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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2
3
4
5
6
에필로그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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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여인 : 이문열 장편소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842140 811.32 -22-53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842141 811.32 -22-53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B000040723 811.32 -22-53 부산관 종합자료실(1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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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구상에서 집필까지 18년
이문열의 주옥같은 문장으로 빛나는 예술가소설의 탄생


전체 3000만 부 이상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황제를 위하여』 등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소설만 6종. 1979년 등단 이래 40여 년간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거머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이문열. 그의 작품 중 예술가소설로 『들소』 『시인』에 이은 『리투아니아 여인』을 손꼽는다.
이 작품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뮤지컬감독 김혜련을 주인공으로 한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란 딸 혜련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받는 모습을 지켜본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갑자기 미국으로 간다. 미국과 한국에서 자란 혜련은 다국적 정체성을 갖게 되고,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몽골리안 음악가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3년 만에 이혼한다. 다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 혜련은, 아홉 살 연상의 연출가 ‘나’와 뉴욕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창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며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순식간에 문화적 아이콘으로 떠오른 혜련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스타의 자리에 오르지만, 한편으로는 이중국적과 스캔들로 인해 대중의 비난과 언어적 폭력에 시달린다.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힘겨워하던 혜련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예술과 음악의 본질을 탐구해나간다. 『리투아니아 여인』은 혜련의 삶을 통해 다국적 정체성과 디아스포라의 운명, 그리고 한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디아스포라의 운명에 맞서 살아가는
그녀의 타오르는 예술혼과 사랑


작가 이문열이 처음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늦겨울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였다. 이문열의 희곡 「여우 사냥」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명성황후」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섯 명의 일행이 약 한 달간 브로드웨이의 각종 뮤지컬을 관람하는 여행을 함께한 적 있는데, 그 일행 중에 이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의 모델이 된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뮤지컬감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칼린이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자랐던 그녀의 추억담과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의 이모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문열은 소설화에 대해 마음을 굳혔고, 결국 2011년에 『리투아니아 여인』이란 작품으로 첫 결실을 맺게 되었다.
작품 구상에서 집필까지 18년이나 걸린 작품으로 이문열의 예술가소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문열은 독자들에게, 소설과 그녀의 실제 삶이 혼동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많은 부분이 그녀의 추억과 경험이 참고되었지만, 소설적 갈등 구조를 이루는 부분은 모두가 창작임을 미리 언명해 둔다. 피와 땅에 바탕하는 정체성의 무의미함, 예술의 보편성 또는 노마드적 성격에 대한 짧은 성찰 들을 주제로 하는 소품으로 읽어 주길 바란다.”
2022년 표지 디자인을 바꾸고 글의 미세한 수정 몇 가지를 반영하여 새롭게 출간하였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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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내가 울며 들어온 까닭을 묻는 아버지에게 모든 일을 사실대로 알리면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겁이 덜컥 나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거짓말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내 방에 들어가니 다시 밖에서 당한 일이 억울해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셨어요. 아버지는 울고 있는 저를 가만히 끌어안으며 말하더군요. 그래, 맞다. 얘야, 내가 너무 미련했다. 이제 돌아가자. 너희가 있었어야 할 곳으로, 라고.
[P. 115] 그날도 나는 약간 들뜬 듯한 기분으로 이제는 나도 공동대표로 있는 우리 극단 사무실로 나갔다가 오랜만에 혜련을 만나게 되었다. 늘 그랬듯 우리는 어제 만났다 헤어진 사람들이 전날 하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 가는 것처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으나 기억나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녀의 리투아니아 얘기였다.
[P. 158] 따라서 나는 배우자가 아니라 우리 결혼 생활에서 아내 역을 맡을 배우와 결혼한 것이었고, 스스로는 원관념이 되는 삶을 함께할 남편이기보다는 우리 결혼을 성공적인 연극으로 이끄는 연출자이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우리 사이에는 애초부터 삶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배우와 연출가 또는 배우와 배우, 그리고 나중에는 연출가와 연출가의 만남이 되어 가장과 주부 또는 남편과 아내의 삶을 공연했을 뿐이었던 듯 싶다.