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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4
차례 6
삼국통일 이해의 전제-서설을 대신하여- 9

제1편 김춘추와 정치 활동 19

제1장 7세기 나당관계의 흐름 20
1. 머리말 - 21
2. 접근시각 - 24
3. 7세기 초 동아시아의 정세 - 27
4. 신라와 당의 접촉 - 32
5. 김춘추의 입당과 밀약 - 38
6. 나당연합군의 결성과 백제 공격 - 47
7. 백제 멸망 이후 나당관계의 전개 - 54
8. 맺음말 - 61

제2장 김춘추의 외교 활동과 신라 내정 64
1. 머리말 - 65
2. 비담의 난과 신라 내정 - 68
3. 김춘추의 고구려 청병 외교 - 73
4. 당의 고구려 침공과 신라의 원병 파견 - 79
5. 김춘추의 도일과 그 영향 - 92
6. 김춘추의 대당 활동과 내정 개혁 - 105
7. 맺음말 - 115

제3장 나당동맹의 시작과 끝 118
1. 머리말 - 119
2. 〈답설인귀서〉의 음미 - 121
3. 나당동맹의 결성 과정과 그 배경 - 128
4. 나당동맹의 전개 양상 - 139
5. 나당동맹의 파탄과 그 여파 - 147
6. 맺음말 - 154

제4장 김춘추의 정치 지향과 유학 157
1. 머리말 - 158
2. 도당의 목적 - 160
3. 인명과 유학 - 169
4. 정치 지향과 유학 - 179
5. 맺음말 - 188

제5장 신라의 국학 수용과 그 전개 190
1. 머리말 - 191
2. 수용의 전야와 배경 - 193
3. 설치와 운영 - 204
4. 국학과 독서삼품과 - 219
5. 맺음말 - 229

제2편 김춘추와 그 주변의 사람들 233

제1장 비담의 난과 선덕여왕대 정치 운영 234
1. 머리말 - 235
2. 비담의 난과 진덕여왕의 즉위 - 237
3. 선덕여왕의 즉위와 정국 동향 - 247
4. 선덕여왕대의 정치 운영 - 259
5. 맺음말 - 270

제2장 김유신의 정치 지향 273
1. 머리말 - 274
2. 관련 사료의 문제 - 276
3. 7세기의 신라 정국 - 284
4. 김유신의 정치 지향과 한계 - 289
5. 맺음말 - 302
제3장 김춘추와 자장 305
1. 머리말 - 306
2. 중고기의 정국과 선덕여왕의 즉위 - 308
3. 선덕여왕의 치세와 김춘추?자장 - 317
4. 자장의 9층 목탑 건립 추진과 김춘추 - 330
5. 김춘추의 즉위와 자장의 향방 - 336
6. 맺음말 - 348

제4장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강수 351
1. 머리말 - 352
2. 묘호 태종과 강수 - 354
3. 무열왕과 강수의 만남 - 362
4. 무열왕 김춘추의 정치 지향과 강수 - 373
5. 맺음말 - 382

참고문헌 384
찾아보기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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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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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와 그 사람들은 왜 친당 외교를 벌였는가?
외교사적 관점에서 격동기 태종무열왕의 대처 방안을 다각도로 분석한 화제의 신간


신라사 연구의 대가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가 금석문과 임나일본부, 가야사에 이어 이번엔 삼국통일의 내막을 김춘추와 김유신을 주축으로 풀어냈다. 그의 작업은 편견에 가까운 기존 학설을 통쾌하게 타파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신라 통일 주역에 얽힌 편견 뒤집기

삼국통일의 배경에는 당과 결탁한 신라의 배족 행위가 있었다는 설은 학계만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정설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김춘추와 김유신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근현대의 ‘민족’ 관념에서 재단한 것이며, 왜 김춘추가 친당 외교를 펼쳤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춘추가 당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중시한 것은 당제 수용을 통하여 유교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새 시대를 창출하려 했던 열망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입체적 인물상 소묘의 조건

이 책이 기존 학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도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철저하게 사료 비판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김유신 현손이 기록한 《행록》에는 주관성이 개입하게 마련이며, 《일본서기》의 기록에는 국가주의적 인식이 내재해 있으므로, 저자는 객관적 입장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료의 상호 대조 및 비판을 중시했다. 아울러 저자는 한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함으로써 대변혁기 신라사의 ‘진실’에 더욱 다가갈 수 있었다. 예컨대 비담의 난은 유교를 지향하는 신흥 세력-불교이데올로기파의 사상적 충돌이면서, 동시에 여주 지지파에 반기를 든 여왕 즉위 반대파의 정치적 난이라고도 정의내리고 있다.

외교사적 입장에서 신라 통일의 내막 조명

김춘추가 ‘유교 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7세기 동아시아 격동기에서 열세에 처해 있던 소국 신라의 생존 전략으로 택한 방법은 내부 정비와 외교였다. 그로써 신라는 “역설적으로 국제관계의 중심축”이 되었다. 따라서 외교사적 관점에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다각도로 고찰하고 명쾌하게 정리?분석해 나간 저자의 안목 역시 탁월했다고 할 것이다. 저자의 논점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신라 내부 사정만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의 외교 전략, 당과 일본의 국내 정세 등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660년 나당군사동맹이 결성되었던 이유는, 당태종 이후 측천무후와 진덕여왕 사후 김춘추가 모두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대외전쟁으로 눈을 돌리는 타이밍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신라가 당의 신뢰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내막이나 648년 당과의 밀약이 나당전쟁으로 비화된 원인 등이 논리 정연하게 서술되어 있다.

김춘추의 청사진과 그 인물들

삼국일통(三國一統)의 성립은 단순히 신라와 당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열왕 김춘추는 첫째, 새 신라사회 건설에 대한 청사진이 확고했고, 둘째, 그를 구체화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였다. 김춘추는 출신 성분으로 주류사회에서 소외당했던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김유신을 중용하고, 강수의 능력을 일찍이 알아보고 외교가로서 적극 활용하였다. 14세기 전 격동기 못지않은 외교적 시험대에 서 있는 한국의 진로 모색에 김춘추의 전략과 통찰력은 충분히 고려될 만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만이 아니라 사회 각계의 지도층에게도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