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옛이야기 ‘콩쥐 팥쥐’는 계모의 학대를 받던 콩쥐가 원님과 결혼하고 잘사는 이야기로 끝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원전에는 콩쥐가 결혼한 후에도 여러 가지 일화가 펼쳐지지요. 원님과 결혼한 콩쥐가 팥쥐 모녀의 계략에 넘어가 물에 빠져 죽고, 팥쥐가 자신이 콩쥐인 것처럼 원님을 속여 아내 노릇을 합니다. 죽은 콩쥐는 연꽃과 구슬로 변신했다가 사람으로 되살아나서, 아내가 뒤바뀐 사실을 몰랐던 어리석은 원님을 꾸짖고 팥쥐 모녀를 벌한다는 것이 원래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근대에 들어 ‘콩쥐 팥쥐’가 주로 그림책으로 소개되면서 결혼후일담이 유아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왜곡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후일담을 살리지 않은, 즉 콩쥐가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원님과 결혼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결말을 맺는 ‘콩쥐 팥쥐’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전근대적인 가부장 중심의 가치관을 심어 주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많은 그림책에서 콩쥐는 여리고 예쁜 여자로, 팥쥐는 독하고 못생긴 여자로 묘사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이들에게 그릇된 외모지상주의를 길러 줄 우려가 있습니다.
원래 ‘콩쥐 팥쥐’는 콩쥐가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스스로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옛이야기입니다. 결혼 전에는 계모와 팥쥐의 구박을 당하기만 하던 나약한 존재였던 콩쥐가 결혼 후 죽음과 환생을 경험하며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 원전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콩쥐 팥쥐』는 결혼후일담까지 담으며 콩쥐와 팥쥐 캐릭터를 정확하게 표현하여, ‘콩쥐 팥쥐’ 원전의 주제와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옛이야기 그림책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한 인간의 성장담 『콩쥐 팥쥐』
지금까지 ‘콩쥐 팥쥐’는 콩쥐와 팥쥐의 단순화된 선악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권선징악’ 주제를 대표하는 옛이야기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원래 ‘콩쥐 팥쥐’는 우리 선조들 특히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이를 극복하는 지혜가 담긴 이야기입니다. 밭을 매고 물을 나르고 벼를 찧고 베를 짜는 등 콩쥐가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옛날 여성들의 고된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수행해야만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고 가족들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리고 나약하기만 했던 콩쥐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 일들을 수행하며, 결혼을 통해 더욱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많은 연구가들은 콩쥐와 팥쥐를 한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없이 혼자서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면서 성장하는 콩쥐와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팥쥐는 한 인간에게 존재하는 양면적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콩쥐가 여러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은 한 인간이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안정 상태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성장하여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과정입니다. 많은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이를 꿋꿋하게 이겨내는 콩쥐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한 발짝씩 성장하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좋은 이상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력적인 색감과 현대적인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콩쥐 팥쥐』
오랫동안 그림책 관련 연구와 강연을 하며 옛이야기를 집필 중인 김중철 글작가는 원전의 복잡한 서사와 다양한 상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유아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략하고 편안한 문장으로 『콩쥐 팥쥐』을 재화하였습니다. 또한 기존에 틀에 박혔던 콩쥐와 팥쥐 캐릭터에서 벗어나 객관적이면서 담담하게 인물을 묘사하여 어린이 독자들이 선입견 없이 캐릭터를 이해하고 이야기를 받아들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그림책의 가장 큰 매력은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션에 있습니다. 아직 많은 그림책을 출간하지 않았지만 최근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정현지 그림작가는 복잡한 서사와 다양한 상징이 숨어 있는 ‘콩쥐 팥쥐’를 화려한 색감과 단순한 그림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책으로 표현했습니다. 기존의 예쁜 콩쥐와 못생긴 팥쥐 이미지에서 벗어나 완전 새로운 콩쥐 팥쥐 캐릭터를 창조했습니다. 얼핏 보면 쌍둥이로 보일 정도로 콩쥐와 팥쥐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성장하는 콩쥐는 단순하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무채색으로, 엄마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팥쥐는 화려하지만 유아적인 알록달록한 색으로 표현하여 두 캐릭터의 차이를 분명히 두었습니다. 이 색감은 콩쥐와 팥쥐의 조력자나 배경에도 활용하여 전체적인 이야기의 통일성을 주고 있습니다. 콩쥐를 도와주는 암소, 두꺼비, 참새, 선녀 등은 녹색 계열을, 팥쥐 엄마는 붉은색 계열로 채색하여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