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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ㆍ4
해제 포은 정몽주의 생애와 학문|박대현ㆍ23

고려 시중 포은 정 선생 유상 高麗侍中 圃隱鄭先生遺像ㆍ59
포은선생시권 서 圃隱先生詩卷序|권채 權採ㆍ60
포은선생시집 서 圃隱先生詩集序|노수신 盧守愼ㆍ65
포은선생시고 서 圃隱先生詩藁序|변계량 卞季良ㆍ71
포은선생시권 서 圃隱先生詩卷序|하륜 河崙ㆍ75
포은선생시권 서 圃隱先生詩卷序|박신 朴信ㆍ77

포은집 제1권
시詩
3월 19일에 바다를 건너 등주의 공관에 묵었다.
곽 통사와 김 압마가 바람에 배가 막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며 기다린 것이다
三月十九日 過海宿登州公館 郭通事金押馬 船阻風未至 因留待ㆍ87
봉래역에서 한 서장관에게 보이다 蓬萊驛 示韓書狀ㆍ89
용산역 龍山驛ㆍ90
황산역 길에서 黃山驛路上ㆍ91
제교역 벽에 적다 書諸橋驛壁上ㆍ92
내주 해신묘 萊州海神廟ㆍ93
교수현에서 서 교유 선 와 작별하다 膠水縣別徐敎諭 宣ㆍ94
구서역에서의 나그네 밤 客夜在丘西驛ㆍ95
4월 1일 고밀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四月初一日 高密縣聞ㆍㆍ96
한 총랑의 압록강 시에 차운하다 次韓摠郞鴨綠江詩韻ㆍ97
일조현 日照縣ㆍ98
술을 마시다 飮酒ㆍ99
공유현에 묵다 宿ㆍ楡縣ㆍ100
산동의 길을 가다 山東途中ㆍ101
종성과 종본 두 아이를 생각하다 憶宗誠宗本兩兒ㆍ102
왕방역에서 요동 정 진무 재 에게 주다 王坊驛贈遼東程鎭撫 載ㆍ103
상장역에서 고 시랑에게 주다 上莊驛贈高侍郞ㆍ106
이도은, 정삼봉, 이둔촌 세 군자를 그리워하다
有懷李陶隱鄭三峯李遁村三君子ㆍ107
산동 노인 山東老人ㆍ108
제성역의 밤비 諸城驛夜雨ㆍ109
금성역에서 송경의 벗들을 그리워하다 金城驛懷松京諸友ㆍ110
동양역의 매와 곰을 그린 벽화를 진 교유의 운을 써서 노래하다
ㆍ陽驛壁ㆍ鷹熊 歌用陳敎諭韻ㆍ111
한신묘 韓信墓ㆍ114
표모의 무덤 漂母塚ㆍ115
4월 14일에 회음수역에서 배에 오르다 四月十四日 淮陰水驛登舟ㆍ116
회음역에서 길이 나뉘어 방 진무를 작별하다 淮陰驛分道 別ㆍ鎭撫ㆍ117
배로 회음을 출발하여 보응현으로 향하다 舟發淮陰 向寶應縣ㆍ118
범광호의 새벽 경치 范光湖曉景ㆍ119
내가 본국에 있을 때 제교 설 선생의 이름을 익히 들었다.
지금 이 역을 지나가면서 밤길이 바빠 찾아뵙는 예를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길에서 칠언 율시를 읊어 뒷날 만나기를 꾀한다
僕在本國 飽聞諸橋ㆍ先生之名 今過是驛 莫夜悤悤 殊失謁見之禮 路上吟成七言唐律 以圖後會云ㆍ120
꿈 夢ㆍ121
고우호 高郵湖ㆍ122
고우성 高郵城ㆍ123
여행 중에 스스로 위로하다 客中自遣ㆍ124
양주 楊州ㆍ125
함께 가는 젊은이에게 재미 삼아 주다 ㆍ贈偕行年少ㆍ126
진주 眞州ㆍ127
양주 죽서정에서 송경의 벗들을 그리워하다 楊州竹西亭 懷松京諸友ㆍ128
배 안의 미인 舟中美人ㆍ129
4월 19일에 강을 건너 용담역에 이르다 절구 2수
四月十九日渡江 至龍潭驛 二絶ㆍ130
남경에 들어가다 入京ㆍ131
황도 4수 皇都 四首ㆍ132
두 번째 其二ㆍ133
세 번째 其三ㆍ134
네 번째 其四ㆍ135
남경을 나서다 出京ㆍ136
백로주에 배를 대다 舟次白鷺洲ㆍ137
양자도에서 북고산을 바라보며 김약재를 애도하다
楊子渡 望北固山悼金若齋ㆍ138
고우호 배 안에서 高郵湖舟中ㆍ139
배 안의 밤 흥취 舟中夜興ㆍ140
남쪽을 바라보다 南望ㆍ141
요동 방 진무의 부채에 적다 題遼東ㆍ鎭撫扇ㆍ142
단옷날 재미 삼아 적다 端午日ㆍ題ㆍ143
길을 가다 비를 만나다 途中遇雨ㆍ144
호수에서 물고기를 구경하다 절구 2수 湖中觀魚 二絶ㆍ145
제성현에서 퉁소 소리를 듣다 諸城縣聞簫ㆍ146
길가의 버드나무 路傍柳ㆍ147
공 주사에게 주다 贈孔主事ㆍ149
석교포에서 도 포사에게 보이다 石橋鋪 示陶鋪司ㆍ150
즉묵현 卽墨縣ㆍ151
전횡도 田橫島ㆍ152
봉래각 蓬萊閣ㆍ153
사문도 沙門島ㆍ154
철산 鐵山ㆍ155
여순역에서 역을 관장하는 마 진무에게 드리다 旅順驛 呈管驛馬鎭撫ㆍ156
여순역에서 비에 막히다 旅順驛阻雨ㆍ157
금주에서 위 지휘사 댁의 매 그림을 보고 짓다
金州韋指揮宅ㆍ鷹 走筆ㆍ158
화각 소리를 듣다 聞角ㆍ159
안시성에서 옛일을 생각하다 安市城懷古ㆍ160
양자강 楊子江ㆍ161
태평소 太平簫ㆍ162
이적이 싸우던 곳 李勣戰處ㆍ163
야항 野航ㆍ164
복주 관사 안의 우물 復州館中井ㆍ165
사행이 복주에 머물 때 왕 지휘사에게 올리고 겸하여 여러 지휘사 상공에게 드리다 2수
行次復州 呈王指揮 兼簡列位指揮相公 二首ㆍ166
양 지휘사에게 올리다 呈楊指揮ㆍ168
복주역의 밤비 復州驛夜雨ㆍ169
양주에서 비파를 먹다 楊州食枇杷ㆍ170
복주에서 앵두를 먹다 復州食櫻桃ㆍ171
갠 날씨를 기뻐하다 喜晴ㆍ172
경성에서 오이를 먹다 京城食瓜ㆍ173
연뿌리를 먹다 食藕ㆍ174
웅악의 옛 성 熊嶽古城ㆍ175
개주에서 묵다 宿蓋州ㆍ176
요하의 조운 遼河漕運ㆍ177
사탕수수 甘蔗ㆍ178
개주에서 빗속에 머물며 뒤처진 사람을 기다리다
蓋州雨中 留待落後人ㆍ179
회동관의 버드나무 會同館柳ㆍ180
조복을 하사받고 하례를 행하다 蒙賜朝服行賀禮ㆍ181
개주관의 버드나무 蓋州館柳ㆍ182
발해의 옛 성 渤海古城ㆍ183
새벽 북소리를 듣다 聞曉鼓ㆍ184
윤주를 바라보다 望潤州ㆍ185
강남에서 도은을 생각하다 江南憶陶隱ㆍ186
시를 읊다 吟詩ㆍ187
밤 흥취 夜興ㆍ188
더운물에 목욕하다 湯浴ㆍ189
강가에서 주 좌참을 생각하다 절구 2수 江上憶周左參 二絶ㆍ190
강남곡 江南曲ㆍ191
정부의 원망 절구 2수 征婦怨 二絶ㆍ192
발해에서 옛일을 생각하다 渤海懷古ㆍ193
임자년 10월 12일에 남경을 출발하여 진강부 단도역에 묵다
壬子十月十二日發京師 宿鎭江府丹徒驛ㆍ194
금산사 金山寺ㆍ195
상주에서 제야에 여러 서장관에게 주다 常州除夜 呈諸書狀官ㆍ196
태창에서 9월에 공부 주사 호련에게 주다
大倉九月 贈工部主事胡璉ㆍ198
태창의 9월 大倉九月ㆍ199
용강관 龍江關ㆍ201
과주 임자년 4월 瓜州 壬子四月ㆍ202
강남의 버드나무 江南柳ㆍ203
양자강 배 위에서 楊子江船上ㆍ204
등주의 선사 登州仙祠ㆍ205
등주에서 바다를 건너다 登州過海ㆍ206
패란점 길 위에서 ㆍ蘭店路上ㆍ207
양자강 길에서 在楊子江路上ㆍ208
다경루에서 계담에게 주다 多景樓贈季潭ㆍ209
오호도 嗚呼島ㆍ210
양자강 楊子江ㆍ211
고소대 姑蘇臺ㆍ212
급체포 急遞鋪ㆍ213
탕참에서 묵다 宿湯站ㆍ214
의주에 이르러 말을 점검하여 강을 건너보내다 到義州 點馬渡江ㆍ215
홍무 정사년에 사명을 받들고 일본에 갔을 때 지은 시
洪武丁巳 奉使日本作ㆍ216
관음사에서 노닐다 遊觀音寺ㆍ222
다시 이 절에서 노닐다 再遊是寺ㆍ223

포은집 제2권
시詩
계묘년 8월에 한 원수의 동쪽 정벌 길을 따라 함주에 이르렀는데 병마사 나공이 정예병을 거느리고 서북면 정벌을 도우러 떠나다
癸卯八月 從韓元帥東征到咸州 兵馬使羅公率精兵助征西北ㆍ227
화주의 밤비 和州夜雨ㆍ228
함주에 이르러 척약재의 시에 차운하다 至咸州 次ㆍ若齋詩ㆍ229
한림으로서 종군하는 달가에게 부치다 김구용 寄達可翰林從軍 金九容ㆍ229
정주에서 중구일에 한 상공이 짓기를 명하다 定州重九 韓相命賦ㆍ231
안변성루 安邊城樓ㆍ232
갑진년 추석에 감회가 있어 甲辰中秋有懷ㆍ233
홍무 임술년에 이 원수의 동쪽 정벌 길을 따라가다
洪武壬戌 從李元帥東征ㆍ235
단주성 端州城ㆍ236
비를 무릅쓰고 동쪽 함주로 가다 咸州東行冒雨ㆍ237
추석 中秋ㆍ238
여진 지도 女眞地圖ㆍ239
독올관 禿兀關ㆍ240
삼산 三山ㆍ241
함주 咸州ㆍ242
이 시중의 안변루 시에 차운하다 次李侍中安邊樓詩韻ㆍ243
남경으로 돌아가는 도사 서사호를 전송하다 送徐道士師昊還京師ㆍ244
남경으로 돌아가는 예부 주사 임실주를 전송하다
送禮部主事林實週還京師ㆍ245
다시 임 주사에게 주다 重贈林主事ㆍ248
절동으로 돌아가는 조마 호해를 전송하다 送胡照磨海還浙東ㆍ251
항주 사신을 전송하다 送杭州使ㆍ252
을축년 9월에 중국 사신 학록 장보와 전부 주탁을 모시고 서경의 영명루에 올라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
乙丑九月 陪天使張學錄溥 周典簿倬 登西京永明樓 次板上韻ㆍ253
홍무 을축년 9월에 칠참으로 가는 말 위에서 강남 사신 장보의 시에 차운하다 洪武乙丑九月 七站馬上 次江南使張溥詩韻ㆍ254
을축년 9월에 중국 사신 주탁에게 주다 乙丑九月 贈天使周倬ㆍ255
요동 사신 상린에게 주다 贈遼東使桑麟ㆍ256
조정으로 돌아가는 학록 장보를 전송하다 送張學錄溥還朝ㆍ258
조정으로 돌아가는 전부 주탁을 전송하다 送周典簿倬還朝ㆍ259
요동 섭 도지휘사께 올리다 上遼東葉都指揮ㆍ260
요동 매 도지휘사께 올리다 上遼東梅都指揮ㆍ261
호송하는 요동 임 진무를 송별하다 送別護送遼東任鎭撫ㆍ262
요동 왕 경력과 왕 도사 두 상공에게 부치다
寄遼東王經歷王都事兩相公ㆍ263
요동으로 돌아가는 백호 정여를 전송하다 送程百戶與還遼東ㆍ264
영 스님이 소매에서 시를 내보이고 화운시를 구하므로 이렇게 써서 책임을 면하다 英枯木袖詩求和 書此塞責ㆍ265
급제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수재를 축하하다 30운
賀李秀才登第還鄕 三十韻ㆍ267
경상도 안렴사로 나가는 장령 전오륜을 전송하다
送全五倫掌令出按慶尙ㆍ271
상주의 김 상국 선치 에게 주다 贈尙州金相國 先致ㆍ272
상주 서 목사에게 주다 贈尙州徐牧使ㆍ273
이 헌납 첨 에게 부치다. 경상도를 안행할 때에 김해 연자루 앞에 손수 매화를 심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寄李獻納 詹 按行時 金海燕子樓前手種梅花故云ㆍ274
나주 판관으로 부임하는 동년 이양을 전송하다 送同年李陽赴羅判ㆍ275
강 안렴사에게 부치다 寄姜廉使ㆍ276
밀양 박 중서에게 부치다 寄密陽朴中書ㆍ277
익양 김 규정에게 부치다 寄益陽金糾正ㆍ278
장수역에 묵으며 익양 태수 이용에게 부치다 宿長守驛 寄益陽守李容ㆍ279
강남으로 사신 가는 산기 이천기를 전송하다 送李散騎天驥奉使江南ㆍ280
안동 서기로 부임하는 이 수재를 전송하다 절구 5수
送李秀才就赴安東書記 五絶ㆍ281
둔촌의 시에 차운하여 네 군자께 드리다 次遁村韻呈四君子ㆍ283
계묘년 5월 2일에 비가 내려 홀로 앉았더니 이둔촌이 마침 찾아왔다
癸卯五月初二日 有雨獨坐 李遁村適來ㆍ286
또 둔촌의 시에 차운하다 3수 又次遁村韻 三首ㆍ287
둔촌의 권축에 적은 시 遁村卷子詩ㆍ289
의주의 김 병마사 지탁 에게 부치다 寄義州金兵馬使 之鐸ㆍ291
김 판사에게 주다 贈金判事ㆍ292
호연의 권축에 적다 浩然卷子ㆍ293
국간의 권축에 적다 菊磵卷子ㆍ295
백정의 시권에 적다 題柏庭詩卷ㆍ297
안렴사 유향을 전송하다 절구 2수 送柳按廉珦 二絶ㆍ298
이 정언에게 부치다 寄李正言ㆍ299
삼봉에게 부치다 寄三峯ㆍ300
영주의 친구 永州故友ㆍ301
송 판관 인 의 권축에 적다 題宋判官 因 卷子ㆍ302
의순관에 묵으며 공부에게 부치다 宿義順館 寄孔俯ㆍ303
김 소년 자지 에게 주다 贈金少年 自知ㆍ304
사람을 전송하다 送人ㆍ305
조 재상 반 에게 주다 贈趙相 ㆍㆍ306
김 정랑 구용 에게 부치다 寄金正郞 九容ㆍ307
윤절간의 권축에 적다 倫絶磵卷子ㆍ308
일본 무 상인이 돌벼루를 선물하므로 시로써 사례하다
日東茂上人惠以石硯 以詩爲謝ㆍ309
목은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일본 무 상인에게 주다
次牧隱先生詩韻 贈日東茂上人ㆍ310
암방의 일본 승려 영무에게 주다 절구 2수 贈ㆍ房日本僧永茂 二絶ㆍ311
일본 홍 장로에게 주다 贈日本洪長老ㆍ312
백운헌에게 주다 贈白雲軒ㆍ313
무변 승려에게 주다 贈無邊僧ㆍ314
양산의 총 상인에게 주다 贈陽山ㆍ上人ㆍ315
빙산의 주지에게 부치다 寄氷山住持ㆍ316
지리산 지거사의 주지 각경 상인을 전송하다
送智異山智居寺住持覺ㆍ上人ㆍ317
김생사로 돌아가는 승려를 전송하다 送僧歸金生寺ㆍ318
일본을 유람하는 자휴 상인을 전송하다 送自休上人游日本ㆍ319
장성 백암사 쌍계에 시를 지어 부치다 長城白ㆍ寺雙溪寄題ㆍ320
고암의 권축에 적다 古ㆍ卷子ㆍ321
환암의 권축에 적다 幻庵卷子ㆍ322
우사 야운헌의 시권에 적다 題牛師野雲軒詩卷ㆍ323
승려에게 주다 贈僧ㆍ324
성은 움직임이 없다 性無動ㆍ325
승려에게 부치다 寄僧ㆍ326
이둔촌의 시에 차운하여 용두 강주를 전송하다
次李遁村韻送龍頭講主ㆍ327
다시 지어 최와 곽 두 선생께 부치다 再賦 因寄崔郭兩先生ㆍ328
첨성대 瞻星臺ㆍ329
취하여 익양 태수의 새 정자에 적다 醉題益陽守新亭ㆍ330
익양의 새 정자에 적다 題益陽新亭ㆍ331
중구일에 익양 태수 이용의 명원루에 적다
重九日 題益陽守李容明遠樓ㆍ332
여흥루에 적다 절구 2수 題驪興樓 二絶ㆍ333
전주 망경대에 오르다 登全州望景臺ㆍ334
예전에 재상 야은 전 선생이 계림 판관이었을 때 김해의 기생 옥섬섬에게 준 시에…… 절구 4수
昔宰相ㆍ隱田先生爲鷄林判官時 有贈金海妓玉纖纖云…… 四絶ㆍ335
정사년 3월 빗속에 의성의 북루에 오르다 丁巳三月 雨中登義城北樓ㆍ337
영주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 3수 次榮州板上韻 三首ㆍ338
명원루에 다시 오르다 重登明遠樓ㆍ340
안동 영호루. 일본에서 돌아올 때 짓다 安東映湖樓 回自日本作ㆍ341
평교관에 손수 적다 平郊館手題ㆍ342
이호연을 곡하다 3수 哭李浩然 三首ㆍ343
김 원수 득배 를 제사하다 祭金元帥 得培ㆍ344
이 밀직 종덕 을 곡하다 哭李密直 種德ㆍ345
이 도은의 처에 대한 만사 李陶隱妻氏挽詞ㆍ346
권 밀직의 부인에 대한 만사 權密直夫人挽詞ㆍ347
허 판서의 부인에 대한 만사 許判書夫人挽詞ㆍ348
봄 春ㆍ349
신축년 10월에 뜰 앞의 국화를 탄식하다 辛丑十月 庭前菊花嘆ㆍ350
아침 일찍 길을 나서다 早行ㆍ352
동지를 읊다 2수 冬至吟 二首ㆍ353
중서문하성에 입직했을 때 술에 취하여 짓다 入直中書門下省醉賦ㆍ355
인일 조회 때 눈이 내리다 人日朝會雪ㆍ356
저문 봄 暮春ㆍ357
기러기 소리를 듣다 聞雁ㆍ358
《주역》을 읽고 자안과 대림 두 선생에게 부치다. 세도에 느낌이 있어 말한 것이다 절구 2수
讀易寄子安大臨兩先生 有感世道故云 二絶ㆍ359
《주역》을 읽다 절구 2수 讀易 二絶ㆍ361
추석 달 中秋月ㆍ362
돌솥에 차를 달이다 石鼎煎茶ㆍ363
겨울밤에 《춘추》를 읽다 冬夜讀春秋ㆍ364
꿈을 기록하다 記夢ㆍ365
배를 타고 송경을 작별하다 乘舟別京ㆍ367
서쪽 이웃 이 부령을 맞이하여 달을 감상하다 邀西ㆍ李副令翫月ㆍ368
경지의 시에 차운하여 삼봉에게 주다 次敬之韻贈三峯ㆍ369
둔촌의 시에 차운하다 次遁村韻ㆍ370
반 이상을 하례하다 賀潘二相ㆍ371
성주에서 묵으며 원일에 목욕하다 成州留元日沐浴ㆍ373
재상 유원의 집 벽에 적다 題柳相源宅壁ㆍ374
언양에서 중구일에 회포가 있어 유종원의 시에 차운하다
彦陽九日有懷 次柳宗元韻ㆍ375
목은 선생의 중구일 시에 차운하다 次牧隱先生九日韻ㆍ376
목은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 칠석에 안화사에서 노닐었다 3수
次牧隱先生詩韻 七夕遊安和寺 三首ㆍ377
난파 정원의 소나무, 대나무, 매화, 난초를 읊다. 도은과 양촌의 시에 차운하다 蘭坡四詠 次陶隱陽村ㆍ379
부령 임효선의 시에 차운하다 4수 次林副令孝先韻 四首ㆍ382
삼가 철원부원군이 영덕에 있을 때에 지은 시에 차운하다
奉次鐵原府院君在盈德所著詩韻ㆍ384
글씨 쓰기 寫字ㆍ386
수편 이 공봉의 운자를 쓰다 2수 用首篇李供奉韻 二首ㆍ387
경상도 안렴사로 나가는 송 정랑을 전송하다 送宋正郞按廉慶尙道ㆍ390

포은집 제3권
잡저雜著
송헌 이 시중 화상찬 松軒李侍中ㆍ像讚ㆍ393
척약재명 ㆍ若齋銘ㆍ394
김득배께 올리는 제문 祭金得培文ㆍ396
원조의 권축에 圓照卷子ㆍ398
은계 상죽헌의 권축에 隱溪霜竹軒卷子ㆍ399
절동의 패옥재 협사안에게 부치다 寄浙東佩玉齋ㆍ士安ㆍ400
김해산성기 金海山城記ㆍ401
북원의 사신을 맞아들이지 말기를 청하는 소 請勿迎元使疏ㆍ405

습유拾遺
이 태상의 시에 차운하여 이둔촌의 아들 지직의 급제를 축하하다 절구 3수 次李太常韻 賀李遁村子之直登第 三絶ㆍ409
원주 목사 하담지 윤원의 시축에 있는 천감 스님의 시에 화답하다. 운자를 나누어 내 자를 얻다
原州牧使河允源湛之詩軸 和僧天鑑 分韻得乃字ㆍ411
천감 스님의 시를 붙임 附僧天鑑詩ㆍ411
원증 국사 어록에 적다 題圓ㆍ國師語錄ㆍ413
둔촌에게 답한 편지 4수 答遁村書 四ㆍ414

포은집
연보고이年譜攷異
포은 선생 연보고이 圃隱先生年譜攷異ㆍ419

부록附錄
〈강남기행시고〉 뒤에 적다 書江南紀行詩藁後ㆍ459
포은재기 圃隱齋記ㆍ462
사명을 받들고 일본으로 가는 정달가를 전송하는 시의 서문 이숭인
送鄭達可奉使日本詩序 李崇仁ㆍ469
〈포은기〉 뒤에 적다 목은 題圃隱記後 牧隱ㆍ472
정 산기를 생각하다 3수 목은 憶鄭散騎 三首 牧隱ㆍ474
밀직에 제수된 정포은을 삼가 축하하다 목은 奉賀鄭圃隱拜密直 牧隱ㆍ477
포은에게 부치다 둔촌 寄圃隱 遁村ㆍ478
남쪽으로 가며 포은께 드리다 2수 도은 南行 呈圃隱 二首 陶隱ㆍ479
포은 상국의 복직을 축하하다 강호인 賀圃隱相國復職 康好仁ㆍ480
또 권근 又 權近ㆍ481
좌주 포은 상국 댁의 연회석에서 권우 座主圃隱相國宅席上 權遇ㆍ482
포은 선생의 옛집을 찾아갔을 때 지은 소부 유방선
訪圃隱先生舊居小賦 柳方善ㆍ483
포은 선생의 효자비각에 적다 손순효 題圃隱先生孝子碑閣 孫舜孝ㆍ487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ㆍ488
상서 권근 上書 權近ㆍ493
문묘에 종사하기를 청한 상소의 대략 태학생 권전 등
請從祀文廟疏略 太學生 權ㆍ等ㆍ495
의득 한세환, 유운 등 議得 韓世桓柳雲等ㆍ496
정덕 정축년에 문묘 서무에 종사할 때의 제문 기준
正德丁丑 文廟西ㆍ從祀祭文 奇遵ㆍ497
임고서원 제문 퇴계 臨皐書院祭文 退溪ㆍ500
임고서원 춘추 제향 축문 퇴계 臨皐書院春秋享祝文 退溪ㆍ506
유상을 모사하여 임고서원에 봉안할 때의 제문 자손들
摸遺像將奉安臨皐書院祭文 子孫等ㆍ507
화상을 숭양서원으로 옮겨 모실 때의 조제문 자손들
ㆍ像移安崧陽書院祖祭文 子孫等ㆍ511
만력 을해년 숭양서원 사제문 萬曆乙亥 崧陽書院賜祭文ㆍ513
봉양군 이씨께 드리는 제문 문인 변계량 등
祭鳳陽郡李氏文 門人卞季良等ㆍ516
제가 기술 諸家記述ㆍ518
포은 선생 묘갈 음기 圃隱先生墓碣陰ㆍ525
포은 선생 화상을 배알하고 지은 사 장현광 謁圃隱先生ㆍ像詞 張顯光ㆍ526
임고서원 묘우 상량문 장현광 臨皐書院廟宇上樑文 張顯光ㆍ531

본전本傳
정습명전 鄭襲明傳ㆍ538
포은 선생 본전 圃隱先生本傳ㆍ540

행장 行狀ㆍ559

이용현황보기

포은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504894 811.9081 -19-40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504895 811.9081 -19-40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포은집》은 고려 말기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시문집이다. 정몽주 사후 47년 뒤인 1439년(세종21)에 장남인 정종성(鄭宗誠)이 수집, 편차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초간본이 처음 간행된 이후 모두 14차례 간행되었다.
정몽주는 동방 성리학의 조종(祖宗)으로 추숭된 유학자이자 정치, 경제,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동시대의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정몽주를 ‘동방 성리학의 조종’이라고 극찬하였다. 성리학에 관한 저술이 전해지지 않아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 없지만, 《포은집》에 남아 있는 시문을 통해서도 그러한 면모의 일단을 알 수 있다.
정몽주는 ‘만고불변의 충절’이라는 절의(節義)의 대명사로 일컬어졌고, 또한 효성이나 학문, 교육자, 정치가, 외교관, 문장가로서의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부모상에 3년 동안 시묘하여 정려(旌閭)를 받았고, 성균관 대사성으로 신진 사류를 양성하였다. 원(元)․명(明)이 교체되는 고려 말의 혼란기에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명나라와 일본에 수차례 사신으로 가서 훌륭히 소임을 수행하였고, 조선으로 왕조가 바뀔 때에는 고려의 사직을 보위하려 하였다.
이러한 부모에 대한 성효(誠孝)와 국가에 대한 충절은 정몽주의 빼어난 자질에서 나온 것이고 또한 성리학에 대한 깊은 체득에서 자연스레 발현된 것이다.

번역 대본은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된 《포은집》으로 선조의 명으로 유성룡(柳成龍)이 신계본(新溪本)ㆍ개성본(開城本)ㆍ교서관본(校書館本)을 참고하여 교정한 것이다.
《포은집》은 문집 3권, 연보고이(年譜攷異), 부록(附錄), 본전(本傳), 행장(行狀)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목록(目錄), 유상(遺像), 서문(序文) 5편이 실려 있다. 권1~2는 시(詩), 권3은 잡저(雜著)와 습유(拾遺), 이어 연보고이, 부록, 본전, 행장이 실려 있다.
권수의 유상은 1607년(선조40)에 모사(摹寫)하여 판각한 것이다. 서문은 권채(權採)의 〈포은선생시권서〉(1438), 노수신(盧守愼)의 〈포은선생시집서〉(1585), 변계량(卞季良)의 〈포은선생시고서〉(1409), 하륜(河崙)의 〈포은선생시권서〉, 박신(朴信)의 〈포은선생시권서〉(1437)로서 저본의 편찬 및 간행 경위가 실려 있다.
권1에는 시 120제(題) 138수가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대체로 창작순으로 실려 있다. 전반부는 명나라에 사신 갔을 때 지은 것이고, 후반부 〈홍무 정사년에 사명을 받들고 일본에 갔을 때 지은 시[洪武丁巳 奉使日本作]〉 이하 13수는 1377년 일본에 사신 갔을 때 지은 시이다. 저자는 1372년, 1382년, 1384년, 1386년에 4차례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그때마다 남긴 시가 많았지만 대부분 산일되고 1386년의 사행에서 서장관으로 동행한 한상질(韓尙質)이 모아 둔 것이 중국 사행시의 대부분이다. 이어 1372년의 사행 때 지은 약간의 시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시 132제 164수가 실려 있다. 1363년 한방신(韓邦信)을 따라 동정(東征)할 때 함주(咸州)에 도착하여 지은 시를 비롯하여, 1382년 이성계(李成桂)를 따라 동정할 때 지은 시 및 1385년 명나라 사신 장보(張溥)ㆍ주탁(周倬)과 수창, 전송한 시 등이 있다.
권3은 잡저와 습유이다. 잡저에는 〈송헌 이 시중 화상찬[松軒李侍中畫像讚]〉을 비롯하여 〈북원의 사신을 맞아들이지 말기를 청하는 소[請勿迎元使疏]〉 등 8편의 시문이 실려 있다. 습유는 유성룡이 따로 수집한 4편의 시와 1편의 발문, 4편의 편지가 실려 있다.
연보고이는 세상에 유행하는 신계본, 개성본, 교서관본의 연보가 각기 상략(詳略)의 차이가 있고 연월이 같지 않으며 의리에 어긋난 곳이 많아 후인들의 의혹을 일으키므로, 유성룡이 행장, 본전에 의거하고 《고려사(高麗史)》 및 정몽주의 시집, 당시 제현의 말을 참고하여 잘못을 바로잡고, 또 한문고이(韓文攷異)의 범례에 의거하여 분주(分注)하여 세 본을 간략히 싣고 자신의 뜻으로 취사(取舍)한 것이다.
부록에는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이 저자에게 지어 준 시문을 비롯하여 기준(奇遵)이 지은 〈정덕 정축년에 문묘 서무에 종사할 때의 제문[正德丁丑 文廟西廡從祀祭文]〉과 퇴계(退溪)와 정몽주의 후손 등이 지은 저자를 배향한 서원의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이어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 《필원잡기(筆苑雜記)》 등에서 저자의 사적(事跡), 시평(詩評) 등에 관한 기사를 초록(抄錄)하였고, 그 밖에 〈포은 선생 묘갈 음기[圃隱先生墓碣陰]〉, 〈포은 선생 화상을 배알하고 지은 사[謁圃隱先生畫像詞]〉, 〈임고서원 묘우 상량문[臨皐書院上樑文]〉이 실려 있다.
본전에는 원조(遠祖)인 〈정습명전(鄭襲明傳)〉과 〈포은 선생 본전(圃隱先生本傳)〉이 실려 있고, 이어 1410년에 문인 함부림이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