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제13장 입이 없는 누이(여성)들 : 남성적 망탈리테의 기원 / 정명중 / 439 제14장 지역화와 타자화 사이, 전 지구화시대 한국인의 청각적 정체성 / 최유준 / 473 제15장 경계 횡단하기의 수행적 실천과 사이 정체성 / 문재원 / 499 제16장 중국의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 김창규 /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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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이 공동총서가 소개하는 대안적 근대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은 공통의 어떤 것을 지향하면서도 그 논의들의 층과 결 사이에는 내적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 논의들은 단 하나의 근대(성)으로 수렴되기보다는 서로 간의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중첩되고 교차하며 횡단하는 방식으로 ‘복수적 근대성들(multiple modernities)’로서의 새로운 보편성, 아니 자신의 본성에 부합하는 보편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상응해서 공론장에 관한 논의들은 이전보다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으며, 감성적 주체에 관한 논의들 또한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총서는 근대의 혼란스러운 유동성이, 특히 디지털 기술공학이 시공간의 변형을 야기했고, 그 결과 지리적 경계가 흐려지거나 중첩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혼종성과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논의들을 소개한다. 이 논의들은 우리 시대가 “감성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이 교착된 시대”, “지역적인 것과 전지구적인 것이 중첩된 시대”로서의 “감성적 근대(emotional modernity)”라는 것을 직시한다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총서는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감성인문학연구단이 출범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10년 여정의 끝자락을 매듭짓는 진중한 발자취로 남게 될 것이다.
김기성: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교수, 사회비판이론/현대유럽철학 김은중: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라틴아메리카 문학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사회학 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독일 관념론/서양 근현대 정치철학 조태성: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교수, 한국고전시가 김경호: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교수, 한국철학 김봉국: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한국근현대사 이희경: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중국현대문학 심혜련: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문화기술철학/미학 신지영: 경상대 철학과 교수, 현대프랑스철학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문학평론/정치철학 최혜경: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한국현대문학 정명중: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교수, 한국문학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교수, 문화연구/음악학 문재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한국현대문학 김창규: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교수, 중국현대사
책속에서
1. 감성적 근대와 새로운 주체성의 동인
김기성
내 안에 있는 미지의 것이 나를 나로 만든다. - 폴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 -
들어가는 말
서양에서 ‘근대(성)die Moderne, modernity’이라는 용어는 헤겔G. W. F. Hegel(1770-1831)의 역사철학적 작업과 더불어 개념화되고 체계화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활동하던 “우리 시대”를 “가장 새로운 시대”로 선언하면서 그 시대가 갖는 근대성의 원리를 자기관계의 반성적 구조, 즉 “주체성subjectivity”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우리 시대”가 “방향을 설정하는 자신의 척도를 더 이상 다른 시대의 모범들로부터 차용”하지 않고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창조해야만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달리 말해 근대성은 이전의 전통과 단절하는 전통, 즉 “비판critique의 전통”을 따른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헤겔의 주장은 니체F. Nietzsche(1844-1900)의 과거를 고찰하는 “비판적 방식”을 거쳐 코젤렉R. Koselleck(1923-2006)의 주장, 즉 “새로운 시대의 진단과 과거 시대의 분석은 서로 일치한다.”는 주장으로 계승된다. 이 주장은, 감성 연구의 맥락에 맞게 변경해 본다면, “새로운 시대의 감성을 진단하는 것과 오래된 시대의 감성을 분석하는 것은 일치한다.”로 테제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테제는 감성을 근대성의 지평 위에서 연구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헤겔이 통찰한 것처럼, 근대성의 원리가 주체성이라면, 주체성은 근대성을 실현해야한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갱신(更新)하여 현재화하는 시대정신”에 걸맞게 스스로를 갱신하여 현재화함으로써 ‘주체’ 자기 자신의 근대성을 실현시키는 힘이 주체성이다. 그런 까닭에 근대성은 시대정신에 적합한 자기관계의 구조화, 즉 ‘주체화subjectivation’의 새로운 방식 및 자기존재의 변형과 맞물린 주체성의 새로운 형식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처럼 양자의 관계는 변증법적이고 애초부터 자체 내 모순을 품고 있다. 그에 따라 근대성 담론에서 개별적 혹은 집단적 주체성의 형식과 사회적 객관성의 요구 사이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우리는 근대성 개념을 도구로 삼아 두 가지 축이 교차하면서 생성되는 ‘정세(情勢)’를 포착하고 그것의 발현양상들을 분석해 나갈 것이다. 그 두 가지 축 중 하나는 역사적 사건과 흐름에 내재하는 시간, 즉 코젤렉이 강조한 “역사적 시간”의 척도에 근거한 질적 범주에서부터 들뢰즈G. Deleuze(1925-1995)가 주목한 “비선형적 시간성”을 아우르는 시간의 축이다. 이 축은 “사회의 의해 고안되고 그 안에 제도화되어 있는” 장소에 현재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축, 즉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균질적이고 단일한 척도에 의해 구획된 공간을 “반박하고 이의제기하는 공간”의 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두 가지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사건, 무엇보다도 ‘공감(共感)’을 구조화하는 장으로서의 “공감장sympathetic field”을 포착하고, 또한 그 사건이 고착되고 구조화된 공감들의 장을 전체적으로 조명하고 해명하기 위한 상위 범주를 우리는 “감성적 근대(성) emotional modernity”라고 명명한다. 이 개념과 더불어 그것의 하위범주인 공감장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감성적 근대의 근대성을 개시(開始)하면서 주도해나갈 “심미적 인간homo aestheticus”, 또는 “공감적 인간homo sympatheticus”의 경험적 흔적들을 수집하고 이론적 성좌를 그려내는 것이 우리 연구의 목표다. 이를 위해 나는 먼저 근대성 담론의 지각변동으로 도래하게 된 감성적 근대의 문제적 지형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이어서 감성적 근대의 지배와 통제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그리고 대안적 삶을 창조하는 주체성의 동인(動因)을 탐문하는 작업이 이 글의 주된 과제다.
감성적 근대의 도래
근대성 개념의 경험적 사태 및 역사적 정당성이 변경되어 온 것처럼 그에 관한 담론의 지형 또한 변화되어 왔다. 서양 근대성 이론의 출발은 18세기 계몽주의와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 전개된 부르주아의 가치체계와 생활방식을 대변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것이 유럽 제국주의의 발흥 및 팽창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무렵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럽중심의 보편사나 세계사에 대한 회의가 움트기 시작했고, 특히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성적 합리성과 기술적 진보에 입각한 부르주아적 근대에 맞서는 “미적 근대성modernite esthetique” 담론이 전개되었다. 미적 근대성 담론의 선구자로 보들레르C. P. Baudelaire(1821-1867)를 꼽을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미적 근대성은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서로 겹치거나 교차하는 지점, 즉 생성의 순간으로서의 ‘현재present’를 주시함으로써 고착화된 현재를 거부하는 자유, 또한 진보의 신화를 뒤흔드는 자유를 실천하는 삶의 태도다. 이와 같이 관습화된 현재의 테두리 안에서 ‘충만한 현재성’을 발굴하려는 자유의 실천이 보들레르가 역설적으로 정형화한 “현재의 재현”이다. 이 재현의 주체는 단순히 부르주아적 근대의 인식주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성격의 본질과 세계의 모든 정신 구조에 대한 섬세한 이해력을 포함하고” 있는 인간,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 전체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신비스러우면서도 정당한 이유들을 이해하는 인간”, “죽음의 어두운 세계로부터 살아 돌아”와 “삶의 모든 향기와 본질들을 열광적으로 숨쉬는” “회복기의 환자”,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면서 “인생의 어떤 면도 무디어지지 않은 채로 받아 들이”는 “어른아이”와 같은 “댄디dandy”였다. 미적 근대성 담론을 ‘사회적인 것das Soziale’과 결합해서 논의한 최초의 철학자는 짐멜G. Simmel(1858-1918)이다. 그는 1896년 베를린에서 최초로 개최되었던 산업박람회에서 산업적 생산방식이 “미학적 이상으로 전환”하면서 생산물의 “유용성 너머의 유혹적인 외양”을 강조하는 분위기, 그리고 “사물의 외적 매력과 객관적 목적성 사이에 새로운 근본적인 종합”이 진행되고 있는 경향을 목도한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그는 산업화된 화폐경제가 생산해내는 “상품의 [심미]적 잠재성과 가능성을 지각하고, 또한 그것을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주관적-개인적 생활세계를 구조화하고 질서화 하는 데 사용하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주체”의 탄생을 감지한다. 짐멜이 볼 때, 개인의 심미적 체험이 순수예술의 자율적 영역에서 일상적 삶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문화변동과정은 계몽주의에 의해 탈마법화된 세계가 다시 심미적으로 재마법화되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이 현상은 유럽 부르주아적 근대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에 토대를 둔 양적 개별성 및 질적 개별성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심미적 근대asthetische Moderne”가 개시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미적 근대성은 한편으로 “순수한 운동” 자체이자 “운동하지 않는 모든 것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운동의 담지자”인 ‘돈Geld’이라는 역사적 현상과 교착됨으로써 삶이 마치 “영원한 현재ewige Gegenwart”인 것처럼 현상하는 심미적 근대로의 이행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현재를 부정하지도 않고 현실을 도피하지도 않으며 현실적 삶의 내용에 가장 적합한 예술적 양식을 부여했던 예술가들의 인격 속에서 심미적 근대성의 본질로 구현되었다. 이 본질이란 영원한 현재, 즉 “저 어둡고 몰아대며 지칠 줄 모르고 스스로를 갈망하는” 현재라는 삶에 충실하려는 파토스이자 에토스다. 짐멜은 사회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이 결합된 현상, 달리 말해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의 심미화 현상은 비록 빛과 그림자를 지니고 있을지라도 개인의 질적 개별성을 극대화시킬 것이라고 예견한다. 하지만 그의 사후 시대적 상황은 그의 예견과 달리 전개되었다. 1929년 발발한 세계경제공황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인 것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심미적인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가장 핵심적인 수단으로 포섭되었다. 이것이 심미적 근대가 감성적 근대로 이행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이 전환점을 미국 망명 중이었던 아도르노Th. W. Adorno(1903-1969)는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었던 문화산업의 전개과정에서 목도한다. 문화산업은 심미적인 것을 이윤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법칙들”을 개인의 충동과 욕구, 그리고 감성의 가장 내밀한 영역에까지 이식시키는 장치이자 은밀한 메커니즘의 기능을 담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