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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면? : 역사의 길목에 선 동아시아 지식인들 / 미야지마 히로시, 배항섭 엮음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너머북스, 2017
청구기호
950 -17-15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495 p. ; 22 cm
총서사항
19세기의 동아시아 ; 2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4606453
제어번호
MONO1201743651
주기사항
공지은이: 김선희, 노관범, 무라타 유지로, 문명기,박소현, 박훈, 스다 쓰토무, 이경구 외
참고문헌(p. 469-488)과 색인 수록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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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부_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 지식인의 사유

1장 유학경제학이 가능한가?- 근대 이행기의 유학과 경제 _ 미야지마 히로시
1. 경제라는 말을 둘러싼 전통과 근대
2. 심대윤과 『복리전서』
3. 천후안장의 『공자와 그 학파의 이재학理財學원리』
4.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논어와 주판』론
5. 앞으로 과제
2장 국가(도의관)를 둘러싼 근대 한일 사상 비교 - 이기와 나카에 조민 _ 조경달
1. 약육강식 시대의 조선, 국가주의의 발생
2. 국가주의의 성립: 박은식과 신채호
3. 도의에 대한 확신: 이기의 사상 ①
4. 도의와 결별: 이기의 사상 ②
5. 나카에 조민과 비교
6. 정치와 도덕, 이기의 국가주의
3장 19세기 중반 이후 한·중·일 3국의 실학 개념 _ 이경구
1. ‘실학’ 개념 변화의 생명력
2. 19세기 후반 한국의 실학 개념과 새로운 계보
3. 19세기 후반 중국의 실학 개념
4. 19세기 후반 일본의 실학 개념
5. 실학 이후의 ‘실학’

2부_ 전통적 사유의 변화와 지속

4장 동학교도의 동학에 대한 이해와 유교 _ 배항섭
1. 동학과 동학농민전쟁의 관계
2. ‘개벽’ 사상으로서의 측면
3. 구제 수단으로서의 측면
4. 생활 윤리 및 변혁의 무기로서의 측면
5. ‘반란’의 무기가 된 지배이념
5장 근대 전환기 지식인들의 ‘문명’ 인식 - 유인석과 이기 _ 김선희
1. 문명, 중화의 문명
2. ‘문명개화’의 도전
3. 중화와 문명의 분리
4. 최후의 유학자들과 「우주문답」의 질문들
5. 문명‘들’의 중첩
6. 신견문, 신사상, 신학의 도전
7. 봉인된 미래와의 절연
6장 분기인가 수렴인가? -첸무와 푸스녠을 통해 본 민국시대 중국 학술사회의 풍경 _ 문명기
1. 민국시대 ‘학술사회’를 이해하는 방식
2. 첸무의 경?사 연구: 학술사적 맥락
3. 통通?전專과 경세經世?구진求眞: 첸무와 푸스녠의 분기
4. 게임의 규칙: 학술적 표준의 숙성과 학술사회의 수렴
5. 민국시대 학술사회의 수렴과 그 의미
7장 19세기 전반 일본 지식인의 국체와 도 관념 -요코이 쇼난과 요시다 쇼인 비교 _ 스다 쓰토무
1. 깊이를 더해가는 요코이 쇼난 연구와 방향을 잃은 요시다 쇼인 상像
2. 1856년 이전 요코이의 ‘유도?무도’론
3. 1856년 이후 요코이, ‘강병론’으로 전환
4. 1855년 이전 요시다, ‘군신상하일체君臣上下一體’론 제기
5. 1855년 이후 요시다, 지켜야만 할 ‘국체’ 발견
6. 요코이와 요시다의 ‘무위武威’ 심성에서 나온 부국강병
8장 유학적 관점에서 본 나카무라 마사나오의 문명론 _ 이새봄
1. ‘메이지 계몽사상’이라는 틀
2. 문명 이해의 바탕
3. 문명의 내용: ‘인민’의 ‘품행’ 향상
4. 품행의 기원: 천과 교법의 관계
5. 일본 유학과 문명

3부_ 새로운 사유의 형성과 전유되는 전통

9장 대한제국 말기 동아시아 전통 한문의 근대적 전유 轉有 _ 노관범
1. 근대 한문의 발견
2. 『고등한문독본』이라는 한문 교과서
3. 『고등한문독본』의 당대적 사유
4. 근대 한문의 의미
10장 과도기의 형식과 근대성 - 근대계몽기 신문연재소설 『신단공안』과 형식의 계보학 _ 박소현
1. 근대성의 형식과 『신단공안』
2. 『신단공안』과 공안 그리고 근대 신문
3. 『신단공안』과 탐정소설
4. 억압된 근대성의 서사로서 『신단공안』
11장_ 19세기 전ㆍ중반 사무라이의 정치화와 ‘학당’ -미토번과 사쓰마번을 중심으로 _ 박훈
1. ‘학당學黨’의 대두
2. 미토번 번교 고도칸과 신분제
3. 고도칸과 ‘학적 네트워크’
4. ‘학적 네트워크’와 ‘학당學黨’의 출현: 사쓰마번의 ‘근사록당’을 중심으로
5. ‘학당’의 확산
12장 신해혁명 시기의 민족문제와 중국 민족주의 - 캉유웨이의 『대동서』를 중심으로 _ 무라타 유지로
1. 제2대민족정책의 대두
2. 캉유웨이와 『대동서』
3. 종교와 대동
4. 디스토피아dystopia로서 대동
5. 자유와 통제
6. 동화와 배제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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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서구와 근대가 만든 시간관(역사관)을 제거하고
    동아시아 역사상을 다시 구축하자”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동아시아를 목적격으로 하면서 서구의 학계가 주도했던 남아프리카, 서아시아와 같은 지역연구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방법으로서 동아시아’를 탐구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방법으로서 동아시아를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책의 기획자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대 동아시아학술원)는 이에 대해 “단순히 동아시아에 한정되지 않고 보편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지금까지 서구중심의 학문체계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포함하는 것”이며, “21세기의 세계를 전망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것”이라 의미를 부여한다.

    서구와 근대가 만든 역사관을 제거하고 동아시아 역사상을 구축하자는 모토로 진행하고 있는 ‘19세기의 동아시아’의 집단연구는 이 책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면?』에서 일대 전환기였던 19세기, 역사의 길목에 선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활동과 사유를 탐구한다. 심대윤(1806~1872), 요코이 쇼난(1809~1869), 요시다 쇼인(1830~1859),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 나카에 조민(1847~1901), 이기(1848~1909), 캉유웨이(1858~1931), 박은식(1859~1925), 신채호(1880~1936), 천후안장(1881~1931) 등 한국과 일본, 중국의 지식인을 전통적 사유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며 상호 비교해 보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19세기는 나라마다 시기나 정도 면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전통적 질서에 균열이 가고 서세동점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 때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내부적 위기와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대응하려는 다기한 사유들이 분출하였다. 당시 동아시아 각국의 지식인들이 바라본 ‘근대’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고뇌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할까?

    모두 12인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 책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라타 유지로(도쿄대 교수), 스다 쓰토무(메이지대 교수), 조경달(지바대 교수) 등 일본인 또는 재일교포 연구자가 워크숍과 학술대회에 함께 한 결실이라는 점이다. 또 기왕의 연구와는 가장 큰 차이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생활과 사유구조를 ‘내재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연구들은 전통적 엘리트보다는 새로 등장하는 근대적 지식인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사회적 활동이나 민족운동 면에서의 역할에 주목해왔다. 전통적 지식인에 대한 일부의 관심도 그들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완전하게 서구적 근대를 수용했는지를 중심으로, 또 민족운동이나 식민권력과의 관계나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근대의 논리 속으로 회수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것과도 다른 삶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의 첫 책으로 학계에 신선한 반향을 던졌던『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동아시아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너머북스, 2015)에 이은 결과물로,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면?-역사의 길목에 선 동아시아 지식인들』과 세 번째 책『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지속과 변화, 관계와 비교』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주도하고 역사, 철학, 인류학, 민속학 등을 전공한 30여 명의 국내외연구자가 참여하였다.


    역사적 전환기, 동아시아 지식인의 사유에서 어떤 담론이 존재했는가?

    서세동점의 역사적 전환기, 동아시아 세계에는 사회진화론이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식인들의 수용형태에는 진보중시와 경쟁중시라는 두 가지 길이 있었고, 전자 쪽이 좀 더 일반적이었다. 이 책은 당대로 한걸음 더 들어가 동아시아 지식인의 사유에서 어떤 담론이 존재했는지 살핀다.
    먼저 ‘국가(도의관)를 둘러싼 근대 한일사상 비교’에서 조경달 교수(지바대)가 주목한 인물은 박은식과 신채호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에게도 낯선 ‘이기’이다. 그 까닭은 박은식과 신채호의 사상적 특징이 경쟁중시적인 사회진화론으로서 ‘도의’를 비판하여 철저한 국가주의를 정립하려 한데 반해, 이기는 도의에 대한 신념을 (무의식적으로) 마지막까지 완전히 방기하지 않은 채 국가주의를 정립하려 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경달은 나아가 이기와 나카에 조민의 국가사상을 조선과 에도시대의 유학사상, 특히 도의관의 차이라는 맥락에서 비교하는데, 결국 주자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한국의 국가사상에는 국가주의를 넘어선 ‘또 하나의 근대사상’이 형성될 계기가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개인을 출발점으로 경제행위를 분석하려는 서구 경제학의 주류와 달리 집단적으로 사는 인간, 덕을 지닌 인간을 전제로 한 유교경제학은 가능할까?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대 동아시아학술원)는 한국의 심대윤, 중국의 천후안장, 일본의 시부사와 에이이치 등 동아시아의 지식인이 경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비교한다. 심대윤은 양반이지만 상업에 종사하며 이(利)를 적극 긍정했다는 점, 시부사와는 『논어』의 가르침을 경제활동의 지침으로 삼았다는 점을 상기하는데,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의 천후안장이다. 저자는 천후안장의 컬럼비아대 박사학위 논문을 엮은 책 『공자와 그 학파의 이재학 원리』을 소개하는데, 그가 서구의 경제학에 대항할 유교경제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구상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도는 그 당시로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 이후로도 거의 전무한 시도로서 높이 평가된다고 강조한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이슬람, 인도 등 최근 비서구 지역의 전통적인 경제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맥락에서 유교경제학이 가능할지에 대한 현재적 재고가 중요하다며, 다시 사유해볼 것을 주문한다.


    유학이 근대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까닭은?

    한중일 3국의 실학 개념(이경구), 동학에 대한 이해와 유교(배항섭), 이기와 유인석 비교(김선희), 민국시대 중국 학술사회의 풍경(문명기), 일본 지식인의 국체와 도 관념(스다 쓰토무), 나카무라 마사나오의 문명론(이새봄) 등 이 책에서 이어지는 글들은, 모두 전통적 지식이나 사유가 변화해가는 다양한 갈래 혹은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지속되는 전통적 사유들을 동아시아 전통적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던 유학과의 관련 속에서 살펴본다.

    배항섭 교수(성대 동아시아학술원)는 「동학교도의 동학에 대한 이해와 유교」에서 동학이 민중에게 이해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유학이라는 지배이념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있다. 그동안 동학사상이나 동학농민군은 유교와 전통적 지배질서를 반대하고 근대를 지향한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농민군의 통문, 격문들은 오히려 전통적 유교의 언어로 점철되어 있었고, 동학농민군들은 왕토, 왕민사상 등 유교적 이념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배항섭은 동학교도나 농민군이 동학을 유학에 대한 재해석 내지 새로운 해석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며, 그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이상사회를 추구한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농민군들의 행동과 생각은 유교적 질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열어나가고 있었음은 주지하는 바대로의 사실이다.

    이새봄(서울대 동양사학과 강사)의 「유학적 관점에서 본 나카무라 마사나오의 문명론」은 유학과 양학을 전통과 근대로 구별하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기존 연구들이 나카무라를 ‘계몽사상가’로 그려왔던 데 반해 이새봄은 나카무라 사상의 근거는 유학이라 주장한다. 유학적 사고를 기축으로 하여 서양의 civilization 개념을 이해했으며, 문명개화를 실현하기 위한 기초로써 인민의 도덕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도쿠가와 막말 사무라이들이 정치행동에 나서게 되는 배경은?

    대한제국기 전통 한문의 근대적 전유(노관범), 신문연재소설 『신단공안』의 형식과 계보학(박소현), 도쿠가와 막말 사무라이의 정치화와 학당(박훈), 신해혁명 시기 민족문제와 중국 민족주의(무라타 유지로) 등 이 책의 마지막 4편의 글들은 19세기 동아시아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사상과 문화 혹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정치사상을 전통적 사상과 문화의 전유라는 맥락에서 살펴본다.

    「19세기 전·중반 사무라이의 정치화와 ‘학당’」은 그동안 19세기 전반에서 도쿠가와 막말기에 걸친 일본의 정치사를 유학에 근거한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확산이라는 시각에서 연구해온 박훈 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가 그 연장에서 쓴 글로, 미토번과 사쓰마번을 사례로 삼아 사무라이사회에서 ‘사대부적 정치문화’, 특히 ‘학적 네트워크’와 ‘학당’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살핀다. 박훈은 ‘사대부적 정치문화’ 가운데 학적 네트워크와 학당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은 본래 군인 또는 서리에 불과한 사무라이들이 ‘지사(志士)’를 자처하며(사무라이의 사화(士化)) 정치행동에 나서게 되는 배경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학적 네트워크의 핵심이 비교적 낮은 신분 출신자들이었지만, 이들이 번교의 교원으로 많은 학생을 장악하며 강의를 매개로 번의 실력자들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모습(미토번), 또 학당들은 모두 소라이학파나 그 영향을 받아 시문을 중시하는 학풍을 공격했고, 훈고적 경향이나 고답적 경전연구 등을 강하게 비판한 반면, 경세(經世), 즉 현실정치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학문(학정일치)를 강조하였고, 이를 ‘실학(實學)’이라고 자칭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들
    김선희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무라타 유지로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문명기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교수
    박소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배항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스다 쓰토무 메이지대 정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이새봄 서울대 동양사학과 강사
    조경달 지바대 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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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P.322~323] 생각해보면 수십만의 무사가 엄연히 존재하는 막말기 일본에서 대규모 질서재편이 ‘전투’가 아니라 ‘정치’로 결정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 남북조동란, 전국시대에는 대규모 노골적 폭력이 정국의 향배를 결정했다. 물론 막말기에도 전투는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사무라이들은 전투보다는 정치투쟁과 ‘공의여론公議輿論’의 획득에 열심이었고, 실제로 그것의 성패가 사태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많은 사무라이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정치행위에 능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상서를 써서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거나 당파를 만들어 권력투쟁에 나서는 등 정치경험을 풍부하게 쌓고 있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무라이의 정치행위 과정에서 ‘학적 네트워크’와 ‘학당’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글은 구마모토번熊本藩에 이어 이 같은 문제의식을 미토번과 사쓰마번의 사례를 들어 검토해본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미토번은 고산케 御三家의 하나로 원래는 막부를 보위해야 했으나 존왕사상을 주창하여 막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막말기 정치운동의 중심이 된 번이다. 사쓰마번은 도자마外樣의 웅번雄藩으로, 널리 알려진 대로 조슈번長州藩과 더불어 이 시기 정치운동을 이끈 번 중 하나이다. 구마모토번을 연구한 데 이어 관동과 서남 지역을 대표하는 이 두 번의 사례연구가 추가된다면, 사무라이사회에서 ‘학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그에 기반을 둔 사무라이의 정치화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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