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표제: Appeal from the new to the old Whigs, in consequence of some late discussions in Parliament, relative to the Reflections on the French revolution 원표제: Thoughts and details on scarcity : originally presented to the Right Hon. William Pitt, in the month of November, 1795 원표제: Speech at his arrival at the Bristol, and at the conclusion of the poll 내용: 신 휘그가 구 휘그에 올리는 호소 -- 궁핍에 관한 소견과 세부 고찰 -- 대의정치의 사명과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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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
Ⅰ. 신 휘그가 구 휘그에 올리는 호소 1.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로 휘그당과 결별한 버크 씨 2. 민주주의 옹호와 프랑스혁명 반대가 모순된 것인가 3. 명예혁명과 서셰브럴 재판에 관한 버크 씨의 해석 4. 버크 씨를 공격하는 신 휘그의 신조 5. 프랑스혁명의 다수 개념과 국민 개념의 올바른 이해 6. 혁명적 사고방식의 극단주의 분석 7. 정치적 사실과 인간 본성에 토대한 영국 헌정 체제의 이해
에드먼드 버크에게 보수주의란 이런 것이다. 인간은 신의 섭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종교(교회)가 인간의 삶의 질서를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 국가의 형성 과정에도 신의 뜻이 들어 있다는 것, 왕과 귀족과 신사 계급으로 권력이 구성된 영국의 입헌군주제가 바로 신의 뜻에 따른 가장 모범적인 헌정 체제라는 것, 이 헌정 체제는 오랜 역사적 전통과 관습과 계약에 의해 정착되었다는 것,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알고 신의 섭리에 따라야 하며 오랜 전통과 관습을 지키면서 필요한 변화를 조심스럽게 시도해야 하기에 겸손과 신중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그리고 겸손과 신중함이 몸에 배어 나타나는 인식 능력이 ‘선입견’2이라는 것), 따라서 프랑스혁명처럼 폭력과 파괴를 수반하는 모든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중도와 중용을 추구한다는 것, 민주주의는 무차별적 평등을 추구하여 다양성(=차별성)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은(!) 위험한 이념이라는 것.
책속에서
[P.21] 그 권력을, 불운하게도 저다지도 사악한 당파가 이 나라에서 소유하게 된다면, 영국 국민이 얼마나 많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지를 그들이 알게 해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든 잘못된 일입니까? 만일 가능하다면 저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막는 것이 비인간적인 것이고 우리 자신의 유혈이 없도록 경계하는 것이 경솔한 일입니까? 그의 형제 의원들이 고의로 찬성할 리는 만무한 유형의 행위에 사려 깊지 못한 표현으로 동조하지 말라고 정중하고도 우호적으로 그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당의 모든 공정한 원칙 또는 모든 상원 의원에 대한, 모두가 아는 우정의 의무 어떤 것에든 어긋나는 일입니까?
[P. 61] 이 모든 광범위한 이해관계들이 모두 고려되어야 하고, 비교되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조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나라에 봉사하는 의원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자유로운 헌정 체제라는 기관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치 있는 만큼 복잡하고 섬세한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하고 유구한 군주제 속의 의원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군주의 실제 합법적 권리를 경건히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제국과 우리의 헌정 체제라는 고귀하고 잘 지어진 아치를 단단히 묶어주는 쐐기돌이기 때문입니다. 균형 잡힌 권력 관계로 이루어진 헌정 체제가 언제나 긴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로 저는 헌정 체제의 그 부분에 관해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언급하고자 합니다.
[P. 176~177] 한 나라 안에 다양한 조건과 환경을 낳는 어떤 사물의 구조를 일단 부여하면, 덕과 명예가 더 높은(virtute et honore majores) 사람들보다 머릿수가 더 많은(numero plures) 사람들의 이익이 아닌 판단력을, 자연과 이성이 자기 이익을 위해 뒤로 돌리는 원리가 자연과 이성에는 있습니다. 한 나라에서 다수는 (프랑스의 경우가 아닌 어떤 나라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항상 중요하지만, 그것이 고려의 대상 전체는 아닙니다. ‘신사들이 내게 갈채를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satis est equitem mihi plaudere)’는 것은 연극보다 실제에서 더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