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의 탁월한 이야기꾼 dcdc 컬러풀한 그래픽으로 독창적인 상상력을 뿜어내는 이푸로니 알마 FoP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경기여성히어로연대 분투기
홍양, 괄라, 알파 세 히어로의 액션 활극 여성히어로들의 대활약을 그린 총천연색 오프닝 그래픽
일산, 양주, 부천 시내에 슈퍼히어로가 산다. 제2회 SF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한국 SF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작가 dcdc의 ‘경기여성히어로연대’ 연작이 《월간주폭초인전》에 담겼다. 《월간주폭초인전》의 세 단편은 여성히어로 홍양, 괄라, 알파의 이야기로 권선징악의 통쾌함과 여성주의 서사에서 오는 울림을 선사한다. 경기여성히어로연대에 속한 세 히어로들은 여성성에서 비롯된 초능력으로 악과 맞서며 도시의 평화를 지키려 애쓰는데, 여성인물이 극 전반에서 주인공의 지위를 공고히 점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통해 SF와 여성주의의 시너지를 즐겁게 목격할 수 있다.
《월간주폭초인전》의 감상포인트는 세계관의 점층적 확장에도 있다. 독자들은 〈월간영웅홍양전〉 〈주폭천사괄라전〉 〈수정초인알파전〉으로 이어지는 연작을 읽어나가며 악의 규모가 개인에서 단체로, 단체에서 외계 제국으로 점차 확장되는 것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악의 규모가 커지면 악에 대항하기 위한 여성히어로의 활동 범위도 자연스레 그만큼 넓어진다. 이 연작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한 명의 초능력자였던 여성히어로가 어느새 지구와 우주를 지키는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점층적 확장은 독자들이 경기여성히어로연대 연작에 몰입하게 할 뿐 아니라 이 색다른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개연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책을 덮는 순간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여성히어로를 기다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월간주폭초인전》은 독창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 과감한 색의 배치로 인정받아온 작가 이푸로니의 오프닝 그래픽으로 시작한다. 열여섯 페이지 화폭 위에 책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명쾌하게 구현한 이 오프닝 그래픽은 히어로의 역동적인 활약상을 시각화하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여성히어로를 인지한 독자들은 곧이어 멋들어진 히어로와, 자잘한 주변인물들의 뚜렷한 대비를 보며 만화적 상상력과 쾌활함에 미소 짓게 된다. dcdc 작가가 책 속 마지막 작품 〈수정초인알파전〉에서 우주로 세계관을 확장한 것처럼 이푸로니 작가 또한 폭넓은 상상력을 선보인다. 단일 페이지를 여러 구획으로 나눈 뒤 각기 다른 패턴을 입혀 장식하는 기법으로 《월간주폭초인전》의 이채로운 세계관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이 상상력의 확장이야말로 오프닝 그래픽 전반에 흐르는 왁자지껄한 정서, 그 특유의 키치함을 훌륭한 창작물의 층위로 끌어올리고 있는 원동력이다.
담대한 서사 실험 그 속에 담긴 끝 모를 유쾌함
《월간주폭초인전》은 작가 dcdc의 다양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연작 소설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성역할 도치와 구어체를 통해 이야기 전반에 유머를 녹여내려는 시도다. 〈월간영웅홍양전〉에서 여성히어로가 남자친구를 구한다거나, 〈주폭천사괄라전〉에서 남성인물이 여성히어로의 조력자의 역할에 그친다거나 하는 모습은 고정적 성역할의 전도시키는 대표적 설정 중 하나다. 하지만 결코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지 않고, 독자들은 여성히어로가 악을 물리치는 데에서 오는 통쾌함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 이는 히어로 이야기라는 설정이 주는 효과일 것이다. dcdc는 특유의 입말 가득한 문체로 이 의도한 가벼움을 성공적으로 구현해낸다. 이러한 방식은 여성인물을 전면에 배치하면서도 도식적이지 않게 여성주의 메시지를 설파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여성주의 서사를 둘러싼 분분한 의견들에 대한 작가만의 답이기도 하다.
이야기 구조와 화자의 시점 또한 《월간주폭초인전》의 독창적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작가 dcdc는 후기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창작 과정에서 정형화된 플롯을 공식처럼 활용할 수 있다고 가시적인 형태로 입증하고 싶었거든요. 이 시리즈의 플롯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제법 머리를 굴려 만든 것이라 애착도 크답니다. 소설대로 촬영하면 드라마, 사건을 과거회상이 아닌 시간순으로 풀면 로맨스 코미디 영화, 카메라의 시점을 히어로의 연인이 아닌 히어로에 맞추면 슈퍼히어로 액션 영화가 되는 구성이 나오지요.”
연작 소설이라 할지라도 정형화된 플롯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이는 형식이나 주제 면에서 통일성을 기할 수는 있되 이야기의 맛, 색다름에서 오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은 월경 기간에 정의감과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 홍양, 술을 마시면 진상을 부리지만 압도적인 파워를 얻는 괄라, 몸을 수정으로 바꾼 뒤 생체전류로 진동수를 조절하여 적을 물리치는 알파 등 여성히어로의 강력한 개성으로 인해 놀라울 정도로 쉬이 극복된다. 이들의 개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화자다. 작가가 내세운 관찰자 시점의 남성 화자(히어로의 남자친구)는 여성과 함께하며 여성성을 이해하려 애쓰고,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며, 여성히어로의 활약을 구술하다 경외를 표하기에 이른다. 히어로라는 이름은 자칭하여 얻어지지 않는다. 《월간주폭초인전》의 화자는 ‘경기여성히어로연대’라는 명칭과 그 존재의 타당성을 기술하며 독자들의 시선과도 궤를 같이하는 존재다.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춘 화자는 새롭게 등장한 이 초인들을 어떻게 이름 지을지에 대한 즐거운 고민을 독자들에게 위임하고 있다.
불가능하고도 가능한 세계, 포비든 플래닛(FORBIDDEN PLANET, FoP)! 2019년, 알마의 새로운 소설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현실과 이상이 결합하는 낯선 행성, 견고한 일상의 궤도에 틈입하는 새로운 문학. 마침내 한국소설의 미완의 조각을 채워 넣는다.
[P.30~31] “내가 좀 특이체질인데. 다른 사람들처럼 생리를 하긴 하는데 그걸 좀 특별하게 해서. 대략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호르몬 분비로 인한 생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 스트레스에 비례하는 슈퍼파워가 생겨. 초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응. 경각 씨가 예전에 무슨 영화 보자고 했었지?” “맨 오브 스틸… 슈퍼맨?” “응, 그거. 그거랑 비슷해. 힘이 무척 세지고 오감이 예민해져. 다쳐도 빨리 낫고.” 거참. 놀랍죠. “근데 그냥 힘만 세지는 거면 상관이 없는데… 내 몸만이 아니라 내 감정도 많이 흔들리거든. 그래서 막….” “막…?” “막… 정의를 지키고 싶어지거든.”
[P. 36~37] “이쯤 해요. 오늘 피곤하시니까 이해할게요.” 알아요. 안다고요. 내가요. 내가 못됐어요. 말 꺼내면서도 내가 못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영자 씨의 얼굴이 홍양 때 두르고 다니는 붉은 천보다도 붉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죠. 내가 엄청 진짜 무진장 되게 이루 말할 것 없이 못됐다고요. “야!” “어, 네?” “야! 노경각!” 은행삼거리를 지나는 모든 행인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우리 둘에게 쏠렸지요. 아니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몇몇 정도는 창밖으로 우리를 봤을 거라 생각해요. 아저씨가 폭탄 테러를 저질렀을 때도 그날의 영자 씨와 비교하면 한가한 봄날 영국 정원의 티타임과 같았을걸요. “내가 슈퍼생리 때 날을 세우는 건 맞지만 내가 날을 세우는 때가 전부 슈퍼생리 때는 아니거든?!” “어….” “가! 가라고!” “저….” “안 가? 네가 안 가면 내가 가!”
[P. 85~86] “됐으니까 어서 여자나 불러. 여자 나오라고!” “마! 여자다!” 네. 여자 나왔습니다. 현수 씨가 나왔습니다. 얼굴에는 수면안대. 오른손에는 반쯤 남은 소주병. 왼손에는 새우깡.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양주시의 유스티티아. 이제 와서 말씀드리기도 그런데 현수 씨 같은 슈퍼히어로한테 꽐라라는 호칭을 붙이신 것은 부당하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어쨌든 그날 현수 씨는 숙직실에 들어가 주무시기 전까지 그렇게 취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풍기는 술 냄새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안하면 아마 방금 소란 때문에 깨어나 재빠르게 소주로 나발을 분 것이 아닐까 짐작되었습니다. “어디 여자가 주무시는데 사내놈이 마 시끄럽게 꺅꺅거려쌌노?! 어?!” “이게 나이도 어린 계집애가 어?!” “손님. 그만하십시오.” “됐으니까 자기는 빠져.” 현수 씨는 주취자와 현수 씨 사이에 끼어드려는 저를 뒤로 물렸습니다. 주취자의 ‘어?!’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수 씨와 취객은 어?! 어?!거리면서 자연스럽게 편의점 밖으로 나가 한판 붙을 준비를 했습니다. 저도 어떻게든 두 사람을 중재하기 위해 그 뒤를 따랐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다른 주취자의 무리도 자연스레 두 사람을 에워쌌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현수 씨는 제 편의점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취객은 바깥의 한패들과 합류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겠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이 두 분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내린 결론인지 아니면 일단 술을 마시고 싸우려면 밖에 나가야 한다는 사회 관례를 무의식적으로 따른 결론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