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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하순봉 회고록 :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 / 하순봉 지음 인기도
발행사항
파주 : 연장통, 2010
청구기호
金珍培 320.92 -11-1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317 p. : 삽화 ; 23 cm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95464762
제어번호
MONO1201849397
주기사항
한자표제: 河舜鳳 回顧錄
표제관련정보: 대한민국 현대정치 현장리포트-박정희에서 이명박까지
부록: 국회 연설문
참고문헌(p. 311)과 "하순봉 연보" 및 색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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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431554 金珍培 320.92 -11-1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청와대 출입기자, MBC 뉴스데스크 앵커, 4선 국회의원 하순봉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소중한 증언. 누구나 궁금해 하면서도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대한민국 현대정치의 불편한 진실이 그의 70년 회고가 담긴, 하순봉 회고록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를 통해 숨김없이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전하는 앵커 하순봉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언론인으로 앵커가 되었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2010년 현재, 하순봉을 기억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역사에 아로새겨진 삶의 흔적은 누가 기억하고 못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판단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수록 더욱 소중해진다. 올해로 일흔이 되는 언론인이자 정치인 하순봉은 지나온 세월을 회고하며,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알지 못하는 역사의 진실을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를 통해 친절하게 되찾아 준다.

    그는 바른 정치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장서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큰소리로 동트는 새벽, 희망을 약속하며, 암흑의 밤, 실망과 고통 속에서 살게 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 속에서, 그는 역사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가 몸소 헤쳐온 대한민국 현대정치의 진실을 우리 시대에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 시대에 전하는 이야기는 소중한 증언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암흑의 밤에 머물러야만 동트는 새벽이 간절해지는 것을 정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픔을 이겨내는 동안, 정치는 새로운 암흑의 밤을 모색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진실된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동트는 새벽을 가져다줄 희망인 것이다.

    말더듬이 소년 시절의 고통을 이겨내고 유명한 TV 앵커가 되었고, 유신을 비판하다 처벌받았으면서도, 유신 잔당으로 몰려 천직으로 여겼던 언론계를 떠나 정치의 길로 접어들었고, 노신영 대통령을 꿈꾸었고,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두 번이나 온 몸으로 헌신하였고...... 항상 열정적으로 살아온 언론인이며 정치인이었던 하순봉.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 동트는 새벽을 가져다 줄 희망을 위해, 직접 촛불을 밝혀두고 그가 살아온 인고의 세월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썼다.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대로, 반성은 반성대로, 언론인답게 사실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회고한 인생 70년. 역사의 소중함을 알기에 겸손하게 하순봉 회고록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을 내놓으며, 그는 여전히 동트는 새벽에 서서 희망을 보고 있다.

    하순봉, 그의 가슴 속에는 항상 '작은 대한민국'이 있다. 사랑하는 대한민국, 그 정치 현장의 일선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정직하게 달려온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당신의 가슴 속에는 어떤 대한민국이 있는가? 동트는 밝은 대한민국이 있는가, 어둡고 슬픈 대한민국이 있는가?


    대한민국 현대정치 현장리포트-박정희에서 이명박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남로당 군사부 비밀당원, 쿠데타 주모자에서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81년 10월 1일 국군의날 행사장에서 핵무기를 내외에 공개하고 하야하려 했다. 후계자는 JP, 김종필이었다.
    -“재혼할 것이다. 그러나 근혜가 더 급하다.” 딸 근혜 씨의 결혼 추진기
    -가장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박근혜 씨에게 던지는 고언(苦言)
    -10.26 밤 그 현장, 사슴도 놀라 죽고, 부엉이도 슬피 울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그는 열사인가? 패륜아, 역도인가?

    차지철 전 경호실장
    -차지철에게 앞다투어 줄을 섰던 정치인들.
    -1979년 새해 시무식에서 차지철은 왜 비감어린 언행을 하였나?

    최규하 전 대통령
    -그는 왜, 정승화 체포를 끝까지 망설였나?
    -12.12와 5.18 광주사태의 전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1988 서울올림픽 개회식도 못오게 한 노태우의 배신.
    -백담사 귀향살이에서 쌓인 분노. 그들은 지금도 상종하지 않고 있다.
    -6.29 선언 노태우의 승부수였나? 전두환의 필사즉생 결단이었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 시대
    -적이냐? 동지냐?
    -김대중 사상 시비. 김대중이 도망간 사연.
    -칼국수 정치의 허와 실.
    -노동법 날치기 처리의 경과.
    -DJP 연대의 속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대쪽 이회창 대통령 후보와 김영삼 대통령과의 갈등.
    -파면인가? 사표인가?
    -그는 왜 두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졌나.

    노무현 전 대통령
    -왜 스스로 몸을 던졌나?
    -순민(殉民)이냐 순절(殉節)이냐?
    -민주화 진보세력이 명심해야 할 것.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의 어제와 오늘.
    -그는 눈물 젖은 빵의 맛을 잊었나?
    -대통령은 이렇게 해야 한다.
    더보기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머리말, 암흑의 밤보다 동트는 새벽을 기도한다

    철들고 나서부터 오늘까지 줄기차게 이어져온 의문이 있다. 역사의 향방과 역사의 주체에 대한 회의가 그것이다.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해방이 되고 근대 헌정이 시작된 지 60년을 넘어서까지 때로는 역류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여울처럼 급류를 이루기도 했던, 저 역사의 흐름에 떠밀리면서 그 의문은 깊어져 갔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라든가 ‘역사는 어차피 힘 가진 소수의 편에 서는 것이다’ 라는 가설이 정설인 양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볼 때마다 역사에 대한 나의 의문은 더해 간다.
    그 의문은 아득히 먼 기원전 사마천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마천은 역사를 위하여 거세된 선비이다. 흉노 정벌에 실패한 한(漢)나라의 명장 이릉(李陵)을 변호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고, 무제(武帝)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사마천은 역사를 저술하기 위하여 죽어서는 안 되는 몸임을 자각한다. 끝내 그는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하고, 거세된 몸으로 만고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남긴다. 그리고 그는 역사에 대한 뼈아픈 회의를 던진다. ‘천도(天道)’ 그것은 과연 옳으냐 그르냐? 라고.
    고등학교 시절 나는 『사기』를 비봉산 기슭에서 처음 읽었다. 보병 소대장 시절, 휴전선을 지키는 철책에서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역사의 전면에 나섰던 인물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하늘에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부초처럼 흔적 없이 살다 간 무수한 사람들이 별과 같이 명멸하고 있었다.
    겨울밤 휴전선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도 역사의 숨결은 담겨져 있었다. 지난 우리의 근현대사가 말해주듯,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험난한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들이었기에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마음 더욱 간절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역사인식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정치에서 사십 년의 세월을 지나온 지금 내게는 많은 아픔이 있다.
    한때 번뜩이는 시대정신, 기자정신에 나는 얼마나 충실하였던가. 나는 그 정신을 구현하려고 얼마나 노력하였던가…….
    삼십여 년 전 현역 언론인 시절의 일이다. 로마에서 취재를 마치고 파리로 가는 도중이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심한 악천후를 만나 비행기가 곤두박질치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어떤 백인 여자 승객은 주기도문을 소리치며 외웠고, 한 동양인 승객은 새파랗게 질려 울부짖고 있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내 옆자리에 있던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일본인 남자는 당시의 상황을 가족들에게 남기는 듯 차분하게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지금 나는 그때 그 일본인 탑승객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내가 지나온 길에는 심한 악천후가 많았고, 파도가 높았다. 그만큼 그 길에 대한 기록은 더욱 소중할 것이다.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회고록을 쓰는 것은 특별히 글재주가 있어서도 아니고, 더구나 잘났다고 유별나게 뽐내고 싶어서도 아니다. 아수라장 속에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상황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그 일본인 탑승객과 같은 마음이다.
    나는 언론인으로, 또한 정치인으로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꿈을 전하며 살아왔다. 책 제목을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로 한 것은 나는 아직도 희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내가 지나온 길을 객관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담겨 있다. 내가 기술한 정치적인 사건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고희의 나이를 먹으면서, 그동안 내가 겪었던 주변의 상황들을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 되뇌었을 뿐이다. 어쩌면 회한과 반성하는 마음이 더 깊게 깔렸을는지도 모른다.
    기억이 희미하거나 분명치 않은 부분은 후기한 문헌들을 참고하거나, 나의 견해와 일치한 경우에는 원문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혀 둔다. 글을 쓴 분들에게 심심한 양해를 구한다. 또 가능한 한 표현을 객관화하려다 보니, 관계된 분들의 직함이나 존칭을 생략하는 수가 많았다. 죄송스럽다. 불쾌해하거나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 나라 근대 헌정 육십 년, 적지 않게 정권이 들어서고 물러나는 과정에서 그때마다 주역들은 자신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트는 새벽’을 열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또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주는 ‘암흑의 밤’을 몰고 왔다. 동트는 새벽은 암흑의 밤을 헤치고 나온다. 암흑의 밤 없이는 동트는 새벽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필연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동트는 새벽에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도 암흑의 밤보다 동트는 새벽을 기도한다.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서 희망을 보고 있다. 굴곡 진 역사 속에서 4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정치인으로 살아온 나의 회고를 책으로 엮으며, 여러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 그만큼 내 인생이 쓸쓸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일일히 밝히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감사한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을 발행한 도서출판 연장통 최훈 대표, 항상 가까운 곳에서 원고를 정리하는 데 손발이 되어준 일자리 방송 김종필 부사장, 기획자를 자처하며 이 책의 출판 전반에 걸쳐 큰 도움을 준 나의 오랜 벗, 열화당 이기웅 대표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천십년 시월, 목림서실에서
    하순봉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다

    나는 1976년 편집부 차장과 사회부 차장을 거쳐 1978년 정치부 차장으로 청와대를 출입하게 되었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저격으로 서거한 지 얼마 되질 않아 청와대 보안은 철저했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는 것도 엄격한 신원조사를 통과해야만 하였고, 특히 여권 언론사인 서울신문, 경향신문 등 일부 신문과 KBS, MBC 등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
    MBC에서는 3명의 기자가 추천되었는데,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유신을 반대했다는 나의 신원기록을 보고 “MBC 기자가 유신을 반대해?” 라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를 낙점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왜 그런 판단을 하였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국가 지도자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면모를 유추할 수 있는 또 다른 한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선일보 안병훈, 이현구, 한국일보 송효빈, 윤국병, 중앙일보 성병욱, 동아일보 강성재(15대 국회의원 역임), 서울신문 이재근, 신아일보 김길홍(13, 14대 국회의원 역임), 부산일보 송정재, 국제신문 최귀영, KBS 박성범(15, 17대의원 국회의원 역임), CBS 김진기, 코리아타임스 조병필 씨 등 당대의 쟁쟁한 언론인들이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다. 나는 얼마 후 기자단을 대변하는 출입기자단 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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