
청보리밭 뒤흔들고 온다
보드라운 모반의 몸짓

얼음 아직 풀리지 않아
바람은 갈피 잡지 못하고
먼지 자욱한 보릿고개 너머로
미처 죽지 못한 것들
미친 듯이 머리 풀고 분다

때때로 돌개바람 스치는 시내
마른 갈대 숲 소스라칠 때
긴긴 겨울 참 오래도 참았나
참마자 각시붕어 무리 지어
오도 방정 팔도 떼 방정을 떨어
봄볕 찬물 속 비늘 가득 반짝인다

봉기하는 봄이다
강가 버들가지마다 물오르듯
우리 보살 보리암에도 단물이 올라
축 처진 반야봉도 봉긋 솟고
두 볼 둔덕에 복사꽃도 활짝 피어
자다가도 자네 벌떡 일어날 봄
그래 여기 봄이 왔단 말이다.
[P. 95] 우포 주막

습지는 사철 살아 있는 것들 사랑받아 늘 흥건하다. 내가 우포를 자주 찾는 까닭은 널배 위에 엎드려 가시연잎 사이로 종일 미끄러지고 싶기 때문이다.
손등에 개구리밥 달라붙으면 마른 눈시울 쉬이 젖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저릿한 고니 떼 장엄한 추풍낙엽 반주에 맞추어 유영할 때 무심한 검독수리 물끄러미 먼눈팔고 있을 뿐이다.
내 고향 가락국 옛 터전에는 날개 죽지 상한 날짐승 여럿 보인다. 왜가리 고라니 너구리 흑두루미 두루 동무 삼아 묵은해를 보내는 자리, 산란 끊긴 노계 한 마리 볶아 놓고 거나해지면 황새목으로 새 타령 한 가락 길게 뽑는다.
동무들이 손뼉 치며 밍고니 살아 있네 하면 할매! 아재! 여기 털 뽑고 보지 사바하! 내지른다. 문득 물 먹은 상고니 성 생각도 난다.
[P. 72-75] 두레

내 어머니 베틀 밑에서
지름대 갖고 놀던 작은 방
혼자 놀다 곤히 잠들면
어머니는 두레를 나갔다.

동네 어머니들은 삼을 키워
금줄 두른 수백 살 느티나무 옆
참새미 개울가에 걸어놓은 큰 삼 솥에
집집이 돌아가며 삼을 삶을 때
우리 고이 벗은 것들은
껍질 벗긴 제릅대로 제웅을 만들거나
총싸움 칼싸움도 벌였다.

그 시절 미국군은 멀리 떨어져 있어
마을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대마초 따위 알지 못했다.
(중략)
짧은 여름밤 모깃불 자욱이 피워놓은 마당에
두런두런 동네 이웃 질고 마른 이야기 두루 나누며
달그림자가 기어들 때까지
두레를 했다.

사람들 모여 사는 동네가 거기 있었다
새벽 종 새 아침 새마을이 오기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