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포브스 윈슬로(Forbes Benignus Winslow)가 전하는 자살 예방을 위한 처방전이다.
영미권 최초로 자살 문제를 의학적.도덕철학적 측면에서 종합 분석한 이 책은 자살 충동과 함께 자살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또한, 자살을 옹호하는 철학자와 작가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며,사회에 만연해 있는 ‘자살 예찬론’에 대해 논리적으로 맞선다. 이를 위해 필립 피넬, 에스키롤 등, 정신의학 발전에 공헌한 의학자들의 견해를 덧붙여 자살이란 주제뿐만 아니라 관련 정신의학계에 대한 발전사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출판사 리뷰
신을 향한 범죄인가, 자존심을 지키는 고귀한 행위인가? 고대부터 근대까지, 자살 논란의 뿌리를 밝힌다!
OECD 회원국 중 10년 넘게 자살률 1위인 한국. 이러한 현상을 두고 누군가는 자살이 오늘날의 문제라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살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하나의 ‘역사’다. 성경 속 최초의 자살 사건인 삼손의 일화에서부터 비운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영국의 시인 토머스 채터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살이 시대와 함께 이어져 왔다. 실제 역사에서는 물론, 문학에서도 자살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연인을 의심했다는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렇다면 자살은 신을 향한 범죄일까, 아니면 자존심을 지키는 행위일까? 저명한 영국의 정신의학자 포브스 윈슬로(Forbes Benignus Winslow)가 활약했던 19세기 유럽에서는 자살을 신을 향한 악독한 범죄로 치부했다. 자살 기도나 자살 충동에 관한 치료는 관심 밖이었고, 자살자를 단죄하려는 탓에 유가족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곤 했다. 때문에 아무리 자살을 금기시해도 그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윈슬로는 자살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시선을 알아차리고, 자살 현상을 규명하고자 애썼다. 먼저 그는 고대에서부터 이어진 자살 사건을 들여다보았다. 고대에서부터 나라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자살을 꼽았다. 또한, 영웅은 자살을 명예, 피살을 불명예로 여겨왔다. 때문에 시련을 겪으면 줄곧 목숨을 던지곤 했는데, 윈슬로는 로마의 장군 카토와 유대군 사령관 요세푸스의 일화를 비교하여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한편, 수많은 서양의 철학자들은 ‘내 목숨을 내 멋대로 한다는데’라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로써 자살을 옹호해 왔다. 윈슬로는 이 또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살 현상에 한몫했으리라 판단하였다. 세네카, 흄, 루소, 몽테뉴 등 자살을 지지하는 사상가들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함으로써 대중이 사상가의 잘못된 견해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랐다.
한편,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자살 동기를 추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윈슬로는 자살 동기로 크게 내장 질환이 불러온 자살 충동과 외부의 변화가 불러온 자살 충동을 들었다. 육체적인 측면에서 뇌, 위, 장 같은 신경을 거슬릴 만한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경우에 으레 자살을 염두에 둔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즉,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윈슬로는 특히 뇌 질환에 주목했는데, 뇌에 경미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 상처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그대로 살아가다가 결국 자살 충동에 휩싸여 자살하고 만 사례를 덧붙였다. 내장 질환의 경우에는, 여러 작가와 사상가가 내장 질환으로 고통 받다가 정신착란을 겪었던 사례를 소개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자살 동기를 찾아보면, 먼저 자살은 결코 정신이상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윈슬로의 주장에 주목해야 한다. 윈슬로는 감정이 ‘배의 돛에 바람을 가득 실어주는 돌풍’과 같다고 표현했다. 즉, 흥분되는 감정이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이 단순한 개인사로 여기는 실연, 좌절, 실망 같은 감정이 자살 충동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윈슬로는 자살을 비판하면서도 무고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판명하기 어려운 경우, 법의학자가 올바르게 사인을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당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루이 앙리 조제프 자살 사건을 예로 들며 자살자의 사인을 하나하나 밝혀 간다. 또한, 자살자의 공통점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에서부터,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특이한 사건까지 다양한 자살 관련 사건을 분석하였다.
윈슬로가 주장하는 바는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자살은 범죄가 아니다!” 그는 자살을 죄로 단정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자살자는 이미 마음속에서 생을 단념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진 탓에 어떤 법으로든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살 충동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예방하고, 만일 자살 충동이 일어났다면 그것을 치료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자살 충동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식만 주입하는 ‘머리’ 교육뿐 아니라, 감정을 다스리는 ‘가슴’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우리 또한 자살을 자살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자신은 자살할 이유가 없으니 자살 현상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가? 그러나 자살 충동은 결코 우리를 빗겨가지 않으며, 또한 개인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윈슬로는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말한다. 자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책속에서
[P.14]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살은 용기의 증거이며 피살은 불명예였다. 대중의 생각에 큰 파장을 일으킨 철학자들이 이러한 생각에 심취한 덕에, 자살이 종교의 일부를 구성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것을 감안해 본다면, 천재성을 인정받거나 용맹을 떨치던 수많은 사람이 자살을 택했다는 게 과연 놀랄 만한 일일까?
[P. 17] 규모가 큰 교전이나 전쟁에서 이길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앞선 사례를 높이 평가한다면 너도나도 자살을 극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뻔한 결과만 불러올 뿐이다. 조국은 명석한 장군을 잃고, 백성은 숭고하고 노련한 후원자를 잃는 결과 말이다.
[P. 47] 자살 기도에 관한 로마법은 돈과 어느 정도 관련 있는 듯싶다. 자살을 범죄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국무나 재정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로 따졌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에서는 일부 지역에 총독에게 자살의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자살을 해선 안 된다는 결정에도 목숨을 끊은 경우, 시신에 모욕적인 욕설을 퍼붓고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매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