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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28

정읍편 62

1. 井邑縣(정읍현) / 김시습 72

2. 題井邑東軒(정읍동헌(東軒)에 제하여 짓다.) / 소세양 73

3. 次井邑東軒韻 奉呈李典翰(정읍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이전한(李典翰)께 드리다.) / 송인수 74

4. 次井邑樓韻(정읍루(井邑樓)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임억령 75

5. 靈巖 贈井邑縣監 李允良 初入日 晴 井邑索詩甚急 夕共子靜寢(영암에서 정읍현감 이윤량(李允良)에게 주다. 초파일 날씨가 맑았다. 정읍현감이 나에게 시를 지어달라고 심히 보채다가, 저녁이 되어 함께 조용히 잠들었다.) / 노수신 76

6. 井邑東軒韻(정읍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구봉령 77

7. 井邑爽襟亭 靈遠山前了心洞 有松亭 觀望稍豁 境落幽靜 余名以爽襟 今下人削樹書之(2首)(정읍 상금정(爽襟亭). 영원산 앞 요심동(了心洞)에 송정(松亭)이 있는데 제법 전망이 확 트였다. 송정의 분위기가 그윽하고 조용하여 내가 상금정이라 명명하였는데, 오늘 아랫사람들이 나무를 깎아 상금정이라는 팻말을 세웠다.) / 구봉령 78

8. 井邑碧水樓韻(정읍 벽수루(碧水樓)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구봉령 79

9. 宿井邑遇雨(정읍에서 묵던 중 비를 만나다.) / 구봉령 80

10. 九日 主倅與井邑 泰仁二倅 登城頭 招公變及余同詣 公變有詩 次韻(구일에 원님께서 정읍, 태인 두 원님과 성에 올라 공섭(公燮)과 나를 초대하여 함께 갔다. 공섭이 시를 지었기에 차운하여 짓는다.) / 기대승 81

11. 内莊山 井邑(내장산. 정읍.) / 이순인 81

12. 内莊山(내장산) / 이순인 83

13. 川原驛 在井邑縣西十里 知長城時過此(천원역(川原驛). 정읍현 서쪽 십리에 위치하고 있다. 장성현감(長城縣監)을 하고 있을 때, 이곳을 지나갔다.) / 양경우 84

14. 川原驛樓(천원역루) / 김시습 85

15. 川原驛 在井邑(천원역(川原驛). 정읍에 있다.) / 김상용 87

16. 耽羅道中寄示畏齋玄石 朴世采 己巳二月十七日 行到井邑川原驛作(제주도로 가던 중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와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에게 시를 지어 부쳐 보이다. 기사년 이월 십칠일, 정읍 천원역에 도착해서 지었다.) / 송시열 88

17. 彝好約以臘月五日 來宿靑巖驛 是日雪 未果踰嶺 止宿川原驛院 夜走一郵卒來報 兼以一絕見寄 走筆次謝(이호(彝好) 임상덕(林象德)이 십이월 오일, 청암역에 와서 묵는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 날, 눈이 내려서 노령(蘆嶺)을 넘지 못하고 천원역원에서 묵게 되었다고 밤에 역졸을 보내 전보를 전해주면서 겸하여 절구를 지어 부쳤다. 이에 차운한 시를 지어 답한다.) / 조태억 89

18. 川原驛(천원역(川原驛)) / 김지수 90

19. 秣馬川原驛(천원역에서 말에게 꼴을 먹이며) / 김제민 91

20. 井邑途中(정읍 가는 길) / 임득명 92

21. 井邑途中 用前韻(정읍 가는 길에 이전에 지었던 시의 운자를 사용하여 짓다.) / 조희일 93

22. 滯楚山縣有感 楚山 卽井邑別號(정읍현에 머무르며 느낀 바가 있어서. 초산은 정읍의 별호이다.) / 고용후 94

23. 入楚(정읍으로 들어가다.) / 김진수 95

24. 早發井邑(이른 아침 정읍을 떠나며) / 장유 96

25. 完行錄 九首 中 1首(완행록. 9수 중 1수.) / 양진영 97

26. 愁店(객점(客店)에서 수심에 젖어) / 장유 98

27. 宿井邑有懷(정읍에 묵으며 감회가 있어) / 이하곤 99

28. 謁井邑書院(정읍서원에 모신 분들을 배알하다.) / 윤봉조 100

29. 宿井邑縣(정읍현에서 묵다.) / 윤봉조 103

30. 古絕句四首 留謝井邑主倅(4首)(고체절구 네 수를 정읍사군께 감사의 마음으로 남기다.) / 이헌경 104

31. 拜謁考巖書院(고암서원에 모신 송시열 선생을 배알하다.) / 박광일 106

32. 謁考巖書院 二律 丙子(2首)(고암서원에 모신 송시열 선생을 배알하다. 율시 2수. 병자년.) / 황윤석 107

33. 過井邑縣 有感 尤菴先生受後命之地(정읍현을 지나며 감회에 잠기다. 우암(尤菴) 선생께서 사약을 받으셨던 곳이다.) / 김평묵 110

34. 井邑懷古(정읍을 회고하며) / 김평묵 112

35. 次井邑樓上韵(정읍 누대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장경세 113

36. 井邑舊宅壁上 有先君手蹟 感題(정읍 옛집 벽에 선친께서 남기신 시가 있어 감회가 일어 짓다.) / 곽열 114

37. 井邑縣詠懷 示縣監李 輸(정읍현에서 회포를 읊다. 시를 지어 정읍현감 이수(李輸)에게 보이다.) / 곽열 115

38. 題井邑三淸堂(정읍 삼청당에 제하여 짓다.) / 임전 116

39. 次井邑東軒韻(정읍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임억령 117

40. 次井邑東軒韻 柬都事 癸亥 以京試官赴湖南 都事李繼先(정읍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이계선 도사에게 부치다. 계해년, 경시관(京試官)으로 호남에 갔을 때, 이계선(李繼先)이 도사를 맡고 있었다.) / 김영조 118

41. 過井邑(정읍을 지나며) / 이시성 119

42. 過井邑感懷 贈李厚眞(3首)(정읍을 지나며 드는 감회가 있어 시를 지어 이후진(李厚眞)에게 주다.) / 김춘택 120

43. 宿井邑 曉向詩山(정읍에서 묵고 새벽에 시산(詩山)으로 가다.) / 오이익 122

44. 謝井邑守携酒來訪 用前韻(술을 가지고 찾아와 주신 정읍사군께 감사드리며 예전에 지었던 시의 운(韻)을 사용하여 짓다.) / 심유 123

45. 步井邑倅韻 贈詩山使君柳思叔 近(정읍사군이 지은 시의 운자를 보운(步韻)하여 시산사군 사숙(思叔) 유근(柳近)에게 주다.) / 손명래 124

46. 次井邑守李 衡鎭 見贈韻(정읍사군 이형진(李衡鎭)이 보내준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치후 126

47. 記實井邑吏奴隊聚點(정읍 이노대(吏奴隊)의 사열(査閱)을 사실대로 기록하다.) / 임득명 127

48. 尋井邑內藏山靈隱寺(정읍 내장산 영은사(靈隱寺)를 찾다.) / 임득명 129

49. 泰仁鄕約契軸(태인 향약계축) / 정극인 130

50. 寄泰仁諸儒(태인의 여러 유생(儒生)들에게 부치다.) / 정극인 132

51. 泰山詩(10首)(태산시. 10수.) / 성간 132

52. 閑亭 亭在泰仁 生員金若晦所構(한정(閑亭). 정자는 태인에 있다. 생원(生員) 김약회(金若晦)가 지었다.) / 이행 136

53. 泰仁邑内 有喬木亭 其陰可避暑 陪家大人散步 呼韻命賦 戌午(태인 읍내에 교목정이 있는데 그늘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아버님을 모시고 산보를 나갔는데 운자를 불러주시며 시를 지으라고 하셨다. 무술년.) / 김종정 137

54. 登披香亭 在泰仁(피향정(披香亭)에 오르다. 태인에 있다.) / 정간 138

55. 泰仁披香亭 五月五日(태인 피향정. 오월 오일.) / 신혼 140

56. 泰仁披香亭韻(태인 피향정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한장석 141

57. 泰仁披香亭 敬次佔畢齋金先生韻(태인 피향정에서 삼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윤식 142

58. 披香亭次板韻 在泰仁(피향정 판상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태인에 있다.) / 김상헌 144

59. 披香亭 次板上韻示地主 亭在泰仁(피향정 판상시에 차운하여 시를 지어 정읍현감에게 보여주다. 정자는 태인에 있다.) / 목대흠 145

60. 泰仁披香亭 次佔畢翁韻(태인 피향정에서 점필재 선생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재의 146

61. 披香亭 次閔聖與丈詩韵 披香亭在泰仁(피향정에서 민성여 어르신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피향정은 태인에 있다.) / 유명천 146

62. 泰仁途中 登披香亭 余於甲申春 自綾州歸 甞登憇于玆 柢今二十四年之間 人事屢換 而山川風物 宛然猶昨日 感賦長律 以示縣中故老(태인으로 가는 길에 피향정에 올랐다. 나는 갑신년(1704) 봄에 능주(綾州)에서 돌아오다가 여기에 올라 쉰 적이 있다. 지금 이십 사년 만에 다시 와보니 세월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산천의 모습은 어제와 같이 옛 모습 그대로이므로 감격스러워 율시를 짓고 정읍현의 고로(故老)에게 보인다.) / 남유상 148

63. 流觴臺懷古 臺在泰仁古縣 卽崔孤雲所游(유상대(流觴臺)에서 옛 일을 추억하다. 누대는 태인 고현에 있는데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노닐던 곳이다.) / 황윤석 149

64. 藏春堂夜話 贈尹亨仲 藏春 泰仁宋世琳堂名(5首)(장춘당(藏春堂) 야화(夜話). 시를 지어 윤형중에게 주다. 장춘당은 태인 송세림(宋世琳)의 당명(堂名)이다.) / 정사룡 150

65. 藏春亭 亭在泰仁古縣 卽訥庵宋公世琳所築(장춘정(藏春亭). 정자는 태인 고현에 있는데 눌암(訥庵) 송세림(宋世琳) 공께서 지으셨다.) / 송순 152

66. 泰仁養眞堂 贈朴使君(태인 양진당(養眞堂)에서 박사군에게 주다.) / 신응시 154

67. 泰仁 奉次養眞堂主人(태인에서 양진당 주인이 지은 시에 삼가 차운하여 짓다.) / 신응시 155

68. 泰仁養眞堂 題贈文使君 益周 丁酉(태인 양진당. 시를 지어 사군(使君) 문익주(文益周)에게 주다. 정유년.) / 곽열 156

69. 養眞堂 在泰仁(양진당. 태인에 있다.) / 허균 157

70. 菡萏亭偶題 自泰仁向金溝(함담정(菡萏亭)에서 우연히 짓다. 태인에서 금구로 떠나며.) / 구봉령 158

71. 次泰仁東軒韻(태인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홍귀달 160

72. 喜雨 仍次泰仁東軒韻 呈主倅年伯朴君渾仲 應川(반가운 비가 내려 태인 동헌의 시에 차운하여 짓고, 태인현감이신 혼중(渾仲) 박응천(朴應川) 형님께 드리다.) / 송인수 161

73. 到泰仁縣 訪殷敎授 礪 于村家 醉中贈以詩 依韻奉和(태인현에 도착하여 은려(殷礪) 교수의 집을 방문하였다. 취중에 은교수가 시를 지어 주었는데 그 시를 차운하여 삼가 화답하다.) / 이의무 162

74. 題泰仁客舍(태인현 객사에 제하여 짓다.) / 이정암 163

75. 戲題 在泰仁縣時(재미삼아 짓다. 태인현에 있을 때이다.) / 안민학 164

76. 題泰仁申主簿客堂壁上(태인 신주부(申主簿)의 객당(客堂) 벽상시(壁上詩)에 차운하여 짓다.) / 고용후 165

77. 過泰仁(태인을 지나며) / 김세렴 166

78. 詩山途中 詩山卽湖南泰仁別號也(시산(詩山) 가는 길. 시산은 호남 태인의 별호이다.) / 임홍량 167

79. 泰仁縣齋 示主倅李姪宖 癸未(2首)(태인동헌에서 시를 지어 조카인 현감 이횡(李宖)에게 보여주다. 계미년.) / 임방 167

80. 有感書懷 時在泰仁 被譴往寓紆州村舍 自辛卯十一月 至明年壬辰三月 紆州全州屬縣(감회가 있어 시를 쓰다. 태인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견책(譴責)을 받고 신묘년(1591) 11월부터 이듬해 임진년(1592) 3월까지 우주촌사(紆州村舍)에 가서 머물렀다. 우주(紆州)는 전주의 속현이다.) / 안민학 169

81. 曉起泰仁館(새벽에 태인 객관에서 일어나 짓다.) / 임득명 170

82. 題泰仁有嘉齋壁上(태인 유가재(有嘉齋) 벽상시(壁上詩)에 제하여 짓다.) / 임득명 171

83. 泰仁舘滯雨夜唫(태인 객관에서 비를 만나 밤에 읊다.) / 임득명 171

84. 離蝟島 移詩山 泰仁別號(위도(蝟島)를 떠나 시산(詩山)으로 옮겨오다. 시산은 태인의 별호이다.) / 김치후 172

85. 暮向泰仁道中(저물녘 태인으로 가는 길) / 박윤묵 173

86. 泰仁道中(2首)(태인 가는 길. 2수.) / 유언술 174

87. 考巖書堂 行鄕飮禮 拈韻(고암서당에서 향음례를 행하고 운자를 뽑아 시를 짓다.) / 송병선 175

88. 寄答錫兒在靑巖送竹瀝膏(청암(靑巖)에서 죽력고(竹瀝膏)를 보내온 아들 석(錫)에게 답시를 부치다.) / 손만웅 176

89. 分送湖南竹瀝膏於陶湖 題壺面(호남 죽력고를 도호(陶湖)에게 나누어 보내며 술병에 시를 쓰다.) / 조유수 177

90. 前以竹瀝膏 餉詩社諸老長 以詩謝之 又和呈 宋台之弟方爲吏參云云(2首)(송대감이 예전에 죽력고를 시사(詩社)의 여러 노인들에게 대접을 하였다. 이에 시를 지어 고마움을 표시하고 또 화답하여 바친다. 송대감의 아우가 막 이조참판(吏曹參判)이 되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 조현명 178

91. 朴生萬濟與其婦翁 送惠竹瀝膏 草謝之(3首)(박만제(朴萬濟)와 그 장인(丈人)께서 고맙게도 죽력고를 보내주어 초솔하게나마 시를 지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채팽윤 180

92. 冒雨暮投井邑(빗속에서 정읍에 투숙하다.) / 김수항 182

93. 泰仁蓮池上 懷崔致遠(태인의 연지(蓮池)에서 최치원을 생각하며) / 김종직 183

94. 泰仁良民申命 服父母喪盡禮 又服前後國喪 分朝之南下 負米迎謁界上 完平諸公 批狀褒美 今年秋 來謁完平相公 以 植 贊畫其行 使之達於朝廷 備局諸宰 招見慰諭而送之 且令本道題給食物 余愧無以酬其意 以一絕句付之(신명(申命)이라는 태인(泰仁)의 양민(良民)이 부모상을 당해 예법을 극진히 하여 복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후(前後)의 국상(國喪)을 당했을 때에도 상복을 입었다. 임금께서 분조(分朝)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셨을 때, 쌀을 등에 지고 계상(界上)에 와서 알현하였으므로 완평(完平) 등 제공(諸公)이 그 행동을 표창(表彰)하는 공문을 내렸다. 금년 가을에 그가 와서 완평 상공(相公)을 뵈었는데, 상공께서 내가 찬획사(贊劃使)였으으로 조정에 진달(進達)하도록 하였다. 이에 비국(備局)의 여러 재신(宰臣)들이 그를 불러 위로하여 보냈고, 또 본도(本道)로 하여금 식물(食物)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나는 그의 마음에 보답할 수 없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져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준다.) / 이식 184

95. 次内弟洪國卿韻 寄堂姪泰仁倅鳳朝(내제(内弟) 홍국경(洪國卿)의 시에 차운하여 지어 당질(堂姪)인 태인현감 봉조(鳳朝)에게 부치다.) / 이은상 186

96. 送泰仁趙使君 相愚(2首)(태인사군 조상우(趙相愚)를 보내며. 2수.) / 이세백 187

97. 別泰仁李使君 益著(태인사군 이익저(李益著)와 이별하며) / 남용익 189

98. 贈泰仁守朴崇古(태인수령 박숭고(朴崇古)에게 주다.) / 김수항 190

99. 泰仁山亭 遇聖聰上人 用韻和贈(태인 산정(山亭)에서 성총(聖聰) 스님을 만나 운자를 사용하여 화답시를 지어주다.) / 임영 192

100. 泰仁 次主守李君鳳朝用李彝仲披香亭韻贈別之作(태인군수 이봉조 군이 이이중(李彛仲)의 〈피향정(披香亭)〉 운을 사용하여 지은 증별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수항 193

101. 敬次披香亭先祖題詠韻(2首)(선조(先祖)께서 지으신 피향정 시에 삼가 차운하여 짓다.) / 김수항 194

102. 寄泰仁洪野老(태인에 사는 홍노인에게 부치다.) / 이진망 195

103. 五月朔日 還楚山 井邑故號 自是休居 無以遣日 始學射貫革(오월 음력 초하루, 초산으로 돌아오다. 초산은 정읍의 옛 이름이다. 지금부터 관직에서 물러나 쉬려하는데 소일거리가 없어서 활쏘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 임천상 196

104. 謝内藏寺住持送尾扇芒鞋(내장사 주지스님이 미선(尾扇)과 망혜(芒鞋)를 보내준 것에 감사하다.) / 소세양 197

105. 與泰仁倅柳公埏酌酒閑話於蓮堤上(태인현감 유연(柳埏) 공과 연꽃 핀 둑 위에서 술을 기울이며 한담(閑談)을 나누다.) / 김제민 198

106. 同泰仁倅柳公埏 登縣前小山(태인현감 유연(柳埏) 공과 마을 앞의 작은 산에 오르다.) / 김제민 199

107. 贈推命黃承憲 湖南人 爲泰仁倅(황승헌을 점쳐 주다. 황승헌은 호남 사람인데 태인현감을 지냈다.) / 곽열 200

108. 用李生廷龍韻 生泰仁人也(3首)(이정룡(李廷龍)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이정룡은 태인 사람이다.) / 조두순 201

109. 武城書院(무성서원) / 심육 203

110. 次丹溪堂韻(단계당(丹溪堂)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최익현 205

111. 胡亂時 自井邑踰穿嶺 過山城(병자호란 당시, 정읍 유천령(踰穿嶺)에서 산성(山城)을 지나가며) / 김우급 206

112. 古阜登瀛樓(고부현 등영루(登瀛樓)) / 민사평 207

113. 寒食日 古阜民樂亭 與李直講歡飮 次壁上韻(한식일, 고부 민락정(民樂亭)에서 이직강(李直講)과 즐겁게 술을 마시고 민락정 벽상시(壁上詩)에 차운하여 짓다.) / 김종직 208

114. 古阜民樂亭 望漕船(고부 민락정(民樂亭)에서 조선(漕船)을 바라보며) / 김종직 210

115. 古阜民樂亭 重陽日 戲簡座中諸友(고부 민락정에서 중양절 날, 좌중의 벗들에게 재미삼아 지어주다.) / 이석형 211

116. 登古阜民樂亭(고부 민락정에 올라) / 이식 213

117. 登古阜城(고부성(古阜城)에 올라) / 김시습 214

118. 題古阜蓮亭(고부 연정(蓮亭)에 제하여 짓다.) / 김지수 215

119. 滄浪亭 在古阜鞍峴 李氏所築 後歸羅氏改名擊磬(창랑정(滄浪亭). 창랑정은 고부 길마재에 있다. 이씨(李氏)가 지었는데 후에 나씨(羅氏)가 돌아와 정자의 이름을 격경정(擊磬亭)으로 고쳤다.) / 황윤석 216

120. 題古阜客舍(고부객사에 제하여 짓다.) / 이정암 217

121. 古阜客舍口占(고부객사에서 입으로 읊다.) / 홍석기 218

김제편 220

1. 金溝客館雨中作(금구 객관에서 빗속에 짓다.) / 장유 228

2. 自古阜夜入金溝縣 書壁上(고부에서 출발해 밤에 금구에 들어가 벽 위에 쓰다.) / 이규보 229

3. 梁丈見和復答(양(梁)어르신이 화답한 시에 다시 답하여 짓다.) / 이규보 230

4. 奉別仲父童土大人赴官金溝縣(금구현(金溝縣)으로 부임하시는 중부(仲父)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 대인(大人)을 전별하며) / 윤증 232

5. 金溝縣齋卽事 奉呈仲父案下(3首)(금구현 재실에서 즉흥적으로 지어 삼가 중부께 올리다. 3수.) / 윤증 234

6. 遊金山寺 次金悅卿韻(금산사(金山寺)에 노닐며 김시습(金時習)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윤증 236

7. 又次季牧隱韻(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윤증 237

8. 金溝(금구) / 서거정 239

9. 萬頃(만경) / 서거정 241

10. 宿金溝蓮亭(금구(金溝)의 연정(蓮亭)에서 묵다.) / 김상헌 242

11. 金溝東軒韻(금구동헌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구봉령 243

12. 題金溝鳳頭山(금구 봉두산에 제하여 짓다.) / 이행 244

13. 寄金溝守高台輔(금구현령 고태보(高台輔)에서 부치다.) / 신숙주 245

14. 金溝縣(금구현) / 김시습 246

15. 題金溝縣別室(금구현 별실에 제하여 짓다.) / 홍귀달 247

16. 自金溝到泰仁縣 途中雨基 暫歇于從政院樓上(금구에서 출발하여 태인현에 가던 도중에 비가 심하게 내려 종정(從政)마을의 원루(院樓) 위에서 잠시 쉬다.) / 이의무 248

17. 壬午春 以注書罷還金溝 途上口占(3首)(임오년 봄날, 주서(注書)의 임무를 마치고 금구로 돌아오는 길에 즉흥적으로 짓다.) / 송순 249

18. 次金溝東軒韻(금구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임억령 250

19. 別季盛卿 萬榮 號竹陰 出宰金溝(금구현령으로 떠나는 성경(盛卿) 이만영(李萬榮)과 이별하며) / 김인후 251

20. 寄金溝校長(금구(金溝) 교장(校長)에게 부치다.) / 김인후 252

21. 金溝館話別(금구객관에서 작별하며) / 김인후 253

22. 宿金山寺(금산사에 묵다.) / 김시습 254

23. 送同年崔汝益赴金溝 名尙謙(2首)(동년 급제한 최여익(崔汝益)이 금구(金溝)에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다. 이름은 최상겸(崔尚謙)이다.) / 김상헌 255

24. 金溝縣 示衙童尹宗之 以下赴錦城(금구현에서 현령의 아들 윤종지(尹宗之)에게 지어서 보여주다. 이후 금성(錦城)으로 부임하였다.) / 목대흠 257

25. 次金溝板韻(금구 판상시에 차운하여 짓다.) / 홍명원 259

26. 金溝途中(금구로 가는 도중에) / 조희일 260

27. 次金溝壁上韻 壬申(금구 벽 위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임신년.) / 신민일 261

28. 病中送仲木賢弟赴金溝(병중에 어진 동생 중목(仲木) 이침(李梣)이 금구(金溝)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며) / 이식 262

29. 題金溝客館 并小序(금구객관에 제하여 짓다. 소서(小序)를 함께 적다.) / 이식 264

30. 題泝濂堂(소렴당(泝濂堂)에 제하여 짓다.) / 이식 266

31. 送金溝金使君 浣(금구사군 김완(金浣)을 전송하며) / 송상기 267

32. 韻海內存知己天涯若比鄰十字 寄壽石亭老友(10首)("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땅 끝 외진 곳도 이웃집과 같으리.(海内存知己 天涯若比鄰)"라는 열자를 운자로 사용하여 시를 지어 오랜 벗 석정(石亭)에게 부쳐 축수하다.) / 황현 268

33. 哭趙碧下(4首)(조벽하를 추모하다.) / 황현 284

34. 題金山寺(10首)(금산사에 제하여 짓다.) / 소세양 286

35. 金山寺 金溝(4首)(금산사. 금구.) / 김재찬 289

36. 金山寺丈六金像燬於倭燹 寺僧將復經始 爲成一詩(금산사의 일 장 육 척 금불상이 왜란(倭亂) 때 소실(燒失)되었는데, 절의 승려들이 다시 세우려고 하기에 시 한 편을 짓는다.) / 장유 292

37. 又次張谿谷韻(또 장계곡(張谿谷) 시에 차운하다.) / 윤증 294

38. 天啓癸亥 余承繡衣之命 微服過金山寺 時丈六殿新剏 未訖功 而寺僧將造大像 余作一詩勉之 七閱歲而又自錦城來過 殿與像皆已成久矣 遂用前韻 贈寺中諸僧(천계(天啓) 계해년(癸亥年)에 나는 암행어사의 명을 받들고, 미복(微服) 차림으로 금산사를 지나갔었다. 그때 일 장 육 척 불상을 봉안하는 전각(殿閣) 공사가 새로 시작되었는데, 완공을 하지 못했다. 그 절의 승려들이 큰 불상을 조성하려 하고 있기에, 내가 시 한 수를 지어 격려한 적이 있었다. 칠 년 뒤 다시 나주(羅州)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러보니 전각과 불상이 모두 오래전에 완성되었다. 마침내 예전의 운을 써서 사찰의 승려들에게 증정하였다.) / 장유 295

39. 金山寺歸路 與仲兒歷金溝衙軒書示(금산사로 돌아가는 길에 둘째 아들 정기년(鄭基年)과 함께 금구동헌을 지나다 시를 지어 보여주다.) / 정원용 297

40. 金山寺(금산사) / 이제현 298

41. 次金山寺壁上韻(금산사(金山寺)의 벽 위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곡 300

42. 歸信寺墟(귀신사 터에서) / 김시습 301

43. 歸信寺佛塔 有尹君悅新恩題名 感念存亡而作(2首)(귀신사 불탑에 군열(君悅) 윤용(尹熔)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한 슬픈 비감이 들어 한 수 짓다.) / 신광수 302

44. 向金山寺 又用市南韻(금산사로 향하며 또 시남(市南) 유계(俞棨)의 시운에 차운하여 짓다.) / 윤선거 304

45. 金山寺 次板上韻(금산사 판상시에 차운하여 짓다.) / 윤선거 306

46. 金山寺 丙申○時宰金溝(금산사. 병신년 금구현령을 하고 있을 때이다.) / 윤순거 307

47. 次宿金山寺韻(〈금산사에 묵으며〉 라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최명길 308

48. 宿金山寺 用稼亭韻 辛丑(금산사에 묵으며, 가정(稼亭)의 운을 차운하여 짓다.) / 남유용 309

49. 金山寺 別李從事晚沙北行(금산사에서 북쪽으로 떠나는 종사(從事) 이만사(李晩沙)와 이별하며) / 이경여 311

50. 憶金山寺(금산사를 추억하며) / 이경여 312

51. 寄金溝金山寺僧石森(금구 금산사의 석상(石森)스님에게 부치다.) / 이경석 313

52. 過龍頭洞 次前賢詩韻 故相趙狀元所居(용두동(龍頭洞)을 지나면서 전현(前賢)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이곳은 옛날 재상이었던 장원(狀元) 조간(趙簡)이 살던 곳이다.) / 이곡 314

53. 次稼亭龍頭洞韻 送趙敎官還鄕 龍頭洞在金堤郡 以出壯元趙簡故名(가정(稼亭)의 용두동(龍頭洞) 시에 차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교관(敎官) 조휴(趙休)를 전송하다. 용두동은 김제군에 있는데, 장원(狀元) 조간(趙簡)을 배출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이식 316

54. 送畸庵鄭學士 弘溟 出守金堤(4首)(김제군수로 나가는 기암(畸菴) 정홍명(鄭弘溟)를 전송하며) / 이식 318

55. 送畸翁出守金堤(4首)(김제군수로 나가는 기옹(畸翁) 정홍명(鄭弘溟)을 전송하며) / 장유 321

56. 杜山下一道八咏(8首)(두산현(杜山縣)의 승경 여덟 곳을 읊다.) / 권상일 325

57. 郡齋書懷 投簡騷壇諸彥求和(관아에서 감회를 적어 문단의 문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화답을 구하다.) / 정홍명 329

58. 題金堤披襟閣(김제 피금각에 제하여 짓다.) / 신익성 331

59. 次韻寄題披襟閣(피금각에 제하고 차운하여 부치다.) / 장유 332

60. 次鄭子容金堤郡披襟閣韻(김제군수 자용(子容) 정홍명(鄭弘溟)이 피금각에 제한 시에 차운하여 짓다.) / 홍서봉 333

61. 次披襟閣韻 鄭使君弘溟爲金堤倅所建(피금각 시에 차운하여 짓다. 사군(使君) 정홍명(鄭弘溟)이 김제군수로 있을 때 피금각을 지었다.) / 조희일 335

62. 奉次金堤郡守鄭子容述懷見示之韻 寄題披襟閣 君於郡治後 新構一屋子 以披襟扁之云(김제군수 정자용이 술회를 보낸 것을 보고 받들어 차운하여 짓다. 그가 김제를 다스린 후에 새롭게 집 하나를 짓고 옷깃을 연다는 의미의 편액을 걸었다기에, 피금각에 제하여 짓고 부친다.) / 이안눌 336

63. 在京時 鄭子容新搆小屋于衙後 名以披襟閣 自製短律 馳書諸友求和 余未暇爲也 到配 追記其韻而次之(서울에 있을 때, 정자용이 관아 뒤편에 작은 집을 지어 피금각이라고 이름하고, 스스로 짧은 절구를 지어 급히 보내 여러 벗들과 화답하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겨를이 없었다. 유배지에 도착해 그 운자에 덧붙여 차운하다.) / 김광현 338

64. 萬頃縣路上(만경현(萬頃縣)으로 가는 길 위에서) / 이규보 339

65. 宿飛杖庵(2首)(비장암(飛杖庵)에서 묵으며) / 윤증 340

66. 萬頃望海寺(만경현 망해사) / 신광수 341

67. 到萬頃縣望邊山(만경현에 도착해 변산을 바라보다.) / 조석윤 343

68. 足夢作 寄呈萬頃沈使君 諱若魯(2首)(꿈속에서 지었던 시를 완성하여 만경 심사군(沈使君)에게 부쳐 보내다. 휘는 약로(若魯)이다.) / 서종화 344

69. 題新倉津院樓 在萬頃北(신창진(新倉津) 원루(院樓)에 제하여 짓다. 만경의 북쪽에 있다.) / 고경명 346

70. 遣悶 出陸 在萬頃謫所(답답한 마음을 적다. 육지로 나와, 만경의 유배지에 있을 때이다.) / 조관빈 347

71. 沈金堤 鎡 仲時赴任時 索語於余 余未及焉 厥後追督不已 以此爲寄(김제군수 중시(仲時) 심자(沈鎡)가 부임했을 때 나에게 문장을 구했는데 내가 써주지 못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독촉을 하기에 이 시에 써서 보낸다.) / 송인 349

72. 在金堤 與白奉事文玉 光瑞 酬唱(김제에서 봉사(奉事) 백광서(白光瑞)에게 수창(酬唱)하여 주다.) / 윤추 350

73. 答晉五書 復用餘意寄二絕 在金溝時(2首)(진오(晉五) 강진규(姜晉奎)에게 예전에 만났던 의미를 다시 살려서 두수의 절구를 지어 보내다. 금구에 있을 때이다.) / 강명규 351

74. 登母嶽冢頂 此山 蘆嶺以上最高者也 西望大海 不堪匪風之思 故篇中無好況(모악산(母嶽山) 정상에 오르다. 이 산은 노령산맥 위로 가장 높은 산이다. 서쪽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며 슬픈 생각을 견딜 수 없어서 슬픈 시를 쓰게 되었다.) / 윤증 353

75. 陪仲父 會諸人重遊金山 口號(2首)(중부를 모시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시 한 번 금산사에 노닐며 즉흥적으로 짓다.) / 윤증 354

76. 題金堤東軒(김제동헌에 제하다.) / 소세양 355

77. 金堤東軒韻(김제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 김주 357

78. 次金堤東軒韻(김제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송인수 358

79. 仲氏還杜山 送別郊外(중형(仲兄)이 만경(萬頃)으로 돌아가니 교외에서 송별하다.) / 소세양 360

80. 杜山縣夜風雨感懷(두산현에서 비바람 부는 밤에 감회를 적다.) / 이달 361

81. 次縶維亭韻(집유정(繫維亭)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소세양 362

82. 次景濂堂韻 景濂堂 是金溝客館(경렴당(景濂堂)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경렴당은 금구객관이다.) / 최경창 364

83. 次泝濂堂 訥齋韻(눌재(訥齋) 박상(朴祥)의 소렴당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윤선거 365

84. 泝濂堂次朴訥齋韵(소렴당에서 눌재(訥齋) 박상(朴祥)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하곤 366

85. 聚遠亭 示靈茂二使君(취원정(聚遠亭)에서 영광과 무주의 두 현감에게 보이다.) / 이달 367

86. 萬頃聚遠亭 次盧士雅韻(만경현 취원정(聚遠亭)에서 노사아(盧士雅)의 운에 차운하여 짓다.) / 김제민 368

87. 題萬頃聚遠亭(만경 취원정에 제하여 짓다.) / 홍적 369

88. 送金萬古之任萬頃縣(만경현감으로 부임하는 만고(萬古) 김주우(金柱宇)를 송별하며) / 신익전 370

89. 別金堤崔使君(2首)(김제로 가는 사군 최유지(崔攸之)과 이별하며) / 이단상 371

90. 蓬萊驛有感(봉래역에서의 감회를 쓰다.) / 박의중 373

91. 金堤郡因雨更留一日次壁上韻(2首)(비가 와서 김제군에 다시 하루를 더 머무르며 벽 위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종직 374

92. 萬頃蓮澤(만경의 연못에서) / 김종직 376

93. 寄題萬頃東軒(만경동헌에 제하여 짓고 부치다.) / 신광수 377

94. 萬頃大堤(만경의 큰 방죽) / 구봉령 379

95. 萬頃東軒韻(만경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구봉령 380

96. 萬頃聚遠閔恕初 忠元 韻(만경 취원정에서 서초(恕初) 민충원(閔忠元)의 시에 차운하다.) / 구봉령 381

97. 喜大觀至(사군(使君)이 이르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다.) / 박미 382

98. 次聚遠亭韻(취원정(聚遠亭)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윤두수 383

99. 次韻 贈別金堤守金士範 箕錫(2首)(모시(某詩)에 차운하여 김제군수 사범(士範) 김기석(金箕錫)과 이별하며 주다.) / 권상일 384

완주편 386

1. 送完州府尹(완주부윤을 보내며) / 이경전 396

2. 題高山東軒(3首)(고산동헌에 제하여 짓다.) / 소세양 397

3. 高山馬上得句 書公舘壁(고산을 지나다 말 위에서 시구를 얻어 공관 벽에 쓰다.) / 최영유 399

4. 高山縣公館梨花(고산현 공관의 배꽃) / 채보문 400

5. 高山途中(고산으로 가는 도중에) / 장유 400

6. 冒雨到高山宿(비를 맞고 고산에 이르러 묵다.) / 이상정 402

7. 在高山縣 寄羅州牧使(고산현에서 나주목사에게 부치다.) / 홍귀달 402

8. 高山縣卽事(고산현에서 즉흥으로 읊다.) / 홍귀달 403

9. 贈翔浩兄弟(2首)(상호(翔浩) 형제에게 주다.) / 김구 404

10. 高山館 見梅花始開(고산객관에서 매화가 피기 시작하는 것을 보다.) / 이안눌 405

11. 詠新梅 題高山館(새로 핀 매화를 읊으며 고산객관에 제하다.) / 이안눌 407

12. 高山館 雨中對梅 奉別均田使朴叔夜 燁 令公 絕句二首(고산객관에서 비내리는 가운데 매화를 대하고는 균전사(均田使) 숙야(叔夜) 박엽(朴燁) 영공을 봉별하며 절구 두 수를 짓다.) / 이안눌 408

13. 鳳城幽居 鳳城高山別名(봉성에 묻혀 살다. 봉성은 고산의 다른 이름이다.) / 김간 409

14. 到高山邑内新寓(고산 읍내 새 집에 이르다.) / 김간 409

15. 高山縣感題(고산현에서 감회가 일어 짓다.) / 곽열 410

16. 題高山縣齋(고산동헌에 제하여 짓다.) / 홍우정 411

17. 高山縣齋 拈韻示汝和(고산동헌에서 운자를 뽑아 시를 지어 여화(汝和)에게 보여주다.) / 이병성 412

18. 大隱從叔以別薦除高山縣監 行將登道 旣話別 口號率成以呈(대은 종숙께서 고산현감으로 별천(別薦) 제수되어 부임하러 가는 길에, 이미 이별을 고하기는 하였으나 시 한 수를 되는대로 읊조려 드리다.) / 조면호 413

19. 次韻 贈別金堤守金士範 箕錫(2首)(모시(某詩)에 차운하여 김제군수 사범(士範) 김기석(金箕錫)과 이별하며 주다.) / 권상일 415

20. 高山樂山樓韻(고산 요산루(樂山樓)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구봉령 416

21. 高山守洪汝和 禹諧 送示二律 對使走和(고산현감 여화(汝和) 홍우해(洪禹諧)가 율시 두 수를 보내었기에 사자(使者)를 앞에 두고 급히 화답하여 짓다.) / 이병성 417

22. 高山炭峴 有懷成忠(고산 탄현에서 성충(成忠)을 그리다.) / 김종직 419

23. 高山燈下(고산에서 등불을 켜고) / 홍귀달 420

24. 次高山東軒韻(고산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석형 421

25. 三奇亭 巖水松三奇(삼기정 바위, 물, 소나무 세 가지가 빼어나다.) / 구치용 422

26. 見鄕書(고향에서 보내온 서신을 보다.) / 구영 423

27. 六月初八日 與新使李公 諿 交龜於界上 遂宿高山之安心寺(유월 초파일에 전라도와 충청도 경계에서 새 관찰사인 이집(李諿)과 부신을 주고받고서는 마침내 고산의 안심사(安心寺)에서 묵다.) / 김종직 423

28. 安心寺積雪樓 次佔畢齋韻(안심사 적설루에서 점필재 김종직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이 425

29. 辛卯冬 留宿安心寺 敬次栗谷先生題積雪樓韻(신묘년(辛卯年) 겨울에 안심사에 머물다가 율곡 선생이 적설루에 제한 시에 삼가 차운하여 짓다.) / 조헌 426

30. 以佔畢齋安心積雪樓題詠 贈勝寶和尙 使之重刻揭板 永存古蹟(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안심사 적설루 제영(題詠)〉을 승보(勝寶) 스님께 드리고, 이것을 게판(揭板)에 중각(重刻)하여 고적에 영원히 보존케 하였다.) / 구치용 427

31. 敬次佔畢齋韻(점필재 김종직의 시에 삼가 차운하여 짓다.) / 이경석 428

32. 題安心寺(안심사에 제하여 짓다.) / 이안눌 430

33. 遊大芚山 題安心寺積雪樓(대둔산에서 노닐다가 안심사 적설루에 제하여 짓다.) / 김익희 431

34. 到安心寺(안심사에 도착하다.) / 김창흡 432

35. 安心寺 次板上韻(안심사에서 판상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송내희 433

36. 花岩寺雲梯(화암사 구름다리) / 백문절 434

37. 花巖寺垂絲檜 僧傳指空所植西域旃檀 非也 僧以棘圍之 在高山(화암사의 실처럼 늘어진 회화나무 스님께서는 지공(指空)이 심었던 서역의 향나무라 하시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스님께서는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치셨다. 고산에 있다.) / 김시습 437

38. 花巖寺(화암사) / 김창흡 439

39. 遊花巖寺(2首)(화암사에서 노닐다.) / 구영 439

40. 與諸友遊山 暮宿花巖寺(벗들과 산에서 노닐다가 날이 저물어 화암사에서 묵다.) / 구치용 441

41. 花巖寺 卽事(화암사에서 즉흥으로 읊다.) / 구치용 442

42. 題飛飛亭(비비정에 제하여 짓다.) / 김시보 442

43. 題飛飛亭(비비정에 제하여 짓다.) / 이해조 443

44. 丙戌九月 以耽羅試才兼巡撫御史 辭 朝 行至完山 主守呂師仲 龍潭守伯溫已來待飛飛亭 相與劇飮 臨分口占(병술년(丙戌年) 구월에 탐라 시재어사 겸 순무어사(巡撫御史)가 되어서 조정에 하직인사를 하고 전주에 왔다. 전주부윤 여사중(呂師仲)과 용담수령인 온(溫)이 이미 비비정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술을 잔뜩 마시다가 헤어질 때가 되어 시 한 수를 즉흥으로 읊었다.) / 이해조 444

45. 飛亭落雁(비비정에서 내려앉은 기러기들을 바라보다.) / 조수삼 446

46. 飛飛亭追韻(비비정에 있는 시의 운을 따라 짓다.) / 이기발 446

47. 詠飛飛亭(비비정을 읊다.) / 이지걸 448

48. 飛飛亭 次板上按使韻(비비정 판상에 있는 관찰사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지걸 449

49. 飛飛亭(비비정) / 박태순 449

50. 飛飛亭 次李注書聖天韻(비비정에서 주서(注書) 이성천(李聖天)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손명래 450

51. 飛飛亭 與成歡督郵嚴子鼎 同醉聯句(비비정에서 성환독우(成歡督郵) 엄자정(嚴子鼎)과 함께 취하여 연구(聯句)를 짓다.) / 손명래 451

52. 飛飛亭 次先君子韻(비비정에서 선군께서 지으신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희지 452

53. 登飛飛亭(비비정에 오르다.) / 최수철 454

54. 飛飛亭(비비정) / 김시빈 455

55. 飛飛亭 次板上韻(비비정 판상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진상 456

56. 叁禮驛(삼례역) / 윤봉조 457

57. 庚申五月 奉賀赦表朝天 遞馬參禮驛有作(경신년(庚申年) 오월에 하사표(賀赦表)를 받들고 서울로 갈 때 삼례역(參禮驛)에서 말을 갈아타며 짓다.) / 이규보 458

58. 送洪督郵鍾聞(찰방 홍종문(洪鍾聞)을 전송하다.) / 정두경 460

59. 參禮途中(삼례 가는 길에) / 양경우 461

60. 參禮途中(삼례 가는 길에) / 양경우 462

61. 參禮道中(삼례 가는 길에) / 홍석주 462

62. 參禮途中(삼례 가는 길에) / 남유상 464

63. 參禮道中(삼례 가는 길에) / 조현기 465

64. 參禮途中 二首(삼례 가는 길에. 2수.) / 오이익 466

65. 竹長菴(죽장암) / 김시습 467

66. 宿參禮驛(삼례역에서 묵다.) / 김시습 468

67. 參禮驛 寄亞使金子胤 首孫(삼례역에서 아사(亞使) 김자윤(金子胤)에게 부치다.) / 홍귀달 469

68. 到參禮館(삼례객관에 이르다.) / 임억령 470

69. 參禮驛(삼례역) / 임억령 471

70. 參禮驛(삼례역) / 구봉령 471

71. 參禮驛樓(삼례역루) / 이순인 472

72. 參禮驛樓(삼례역루) / 이순인 473

73. 二月二十九日 發石城甑山村 過恩津縣 憩礪山郡 宿全州參禮驛 京畿之界 盡於振威 湖西之界 盡於恩津 礪山 乃湖南地也(이월 이십구일 석성현 증산촌(甑山村)에서 출발하여 은진현을 지나 여산군에서 쉬다가 전주 삼례역에서 묵었다. 경기 지역의 경계는 진위(振威)까지이고 호서 지역의 경계는 은진(恩津)까지이다. 여산은 호남지역에 있다.) / 이안눌 474

74. 閏三月初一日 參禮驛作 是日過金溝縣 宿泰仁古縣內(윤삼월 초하루에 삼례역에서 짓다. 이날 금구현을 지나서 태인 고현 내에서 묵었다.) / 이안눌 475

75. 參禮原 遇北渚金冠玉 瑬 罷官北歸(삼례에서 벼슬을 그만두고 북쪽으로 돌아가는 북저(北渚) 관옥(冠玉) 김류(金瑬)를 우연히 만나다.) / 고용후 476

76. 題參禮驛樓(삼례역루에 제하여 짓다.) / 정홍명 476

77. 參禮驛 憶亡兄同訪妹氏之約 泣而書之(삼례역에서, 함께 누이를 방문하기로 했던 돌아가신 형과의 약속이 떠올라 눈물 흘리며 쓰다.) / 이경석 477

78. 曉發參禮驛村 燈下口占 寄呈石樓(새벽에 삼례역 마을을 출발하여, 등잔불 아래에서 즉흥으로 읊어 석루(石樓) 이경전(李慶全)에게 부쳐드리다.) / 이명한 478

79. 與金堤倅李咸卿 參禮驛分路 一相(김제수령 함경(咸卿) 이일상(李一相)과 삼례역에서 헤어지다.) / 채유후 479

80. 參禮驛(삼례역) / 윤원거 480

81. 參禮驛(삼례역) / 이하곤 481

82. 次贈參禮督郵(삼례독우(督郵)에게 준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서필원 482

83. 過參禮驛館 贈鄭察訪庥(삼례역 객관을 지나며 정휴(鄭庥) 찰방에게 주다.) / 김만기 483

84. 到參禮 波翁不至 留一日苦待(삼례에 도착했는데 파옹(波翁)이 도착하지 않아 하루를 머물며 몹시 기다리다.) / 황위 484

85. 參禮驛舍 臨別聯句 聘岳生員楊時益 趙平號雲壑 察訪(삼례역에서 이별하며 연구(聯句)를 짓다. 장인은 생원 양시익(楊時益)이고 조평(趙平)은 호가 운학(雲壑)이며 찰방이다.) / 황위 485

86. 夜投參禮(밤에 삼례에서 투숙하다.) / 신유 486

87. 宿金溝向三禮(금구에서 머물다 삼례로 향하다.) / 오이익 487

88. 參禮驛舘(삼례역 객관에서) / 심유 488

89. 參禮村舍滯雨(삼례 촌사에서 비를 피하며 머물다.) / 조현기 489

90. 參禮別路二篇(삼례 이별길에서 시 두 수를 짓다.) / 최성대 490

91. 宿雲巖有懷(운암사에서 머물며 감회가 일어) / 구치용 491

92. 雪後 登候仙臺(눈 온 뒤 후선대(候仙臺)에 오르다.) / 구치용 492

93. 遊雲臺洞 洞在龍巖上流(운대동(雲臺洞)에서 노닐다. 운대동은 용암 상류 쪽에 있다.) / 구치용 493

94. 寄隱仙菴(은선암(隱仙菴)에 부치다.) / 구치용 493

95. 東菴夜坐書懷(밤에 동암(東菴)에 앉아 회포를 풀다.) / 구치용 494

96. 過萬竹徐舍人 益 舊居(만죽(萬竹) 서익(徐益)의 옛 거처를 지나며) / 구치용 495

97. 萬竹亭 偶咏(만죽정(萬竹亭)에서 우연히 읊다.) / 서익 496

98. 萬竹亭四時詞(만죽정(萬竹亭) 사시사(四時詞)) / 서익 497

99. 卧龍巖卽景(와룡암에서 경치를 즉석에서 읊다.) / 구치용 498

100. 雲梯玉露亭 醉贈主人諸公(운제현 옥로정에서 주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술에 취하여 주다.) / 구영 499

101. 遊楓嶽 至龍溪 贈惠遠師(풍악산(楓嶽山)을 유람하다가 용계(龍溪)에 이르러, 혜원(惠遠) 스님에게 주다.) / 구영 499

102. 卽事(즉흥으로 읊다.) / 구치용 500

103. 過西菴(서쪽 암자를 지나다.) / 구치용 501

104. 雲門洞尋花(운문동에서 꽃을 찾다.) / 구치용 502

105. 偶吟(우연히 읊다.) / 구영 503

106. 聊德寺 次鞠喚醒韻 贈黃時彦(요덕사(聊德寺)에서 환성(喚醒) 국함(鞠涵)의 시에 차운하여 지어 황시언(黃時彦)에게 주다.) / 구영 504

107. 詠龍巖溪恠石(용암의 시냇가 괴석을 읊다.) / 구치용 505

108. 石龍灘邊 築小石臺 俞萬里適來(석룡탄 여울가에 작은 석대를 세웠는데 마침 유만리(俞萬里)가 왔다.) / 구치용 506

109. 完行錄 中 一首(완행록 중 1수) / 양진영 507

110. 咸鳳寺有感 寺在全州 有先世舊蹟 辛亥 以舟師從事官 歷尋口占(위봉사에서 감회가 일어. 위봉사는 전주에 있는데, 이곳에 선대의 옛 자취가 남아있다. 신해년(辛亥年)에 주사종사관(舟師從事官)으로서 찾아가는 길에 즉흥으로 읊다.) / 최현 508

111. 咸鳳寺路中(위봉사 가는 길에) / 이경전 509

112. 威鳳寺夜吟(위봉사에서 밤에 읊다.) / 구치용 510

113. 瀑布菴 訪僧不遇(2首)(위봉폭포 암자에 스님을 뵈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였다.) / 구치용 511

114. 萬馬關(만마관) / 한장석 512

115. 萬馬谷(만마곡) / 장유 513

116. 將到完山(완산에 도착할 즈음에) / 이하진 515

117. 過萬馬谷(만마곡을 지나다.) / 이하진 515

118. 早發平橋 午憇萬馬關(아침에 평교를 출발하여 점심에 만마관에서 쉬다.) / 황현 516

119. 景福寺路上作(2首)(경복사 가는 길에 짓다.) / 이규보 517

120. 十月八日 遊景福寺 明日訪飛來方丈 始謁普德聖人眞容 板上有宗聆首座李内翰仁老所題詩 堂頭老宿乞詩 依韻書于末云(시월 팔일 경복사에서 노닐다가, 다음날 비래방장을 찾아가 처음으로 보덕스님의 초상을 보게 되었다. 현판 위에 종령(宗聆) 수좌(首座)와 내한(内翰) 이인로(李仁老)가 쓴 시가 있는데, 주지 노스님께서 시를 요구하시기에 그 운에 따라 말미에 쓰다.) / 이규보 519

121. 孤大山飛來房丈普德聖師眞(고대산(孤大山) 비래방장의 보덕성사(普德聖師)의 진영) / 박춘령 522

122. 大原寺 全州(대원사. 전주.) / 박춘령 522

123. 題鶴林寺 在全州(학림사에 제하여 짓다. 전주에 있다.) / 양진영 523

124. 庚辰年間 先君守廬于伊城 山人玄覺 往來侍話 書贈二十字 今者 携來謁我 不覺淚下 粧完紙背 又恭和三首 仍囑勿混置諸賢卷中 別爲一軸而藏之(경진년간에 아버님께서 이성(伊城)에서 여막살이를 하셨는데, 산인 현각(玄覺) 스님께서 왕래하시며 대화를 나누시다가 오언절구 한 수를 써서 주셨다. 지금 이것을 가져와 나에게 알리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표구를 해서 배접을 마친 다음 다시 삼가 세 수로 화답하니, 부디 다른 제현들의 시와 섞어 두지 말고, 달리 한 족자로 소장해 둘 것을 거듭 부탁한다.) / 소세양 525

순창편 528

1. 題淳昌觀政樓(2首)(순창의 관정루(觀政樓)에 제하여 짓다.) / 최항 538

2. 題淳昌觀政樓 二首○時封 王妃 肆赦生 齎敎布于全羅(2首)(순창의 관정루(觀政樓)에 제하여 짓다. 2수. 이때는 왕후께서 봉해지므로 사사(肆赦)가 생겨나 재교관(齎敎官)으로서 전라도에 선포할 때이다.) / 이석형 539

3. 次淳昌東軒韻(순창동헌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석형 541

4. 淳昌途中偶成(순창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읊다.) / 이의무 542

5. 登淳昌葦峴(순창의 위현(葦峴)에 오르다.) / 이의무 543

6. 淳昌公館 夜坐書懷 時主人崔使君 作順氣酒 飮之云 可禦寒風(밤에 순창공관에 앉아 독서하는 감회. 이때 주인 최사군이 기를 순조롭게 하는 술(順氣酒)을 만들어 마시며 말하기를, 가히 찬바람을 이길 만하다고 하였다.) / 이의무 543

7. 淳昌公館 對雨有感(순창공관에서 비를 보고 감회가 일어) / 이의무 544

8. 自南原到淳昌郡 道經赤城津(남원에서 출발하여 순창군으로 가는 길에 적성진(赤城津)을 지나며) / 이의무 545

9. 余自南來 連醉不食 將半月 氣力日憊 今到淳昌公館 就枕欲睡 惡夢紛紜 驚覺數四 明燈呼酒 快飮一巵 四體醺然 始得安眠 因思客中身世眞泡幻耳 悲歎之餘 攬筆書懷(내가 남원에서 온 후로 연달아 술을 마시며 밥은 먹지 않은지 보름이 되가니 기력이 날로 쇠하였다. 오늘 순창공관에 와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데 악몽에 시달리는 바람에 놀라서 깨어난 것이 네 번이나 되기에 등불을 켜고 술을 찾아 재빨리 한 잔을 들이켜니 온몸이 얼큰하게 취하여 잠이 오기 시작하였다. 객지생활을 하며 신세가 참으로 허무할 따름이라 생각하니 비탄한 나머지 붓을 잡아 감회를 쓴다.) / 이의무 546

10. 次淳昌樓上韻(2首)(순창의 누대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정국 547

11. 淳昌客館 奉和訥齋 朴祥 集中酬冲庵 金淨 韻(2首)(순창객관에서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문집에 실린 충암(沖庵) 김정(金淨) 선생 시의 운에 받들어 화답하다.) / 한준겸 549

12. 淳昌壁上 有朴訥齋寄金沖庵三絕 蓋朴爲潭陽 金爲淳昌時相往復之作也 韓益之諸公皆奉次 余亦有感 用其韻(3首)(순창객관(淳昌客館)의 벽에 눌재(訥齋) 박상(朴祥)이 충암(沖庵) 김정(金淨)에게 부친 절구 세 수가 있는데, 이는 대개 눌재가 담양부사(潭陽府使)로 있고 충암이 순창군수(淳昌郡守)로 있을 때 서로 주고받은 시이다. 익지(益之) 한준겸(韓浚謙)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 시에 차운하였는데, 나 또한 느낀 바가 있어 그 시의 운을 사용하여 짓다.) / 정경세 551

13. 登淳昌樓(순창루에 올라) / 김상용 552

14. 留淳昌地靈隱寺 待洪御史 履祥 不來(순창의 영은사(靈隱寺)에 머물며 어사(御史) 홍이상(洪履祥)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았다.) / 이정립 553

15. 淳昌示從弟(순창에서 사촌아우에게 보여주다.) / 이첨 554

16. 過淳昌 贈康全兩知事(순창을 지나며 강(康)·전(全) 두 지사(知事)께 드리다.) / 이첨 555

17. 次淳昌樓詩(순창의 누대에 있는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원 556

18. 醻昌世馬上見寄之作 此下 甲戌後淳昌作(말 위에서 창세(昌世)가 부쳐온 시를 보고 수창하여 짓다. 이하는 갑술년(甲戌年) 후 순창에서 지은 것이다.) / 김정 557

19. 別弟易 一本 別上有題扇二字 淳昌作(아우 역(易)과 헤어지며. '별(別)'자 앞에 '제선(題扇)' 두 글자가 더 있는 판본도 있다. 순창에서 지은 것이다.) / 김정 558

20. 次昌世蓮菴口號韻 以下淳昌作(창세(昌世)가 연암(蓮菴)에서 입으로 읊은 시에 차운하여 짓다. 이하는 순창에서 지은 것이다.) / 김정 559

21. 贈淳昌倅 高敬命○二首(2首)(순창수령 고경명(高敬命)에게 주다.) / 이순인 560

22. 題淳昌衙舍(순창동헌에 제하여 짓다.) / 김인후 561

23. 飮淳昌館 乘月醉歸 醒後記興(순창동헌에서 술을 마시고 달빛 타고 취중에 돌아가다가 술이 깬 뒤 그 흥을 기록한다.) / 이안눌 562

24. 奉次淳昌沈明府韻(순창명부(淳昌明府) 심집(沈諿)의 시에 삼가 차운하여 짓다.) / 이안눌 563

25. 題山城南門樓上(산성남문 누정 위에서 제하여 짓다.) / 이안눌 564

26. 淳昌郡 次訥齋韻(3首)(순창군에서 눌재(訥齋)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3수.) / 이은상 565

27. 徐學士準平出宰淳昌 其行也 不可無詩 書此以贈(학사(學士) 서준평(徐準平)이 순창수령으로 부임하여 행차를 가니 시를 짓지 않을 수가 없어 이렇게 써 준다.) / 남공철 566

28. 登淳昌凝香閣 見金學士汝仁詩 欣然如逢故人 遂作一首戲簡(순창 응향각(凝香閣)에 올라 학사(學士) 김여인(金汝仁)의 시를 보았다. 옛 벗을 만난 듯 기뻐 마침내 장난삼아 시 한 수를 짓는다.) / 홍석주 567

29. 谷城倅權景實 貺新箑題一詩於邊竹而刻之 卽次余淳昌凝香閣前日板上韻也 更和以送(곡성수령(谷城守令) 권경실(權景實)이 새 부채에 제시(題詩)를 짓고 부채 가장자리 대나무에 그 시를 새겨 보내주었다. 이에 내가 전에 순창 응향각 현판 위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로 다시 화답하여 보낸다.) / 박영원 569

30. 題凝香閣(응향각(凝香閣)에 제하여 짓다.) / 박영원 570

31. 淳昌道中 又次元遺山韻(순창 가는 도중에 또 원유산(元遺山) 시에 차운하여 짓다.) / 홍한주 572

32. 歷淳昌登凝香閣 戲次板上韻(순창을 지나다가 응향각(凝香閣)에 올라 장난삼아 현판 위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홍한주 573

33. 登淳昌凝香閣(순창 응향각에 올라) / 한장석 573

34. 淳昌至順天界 沿路風景甚佳(순창에서 순천에 이르기까지 그 길 풍경이 심히 아름다워) / 이건창 574

35. 獄中謝淳昌守惠扇 淳昌守葆堂也(옥중에서 순창수령이 부채를 선물해주신 것에 감사하며. 순창수령은 보당(葆堂) 서병수(徐丙壽)이다.) / 이건창 575

36. 又以大暑去酷吏 淸風來故人爲韻 寄葆堂 當在第六卷謝淳昌守下(10首)(또 큰 더위와 함께 혹독한 관리가 떠나고, 맑은 바람과 함께 벗이 와서 시를 지어 보당(葆堂)에게 보낸다. 응당 제6권 〈사순창수(謝淳昌守)〉 시 아래 실려야한다.) / 이건창 576

37. 次淳昌東軒板上韻(3首)(순창동헌의 판상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덕겸 579

38. 題淳昌觀政樓(순창 관정루(觀政樓)에 제하여 짓다.) / 여대로 582

39. 送林實之 㙐 赴淳昌(순창으로 부임하는 실지(實之) 임타(林㙐)를 보내다.) / 박미 583

40. 寄林實之(실지(實之) 임타(林㙐)에게 부치다.) / 김우급 584

41. 淳昌倅林實之饋魚(순창수령 임실지(林實之)가 생선을 보내왔다.) / 김우급 585

42. 贈實之(2首)(실지(實之)에게 주다.) / 김우급 586

43. 觀政樓(관정루) / 김인후 587

44. 觀政樓(관정루) / 조성한 588

45. 登淳昌畫舫齋(순창에서 화방재(畫舫齋)에 올라) / 민재남 588

46. 守歲淳昌衙中 壬寅 爲㐫黨搆誣 謫長興 過此(순창관아에서 섣달 그음날 밤을 지새우다. 임진년에 무고하게 흉당무리가 모함하여 장흥으로 유배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났다.) / 이희지 589

47. 神元寺 在淳昌(신원사. 순창에 있다.) / 권상일 590

48. 淳昌途中 贈別君弼(2首)(순창으로 가는 길에 군필(君弼)에게 이별 선물로 주다. 2수.) / 이지걸 591

49. 詠歸亭 贈敬賢師(귀래정(歸來亭)을 노래하여 존경하는 현사(賢師)께 드리다.) / 신혼 593

50. 題淳昌郡觀政樓(순창군의 관정루에 제하여 짓다.) / 이승소 594

51. 淳昌途中有雪 霽後甚寒(순창으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는데, 날이 갠 후 매우 추웠다.) / 김종직 595

52. 淳昌觀政樓 同李節度使季仝 次板上韻(순창 관정루(觀政樓)에서 절도사(節度使) 이계동(李季仝)과 함께 판상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종직 597

53. 赤城院午憩 辛應會 鄭起溟來訪(적성원(赤城院)에서 오후에 쉬며. 신응회(辛應會)와 정기명(鄭起溟)이 찾아왔다.) / 구봉령 598

54. 次雙阜相公淳昌東軒韻(쌍부상공(雙阜相公)의 순창동헌(淳昌東軒)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이달 599

55. 題楊正郎 士衡 映霞亭 在淳昌(정랑(正郎) 양사형(楊士衡)의 영하정(映霞亭)에 제하여 짓다. 순창에 있다.) / 신흠 600

56. 草谷贈林淳昌㙐 庚辰入瀋時作(초곡(草谷)에서 순창군수(淳昌郡守) 임타(林㙐)에게 주다. 경진년(庚辰年)에 심양(瀋陽)으로 들어갈 때 지었다.) / 김상헌 602

57. 送林實之赴官淳昌(순창으로 부임하는 실지(實之) 임타(林㙐)를 보내다.) / 장유 603

58. 淳昌鮎巖村 卽河西先生之武夷也 先生後孫金君時瑞結茅就居 以繼先志 余喜其不忝堂構 用其見寄韻賦 寄兼寓勉勵之意(순창의 점암촌(鮎巖村)은 곧 하서(河西) 선생의 무이(武夷)이다. 선생의 후손인 김군 시서(時瑞)가 초가집을 짓고 살면서 선조의 뜻을 이었는데, 나는 그가 조상의 유업을 빛냄이 기뻐 그가 보내온 운자로 시를 짓고, 아울러 격려의 뜻을 함께 부치다.) / 김수항 605

59. 登淳昌池閣(순창에서 연못가의 누각에 올라) / 정약용 607

60. 剛泉寺 留別孝先(강천사에서 효선(孝先)과 이별하며) / 김인후 608

61. 剛泉山 乙亥封疏時(강천산. 을해년(乙亥年) 봉소(封疏)를 올릴 때 지은 시이다.) / 박상 610

62. 次昌世韻 乙亥秋 將上復廢妃疏 于剛泉山作(창세(昌世)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을해년(乙亥年) 가을, 폐비를 복위시켜달라는 상소를 올리려 할 때 강천산에서 짓다.) / 김정 612

63. 蘊眞亭八景 己亥(8首)(온진정 팔경. 기해년(己亥年).) / 신경준 613

64. 入剛泉寺 十二日微雨(강천사에 들어서며. 십이일 부슬비가 내렸다.) / 노수신 616

65. 秋夜 宿剛泉寺 寺卽訥齋沖庵製疏處(가을밤 강천사에 묵다. 이 절은 눌재(訥齋)와 충암(沖庵)이 상소를 올렸던 곳이다.) / 송익필 618

66. 次秋夜宿剛泉寺(〈가을밤 강천사에 묵다〉 시에 차운하여 짓다.) / 김집 619

67. 剛泉山 贈鳳巇(2首)(강천산에서 봉헌(鳳巘)에게 주다.) / 양대박 620

68. 遊剛泉寺(강천사를 유람하다.) / 신혼 622

69. 剛泉寺 次白汝器 光瑚 韻 辛酉(강천사에서 여기(汝器) 백광호(白光瑚)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신유년(辛酉年).) / 윤진 623

70. 送景范朝燕 趙希文(연경(燕京)으로 조회하러 가는 경범(景范) 조희문(趙希文)을 보내며) / 임억령 624

71. 花灘舟中(꽃 핀 여울에서 배를 타고) / 이안눌 626

72. 贈別淳昌尹知縣坦(순창현감 윤한(尹坦)에게 작별하며 주다.) / 오숙 627

73. 別淳昌林使君 㙐(순창사군 임타(林㙐)와 헤어지며) / 이명한 628

74. 別再從姪來卿 大休(재종질(再從姪) 내경(來卿) 대휴(大休)와 이별하며) / 이익 630

75. 次剛泉寺樓韻 并小序(강천사 누대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소서(小序)를 겸하다.) / 신유 631

76. 遷山堡儈舍聞鍾 憶舊山法侶(성(城)을 옮겨 절의 종소리 들으니 함께 불법(佛法) 공부하던 옛 벗 그리워) / 신유 633

77. 淳昌倅俞善曾來訪卽去(순창수령 유선증(俞善曾)이 내방하였다가 곧 갔다.) / 김우급 634

78. 淳昌浦坪(순창 포평(浦坪)에서) / 이시성 635

79. 蓮堂朝雨 在淳昌(연당(蓮堂)에서 아침에 비가 내리다. 순창에 있다.) / 정창주 636

80. 淳昌試院 次茂長倅韻(순창의 시원(試院)에서 무장수령(茂長守令)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심유 638

81. 奉送淳昌使君之行(순창사군의 행차를 삼가 전송하며) / 안헌징 639

82. 贈淳昌柳使君 河源 伯崙(2首)(순창사군 백윤(伯崙) 유하원(柳河源)에게 주다.) / 목만중 640

83. 移拜淳昌郡守南下(순창군수로 이배(移拜)되어 남쪽으로 내려가다.) / 조면호 641

84. 紀行 十一首 중 1首(기행. 11수 중 1수.) / 양진영 642

85. 完行錄 九首 중 1首(완행록. 9수 중 1수.) / 양진영 643

86. 贈別金弟休徵 時瑞 卜居于淳昌福興地(휴징(休徵) 김시서(金時瑞) 동생이 순창 복흥(福興) 땅에 거처를 정하여 이별하며 주다.) / 박광후 644

87. 送姜天得歸淳昌 癸亥(순창으로 돌아가는 강천득(姜天得)을 보내며. 계해년(癸亥年).) / 김창립 646

88. 藥院進貢靑大竹 多出於淳昌, 潭陽兩縣 而每年遞驛上來之數 不下五百箇 近日連路不絕 寓目發吟(약원(藥院)으로 진공(進貢)하는 청대죽(靑大竹)이 대부분 순창과 담양 두 고을에서 난 것이어서 매년 역(驛)을 번갈아가며 올라오는 수가 오백 개보다 적지 않았는데, 근래에도 연달아 끊이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대로 시로 읊는다.) / 임득명 647

89. 發向潭陽(담양으로 출발하며) / 구봉령 648

90. 次淳昌郡 初十日 晴或雨 謫人留劇州不便 不可以兄弟之好爲解 發行潭陽 夕次淳昌 郡守林薈出見 小酌(순창군 시에 차운하여 짓다. 초열흘, 날이 개었다가 비가 내리다 하였다. 유배된 이는 번화한 고을에 머물기엔 불편하다지만 형제의 우애로 풀어보려 하였으나 불가하다하여 담양에서 출발하였다. 저녁에는 순창에 오니 군수 임회(林薈)가 나와 맞아주고 술을 조금 마셨다.) / 노수신 649

91. 徐淳昌書致醪米紙膏 作詩謝之 六月(서순창(徐淳昌)이 편지와 함께 막걸리, 쌀, 종이, 등불기름을 보내주었기에 시를 지어 감사하다. 유월.) / 노수신 650

92. 寄呈淳昌兄(3首)(순창군수 형님께 부쳐 드리다.) / 신숙주 651

93. 奉別沈淳昌(심순창(沈淳昌)과 삼가 이별하며) / 유숙 653

94. 送淳昌俞使君善曾(순창사군(淳昌使君) 유선증(俞善曾)을 보내며) / 정두경 654

95. 別淳昌李使君 山賫 之任(순창사군(淳昌使君)으로 부임하는 이산뢰(李山賫)와 이별하며) / 강백년 655

96. 寄題李淳昌坡歸樂堂(순창수령 이파(李坡)의 귀락당(歸樂堂)에 제하여 부치다.) / 오도일 656

97. 淳昌洪使君叙仲 重範 餞席 走次洪君則韵(서중(叙仲) 홍중범(洪重範) 순창수령의 잔치자리에서 홍사군의 시를 단숨에 차운하여 짓다.) / 조태억 657

98. 淳昌觀政樓(순창 관정루) / 강유 658

99. 寄李淳昌위(2首)(순창현감 이위에게 부치다.) / 정극인 659

100. 贈全羅按廉(2首)(전라도안렴사(全羅道按廉使)께 드리다.) / 변계량 660

101. 贈別沈士一赴淳昌(2首)(순창으로 부임하는 사일(士一) 심종도(沈宗道)와 이별하며 주다.) / 곽열 662

102. 霖雨 心緖苦阨鬱 戲綴僻韻 奉寄訥齋文右 用希瓊投 乙亥夏 淳昌作(2首)(장마에 마음이 답답하여 장난삼아 편벽된 운자를 사용하여 눌재(訥齋)의 문안(文案)에 부치고 화답을 바라다. 을해년(乙亥年) 여름, 순창에서 짓다.) / 김정 663

103. 戲吟 示淳昌叔(장남삼아 읊어 순창 숙부께 보여드리다.) / 곽열 665

104. 留別淳昌叔昆季(순창 숙부님들께 드리고 떠나다.) / 곽열 666

105. 次同年淳昌宰崔卓爾韻 東立(동년 급제한 순창수령 탁이(卓爾) 최동립(崔東立)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 / 윤광계 667

106. 留淳昌弟(순창의 아우를 남겨두고 떠나며) / 이상의 668

107. 奉寄淳昌太守丈鈴閣座下 此一律一紹○辛卯(2首)(순창태수 어른 영각(鈴閣) 좌하(座下)에 삼가 부치다. 율시 하나와 절구 하나이다. 신묘년(辛卯年).) / 이진망 669

108. 在西郡 題贈堂弟淳昌伯幾(서군(西郡)에서 당제(堂弟) 순창 백기(伯幾)에게 지어 주다.) / 김덕겸 670

109. 李而栗 尙寬 赴淳昌來訪 以詩贈別(이율(而栗) 이상관(李尚寬)이 순창으로 부임하는 길에 찾아와, 시를 지어주고 이별하다.) / 김덕겸 671

110. 日獄中默會 五絶○十四首 중 1首(일본 감옥에서 조용히 깨달음. 오언절구 14수 중 1수.) / 최익현 672

111. 送金仲權之淳昌(순창으로 가는 김중권(金仲權)을 보내다.) / 이숭인 674

맺음말 680

판권기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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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全北을 소재로 한) 名詩大系. 4, 정읍·김제·완주·순창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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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526464 811.91 -19-19 v.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