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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별★종의 기원 : 부끄러움을 과거로 만드는 직진의 삶 / 박주민 말함 ; 이일규 엮음 인기도
발행사항
파주 : 유리창, 2017
청구기호
324.2092 -17-99
자료실
[서울관] 의원열람실(회관),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형태사항
227 p. : 삽화 ; 19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7918225
제어번호
MONO1201731026

목차보기더보기


-머리말을 대신한 프롤로그
열심히 살면 부끄러움은 과거가 됩니다

Ⅰ. 운동
1. 소년과 공부
2. 운동권 법대생

Ⅱ. 변호
3. 거리의 변호사
4. 세월호 변호사
5. 세월호와 우리

Ⅲ. 촛불
6. 정치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7. 헌법은 나의 힘
8. 법과 사람

Ⅳ. 사람
9. 성실한 ‘거지갑’
10. 현실과 이상
11. 새로운 여정
12. 사람과 사랑

-엮은이 후기
우리 곁에 별종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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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289829 324.2092 -17-99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303935 324.2092 -17-99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0002303936 324.2092 -17-99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참 별종이다. 가난한 집 꼬마 악동이 여자애에게 잘 보이고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공부를 했다. 서울 변두리 초중학교 때 공부를 가장 잘했지만 덩치도 싸움도 지지 않아 ‘짱’을 먹었다. 중3이 되자 그는 쪼그라든 ‘범생이’가 됐고, 자신에게 쥐어터지던 아이들은 덩치가 산만해져 위협이 됐다. 그들을 피해 멀리 떨어진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첫 시험에 세 자리 등수를 받아든 그는 이를 악물었다. 거울 안 보기, 땅만 보고 걷기, 점심 혼자 먹기를 실천(?)하면서 깨알같이 적어가며 공부했다. 재수를 통해 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갔고 4년 내내 학생운동을 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뒤 사법시험을 봐 변호사가 되었다. 사회운동, 공익활동을 수월하게 하기위해 변호사가 된 그는 거리로 나갔고 국가 권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약자들의 현장에 함께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안산으로 달려가 세월호 변호사가 되었다. 문재인의 영입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서였다.

    국회의원이 된 그의 생활이 달라진 것은 의정활동이 추가되어 더 바빠졌다는 것.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거지갑’이 되었고, 그는 ‘은평갑’으로 응수한다. 저자거리에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넘쳐나지만,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의 속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미화나 과장 없이 육성으로 직접 들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 터에 책을 내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이 책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앞으로 그의 삶에 감시자가 될 것이다. 그는 부끄러움을 과거로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10년 후 더 멋진 리더를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거지갑’이 왔다!
    백팩을 멘 꾀죄죄한 행색이 거지 중의 상거지라는 의미로 그를 ‘거지갑’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고, 그 별명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달궜다. 물론 폄훼가 아니라 애정과 존경을 담은 애칭이었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박주민도 “거지갑이라네요. 은평갑인데.” 라고 즐겁게 응수했다. 거지라고 부르는 것에 약간 미안해진 사람들은 ‘성실갑’이라고 불렀고 그의 아내 강영구 변호사에게는 ‘미모갑’이라는 찬사를 바쳤다.
    박주민은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을까. 그가 무슨 이벤트를 벌이거나 퍼포먼스를 한 적은 없다. 그의 자연스러운 행적이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인권변호사, 거리의 변호사, 세월호 변호사로서의 그의 이력이 알려지고, 문재인에게 영입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날 공천을 받고 세월호 유가족 등의 자원봉사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본회의 출석 100%, 1주일에 한 건씩 법안 발의, 시위현장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그의 광폭행보가 국민들 눈에 띈 것뿐이다.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
    1960년 4월19일 학생들이 총궐기하여 정권을 들어냈다. 1987년 6월10일 대학생은 물론 넥타이부대로 불리는 국민들이 합세하여 개헌과 함께 독재정권 교체의 길을 열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볼 수 없었던 국민들이 촛불로 궐기하여 기어코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 정부를 세웠다. 국민들은 적폐청산과 개혁을 요구했고 촛불민심을 받아 안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애초 국회의원에 뜻을 두지 않았던 박주민은 세월호 진상규명의 소명을 다하고자 영입을 받아들이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대학생활 내내 학생운동을 하였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판검사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사회운동과 공익활동에 전념하고자 변호사가 되었다. 늘 거리에서 강정, 쌍용차 등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사회적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약자들 편에 서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주저하지 않고 안산으로 달려가 세월호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이 되었다. 늘 약자들 편이었고 개혁의 선두에서 활동하였다. 야간집회 금지한 집시법 위헌, 경찰 차벽 위헌 등 위헌판결도 4건이나 받아냈다. 문재인의 밝은 눈에 영입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실갑’ 박주민은 시대정신에 맞는 차세대의 유력한 지도자다.

    응원과 감시의 대상
    ‘바보’ 노무현이 있었다.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덤벼든, 불의에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자기 길을 가던 정치인이어서 그런 애칭이 붙었다. 조롱이 아니라 존경과 애정의 표현이다. ‘거지갑’도 그렇다. 행색은 꾀죄죄하고 아무데서나 잠들지만 다른 정치인보다 몇 배 더 일하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어서 응원과 애정을 담은 애칭이다.
    박주민이 공천되고 선거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그의 행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그에 대한 끝도 없는 미담, 기행(?)이 떠돌았다. 처음으로 야당 단일화를 이뤄내고, 국회에 입성하면서 새벽에 출근하고 한밤중에 퇴근하는 그에게 응원이 쏟아졌다.
    이제 꽃길만 걷게 된 걸까? 그러나 그는 국회의원이 되면서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고 말았다. 본회의 100% 출석, 법안 발의 압도적 1위는 그가 하는 일의 일부에 불과하다. 일정은 시간단위로 쪼개져있고 자동차는 사치라고 여기던 그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책을 내자고 제안했을 때 나이도 어리고(45세) 겨우 초선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데 ‘나 이렇게 살아왔소’ 하는 것이 어떻게 비쳐질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려드리는 게’ 도리라고 여기고 책 출간을 결심했다. 그래서 이 책은 박주민 감시도구가 됐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경이적이다. 앞으로는 과거보다 더 잘 살지 않으면 ‘박주민이 변했다’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박주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머리말에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저 자신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드러내 보인 것인데 부끄러운 모습이 많이 있는 듯 합니다. 부끄러움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다짐하고 있다.

    재선? 글쎄요.
    21대 국회에도 진출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주민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너무 피곤합니다. 이제 초선 1년차인데 그런 말 꺼내는 게 시기상조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제가 잘할 수 있다는 판단이 먼저 서야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인터넷방송에서는 노무현, 문재인, 박원순, 이재명 안희정 등이 운동권이나 민변 소속이었다면서 대선에 나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펄쩍 뛰었다. 지금 그의 대답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대학시절부터 국회의원이 된 지금까지 공익활동에 주력해온 사실을 알고 있다.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활동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변호사가 되려고 사법시험을 치른 것도 알고 있다. 국회의원이 된 뒤의 열정적 활동은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민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그의 욕심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행보 때문이다.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는 소리는 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미사여구로 포장한 홍보책자가 아니다. 정치인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책이다. 자꾸 광장으로 나서야하는 국민의 피로감을 최소화하려면 국민의 대의를 받아 안은 성실하고 겸손하고 똑똑한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
    박주민의 삶과 생각을 통해 우리는 정치인에 대한 기대치를 한층 높일 수 있다. 다음 총선에서 어떤 후보를 내세워야 하는지, 누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처칠은 “정치를 경멸하는 국민은 경멸 받을 수준의 정치 밖에는 소유하지 못한다”고 했다. 명말 청초 진보적 지식인이며 고증학에 일가를 이룬 고염무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백성들 책임”이라고 했다. 우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촛불혁명을 통해 국정농단 정부를 들어내고 소통과 통합을 앞세우는 새 정부를 세웠다. 이걸로 국민의 도리를 다 한 것이 아니다. 좋은 인재를 발굴하여 응원하고 감시하여 정치인의 자리가 권력이 아니라 봉사의 자리임을 명백하게 해야 한다.

    박주민은 청년들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자고 한다. “본인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아보는 시간과 기회를 가져보고, 그렇게 알게 된 자신의 진정한 욕심을 위해 살아보라”고 권한다. 청년들이 지금 절박한 상황에 처했지만 고민하고 탐구하는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면 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래서 이 책은 특히 청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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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그날이 성탄절 전야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너무 슬펐죠. 문전박대를 당하고 철거민들과 같이 돌아가는데 내가 그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데 처절한 무력감을 느꼈어요. 그때 처음 ‘내가 변호사였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봤어요. 그랬다면 적어도 이렇게 그냥 되돌아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구청장이 거부하지 못할 최소한의 주선이나 조력이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기왕 사회운동을 계속할 거라면, 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겠다는 확신 같은 걸 그날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학생운동을 잇는 마음으로, 군에서 전역하면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운동권 법대생
    처음에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해서 사무실 구석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회의하실 때 의자 가져다 놓고 음료수 깔고, 식사할 때 짜장면 놓고 다 드시면 치우기도 하고 그랬어요. 점차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더군요. 초기에는 가족협의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도왔어요. 정관 만들고 회의안건 잡고 회의 결과 정리하고, 유가족 입장 발표 때 의견 조율해서 발표문 정리하고 그런 일부터 시작했죠. 그러면서 특별법 협상 지원하고. 물론 그사이에 소소한 법률자문도 많았고요. 또 유가족과 시민운동 단체와의 연결고리나 통로 역할도 자연스럽게 맡았어요. 그 사이에서의 갈등도 중재하고요.
    그렇게 제가 맡는 일이 점차 많아지니까 유가족 분들과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변호사는 거의 저 혼자 남아 있더라고요. 한창 가까울 때는 저보고 가족이라 그러셨어요. 국회에 온 뒤로는 자주 못 뵙지만요. 그때는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박변’ 말은 믿는다고 그러셨어요. 감사하게도 저를 많이 믿어주셨죠. -세월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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