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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두예 춘추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 : '보정체제'의 관점에서 본 두예 학문 = A new understanding of Du-Yu's spring and autumn studies : from the perspective of the regent ruling system / 김석우 지음 인기도
발행사항
서울 : 일조각, 2019
청구기호
181.216 -19-4
자료실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형태사항
383 p. ; 23 cm
총서사항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연구전간 = Humanities monographs. Research Institute for Humanities, Sogang University ; 56
표준번호/부호
ISBN: 9788933707548
제어번호
MONO1201913476
주기사항
부록: 표
참고문헌(p. 363-373)과 색인 수록
"두예 연보" 수록
중국어 요약본 있음

목차보기더보기


머리말
서론

제1부_ 초순의 두예 비판 검토: 『춘추좌전보소』를 중심으로
Ⅰ. 초순의 경학관
Ⅱ. 『춘추좌전보소』의 서문
Ⅲ. 의리 항목 검토
Ⅳ. 춘추시대의 ‘위정爲政’과 조위시대의 ‘보정輔政’

제2부_ 두예의 가치관과 관료로서의 행적

제1장 부친 두서의 영향: 『체론』을 중심으로
Ⅰ. 두서와 두예
Ⅱ. 두서와 사마의
Ⅲ. 『체론』의 구성과 내용
Ⅳ. 『체론』의 논리와 조위의 정치
Ⅴ. 두예의 학문에 미친 영향

제2장 관료로서의 두예: 함녕 4년(278)의 재해 대책을 중심으로
Ⅰ. 278년 수해와 두예의 대책
Ⅱ. 사피 문제와 수해의 원인
Ⅲ. 후한 말~조위 시기 개발과 서진의 재해
Ⅳ. 재해 대책에 드러난 정치적 입장

제3부_ 정치와 학문 사이

제1장 예제, 의례 논란과 ‘『춘추』의 시작’
Ⅰ. ‘양암단상제’
Ⅱ. ‘서시례’
Ⅲ. ‘『춘추』의 시작’: 「춘추좌씨전서」 둘째 문답을 중심으로

제2장 은공 조 주석과 진사晉史의 단한斷限
Ⅰ. ‘『춘추』의 시작’에 관한 논의들
Ⅱ. 은공 조 두예 주석의 특징
Ⅲ. 진사晉史의 단한

제4부_ 춘추학에서 역사학으로

제1장 두예의 『춘추』 해석법: 「춘추좌씨전서」 첫째 문답을 중심으로
Ⅰ. 개별과 보편
Ⅱ. 기록과 사실
Ⅲ. 의례와 문장

제2장 두예 주석의 체계
Ⅰ. 주석의 범례: ‘타개방차’ 유형
Ⅱ. 인과관계: ‘A 위 B 전’, ‘A 위 B 장본/기본’ 유형
Ⅲ.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 ‘전언’ 유형

제3장 사실의 강조: 한대 주석과 두예 주석의 비교
Ⅰ. 가규 주석과 두예 주석의 비교
Ⅱ. 복건 주석과 두예 주석의 비교
Ⅲ. 두예 주석의 특징

결론

부록
-두예 연보
-표

중문 목차
중문적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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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499741 181.216 -19-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499742 181.216 -19-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 제공)

    『춘추』를 이해하는 길을 연 두예의 춘추학
    『춘추(春秋)』는 기원전 5세기 초에 공자(孔子)가 엮은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사서(史書)로서, 춘추시대 노(魯) 은공(隱公) 원년(BC 722년)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년)까지의 사적(事跡)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책이다. 공자가 이 책을 엮기 전에 『춘추』라는 기록이 있었는데 이를 공자가 새롭게 편수한 것이 현재 알려진 『춘추』이다. 동주(東周) 시대의 전반기를 일컫는 ‘춘추시대’라는 용어는 이 책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춘추』의 내용은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그 의미를 해석하고 풀이하는 주석서인 ‘전(傳)’이 23가(家) 948편(篇)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 『좌씨전(左氏傳)』이다. 이처럼 『춘추』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학문을 춘추학이라고 한다.
    춘추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두예(杜預, 222~284)이다. 그는 중국 진대(晉代)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조위 왕조와 서진 왕조에서 관직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춘추』의 경문(經文)과 『좌씨전』을 정리해 『춘추좌씨경전집해(春秋左氏經傳集解)』를 저술했다. 당대(唐代) 사람 공영달(孔穎達)은 『오경정의五經正義』를 편찬하면서 『춘추좌씨전』의 공인 주석으로 두예의 책을 선택했고, 이후 두예의 주석은 『춘추좌씨전』의 공식 해설서가 되었다. 그 후 약 천 년 동안 두예를 통하여 『춘추』를 이해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현대 유학자 양보쥔(楊伯峻)의 『춘추좌전주(春秋左傳注)』가 등장하기 전까지 두예 주석은 그 지위를 굳건히 유지했다.

    두예 춘추학에 대한 기존 비판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이해를 모색하다
    무려 천 년 간 춘추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두예의 춘추학은 후대로 갈수록 비판의 도마에 자주 올랐다. 송대 이후 군주 권력이 강화되고 성리학적 명분론이 중시되자 위진시대에 사마씨와 손잡은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청대에 이르자 최고조에 달했다. 청대 학자인 초순이 쓴 『춘추좌전보소』는 당대뿐만 아니라 후학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후대 학자들은 두예를 조위 왕조를 무너뜨리고 서진 왕조를 세운 사마씨에게 부역한 반역자라고 보았다. 두예의 부인은 당시 권력자 사마소의 동생이었고, 두예는 권력의 핵심부에서 서진 왕조 수립을 돕고, 서진 정부에서 7년간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후대 학자들은 이 같은 행보를 한 두예가 자신의 정치적 행위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춘추좌씨전』의 주석을 달았으며, 따라서 그의 춘추학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와 두예의 정치성을 배제하고 그의 학문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두예의 처신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방증한다.
    전범(典範)의 지위에서 정치적 목적을 띤 저술로까지 끌어내려진 바 있는 두예의 학문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비록 두예 춘추학의 학문적 가치를 낮게 보는 시각이 있으나, 지금까지 학계에서 주목받은 두예 학문의 특성은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춘추좌씨전』을 독창적으로 해석했다. 『춘추좌씨전』에서 새로운 의례를 수립하고 그에 기초한 해석 체계를 세웠다. 둘째, 기존 『춘추좌씨전』 연구의 결과들을 집대성했다. 셋째, 실증성과 합리성이 부각된 내용을 간결하게 서술했다. 넷째, 역사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 사서 서술과 해석이 ‘역사학’이라는 독립적 학문 분야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한 시기는 위진시대이다. 두예의 춘추학은 그러한 ‘자각’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
    지은이는 이 같은 두예 학문의 특성을 인정하되, 그동안 답보 상태였던 두예 학문의 정치 사회적 의의에 대한 논의에 눈길을 돌린다. 과연 두예는 임금을 배신하고 나라를 어지럽힌 ‘난신적자亂臣賊子’였을까? 송대, 청대 학자들은 당대의 시각으로 두예를 비판했는데, 그것이 과연 적절한 해석 방법일까? 그보다 두예가 산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두예와 그의 학문을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 해석 방법이 아닐까? 두예가 산 시대에는 정치적 명분과 실제 사이의 간극이 매우 컸다.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 등 3대에 걸쳐 사마씨 보정輔政(국왕을 도와서 나라를 다스림. 또는 그러한 일을 하는 재상을 지칭하는 용어)대신들이 권력을 장악했는데, 이는 한 왕조 이래 장기간 존속한 일반적인 권력 구조였다. 학계에서는 한대 곽광 이래 후한, 위진남북조, 수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이 권력 구조를 ‘보정체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즉 당시 일반적인 국가 지배체제는 황제라는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라 보정대신이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체제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예가 사마씨와 손잡은 ‘패륜적, 반역적’ 인물이라는 평가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또한 두예가 자신의 처신을 옹호하기 위해 『춘추』를 왜곡해서 해석했다는 평가 역시 설 자리를 잃는다. 지은이는 이처럼 두예 춘추학을 이해하는 관점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두예의 학문이 춘추학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두예 춘추학이 비판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초순의 『춘추좌전보소』를 검토한다. 초순은 두예가 『춘추좌씨전』을 곡해하여 자신의 불효와 불충을 가리려 했고, 두예의 춘추학이 훗날 널리 선양된 이유도 권력 찬탈자에게 유용한 논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초순의 주장은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두예 학문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조차 두예의 정치적 처신에 대해서는 논의를 피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과연 초순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하나하나 검토해 본다.
    제2부에서는 두예라는 인물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가치관과 관료로서의 행적을 살펴본다. 두예 개인에 대하여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 여기에서는 남아 있는 문헌을 바탕으로, 부친 두서의 저술을 통해 그가 두예에게 미친 영향을 헤아려 보고, 두예의 관료 활동을 통해 그가 정치적으로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파악해 본다.
    제3부에서는 두예 학문의 정치적 의미를 살펴본다. ‘양암단상제’와 ‘서시례’에 대한 두예의 기사는 그가 정치적 이익을 도모한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는 데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지은이는 이를 자세히 검토해 두예의 학문이 실제로는 현실 정치의 이해관계와 무관했으며, 두예가 일관되고 합리적인 태도로 의례와 사실 간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했을 뿐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또한 ‘『춘추』의 시작’, 즉 왕조사를 서술할 때 그 시작점을 어디로 보았는가를 통해 두예가 보정체제를 왕조의 시작으로 보았음을 확인했다.
    제4부에서는 두예의 학문이 역사학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조명했다. 두예의 『춘추』 해석법과 주석의 특징을 자세히 비교 분석해 두예 주석이 역사학 발전에 미친 영향을 기존 연구와 다른 각도에서 검토했다.
    이 책 전체를 통해 지은이는 전제군주의 이념이 아닌 보정체제의 관점에서 두예의 학문을 바라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초순이 덧씌워놓은 이미지를 벗겨내 두예와 그의 학문을 당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 보고자 한다. 지은이가 바라보는 두예는 현실 정치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러한 제약 위에서 역사적 사실 추구라는 방법으로 진리를 탐구했고, 위진남북조시대에 역사학이란 학문 분야가 ‘자각’되고 발전하게 되는 과정의 일단을 연 학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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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서 (알라딘 제공)

    [P.58~59] 선학의 연구에 따르면 한대 곽광?光의 ‘보정’을 시작으로 후한, 위진남북조, 수당 초에는 막부 개설권을 가진 ‘보정’ 장군이 일정 기간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종종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는데, 선양은 그 과정을 도덕적 내용으로 포장하였다. 이처럼 후한 이후에 전개된 정치 관행의 특징은 ‘보정제’ 혹은 ‘보정체제’라는 용어로 개념화되었다. 특히 조위시대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의 ‘보정’은 ‘보정체제’가 작동한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P. 102] 두예는 『춘추』의 대의를 『좌전』에서 찾으려 하였다. 이것을 ‘전문주의傳文主義’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두예 학문의 주요한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이 등장하게 된 사상적 배경에 대해서 지금까지 설명된 일이 없다. 그것이 두예의 ‘예외적인’ 학문적 역량에서 나왔다거나 아니면 형주학의 영향이라는 설명이 있으나 설득력이 크지 않다. 필자는 그의 ‘전문주의’가 두서의 학문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본다.
    [P. 224] 역사적 사실의 의미는 이처럼 문장의 풍요로운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주관적 상상이 아니라 다른 사실들과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함으로써 얻어진다. 이것이 두예 경전 해석법의 진정한 특징이다. 두예의 학문은 경학 이념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역사 연구의 특성을 현저하게 갖추었다. 이로써 한대 경학의 왕좌에 있던 춘추학이 역사학의 발전을 선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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