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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의 첫 자전 에세이 / 지은이: 노무현 인기도
발행사항
고양 : 새터, 2017
청구기호
811.8 -17-71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272 p. : 삽화 ; 21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87175959
제어번호
MONO1201706323
주기사항
"지은이 약력"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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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부시맨
여의도 부시맨/
여우와 포수/
그렇게 막은 내리고/
어느 잔인한 봄날/
모두가 떠나고 없는 빈들에서/
덕분에 잡지 많이 팔렸어요/
또 하나의 시작/

잃어버린 영웅
영원한 보스/
침묵으로 말하는 정치 9단/
빌린 머리와 돈 봉투/
YS의 트로이 목마/
참으로 아까운, 그래서 더욱 아쉬운/
큰 수레와 사마귀/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여보, 나 좀 도와줘
여보, 나 좀 도와줘/
하늘의 절반/
참으로 어려운 자식 농사/
내 아버지의 아들, 내 아들의 아버지/
르망과 콩코드, 그리고 자전거/
내 후원회 전화번호는요/

내 마음의 풍차
내 마음의 풍차/
이놈 역적 아니야/
노가다의 짝사랑/
저,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사법고시 수험기/
돈 잘 버는 변호사와 부림 사건/
삶의 바로 그 현장으로/
사람 사는 세상/

책을 내면서
지은이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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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244619 811.8 -17-7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244620 811.8 -17-7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고해성사를 하듯 털어 놓는 너무나도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이 책은 지은이가 ‘청문회 스타’라는 뜻밖의 행운과 ‘낙선’이라는 커다란 좌절을 경험했던 정치 생활을 차분히 정리하면서 그 과정에서 있었던 잘잘못을 가리고 반성하는 내용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알리고 있다. 의정생활을 정리해 보았고, 우리나라 정치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과 나름대로의 평가를 모아놓았으며, 한 평범한 정치인으로서,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느끼는 고민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들과 단상들을 모았으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린 시절부터 정계에 입문하기까지의 과정을 일화를 중심으로 엮어 놓았다.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영욕과 진실을 담보로 용서받을 일은 따뜻하게 용서를 받고 싶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지은이의 삶을 관통하는 과정의 정당성과 원칙을 지키는 고집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내 가슴 속에서 그 무엇이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 겪을수록 단단해지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깊어지는 그 무엇이 자라나고 있었다. 젊은 날의 혈기와는 다른, 내 전 생애를 걸고 내 자신과 내 주위에 책임져야 할 그 무엇이…….
    그것이 오기라 해도 좋고, 집념이라 불러도 좋고, 부서지지 않는 꿈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처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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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여보, 나 좀 도와줘.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꼭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정치를 하려면 미쳐야 된대. 여보 양숙 씨. 우리 같이 한 번 미쳐 보자. 응?”

    ‘부림 사건’은 내가 재야 운동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리고 내 삶에서의 가장 큰 전환점이기도 했다.
    그 일 이전에 부산에서는 1979년 부마항쟁이 있었다. 김광일, 이흥록 변호사가 영장도 없이 구금되고 수많은 학생들이 붙잡혀 고문당하고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당시 나는 바로 옆에 있던 변호사가 그런 일을 당해도 그저 소문으로만 들어 넘겼을 뿐 별 관심조차도 가지지 못했다. 모두들 끼어들 여지가 없는 줄 알았고, 나도 그런 줄로만 생각했다.
    전두환 정권은 집권 첫 해인 1980년에 이미 대부분의 저항 세력을 제거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학생 운동권을 최종적으로 정리했는데 그것이 바로 ‘부림 사건’이었다. 그것은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 일어난 무림, 학림 사건과 마찬가지로 저항의 기미가 있는 자들에 대한 일종의 예비 검속이었다.
    ‘부림 사건’에는 사실 ‘사건’이 없다. 무슨 저항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억지로 엮어 낸 조작된 사건이었다. 1979년에 이흥록 변호사가 양서 조합을 만들었었는데 그 회원들이 대부분 잡혀 들어갔던 것이 전부이다.
    내가 그 사건의 변론을 맡게 된 것은 이흥록 변호사의 응원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검사가 김광일 변호사를 그 사건에 함께 엮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김광일 변호사가 그 사건 변론을 할 수 없어 손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난 사건의 내용이나 성격을 파악하기는커녕 시국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가지고 있지를 못했다. 그럼에도 선뜻 변론에 나선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사건의 내용을 파악해 보니 이건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책들, 예를 들어 ‘전환시대의 논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우상과 이성’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게 죄가 되었다.
    돌잔치에 모인 몇 사람이 정부를 비판한 몇 마디는 정권 전복 기도로 둔갑했다.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며 한 얘기, 여름철 계곡에서 놀며 한 얘기, 두 사람이 다방에서 한 얘기까지 모두 불법 집회요 계엄 포고령 위반이 되어 있었다.

    1988년 4월의 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산 동구에서 허삼수 씨 상대로 출마한 나를 지원하기 위해 내려온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는 유권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허삼수 후보는 반란을 일으킨 군인입니다. 반란의 총잡이입니다. 총잡이는 국회로 보낼 것이 아니라 감옥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로부터 꼭 4년이 지난 1992년의 1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이번에는 허삼수 씨를 지원하기 위해 내려온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총재는 유권자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허삼수 씨는 충직한 군인입니다. 허삼수 씨를 뽑아 주시면 제가 중히 쓰겠습니다.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도 허삼수 씨를 국회의원으로 뽑아 주십시오.”
    뽕밭이 변해서 바다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를 두고 격세지감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4년이란 세월이 너무도 짧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곳이 정치판인 줄 알았다면 내 일찍이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텐데…….
    변한 건 YS만이 아니었다.
    4년 전에는 YS를 ‘대권병자’로 몰아붙였던 허삼수 씨가 14대 선거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김영삼 총재님, 그 어른을 모시고 부산의 발전을 위해 이 몸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극에서 극을 오갔던 그 두 사람의 변화는 결국 나에게 ‘낙선’이라는 쓰디쓴 선물을 안겨 주었다.
    지금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YS가 3당 합당으로 권력을 잡기 전만 해도 이 땅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장물의 수준은 한정되어 있었다. 고작해야 권력에 빌붙어 먹고사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YS의 대권 장악과 함께 기회주의자들의 입지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기회주의자들의 성공이 최고 권력의 차원으로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YS의 대권 장악은 기회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신선한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스러기나 먹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통째로 먹는 기회주의, 즉 기회주의의 극치가 실현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옳은 것이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정의니 가치니 하는 말들은 이제 국민의 냉소거리에 지나지 않고, 소신과 지조를 얘기하던 사람들에게는 무력한 허탈감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제대로 되어 가는 역사라면, 어떻게 JP가 집권당의 대표로 계속 텔레비전에 나올 수가 있고, 12·12쿠데타의 주범들이 계속 국회의사당에 버티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차세대 전투기 사건, 상무대 비리 사건, YS의 아들 현철 씨가 관련된 한약업자 로비 사건 등 이 모든 권력형 비리가 밝혀지지 않고 있겠는가?
    아무튼 지금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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