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정대다가도 금세 얼굴을 붉히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서도 작은 거짓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날 내버려 두라고 하면서도 막상 아무도 찾지 않으면 한없이 초조해하고, 아무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조소하지만 막상 이해받지 못하면 의기소침해하고, 어른들이 위선적이라고 비난하지만 누구보다도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혼란스러운 사춘기의 심리를 홀든 코울필드보다 더 잘 드러낸 캐릭터가 있을까? 그래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아마도 영원히 최고의 성장소설로 꼽힐 것이다. 동생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을 아직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소년이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들어서며 ‘동생을 잊을까봐, 소중한 것들을 잊고 속물적인 어른이 되어버릴까봐’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마크 트웨인, 스콧 피츠제럴드와 함께 미국의 3대 현대소설가로 꼽히는 J. D. 샐린저의 자전적 소설이다.
“곁에 아무도 없어. 나와, 나 자신과, 나뿐이야.” 철저히 혼자라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사춘기의 심리를 예리하고도 따듯하게 그려낸 수작
크리스마스를 앞둔 토요일, 네 과목에 낙제하고 네 번째로 퇴학을 당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열여섯 살 소년 홀든 코울필드는 파자마 바람에 그날 아침 충동적으로 산 빨간 사냥모자를 뒤집어쓰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3년 전 죽은 동생, 새빨간 머리카락이 예뻤던 착하디 착한 앨리의 이야기를. 그러자 너무나 그리워져서, 슬프고 외로워져서 다짜고짜 룸메이트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얻어터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학교를 떠난다. “유치한 바보들아, 잘들 자라!” 방학일인 수요일까지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었던 소년은 뉴욕 거리를 헤맨다. 홀든은 만나는 사람마다 구역질이, 하품이, 진저리가 난다고 시비를 걸다가, 막상 홀로 되면 외로움에 쩔쩔맨다. 어른들은 다 바보라고 빈정대지만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기를 쓴다. 결국 홀든은 어린 여동생 피비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만 하고 멀리 떠나기로 결심하는데…….
책속에서
“오빠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한 가지만 말해봐. 거봐, (……) 한 가지도 생각하지 못하잖아.” “난 엘리가 좋아.” “엘리 오빤 죽었어.” “앨리가 죽은 건 나도 알아. 그래도 좋아할 순 있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둘 순 없어. (……)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줄까?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아이들이 노는데, 어린아이들만 잔뜩 있고 어른은 나밖에 없어. 어린아이들은 놀다 보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다가, 어린아이들이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붙잡아 주는 거야. 호밀밭의 파수꾼인 셈이지.” _22장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점은 모든 것이 항상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리를 뜨는 법이 없었다. 바뀐 것은 오직 우리다. 나이를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변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항상 그 무엇인가가 달라지고 있다. (……) 어떤 사물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유리집에 넣어서라도 그대로 두고 싶다.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그 불가능이라는 것이 나를 너무 우울하게 한다. _1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